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히브리서 3 : 7 - 19
12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형제들’은 이미 교회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교회안에 있는 성도들 가운데도 하나님에게서 떨어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라’는 이 말씀은 오늘 예배에 참석한 우리에게도 경종을 주는 무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아직도 불완전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에게서 떨어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어쩌면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곧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1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씀 앞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면 영원한 지옥불 속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매일 피차 권면하여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을 받고 성도가 되었지만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명심하여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이 완고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15)고 하셨습니다. 7,8절에도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8)고 말씀하셨습니다.
‘완고하다(강팍하다)’는 말은 ‘말라서 단단해지다’는 뜻으로 심령 상태가 돌같이 단단하게 굳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하셨을 때 길에 뿌려진 씨앗은 새들이 와서 먹었다고 했습니다(13:4). 길과 같은 마음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한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완고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는 짓입니다.
오늘도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완고하여 귀를 막고 말씀을 듣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에게서 떨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은 한 사람도 마음이 완고하여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는 것은 영원한 저주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눈이 번쩍 띄어져야 합니다. 가슴이 철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으시기에 제가 보는 것과는 달리 너그럽게 보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이므로 용서하시고 들어 주실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매우 복된 시간입니다. 그러나 몇 분은 말씀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장 복된 이 시간을 악한 사탄 마귀로부터 죄의 유혹을 받아 마음이 완고하여 말씀을 듣지 않는 다는 것은 복을 저주로 바꾸는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무슨 말씀인줄 이해가 안됩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16절에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고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문자답을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완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오히려 불평하고 원망했던 사람들이 누굽니까? 이방인이 아닙니다. 애굽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출애굽하여 모세를 따라 광야로 나온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죄중에 버려진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이 아닙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입니다. 예배에 참여한 여러분이 하나님에게서 떨어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완고하여 40년 동안을 광야를 유리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던 사건을 말씀하셨습니다. 8절에도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출애굽하여 광야에까지 나온 그들이 완고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누굽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양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려 속죄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약속받은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재앙이 내리지 않았던 것도 체험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으로부터 돌보심을 받고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홍해를 갈라 마른 길같이 건넜습니다. 따라오는 바로의 군대는 홍해에 다 빠져 죽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찬양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마실 물이 없을 때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뜨거운 햇볕을 가려 시원하게 해 주셨고, 밤에는 춥지 않도록 불기둥으로 보호해주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광야 길을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약속이 없는 사람입니다. 약속을 받지 못한 사람이 제일 불쌍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에 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가나안을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습니다. 성도들은 미래에 대한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천국을 약속 받았습니다. 미래를 약속 받은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미래가 있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약속이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을 수가 있고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불평하고 원망을 했습니까? 약속을 받았음에도 약속을 믿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내 길을 알지 못한다’(10)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친히 길을 인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음이 완고하여 길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하셔서 그들에게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11)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나안에서의 안정된 삶은 하늘 가나안인 천국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예표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출애굽하였으며 광야를 지내는 동안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와 역사를 직접 체험하고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그들에게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민14:23,24).
오늘도 마음이 미혹되어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들려주시는 복음을 듣지 아니하고 천국에 대한 약속을 믿지 못한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마음이 완고하여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12,13)고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 ‘악한 마음’이라고 해서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사악한 마음이 아닙니다. 어떤 큰 죄를 범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믿지 아니하는 마음’이 ‘악한 마음(악심)’입니다. ‘악심’은 불신이요 말씀을 거역하고 듣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악한 마음은 곧 완고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형제들’은 누구입니까? 부름 받은 성도들입니다. ‘누가’와 ‘누구든지’란 말이 있습니다. ‘누가’란 단수로 자신을, 그리고 ‘누구든지’란 복수로 나 외에 다른 여러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자기 자신을 돌아 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즉 가까운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껍니까?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고 하며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입니까?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13)고 하셨습니다.
‘오직 오늘’, ‘피차 권면하라’고 했습니다.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합니다. ‘과거는 현재가 지나온 발자취요, 미래는 현재가 앞으로 나갈 시간’입니다.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자랑합니다. 과거에 자신의 신앙이 좋았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과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닙니다.
바로 현재, 오늘이라는 이 시간이 중요합니다. ‘오늘’, ‘지금’이 중요합니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오늘 권면하라’ 하셨습니다. 오늘을 중요하게 만들면 미래도 보장됩니다. ‘내일 하자’는 생각은 매우 위험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오늘 말씀을 듣는 이 순간에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기 위해서 피차 권면해야 합니다. 서로가 말씀을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어린 아이 때문에 말씀 들을 잘 듣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장난치며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마음이 완고하게 되어 말씀에 귀를 막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교회의 수요예배 시간에 부목사들이 돌아가며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한답니다. 어느 수요예배에 참석한 모 장로가 담임목사에게 ‘그런 설교 듣기 위해 바쁜 시간에 먼 길을 바쁘게 달려 왔느냐’고 하더랍니다. 우리는 그 말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한 시간의 예배와 설교 말씀을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피차 권면하라’는 말씀은 서로가 말씀을 듣고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14절에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리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12절 말씀과 대조되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는 말씀과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그리스도(하나님)와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시작할 때의 확신을 끝까지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도 시작할 그 때의 확신을 끝까지 잡아야 합니다. ‘확신’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시작할 때의 그 확신, 그 때 그 믿음을 끝까지 붙잡아야 합니다. 그 때의 그 확신을 끝까지 잡아야 합니다. 그 때의 그 믿음을 지킬 수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약속으로 받은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시작했을 때의 그 확신 그 믿음을 끝까지 잡아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