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詩短評(89) 詩 속 시공간의 진미
悳泉 나병훈
도공과 막사발 2
이주리( 2009, 현대시문학)
네가 나의 호흡이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폐를 얻었다
어쩌면 먼 옛날 이미 너는 나의 호흡이었을지 모르고
나는 깊고 찬 우물 속에서 흰 알을 품고 있었을지 모르지
우물 벽을 타고 배춧잎을 타고
자꾸만 밖을 꿈꾸던 작은 물고기 화석이었을지도 모르지
가늘고 긴 혈관들이 나를 감싸고
붉은 아가미는 진화를 꿈꾸었지만
끝내 양수 바깥으로 알을 낳지 못한 슬픈 물고기였을지도 몰라
너는 단숨에
천년의 시간을 꺼내어 내게 주었어
그 길고 꼬불꼬불한 내장 같은 천년을
아마 나는 그 옛날,
흰 알을 품은 채 땅 밑에서 웅크린 작은 벌레였을지도 몰라
몸집보다 천배 큰 돌을 움직여서
시지프스 처럼 죽을힘을 다해 굴려
천 한 번째의 절망에 무너지는 꿈틀거림이라도
땅밖으로 고개를 디밀고 싶었는지 몰라
절망도 삶 안의 일,
너는 그렇게 내 귀에 대고 말해주었어
순간 절망이 글썽글썽 물을 머금고
빛을 내고 싶었으나 빛을 잃어버린 눈물을
유리구슬마냥 반짝반짝 닦아 주었어
어쩌면 그 옛날,
마음이 전류처럼 땅을 타고 흐르고
사랑은 퉁퉁 불어
끝내 젖 물리지 못했던 대지에게 작별을 고하던 그 강가에서
울고 있던 흙이었는지 몰라
호두껍질 마냥 두꺼운 두엄 속 결코 꽃피우지 못한
씨방만 가진 불임의 들풀을 안고 있던
이제
물고기의 등뼈와 벌레의 수의, 불임의 씨방들이
전설로 묻혀버린 그 강가에서 돌아와
오래오래 익은 눈빛으로 물을 긷고
착한 입김으로 가마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도공에게
비췻빛 막사발로 태어나고 싶었는지 몰라
1.
이 시는 視空間(time space)이란 개념이 詩 안에서 지니는 含意가 얼마나 생경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공의 비췻빛 막사발로 태어나고자 꿈꾸던 화자인 나의 그 시공간은 먼 옛날로부터 현재의 강가로 흐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擬人化 된 막사발로서의 화자인 나는 “먼 곳”에서 현실의 空簡을 응시하며 더불어 ‘먼 시간 ’에서 ‘현재의 時間을 교차하면서 도공을 통해 자기 삶의 흔적과 미래상에 에 대한 희망을 希求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받을 만한 것은 詩材가 암시하듯 막사발이 지니는 단순한 외형의 眈美的 형상화를 배제시키고 내면적 아름다움과 가치를 빚어내는 도공의 靈魂(착한 입김)에 포커스를 맞추어 主知的인 서정을 노래했다는 점입니다. 전형적인 기승전결 전개방식을 채용함으로써 그러한 시의 흐름을 보다 명쾌하게 감상 할 수 있다는 점도 언급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공과 막사발의 운명적 만남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태생적으로 지니는 내면적 성찰에 대한 希求라는 주제가 행간의 복선으로 깔려 있음을 진중하게 짚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더욱이 인간의 자기완성 또는 자아실현으로 換喩되는 비췻빛 막사발로 태어나기까지의 고난과 역경의 눈물겨운 자기고백적인 서사시로도 읽히는 것은 좋은 시가 주는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시적 靈感은 행간에서 그려 낸 도공과 막사발의 時空을 넘나드는 교감은 원초적인 고독과 고난에서 삶을 지탱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珍重하게 전해주는 箴言이며 진심으로 건네주는 酸素水 처럼 청량하기만 합니다.
2.
이러한 맥락에서 행간을 살핍니다. 제1연은 시 창작 이론상 소위 “ 구성적 動機의 역할”을 경험케 합니다. 즉, 시 구성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귀결 연을 간접적으로 앞세우는 效果를 유발하기 위해 막사발로 태어나게 된 동기를 유도 해 줌으로써 시의 주제를 결론부터 제시하는 두괄방식 구성의 妙味를 시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즉, 화자인 막사발은 /네가 나의 호흡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나는 폐를 얻어/ 막사발로 태어났음을 미리 선언적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도공과 막사발의 운명적 교감을 통해 새 생명 탄생으로 換喩되는 “자아실현”이라는 소중한 인생론적 메시지를 던져주고자 하는 詩人의 人間愛에 대한 열정으로도 읽힙니다. 구체적으로 화자는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면서 이미 도공과 하나의 생명으로 결합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어쩌면 미약한 우리 인간들이 依持하고 祈禱하고자하는 본성일지도 모릅니다. 하여 깊고 찬 우물 속에서 밖으로의 꿈만 꾸다가 화석으로 박제되고 알을 낳지 못하는 물고기에 지나지 않았던 자신에게 도공은 그 내장처럼 굴곡진 천년의 시간을 꺼내어 단숨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던 것입니다. 등뼈만 남는 화석으로 굳어져 일을 낳지 못하는 물고기는 인간으로서의 우리들의 굴곡진 천년 자화상의 投影이며 이는 생명을 찾고자 하는 막사발의 몸부림으로 換置되고 있습니다.
3.
제2연에서 絶望의 늪에서 탈출하고자하는 작은 벌례의 몸부림은 곧 우리의 굴곡진 인생의 몸부림이요 고뇌임을 전연에 이어 다시한번 화자는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땅 밑에 웅크린 작은 벌레이지만 흰 알을 품고 希望을 노래합니다. 인간의 條件입니다. 천 년의 시간동안 천 번의 무너짐에도 기어코 /땅 밖으로 고개를 디밀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運命이요 業報입니다. 그것은 곧 인생이라는 삶과 피해 갈 수 없는 절망과의 운명적인 同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삶의 投影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인간적 고난, 역경, 고뇌 등을 극복코자하는 의지와 노력 등으로 換喩되는 착한 도공은 그러한 절망의 늪에서 /빛을 잃어버린 눈물을 / 유리구슬 마냥 반짝반짝 닦아 주며/ 생명을 얻고자하는 막사발일 뿐인 우리를 일으켜 세워줍니다.
4.
제3연은 전구(轉 句)로서 전연의 장면과 시상을 새롭게 전환 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素材인 막사발의 이미지와 本性의 形象化를 위해 과거 모습을 현재 화자가 서 있는 강가의 울고 있는 “흙”이라는 분신으로 전환시키고 있습니다. 화자인 막사발은 전연들에서도 형상화되는 모습들을 반영하듯 강가의 흙으로 자신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 흙은 /사랑의 마음이 전류처럼 흘려넘치는 대지에서 젖을 물리고 싶었지만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던/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호주껍질 마냥 두꺼운 두엄 속/ 불임의 씨방만을 지니고/있는 우리들의 인간적 한계와 맞닿아 있음을 吐露하고 있습니다.
5.
제4연은 결구( 結句) 로서 時空은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현재의 시간으로 과거 화석물고기. 작은 벌레, 울고 있던 흙으로부터 도공과 가마 아궁이가 보이는 오늘의 강가로 轉移됩니다. 도공과의 절묘한 만남을 통해 화자는 과거 절망과 苦惱, 인간적 업보라는 태생적 운명을 지니고 있던 흔적들을 비로소 “傳說”로 강가에 묻을 수 있게 됩니다. “전설”이라는 시어를 끌어 들임으로써 詩材가 절묘하게 귀결로 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공과 막사발의 운명적 交感은 우리가 그리는 삶의 理想鄕을 위한 기도로 할 수 있습니다. 그 기도는 비췻빛 막사발 이라는 이상의 실현으로 우리의 호흡과 교감 되리라는 희망을 詩人은 꿈꾸고 있는지 모릅니다. 착한 입김으로 가마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도공이 항상 우리와 同行하는 마음속의 理想鄕이기를 기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이러한 기도와 꿈이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을 독자와 함께 또한 간직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