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한몸평화 麗順[抗爭] 참사람 찾기 기행
2022년 10월 1일이다. 내 생일이 십월 십구일다. 1948년 시월 십구일 이 땅에 비극 킬링필드 여수·순천 항쟁이 일어난
비극적인 날이다. 1948년 10월 19일부터 10월 27일까지, 전라남도 여수시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군인들이 동족을 학살할 수 없다는 것과 38°선을 철폐하고 조국통일을 이루자는 명분으로 제주 4·3사태 진압을 위한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여수순천 등지까지 무력점거를 확산시킨 민중항쟁 사건이다.
1948년 10월 19일 저녁 8시경, 14연대의 군인 일부가 무기고와 탄약고를 점령하고 비상나팔을 불어 전 연대 병력을 집결시킨 다음, 14연대 군인들이 동족을 학살할 수 없다는 것을 들어 저항군에 동참하게 했다. 이들은 곧 분쟁이 있었던 경찰서와 관공서를 장악하고 여수·순천을 순식간에 휩쓴 뒤 곧바로 벌교·보성·고흥·광양·구례 등 전라남도 동부 5개 지방을 장악했다. 10월 22일에는 곡성까지 점령했다.
초기 진압작전에서 반란군에 밀린 이승만 정부는 20일 열린 미국 군사고문단 수뇌부 회의에서 광주에 '반란군토벌전투사령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21일, 여순 지역에 계엄령이 발효되었다. 사흘간의 교전 끝에 이들 정부군은 25일 장갑차와 박격포, 항공기, 경비정 등을 동원해 여수를 포위해나갔고, 27일 진압에 성공했다. 여수를 빠져나간 반란군은 지리산 인근으로 흩어져 11월부터 1950년 초까지 게릴라로 활동했다. 진압 과정에서 저항군과는 무관한 민간인들이 희생당했고,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확인된 사망자는 3,400여 명이며, 행방불명자는 800여 명, 추정 사망자는 1만 5천여 명으로 추산한다. 제주 4.3 항쟁을 통해 사망한 국민이 추정 3만명이라고 하니 해방이후 동족상잔의 비극이 여기 여수 순천에서 벌어진 것이다.
슬프다! 이날을 찾고자 한몸평화 역사탐방 기행이 이루어졌다.
그날 제주 양민 학살을 막고자 했던 문상길 중대장의 법정 최후 진술을 듣는다.
"우리가 군인으로서 자기 직속상관을 살해하고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을 결심하고 행동한 것이다. 재판장 이하 전 법관도 모두 우리 민족이기에 우리가 민족반역자를 처형한 것에 대하여서는 공감을 가질 줄로 안다. 우리에게 총살형을 선고하는 데 대하여 민족적인 양심으로 대단히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이 법정에 대하여 조금도 원한을 가지지 않는다. 안심하기 바란다. 박진경 연대장은 먼저 저 세상으로 갔고, 수일 후에는 우리가 간다. 그리고 재판장 이하 전원도 저 세상에 갈 것이다. 그러면 우리와 박진경 연대장과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저 세상 하느님 앞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인간의 법정은 공평하지 못해도 하느님의 법정은 절대적으로 공평하다. 그러니 재판장은 장차 하느님의 법정에서 다시 재판하기 주기를 부탁한다."
민족의 저력,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이런 곳에서 느낀다.
1948년 9월 23일 하오 3시 35분. 수색의 야산에서 문상길과 손선호는 총살되었다.
문상길은 최후로 다음과 같은 말을 담담하게 남겼다고 한다.
"스물 세 살을 마지막으로 나 문상길은 저 세상으로 갑니다.
여러분은 한국의 군대입니다.
매국노의 단독정부 아래서 미국의 지휘 하에 한국민족을 학살하는 한국군대가 되지 말라는 것이 저의 마지막 염원입니다.
보이지 않는 70년 전쟁을 치러낸 우리 민중의 역사가 더 위대할 수 있다,
어느 시인이 "기억의 자살"로 표현될 만큼 비통한 우리 대한민국 현대사,
이 끔직한 기억을 우리 스스로 이겨낼 수 없었다. 그 슬픔 가득한 참혹한 역사, 암흑 세상을 견디고 일어선 민중들.
여순항쟁은 군의 항명이 아닌 그야말로 민중의 항쟁이었다.
서슬퍼런 총칼에 죽어 간 민중의 역사, 이제 왜곡된 70년 역사를 바로잡아야 할 때다!
당당한 문명국가의 면모를 과시해 온 우리 민족의 저력!
그런 가운데서도 자랑스런 민주의 꽃을 피워낸 대한민국,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한민중의 위대함이다.
이날 역사의 산맥속에 묻혀서 외롭게 민중의 넋이 된 여수 순천의 민중들을 조상한다.
2022년 10월 1일
첫댓글 1948년 9월 23일 하오 3시 35분. 수색의 야산에서 문상길과 손선호는 총살되었다.
문상길은 최후로 다음과 같은 말을 담담하게 남겼다고 한다.
"스물 세 살을 마지막으로 나 문상길은 저 세상으로 갑니다.
여러분은 한국의 군대입니다.
매국노의 단독정부 아래서 미국의 지휘 하에 한국민족을 학살하는 한국군대가 되지 말라는 것이 저의 마지막 염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