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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그리스도」의 교회와 대「바벨론」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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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자유와 관용이라는 우상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미국인들은「유럽」인들에 비해 희생적이고 인내심이 많음을 볼 수 있다. 남의 것을 빼앗고 식민지화한 후에 착취를 일삼아 온「유럽」의 정신에 비하면, 청교도 정신 위에 선 미국은 정신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관용을 베풀줄 아는 사람들이다. 독자는
"자유"와 "관용"이란 두 단어에 유의하기를 바란다. 사탄의 세력이 미국의 자유정신을 유린하는데 사용하는 두 단어가 바로 "자유와 관용"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제한없는"
방종의 자유 위에 서있는 종교의 자유 아래「사탄」교(敎)까지도 인정한 곳이 미국이다. 미국인들은 "너그럽지 못하다"든지
"편협하다"는 말을 견디지 못하며, 감상적이다 못해 무엇이 참으로 "부정적"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비판과 비난이 구분되지 못하며, 인간의 선과 완전성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긍정적인 미국인의 정신은 "교조적인(종교적인)
믿음"(46)에 가깝다. 바로 이 두 정신이 미국을 기울게 하고 있다.
1960년 벌어진 미국 선거는 이 사실을 바로 증언하고 있다. 미국의 첫 천주교 대통령「죤 케네디」대통령이 출마를 하였을 때, 제대로 조직도 정비되지 않았고「프로테스탄트」를 제압할 다른 방도가 없었던 천주교는 종교를 이용하여 이러한 미국인들의 감상을 이용, '편협함'이라는 간교한 말을 사용하여 미국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림으로써 승리하였다. 편협하다는 비난이 듣기 싫었던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에게 표를 던지도록 유인함으로써「케네디」는 대승하였다. "편협한"
사람에 대한 비난은「매스미디아」를 통해 곧 자유롭게 대중화되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자유정신 위에 건국된 미국에서 벌인 천주교의 개척은 주효하여, 미국 역사상 첫 로마카톨릭 대통령을 내었다. 그리하여 미국 건국 200년사에 최대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미국 공립학교의 성경 공부가「케네디」대통령 재임시에 폐지되는 불운이 일어났다. 오늘날 미국의 가정, 사회, 국가의 정치, 경제 등의 모든 문제는 자유와 관용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본적 감상주의의 결과의 한 부분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편협한 종교인 로마카톨릭교가 "편협하지 말자"는「프로파간다」를 가지고「프로테스탄트」교회의 담을 무너뜨렸던 것이다(47).
31. 거짓된 교리는 사회부패의 첫걸음이다.
문명은 매우 복잡한 요인들의 결과이기 때문에 한가지 이유에만 정확한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거짓된 교리는 거짓된 열매를 생산한다는 사실은 진리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5-20)고 말씀하신다.「로마」종교가 들어간 나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천주교국으로 알려진 중남미 400년의 천주교 선교의 결과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미국 불법이민의 대다수가 이러한 나라로부터 들어온다. 그러나 오늘날 "사랑"만을 부르짖는 무리들이 있다. 교리는 없어도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1910년 영국의「에딘버러」에서 시작된 현대의 첫「에큐메니칼」운동의 하나인 "세계선교사회의"(World Missionary Conference)는 영국국교와 로마카톨릭교(Anglo-Catholics)가 연합으로 시작, 1925년의「스톡홀름」과 1937년「옥스포드」회의 때에는 아예 "교리는 분열을 가져오고, 섬김은 연합을 가져온다"(Doctrine divides, Services unite)라는 기치를 내세웠다(48).
사랑이 없는 진리는 편협하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갈 4.15)고 말한다. 그러나 진리를 떠난 사랑은 배도에 속한다. "교리는 중요치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랑만큼 깊이가 없고 어리석은 것"이란 이론 역시 교활한 사탄의 속임수이다.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이 공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치유에 있지만, 이 복음은 또한 세상을 심판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한가지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이미 심판을 받은 "바벨론 세력"에 대해 더 이상 공격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성경은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계시록 18.2)라고 선언하고 있다. 미장로교회의 학자였던「뵈트너」박사는 그의 명저「로마카톨릭주의」에서
'로마교황무오설에 대한 주장은 매우 허황된 것들이어서 진지하게 다룰 수가 없다'고 말했다(49).
그 방대한 교리, 전통은 대부분이 인간의 유전에서 출발하고 있어 바로 대면할 만한 가치조차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대 바벨론"의 주축을 이루는「로마」종교의 시작은 313년「에큐메니즘」으로 시작된「바벨론」종교의 연속이다. 로마카톨릭교 안에는 1) 유대교의 절기 숭상, 2)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킨 기독교의 한 부분, 3) 불교의 우상숭배, 4) 모슬렘의 금식, 5) 힌두교의 범신론, 6) 토속종교의 뱀숭배 및 미신 등 로마카톨릭 교회의 시작은 시초부터 모든 종교의 견본들로 자리를 잡아왔다. 정권과 결탁한 이 국가종교는 참된 기독교인들을 이단으로 몰아부칠 수 있는 거짓된 교리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여, 복음의 변질을 용납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교회 밖으로 쫓아내었다. 기독교회사를 보면 권력의 배경을 가졌던 대다수의 세력을 장악한 힘은 늘 정통이었고, 이 정통으로 가장한 사탄의 세력, 종교인들의 시기 질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속죄양으로 만들어 처형하였다.
32.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사탄의 세력
「무디」는「유타」주(洲)의「몰몬」교회 강단에 섰고, 미장로교의 영적 부흥사「찰스 피니」목사는 사탄의 집단「프리메이슨」에 가입하였다 나온 분이었다. 우리 모두가 때로는 잘못 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로마」종교와 짝사랑에 빠져 눈이 멀어진 지도자들은 옛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도 확실하게 들려준 유언들을 무시하고 있다. 천주교의「제2 바티칸」공회(1962-1965) 이후 기독교는 속에서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로 가장한 수많은 악(惡)의 세력들을 경계하라.「적극적 사고방식」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노만 빈센트 필」목사는 33급의「프리메이슨」멤버였으며(50),「크리스탈」사원(Crystal Cathedral)의「로버트 슐러」목사는「크리스탈」사원을 건축하기 전 로마교황청을 방문,「로마」교황의 축복을 받고 돌아와 이를 준공했으며,「슐러」목사의 망언 - "지금은「프로테스탄트」교도들이 목자장이 되신 (로마)교황 앞에 나아가 우리가 집(로마카톨릭교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어야 할 때이다"(「로스안젤스 헤랄드 이그제미너」,
1987.9.19 ) - 은 그 자신이 이단의 선전자임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51).
"길, 진리, 생명"이 되신「예수 그리스도」의 기독교를 떠나면 이러한 어리석은 '교회교의 지도자'를 따르게 된다. 종교통합의 한 음모로 오늘날「로마」종교의 사제들은 평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있는데, 우리네 기독교회의 일부 목사들이 "로만 칼라" 복장을 하고 다님으로써 성도들로 하여금 혼동하게 유도하고 있다. 마음가짐이 중요하지 외모가 그렇게 중요한가? 라고 반문하겠지만, 국군이 괴뢰군복을, 목사가 불교승복을 입고 다니면서 마음만은 국군이다 기독교 목사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33. 영성훈련,「쿠르시요」운동,「트레스 디아스」
「쿠르시요」운동은 로마교황청의 오른손,「돈키호테」의 땅「스페인」이 낸「로욜라」의 '영성훈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통일교의 어떠한 과정이 좋다 하여 그것을 기독교에서 재개발하는 자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문제는 천주교가 이단 중에서도 "슈퍼 이단"(Super-Cult)이라는 사실에 대한 무지에서 시작된다. "기독교에 맞게끔 개편한..." 운운하면서 자기합리화를 시도하는 자는 모두 스스로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천주교를 기독교로 인정함으로써 양(羊)들을 오도하고 있다.「트레스 디아스」과정을 분석하는 시금석은 하나님의 말씀에 언급된 "바벨론의 음녀"「로마」종교이다.「로마」교회는「콘스탄틴」대제 때부터 모든 사교들을 묶는 종교통합을 시도해왔고,「트레스 디아스」과정에 뉴에이지(새시대)운동의 심볼들인 무지개, 비둘기, 나비... 등의 자료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1992년 9월 15일 에는 '통일유럽'의 수도로 알려진「벨기에」「브뤼셀」의 시청광장에서 세계 12 종교의 대표급들이 다시 모여, 평화와 일치라는 이름 아래 하나되는 연습을 가졌다.「루터」의 개혁을 제일 먼저 정죄한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루뱅'(Louvain) 대학에서 이들은 "트레스 디아스(3일)의 모임"을 가진 후, 1523년
7월 로마카톨릭 교도들이「루터」교도들을 처형한 바로 그 광장에서,「트레스 디아스」과정이 사용하는「뉴에이지」운동 심볼로 장식한 스탠드에서, 그들은
"한 뜻"(계 17.13)이 되었다. 이 과정의 기본적인 신학 뼈대는 화란의「도미니칸」파의 신학자의 "그리스도"에 의존하고 있다(52).
그는「마리아」학(Mariology)의 권위자로, 로마교황청의 성모「마리아」숭배(Mariolatry)의 일선 변호자로 알려진 사람이다(53).
그외「떼제공동체」등의「에큐메니칼」이단운동(54)에 깊숙히 관련하고 있는 저자들의 책들이 동원되고 있다. 텍스트의 내용순서는「제수이트」창설자「로욜라」의 영성훈련(혹은 영신수련)을「스페인」의「제수이트」사제가 모방 축소한 불어판 소책자로서「이태리」에서 인쇄된 "로욜라에 의한 35가지의 영성훈련"을 비슷하게 따르고 있다(55).
성경인용은 예수님의 "보혈"을 설명한 가장 중요한 "피"를 33곳 빼고 출판한 'Bad News
Bible'로 알려진 "Good News Bible"에 의존하고 있으며, 주기도문, 사도신경 순으로 시작하고 있다. 지도자 교범에는 천주교의 전통적인 "일곱 성례전"의 중심이 되는 화체설을 실제로 언급하고 있으며, 천주교식 성찬식(떡을 포도주에 찍어서 떡만 입에 넣어줌)을 시행하고 있다. 그외에 비성경적인 교리의 힘정이 약 90여군데에서 발견되는 이 과정의 목적은 종교통합(에큐메니즘)임을 금방 식별할 수 있다.
기타 재료는 "아비와 지도자들"의 심볼인 나무십자가와 원형의 가죽명찰을 의무적으로 목에 걸게 하고,「프리메이슨」의 인사 "포옹"(아브라조)을 하며,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을 찬양, 이 과정의 텍스트, 교범의 전반에서 발견되는「스페인」어 De
Colores (56)를 제목으로 한 "뉴에이지 운동"의 무지개가 사용되고 있으며,「새시대운동」의 전도자들인 미국의 새 대통령「클린턴」이 선거유세에서 밝힌 "새언약"의 무지개는 모든 종교의 색깔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 그래서 이 과정은 종교통합을 위한 사탄의 암호라고 할 수 있는 "De Colores" 를 노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뉴에이지운동"의 중심사상의 하나인 환생(reincarnation)을 의미하는 "나비리봉"을 머리에 꼽고 3일의 과정을 마친다.「뉴에이지」사상의 충실한 전도자인「고어」부통령은 그의 저서에서「뉴에이지」운동을 거부하는 기독교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으며(57),
미국 공립학교에 또 다른 재앙「뉴에이지」사상이 정식 과정의 하나로 채택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어, 기독교회가 성경 교육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이 사상은 오히려 교회를 흔들 것이 분명하다.
34. 모든 사람이 당신을 칭찬할 때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환기시켜 주려는 노력은 배척을 받는다. 서로가 점잖게 품위를 가지고 여유있게 용납하고 용납되기를 바란다.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와 계획이 파괴된 것같은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표시하기도 한다. 또 많은 해외선교 기관들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주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선교지 늘이기, 숫자놀이 허영심에「로마교황청」세력과 협상을 벌여 소위 천주교국으로 알려진 나라에 들어감으로써, 천주교를 기독교의 하나로 인정한 꼴이 되어버렸고, 그 결과 선교지에서도 혼란을 가지고 와 힘써 한 사람을 전도하면 "사랑과 일치" 구호 아래 이리의 소굴로 인도, 영혼을 죽이는 현상이 로마카톨릭국에 들어온 일부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교계 지도자들이 천주교와 야합함으로써 미국교회는 급속히 퇴색, 북미 선교사들의 철수붐을 가지고 왔다. 오늘날 WCC, NCC 교단에 몇 명의 선교사가 남아 있는가를 들여다보라. 로마교황청의 세력을 업었던「로마」교회의 아들「히틀러」가「유럽」을 초토화 시켰을 때, 유대인「아인슈타인」박사는 관념적인 이론과 이상으로 차있는 지성인들의 함구를 가장 두려워 했던 것같다: "세상은 참으로 위험한 곳이다. 그것은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이 아니라 악을 보고도 방관하는 자들 때문에 더욱 위험한 곳이다."「매튜 헨리」는 "선한 사람들이 침묵을 지킬 때 악은 만연한다"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다(갈 1.10). 우리가 모든 사람들의 충족을 채워주어야 된다고 믿는다면, 옛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의 메시지에 귀를 열어야 할 것이다.「녹스」,「루터」,「깔뱅」등의 그 많은 개혁자들이 모두 종교적 완고주의자들로 정죄함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종교인들을 향하여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마태 23.33),「헤롯」을 향하여는 "저 여우에게..."(누가 13.31)라고 맞섰던 우리 주님은 종교적 완고주의의 극치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주님은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6)고 말씀하신다. 검은색을 검다고 할 때, 세상은 오히려 편협하다고 미워한다. 그래서「바울」은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갈 4.16)고 반문한다. 세상살이에 있어서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할 때, 때로는 우리에게 심히 불리하게 들리는 것이 복음의 정신이다.
35.「에큐메니즘」의 이상과 우상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의 레비아탄(Leviathan)에는「로마」의 악령(惡靈)이 중국, 일본, 인도 등 먼 곳을 방황하다 다시「로마」로 돌아올 것을 내다보았다. 그 많은「라틴」공회는 두 머리의「야누스」, 새로운 정치적 괴물, 교황의 이중성에 대해서는 침묵해왔다.「콘스탄틴」이후로「게르만」적인 요소를 지녀왔던「로마」교회 안에 새로운「로마제국」이 옛「로마」의 영토위에 다시 터를 닦기 시작하였다.「로마」교회의 부상과 더불어「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종교통일과 단일정부체제의 돌입을 위해 새시대운동과 새세계질서란 구호 아래 우리의 세상은 '하나되는 운동'에 몰입하고 있다.「유럽」공동체의 간행물은「루터의 개혁」때문에 통일유럽이 늦어졌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제2 바티칸」공회(1962-1965) 이후로 아비와 지도자의 세력은 세계정복을 위하여 하나가 되었고,「예수회」의 지도 아래「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첫 기념물로 출판한, 배도(背道)
및 향(向)「로마」복귀운동인 옥스포드 운동(Oxford Movement)은「로마」에 근원을 둔 영국국교를 흔들어「킹 제임스」성경을 몰아내고,「제2 바티칸」공회를 몰고왔다. 그외 떼제(Taize) 공동체, 트레스 디아스(Tres Dias) 등이「에큐메니칼」운동을 가속화해왔고, WCC,
NCC, NAE,「로잔」운동(LCWE), ECT 등은 모두 로마카톨릭 교회에 침식당해 이미 침몰 혹은 파선중에 있다(58).
「이스라엘」백성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은 가장 큰 장애물은 세상 명예욕에 빠져「그리스도」까지도 알아볼 수 없었던 제사장 계급들이었듯이, 오늘날 직업적으로 행세하는 종교지도자들은 외형적 종교놀이에 몰두, 가시적인 종교적「바벨탑」을 쌓으면서 제각기 '작은 교황'이 되어 하나되는 연습에 열중, 길 잃은 양(羊)들을 몰고 강도의 소굴로 들어가고 있다. 성경은 이 혼합된 술을 마시는 자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는다. 이 운동의 허구성에 대해 고(故)「프란시스 쉐퍼」박사는 그의 마지막 저서인「대 복음적 재난」에서 아래와 같이 피력하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하나됨이 단지 조직화된 일치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대에 있어서 우리는 교회의 기구적 연합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마치 풍진(風塵)이 전염병을 따라 번지듯 연합 무드는 공기 속에, 우리 주위를 빙둘어 있다. 인간이란 온갖 종류의 조직화된 연합을 할 수가 있으나 세상 사람들에게 조금도 연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일치가 기구적인 연합이 아님을 입증할 이유는 많이 있다. 모든「그리스도」인은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거듭난「그리스도」인들을 다 포용할 기구적 연합이란 있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될 수도 없는 일이다. 예를 들면 아무 기관에도 전혀 속하지 않은 참된 거듭난「그리스도」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어떠한 조직이 박해로 인해 외부와 격리되어진 참된「그리스도」인들을 포용할 수 있단 말인가? 기구적 연합이 해결책이 되지 못함은 분명하다.'
참 일치는 이미「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졌고(요한복음 13장, 17장),
거짓된 일치는「그리스도」바깥, 인간 안에서「바벨」탑을 쌓아 사탄의 휘하로 들어간다.「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두고 있을, 대 배도(背道) 사건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성경은 이미 이 사실을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다(살후 2.1-12). 교회가 아무리 많아도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위험은 교회가 가시적으로 하나되는 위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그리스도」를 저버린 자들은 영웅 기갈증을 해소해 줄 적「그리스도」를 찾을 것이나, 주의 영으로 거듭난 자는 이미 주의 성령 안에서 하나되어 있어 외형적인 것에 몰두해야 할 필요가 없다. 두 종적(宗敵)인「헤롯」과「빌라도」가 우리 주님을 처형하기 위해 하나가 되었다: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눅
23.11,12). 이제 적「그리스도」체제가 주님께 대항하기 위해 일치운동을 하고 있다: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계 17.13,14).
36. 새시대운동(NAM)과 새세계질서(NWO)
「로마제국」내의 동방지역 평정을 위해 새 질서(New Order)가
66-62 B.C.에 시달되었다.「바벨론」의「미드라」종교의식은「로마」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성례전의 두번째 뜻은 군사적 동맹서약(Military Oath of Allegiance)을 의미하였다.「여호수아」를「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간주,「로마」교회안에 그리스도의 군대(Militia
Christi)를 일으켰고, 국가 안의 국가가 되어,「로마제국」의 통일을 위해 존재하였다.「가이사」의 정치적 전문용어였던 로마의 평화(Pax
Romana)는 평화의 여신(Pax Goddes)으로서「로마제국」의 수위권을 인정,「로마」의 살인적인 규율과 조약을 동반한 '무력하의 평화'를 의미하였다. 황제를 신(神)으로 모신, 타시투스(Tacitus)의 표현대로 '전대미문의 로마인의 잔인성'을 동반한 평화를 의미하였다.「로물루스」의 예언대로「로마」를 대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러나「바울」은「로마제국」이 약속한 '평화와 안전'이라는「슬로건」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경고하였으며(살전 5.3), "우리의 평화"(엡 2.14-18; 롬 5.1)가 되신 "그의 십자가의 피로 누리는 평화"(골 1.13-20)만이 참된 평화임을 이야기한다. 기독교는 반(反)「로마」, 반(反) 제국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빌
3.20).「십자군원정」으로부터 로마교황청이 조작하여 12년 동안「프랑스」를 양분(兩分)시킨「드레퓌스」사건(Dreyfus Affairs)에 이르기까지,「로마」교회의 아들들 - 무쏠리니,
히틀러, 조국「프랑스」를「로마」교회를 통해「나치」에 매도(賣渡)한 빼땅(P. Pétain), 계통적인 카톨릭적인 민주주의를 외친 프랑코,「나치」의 꼭두각시 파베릭(Ante Pavelic) - 은 모두 그 뿌리를「로마」에 두고「로마」교회 안에 잠복해온「로마제국」의 새 질서(New Order)를 위해 동원되었다. 새세계질서는 도무지 새로운「프로파간다」가 아니다.「나폴레옹」이나「히틀러」가 즐겨 사용하던 바벨론의 비밀,「로마」교회의 용어이다.
「뉴에이지운동」은「새세계질서」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이 뿌리는 고대「바벨론」의 점성술에서,「애굽」을 거쳐,「유럽」의「로마」교회 안에서 자리잡아왔다.「헬라」의 첫 궤변가「프로타고라스」(Protagoras, 485-410 B.C.)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가 된다'는 가르침이 플라톤 등의 사상가를 거치면서, 초대교회의 사도들의 가르침이 잊혀지고 있을 때, 이 사상은「로마」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이 인본주의 사상의 시초는「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첫 인간을 유혹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신(神)들과 같이 되어..."(창 3.1-7, KJV)라는 말씀에 있다.「바벨론」의 점성술과「헬라」의 철학에 몰두하였던 초대교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다 인간철학과 이교사상을 더하였고,「로마」교회는 이러한 교부들의 사상을 물려받았다. '교황과 그리스도 사이에는 다른 것이 없다'는 등의 망발을 서슴치 않았던,「이태리」의 인본주의자「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55-1274?)에 와서는 인간의 본유적인 선(善)을 주장한 자연신학을 거쳐,「르네상스」(14-16
세기) 때에는 '인간의 지고선' 사상이 최대로 꽃을 피웠다.「마르틴 루터」는 로마카톨릭 신학을 집대성(集大成)한「아퀴나스」의「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을 "온갖 오류와 복음의 대(大) 황폐를 초래한 근원이며 뿌리"로 보았다.「예수회」사제로서 현대 뉴에이지 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적'진화론자 샤르뎅(P.T. de Chardin, 1881-1955)이 발전시킨「뉴에이지운동」의 주요 9가지 교리는 모두 반(反) 기독교적이다.「트레스 디아스」는「뉴에이지운동」을 가속화하기 위한「로마」교황청의 음모이며, 중남미 정계, 재계의 지도자들의 대부분이, 또 미국 천주교의 은사운동(Catholic Charismatic Movement)을 이끄는 지도자들이 모두「꾸르시요」운동 수료자들(Cursillista)이다. 새시대운동과 마찬가지로 이것의 끝은「바벨론」종교제도로의
복귀이다. 이 말은「프린스턴」신학대학장이었던「맥케이」박사가 미국의 장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글에 잘 나타나있다: "과거 수세기 동안「라틴」아메리카에서 현저히 그 지역사회를 지배해온 사제존중 사상이 과거 20년 동안 미국에서도 뚜렷이 머리를 들게 되었는 바, 이
'사제존중사상'이란 다름이 아니라, 종교단체의 지도자들에 의하여 속화된 방법에 의해서 사회를 지배할 목적으로 권력, 특히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사랑의 심볼'로 불리워지고 있는 극도로 감상적이었던「어거스틴」의「프로파간다」- '모두들 십자가 표적을 붙이고, 모두들 아멘하며, 할렐루야를 노래하자. 모두들 세례를 받고 교회에 가서 바실리카(basillicas)를 건설하자.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사랑 외에 아무 것도 없다' - 는「로마」교회로 하여금 세계종교통합의 이상을 제공한 새시대(뉴에이지) 운동의 뿌리가 된다. 로마카톨릭 교회가 숭배하고 있는 마리아,「모짜르트」가 프리메이슨을 위해 작곡(作曲)한 마법의 피리(Die Zauberflöte)에 나오는 이시스(Isis),「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Nostra-Damus/ Notre Dame/
Mary/ Semiramis)의 사상, 뉴에이지운동의 가이야(Gaia)의 근원은 모두가 하나인「바벨론」의 어미(Mother)이며,
로마카톨릭 교회의 성령운동은 '마리아'운동(Mary
Movement/ Catholic Charismatic Movement)이다.
로마카톨릭 교회가 은사운동을 통해 국제적인 속임수를 가지고「프로테스탄트」를 기만,「프로테스탄트」들이 의식적으로 그 속임수에 넘어간 사건은 '인디아나폴리스
1990'에서 재현되었다. 그것은 '성령과 세계복음화'라는 주제로 모인 에큐메니칼 은사회의에서였다. 23,000 여명이 모인 회의에 로마카톨릭 교회는 가장 많은 대표를 파견하였다. '카리스마'(Charisma)란「로마」교회 간행물은 '로마카톨릭(복음주의 훈련)회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게 하는데 초점을 두었으며, 어떤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것처럼 사람들을 설득하여 카톨릭교회로 합류시키려고 시도한 적은 전혀 없었다'고 열광적으로 보도하였다.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를 주장하는 은사파들이 왜 자기들이 의도적으로 기만당하고 있다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든다.
「바티칸」에서 로마카톨릭 교회의 '새 복음화 2000'('New Evangelization 2000')을 총감독하는「포리스트」(Tom Forrest) 사제는 카톨릭교도와「프로테스탄트」들이 합동으로 모인 청중 앞에서 연설했을 때 복음주의적인 용어를 적절히 구사하였다. 그가
'세계복음화'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외쳤을 때「프로테스탄트」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또 로마카톨릭 교도들만이 참석한 연수회의에서는 그 자신이 참으로 믿는 바를 선언하여 또 다른 박수갈채를 받았다: '우리의 목적은 사람들을 카톨릭교회로 인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부유하고 풍성한 크리스쳔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교회 안으로 복음화"해야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단순히 크리스쳔이 되도록 인도하지 말라. 우리는 그들이 카톨릭이 되도록 인도해야 한다. 왜 이것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일까?... 이는 7성례전이 있으며, 카톨릭교회는 이 모두를 다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마신다. 우리가 제물을 바칠 때 예수는 우리의 제단 위에 살아계신다...'
'카톨릭교도로서 우리는 마리아를 가지고 있으며... 그녀는 천국의 여왕이다... 카톨릭교도로서 우리는 또한 연옥을 가지고 있다는 이 사실을 나는 사랑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카톨릭이 아니고서는 '축복의 꿈'을 결코 이룰 수가 없는 사람중의 한 사람이다. 이는 우리가 가야하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의 임무는 남은 10년을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을 "카톨릭교회 안으로" 복음화하는데 사용해야 하며... 카톨릭교회사의 3천년 왕국으로 그들을 복음화해야 한다.'
37. 최초의「에큐메니칼」공회
「로마」는 로마법과 칼(무력)과 종교의 3중 통일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일이 지금 다시 일어나고 있다. 초대교인들이「로마」의 박해 앞에 섰듯이, 마지막 기독교인들이 다시 이들 앞에 설 날이 다가오고 있다. 옛「로마제국」의 부활과 함께 또 다시 한 법(法)이 설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요"(단
7.25), 무력으로 성도를 핍박할 것이며,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으니...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니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1,25). "그가 장차 비상하게 파괴를 행하고 자의로 행하며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단 8.24).「로마」의 종교통일,「에큐메니칼」운동이 지금 다시 일어나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이 일치운동에 속아 복음을 떠나 배도할 것이다.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죄(罪)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살후 2.3, KJV).
기독교 최초의 교회사인 성경의「사도행전」으로 돌아가자.「예루살렘」성에서 있었던 최초의「에큐메니칼」공회에「유대」인들이 합세한 성경의 기록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결국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여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셨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아이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城)에 모였나이다"(행
4.14-28, KJV).
이른 비가 허락되었을 때 초대교인들이 드린 기도가, 늦은 비를 흠뻑 맞고 있는 바로 우리들이 드려야 할 기도가 아닌가?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아이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행 4.29-30, KJV).
기독교회사는 로마카톨릭 종교에 의해 무참히 살육당한 성도들의 피로 얼룩져 있다. 종교의 얼굴을 가지고 정치세력 구축을, 정치의 형태를 가지고 종교세력 확장을 시도해온 전대미문의 이 종교국가「바티칸」은 세계에서 가장 완전한 전제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나라를 향해서는 민주체제 개선을 선동하고 있는 어불성설의 나라, 두 얼굴의 나라이다. 이「로마」의 부상은 곧 인류의 멸망을 의미한다. 평화를 부르짖는 자들의 얼굴이 조금도 평화롭지 않고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는 평화가 인간들이 구가하는 평화이다. 참 평화는 '평화의 왕'「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안에서 이루어진다. 태고(太古) 이래로 있어본 적도 없고, 있지도 못할 불가능한 이상국가를 폭력, 불법(不法)으로 이루겠다는 야심, 이것은 우상숭배다. 이상(Ideal)과 우상(Idol)은 그래서 같은 어원에서 출발하고 있다. 우리 모두 귀를 가지고 있는데도 우리 주님께서는 희안한 말씀을 들려주신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3.43).
38. 기만당하고 있는 기독(개혁)교회들
「메시지」(Message)는 어디에다 두고「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미사(Missa) 곡이 웬말인가?「위그노」등의 기독교인들을 대량 학살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때마다 저들이 불렀던 '떼 데움'(Te Deum)을 우리네 교회 안에서 듣게됨은 이 또 어찌된 영문인가? 마치 중세 암흑시대가 그리워 죽겠다는 듯이「로마」종교의 수도사, 중들의 이야기를 뻔질나게 게재하고 있는 기독교계 잡지는 누가 만들고 있는가? 목회자들이 거짓된「로마」교회 성자들의 사상을 전개하고 있음은 개탄할 일이다. 영문 권위역성경(KJV)이 그 서문에서 분명히 밝힌, 그 많은 개혁자들이,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도 확실하게 들려준 유언들을 어디다 저버렸는가?「로마」교황을 분명하게 "적그리스도, 저 죄(罪)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살후 2.3,4, KJV)로 규명한, 말끝마다 들먹이는「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Ch.25,
Sect.6 참조)이라는 것은 어디다 내팽개쳤는가?
옛「바벨론」종교처럼 천주교,「프리메이슨」의 동향성(東向性) 사상이 동양의 범신론에 밀착되어 있다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1981년「로마」교황이 종교통합의 가능성을 동양(東洋)에서 발견할 것을 시사한 후, 1984년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요한 바오로」2세는 "Lux ex Oriente!"(빛은 동방에서!)를 부르짖었다.「담무즈」를 아기「예수」로 숭배하는「로마」종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지가 이미 오래 전이며, 이들의 얼굴은 빛되신 하나님을 향하여 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피조물인 태양을 숭배하려고 동쪽의 태양을 기다리고 있다: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겔
8.14-16).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켰다. "서기관을 삼가라"(눅 20.46). 변질된 메시지를 가지고 "그들은 용(龍)을 경배하였다"(계
13.4). 터툴리안(Tertullian,
160-225)의 기록은 지금도 역사의 반복성을 이야기한다: '「티베르」강(江)물이 너무 불어나거나「나일」강(江)물이 너무 줄어들면, "기독교도들을 사자밥으로 던져라"고 부르짖는다. 모든 기독교인들을 단 한 마리의 사자에게 주라는 것인가?' 이제 기독교인들이 귀 따갑도록 듣게 될 가장 흔한 세 단어는 '사랑, 일치,
평화'(Love, Unity, Peace)가 될 것이나, 그럼에도 그 말을 믿지 말 것은 그 속에 예수의 진리가 없음이니, 진리가 없는 사랑이 바로 음녀의 표징이요 배도이기 때문이다(59).
39. 부흥이라는 이름의 배도: 배도의 선두를 달리는 주역들
배도의 근원은 대개 기독교회의 야심적인 지도자들로부터 기인한다 (딤후 4.3,4; 요일 2.18,19; 요삼
9,10). 고로 배도는 진리에 대한 무지(행 19.1-6), 또는 사탄의 올가미에 걸린 이단(딤후 2.25,26)과 구분된다. 배도자들은 선지자들이나 주님, 사도들과는 달리, 서로가 서로의 영광을 취하며, 세상의 인정을 추구한다. 이것은 '신복음주의자'(신중립주의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장되고 허영적이며 과대망상적인 구호들이「비젼」이란 명분과 함께 자유자재로 사용된다. 그들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전도의 미련한"(고전 1.21) 방법을 버리고 사람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려고 강단(무대)에 세상을 동원하면서 관객을 끌어왔다. 그들의 스케일은 거창하여 사람들을 모으는 재주도 발휘한다. 그들은 세상을 혼합시킨 "다른 복음"(고후 11.4)을 가지고 세상의 이목(耳目)을 끌어왔다.
근래에는 1,200 여명이 넘는 영국성공회 사제들이 집단으로 천주교로 전향, 배도를 실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로마교황청과「합스부르크」가가 주선,「에큐메니칼」지도자들에게 하사하는「템플톤」(Templeton) 상. 종교계의「노벨」상이라고 우리네 교계신문 잡지들이 철없이 떠들고 있는 이 '템프테이션'(Temptation,
유혹)상의 목적은 바로「뉴에이지운동」을 통한 종교통합에 있다. 이 상의 수여를 결정하는 위원회는 힌두교, 불교, 이슬람, 천주교,
유대교 등의 종교 지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상의 수상자이기도 한「빌리 그래함」목사는 40년이 넘는 세월을 로마교황청과 협력해온 분이다. 그는 미국교회는 물론 전세계 기독교회를 눈에 띄지 않게 가장 조직적으로 파괴해온 장본인이다. 이 말은 많은 분들에게 경악과 혐오감을 주리라 생각한다. 필자 역시 그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3년 3월「빌리 그래함」은 로마교황청을 3번 째로 방문, 닷새 동안의「로마」교황 알현(謁見) 후에 예정된「유럽」집회를 가졌다.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자, 초현대적인 장비를 동원하여「맘모스」집회를 가져 왔으나, 그 결과는 오늘날의 미국의 영적 상태가 말하듯 미지수이다. 이들은 타협의 중립주의의 함정에 빠져 양진영에 각각 한 다리를 걸치고 위태한 곡예를 하고 있으나, 그중 한쪽의 뿌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저주받은「바벨론」(계
18.2)인지라 변명의 여지가 없다.「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거듭난 수많은 전직 천주교 사제들이 이 사실을「빌리 그래함」목사에게 여러 번 경고하였다. '부정적'이라 하여 묵살, 귀에 듣기 좋은 긍정적인(?) 권고만을 받은 결과는 미국교회와 세계를 기만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이러한 부류의 지도자들은 세상이 다 아는 유명한 전도자들이다. 지금 우리는 "만약 미국이 파멸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로마카톨릭주의를 통하여 올 것이다"라고 예고하였던 미국 건국의 아버지「조지 워싱턴」대통령의 말을 다시 듣고 있다.「클립 베로우」(Cliff Barrows)가 이끄는 대합창과「비벌리 쉐이」(Beverley Shea)의 찬송에 눈물 흘리며 감격하던 때가 다시 온다면 좋으련만. 선교지「벨기에」에서「빌리 그래함」전도재단의「프랑스」어판 '결정'(Decision)지를 받아 매번 전도지로 공급해왔던 필자로서는 허전한 마음에 여러 날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수도「워싱턴」근교에는 전 미 국무장관의 이름을 딴「덜레스」(Dulles)
국제공항이 자리잡고 있다.「덜레스」는 기독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의 아들은 오늘날 로마카톨릭교의「제수이트」이다.
천주교 사제를 비서로 두었던「시 에스 루이스」(C.S. Lewis) 교수의 말년의 방황, 카톨릭 정교회 교인이 된「프란시스 쉐퍼」박사의 외아들. 천주교에 대해 태도를 분명히 하였던「로이드 존스」(D.M. Lloyd-Jones,
1899-1981) 박사와 결별, 중도적 입장으로 불확실한 타협의 노선을 택한「존 스탓트」(John Stott). 그는 오늘날「에큐메니즘」의 깃발 아래 천주교와의 타협의 선두에 서있는 교활한 학자이다. 역시「템플톤」상 수상자로서 최근 세계기독교계를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ECT (Evangelicals-Catholics
Together) 주도자인「감옥소 선교회」(Prison Fellowship) 회장「챨스 콜슨」(Charles Colson)은 기독교도들을 영원한 사망의 감옥(?)으로 인도하고 있는 자이며(「콜슨」의 부인은 천주교도임 ), 이에 합세한 소위 복음주의자들로 알려진 신복음주의자란「빌 브라잇」(Bill Bright),「켄트 힐」(Kent Hill),「제임스 팩커」(J.I. Packer) 등이다.
ECT 는 애초부터 기독교를 천주교 안으로 포섭하려는 운동의 하나로 이 모임의 로마카톨릭교 측의 대표「존 뉴하우스」(John Neuhaus) 신부는 바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루터」교단의 신학자였던 자이다(60).
'미혹의 영'에 이끌리어 로마교황청을 들날락거렸던 "Mr. Pentecost"「플레시스」(David J. Du Plessis)와, 1975년 로마교황청을 방문, 교황「바오로」6세의 축복을 받고 돌아온 후 죽은「캐트린 쿨만」(Kathryn Kuhlman) 등의 뒤를 잇고 있는 향(向) 로마교황청 지도자로는「700 클럽」,「리젼트」대학의「패트 로버트슨」(Pat Robertson)과「빈슨 사이넌」(Vinson Synan),「레이톤 포드」(Leighton Ford),「워렌 위어스비」(Warren Wiersbe),「도날드 멕가브란」(Donald McGavran),「챨스 스윈돌」(Charles Swindoll),「기네스」(Os Guinness),「프랭클린 그래함」(Franklin Graham),「헨드릭스」(Howard Hendricks),「휘튼」대학의「마크놀」(Mark Noll, '복음주의 정신의 추문' 저자), 가정사역의「제임스 답슨」(James
Dobson),「루이 팔라우」(Luis Palau),「오랄 로버츠」(Oral Roberts),「제리 폴웰」(Jerry
Falwell),「칼 헨리」(Carl C.F. Henry), 국제순복음실업인회(FGBMFI)의「데모스 샤카리언」(Demos Shakarian),「풀러」신학교의「피터 와그너」(Peter Wagner), 미국 남침례교단의「크리스웰」(W.A.
Criswell),「예수전도단」의「로렌 커닝햄」(Loren Cunningham),「챨스 스탠리」(Charles Stanley),「허바드」(David Hubbard), TV 전도자「잭 반 임프」(Jack Van Impe) 등이 있다. 또「베니 힌」(Benny Hinn),「빈야드」운동의「존 윔버」(John
Wimber),「몬테쏘리」교육,「프랑스」의「떼제」(Taize) 공동체,
북미의「약속이행자들」(Promise Keeprs)의 주축세력들은 모두「그리스도」의 교회에 가만히 들어와 하나님의 백성들을「뉴에이지」운동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에큐메니칼」이단 지도자들이다 (제3강 참조).
계시록 13장(단 8장 참조)에 언급된 수양의 '두 뿔' - 로마카톨릭 교회와 배도한「프로테스탄트」교회
- 에 관한 말씀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에 와있다. 복음에 대한 저들의 열정과 순수성에 대하여는 필자도 누차 들어왔으며, 또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은 필자가 한때 가장 존경하고 흠모했던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그리스도」의 복음과 다른 복음과의 구분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입을 열어야 할 때에 침묵함으로써 진실을 왜곡시키는 것이 죄악일진대, 아닌 것은 아닌 것이며, 그 사랑이 아무리 고귀하다 할지라도 진리를 저버린 사랑이란 거짓된 사랑이며, 하나님의 진리를 넘어 하나님보다 선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 중 어떤 이는「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하여 분명한 책들을 저술한 분들도 있으나, 흑백(黑白)보다 더 분명한 기독교와 천주교의 차이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눈이 가려져있다. 하나님께서는「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인간의 허물까지 사용?絿킴募? 사실은 신비에 속하는 일이나, 그들 자신은 배도의 도구로 버림을 당하고 있다. 지성의 교만으로 뼈마디가 굵어진 이들은 세상의 인정과 명예를 추구하느라 양(羊)들을 무더기로 도살장으로 인도하고 있는 자들로서, 성경은 이러한 자들을 두고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빌
3.18)라고 부르고 있다. 성경속의 창조주가 되신 주님을 따르지 않고, 눈앞의 유명한 피조물 교회교의 지도자들을 따르는 현대 교회는 기독교회사 2,000 여년사에 가장 심각한 시점, 곧 배도의 절정의 문턱에 와있다(살후 2.1-12).
ECT 에 대한 저들의 구차한 변명은 더욱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유명한 이들도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하다면, 지금은 하나님 앞에 회개가 필요한 때이며,「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지도자들을 향하여 듣든지 아니 듣든지 권고하며 간구해야 할 때이다. 모든 종교의 본질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우상숭배이다. 양(羊)과 염소는 태생부터가 다르다. 사탄의 음모는 세상을 향한 연합일치를 부르짖으나, 세상과 분리되고 구별되라는 것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신복음주의자들이 로마교황청과의 관계를 청산하지 아니하고 "21세기 운동"(AD 2000 & Beyond
Movement)를 치른다면, 이 운동은 천주교의 "새 복음화
2000"(New Evangelization 2000) 운동과 더불어 대 배도의「클라이막스」로 양(羊)들을 오도할 것이 너무나 분명한 것은, 그중 한쪽은「바벨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20여년전「우드브리지」(Charles Woodbridge) 박사는「신복음주의」를 "불신(unbelief)과 타협하는 영(靈)"으로 정의, 신복음주의자들이 일치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는 다섯 단계에 대하여 정확하게 언급하였다:
1) 오류(誤謬)를 묵인함, |
"함께 하며"(Together, 고후
6.14)로 시작하여 "일치"(고후
6.16)로 끝날 운동에 대하여, 성경은 다섯 번이나 "어찌?"로 경고하고 있다(고후 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히틀러」가「라디오」진공관이 찢어질 듯한 음성으로 독일 기독교를 유린하고 있었을 때,「크리스마스 캐롤」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우리의 총통이 돌보시는 밤"으로 불려졌다. 그리고 독일 기독교 목사들의 거의 대부분이 "우리의 위대한 카톨릭「히틀러」만세!"로 화답하였다. 불과 반세기 조금 전에 있었던 역사이다. 1979년 12월「로마」교황「요한 바오로」2세가 미국「아이오와」주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천주교 성가대는 "기쁘다 교황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로 환영하였다. 화산 폭발 직전의 고요함은 평화가 아니다. 속이고 속임을 당하는 기간일 따름이다. 잘못이 약간 섞인 진리는 거짓보다 더 위험하다. 그런 것들은 믿을 만하게도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 선(善)하심만 극구 찬양하는 인기있는「메시지」만을 외치는 자들을 조심할 것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자 또한 공의(公義)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불의를 보고도 회피하는 기회주의적인 교계 지도자들이「그리스도」의 복음을 미사여구(미사여구)로 포장하고서는 마치 예수께서는 마귀도 사랑하신 것처럼 오도된 사랑을 외치는 자들을 경계할 것은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기"(고전
13.6) 때문이다. 사랑이 진리를 희생시킬 때 그 사랑은 이미 참 사랑이 아니다.
40.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3). 우리는 교회시대의 끝을 보려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새시대운동,
새세계질서의 음모에 의해 전도와 선교에 의한 개종이 불법(不法)으로 간주될 날이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이 세상의 특성이 유동성, 불확실성이라면,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치 않는 예수님의 복음을 가진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에 가장 가까운듯 하면서도 기독교가 아닌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모방자 사탄의 걸작품이기 때문이다. 종교 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늘 악(惡)의 병기로 이용당한다. 사탄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과 겨루었다. 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알았으면서도 3번이나
"만일"이라는 말로 예수님을 유혹하지 않았던가?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눅
4장; 마 27장).
사탄은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의 아비다. 배도는 이미 시작되었고, 늘 평화의 이름으로 파괴를 자행(단
8.25)해온 자들은 에큐메니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또 다시 우리 앞에 서있다. 가슴이 답답해진 전도자가 파수꾼을 향해 거듭 묻는다: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 답한다: "아침도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사 21.11,12). □
목차 / 책머리에 ☜
제1강 「가이사」와 그리스도 ☜
제3강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
[ Footnote ]
46)
Ivan Hall, 新東亞(1992.8.)
기사.
47)
Loraine Boettner, Roman Catholicism, Presbyterian & Reformed,
1985/1962.
48)
M. de Semlyen, All Roads Lead To
49)
ditto
50)
W. Schnoebelen, Masonary, Beyond the Light, Chick, 1991.
51)
Robert Schuller, "It's time for Protestants to go to Shepherd(the pope)
and say "what do we have to do to come home?" (Los Angeles Herald
Examiner, 19 Sep. 1987).
52)
Edward Schillebeecx, Christ: The Experience of Jesus as Lord, Seabury,
1980.
53)
_____, Mary, Mother of the Redemption, Sheer & Weed, 1983/1964.
54)
Frédéric Hoffet, La Politique Romaine et La
Démission des Protestants, Fischbacher, Paris, 1962.
55) Guy Jonquieres, SJ., 35 Exercices Spirituels selon
Inigo de Loyola, Mediaspol, 1991.
56)
De Colores (= Of colors, with colors, brightly colored).
57)
Al Gore, Earth in the Balace: Ecology and the Human Spirit (pp. 258-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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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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