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오늘 태풍이 아주 심해가지고 여기 전기가 들락날락하는 그런 와중에서 지금 어떻게 어떻게 지금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 9월6일 화요일 염화실 인터넷 방송법문시작하겠습니다. 지금 여기에 제가 방송하면서 들을수 있는 그 기계 하나가 전기가 아마 연결이 않되어 가지고 지금 이 시간에 조금 매끄럽게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음악하고 목탁치는 것 하고 이런 것들이 제가 지금들을 수 없는 입장이라서요 그런데 이제 나가는 것은 확인 할수가 있고 그래서 옆에 하나있는 컴퓨터로 이제 약 20초 간격은 있습니다만은 그것을 들으면서 지금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어째건 네번인가 다섯번 전기가 나갔었는데 전기가 나갈때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지난시간에 이어서 301쪽부터 할 차례죠. 묘장엄왕은 사라수왕불(娑羅樹王佛)이 되리라 하는 그 부분 부터 할 차례입니다. 이게 이제 묘장엄왕본사품(妙莊嚴王本事品)이라고 하는 그 과거생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저 앞에서 예를 들어서 약왕보살 본사품이라든지 촉루품이후에 말이죠 약왕보살본사품. 묘음보살품. 관세음보살보문품. 그 다음에 묘장엄왕본사품 이런 품들은 모두가 법화행자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은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런 법화행자로써의 그런 삶중에 조금 특이한 것이 외도를 신봉하는 아버지를 신통으로써 교화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그래서 우리는 종교를 이제 갖게되면은 말하자면은 다른종교를 믿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 이것이 참 큰 문제인데 여기서도 불교를 믿는 어머니와 그리고 두 아들 그런데 다른종교를 믿는 다시말해서 이교도죠.
이교도인 아버지 이러한 관계에서 그것을 아주 조화롭게 잘 교화해 나가는 그런 이야기 가 됩니다. 어떤 종교인들은 보면은 뭐 불교를 믿는다거나 사실을 알거나 이렇게 스님들 같이 아주 두드러진 복장을 보면 뭐 너무 적대시한다고나 할까 그런 사탄을 보는듯한 그런 느낌을 갖고 대하는 그런 종교인들도 간혹있어요. 그런데 불자들은 뭐 그렇지는 않죠. 다 이제 이해하고 감사주고 인정해주고 그렇습니다 태도가..다종교 사회에서 뭐 여러 종교를 우리는 수용하는 입장인데 뭐 이런종교를 믿을 수도있고 저런종교를 믿을 수도 있고 이제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달라이라마님의 말씀을 한가지 좋은 것은 카톨릭에 가서 강의를 하시면서 이교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렇게 질문을 던져는데 수 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근기를 생각 한다면은 사실은 지금보다도 더 종교가 많아야 된다. 어찌 좀 역설적으로 표현 하자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종교 한가지씩 있어야 할 정도로 그러게 사람들은 다양하고 또 그 다양한 개성을 우리는 이해하고 인정해 줄주아는 그런 마음가짐 그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참으로 진정한 종교인이 아닐까 이런 말씀을 했어요.
그 말씀을 늘 내가 잊지못하고 인간의 아주 다종 다양한 개성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또 그것을 잘 수용하고 그 근기를 맞춰서 포용해주는 그런 마음이 참 훌륭하다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정말 그러한 마음가짐을 이제 가져야 되겠고 꼭 바른 법으로 교화를 할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있다면은 정말 희생을 치루고 여러 가지 좋은 방법을 강구를 자기의 어떤 경제적인 것을 그 말하자면은 돕고 또 희생을 치루어 가면서 그렇게 교화를 해야 되는 거죠.
그런 희생없이 그냥 말로만 뭐 우리종교 믿어라 우리종교믿어라 그렇게 해서는 않된다는 것 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써가면서 이제 이도교를 교화를 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이해 해줘야 된다는 거죠. 설사 뭐 부부간이라도 그렇습니다. 뭐 만약에 다른종교를 각각 믿는다면 종교는 각각 그렇게 믿고 또 가족관계는 가족관계이고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이해해주는 것이 바람직한데 꼭 뭐 나와 같은 종교를 믿지 아니하면은 뭐 결혼을 할수가 없다. 또 뭐 가족이 될수가 없다 하는 그런 생각은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친구들 사이에 모여서도 나하고 어던 문제에 대해서 똑 같은 생각을 해야만 내가 친구로 인정하겠다.
조금 비약시켜서 이야기 하자면은 그런 말과 다를바가 없지 않겠습니까. 서로 다른생각을 갖고 다른 얼굴을 갖고 다른 모습을 가지고 다른 생활을 하고 그러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 이게 이상적인 삶이죠. 산에 똑같은 나무 똑같은 키 똑 같은 굵기가 꽉 차이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산 볼게 뭐 있겠습니까. 각각 다른 나무 다른 크기 다른 방향으로 뻗고 다른 시기에 잎이 돋고 다른시기에 단풍이 들고 다른시기에 낙엽이 지고하는 그런 모습이 아름다운 모습이고 참으로 정말 우리가 아주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안겠습니까.
그래서 여기 묘장엄왕은 사라수왕불(娑羅樹王佛)이 되리라 하는 부처님의 이 수기는 외도 들도 인정하는 그런 내용 외도들 까지도 부처님이다 이런 마음에 까지 이른거죠. 이교도 도 부처님이다. 저 앞에서 뭡니까 우리 불교의 만대의 어떤 원수로 생각하는 제바달다도 부처님이라고 하였고 그외에 수많은 이들을 수기를 해서 전부 인간의 고귀하고 위대한 그 본성을 부처님으로 인정하는 그런 말씀이 계셔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종교를 믿어도 역시 그 인간의 고귀하고 아주 위대한 참으로 가치있는 그 본성은 정말 가치 그대로기 때문에 역시 부처님으로 우리가 인정해줄수 밖에 없다는 그런 의미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8. 묘장엄왕은 사라수왕불(娑羅樹王佛)이 되리라
12 이 때 운뢰음수왕화지 부처님께서 사부대중에게 말씀하셨느니라.
'그대들은 이 묘장엄왕이 내 앞에 합장하고 서있는것을 보는가. 이 왕이 나의 법 가운데서 비구가 되어부지런히 수행하면서 부처님의 도법(道法)을 돕다가 당래(當來)에 성불하여 이름을 사라수왕불(娑羅樹王佛)이라 하리라.이렇게 이제 이교도에게 수기를 주는 장면입니다. 아주 근사하죠. 이런장면 이게 불법의 위대함이고 부처님의 넓으신 자비고 또 그것은 인간에 대한 그런 그 본성을 바로 이해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과 가치를 이해하면 바로 이렇게 나오는 거죠. 인간의 존엄한 본성과 가치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면은 모두가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게 하는데 무슨 옷을 입고 있느냐 에 따라 사람을 차별 할수 없다는 거죠. 사실 조금만 우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보면은 당연한 이치고 그렇게 조화롭고 편안한 길이 있는데 그저 갈등하고 경계하고 나와 같은 뭐 어떤 종교 단체에 나가지 않는다 하는 그것 하나만 가지고 껄끄럽게 생각하고 어떤 뭐 갈등을 잠재우지 못하는 그런 자세는 참 우리가 일상에 많이 격는데 잘 소화하고 생각해야 할 점이다 하는 것을 새삼느끼게 됩니다.
뭐 간혹 그렇죠 우리가 다른 종교를 믿기 때문에 뭐 결혼을 반대 했다 또 상대방에서 꼭 같은 종교를 믿기를 조건으로 하고 뭐 말하자면 부부가 될수 있다 뭐 이런 이야기들이 참 심심찬게 우리가 들어온 일들이죠. 국토의 이름은 대광(大光)이요, 겁의 이름은 대고왕(大高王)이니라. 그 사라수왕불에게는 한량없는 보살대중과 한량없는 성문이 있으며 국토는 평평하고 반듯하리니, 공덕이 이러하니라.
왕(王)이 출가하여 수행하다 이게 이제 두 아들이 신통을 보여서 그기서 마음이 돌아서고 급기야는 왕이 출가해서 수행하는데 까지로 발전하게 됩니다.
9. 왕(王)이 출가하여 수행하다
13 그 왕이 즉시 나라 일을 아우에게 맡기고, 부인과 두 아들과 여러 권속들과 함께 불법(佛法)에 출가(出家)하여 도를 닦았느니라. 왕이 출가하고 나서 팔만 사천년 동안 부지런히 정진하여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수행하다가 그 뒤에 일체정공덕장엄삼매(一切淨功德莊嚴三昧)를 얻었느니라. 그랬습니다 이제 묘법연화경을 수행했다 이것은 이제 불교를 수행했다 불교 최고의 길을 수행했다 뭐 더 이상 나아갈때 없는 말하자면 인불사상을 몸으로 실천했다 사람이 부처님 이다 라고 하는 그 사상을 몸으로 실천했다 그게 이제 묘법연화경을 수행했다 하는 그런 뜻 입니다.
이렇게 해놓고 보면 막연하죠 사실은 묘법연화경을 수행했다 이렇게 하는 것 어떻게 하는게 수행하는 것인가? 서사 수지 독송 유인 연설 이게 물론 좋은 수행입니다. 또 그 핵심은 그 핵심은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인간의 행복은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그 한가지 길 밖에 달리 다른길이 없다 라고 하는 것. 그것 입니다 . 카트리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지금 우리나라에도 지금 태풍이 이렇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이렇한 문제를 우리가 격을때 사람을 부처님으로 까지는 설사 생각하지 못하드라도 그 반 이라도 우리가 생각한다고 하면은 그렇게 차별하고 그래서 억울한 일은 없을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사람으로 인해서 사람이 억울함을 당한다고 하는 것 자연재해 당하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억울한 일인데 사람을 통해서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하는 것 이건 참 이 문명한 이 시대에 우리가 살면서 참으로 가슴 아픈일이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도 아울러 해봅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선지식(善知識)이다 이랬어요. 아들은 아버지의 선지식이다 그랬습니다 그렇죠 불교의 정신에서는 뭐 선지식이 꼭히 뭐 어떤 그 차별이 있고 년령이 차이가 있고 지혜의 차이가 있고 그런 것은 도대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깨우침을 주는 사람이라면은 또 깨우침을 주는 그런 가르침이라면은 전부가 아늬 스승이고 나의 선지식이다 이렇게 되어야죠. 그러한 자세를 가질줄 아는게 또한 불자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이야기라도 귀를 기울려서 유심히 들어볼줄 아는 그런 그 마음가짐 이게 참 그리고 그게 뭐 크게 하심이다 뭐 마음을 비웠다 뭐 그런 거창한 명제를 그기다 달지않아도 어지간히 철든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에게든지 참 마음을 비우고 그것을 유심히 다른 사람의 의견과 이야기를 경청 할줄 아는 것. 이런 자세가 필요하지 안을까 그렇습니다.
옛날에 그런 말이 있죠. 남을 충고 하는 사람보다 충고를 듣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뛰어 나다 그런 말이 있죠. 내가 어릴때 그 말 듣고는 그게 아주 반가워습니다. 그리고 불교에는 그런 말이 있죠. "입은 하나고 귀가 둘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말은 듣는 것보다 반 밖에 하지 말라는 거죠. 그러니까 말은 적게하고 듣기를 많이하라. 그 남의 말을 가만히 귀 기울려 듣다보면은 정말 아들이라도 도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또 어린사람이라고 또 남 모르는 사람 이라고 그렇게 사람의 마음과 또 말을 흘려들어 버리면 손해죠.
10. 두 아들은 아버지의 선지식(善知識)
14 그리고는 곧 허공으로 일곱 다라수를 올라가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느니라.
'세존이시여, 저의 두 아들이 불사(佛事)를 지어서신통 변화로 저의 삿된 마음을 돌이켜 불법 가운데 편안히 머물게 하여 세존을 뵈옵게 되었습니다. 이 두 아들은 저의 선지식(善知識)입니다. 숙세의 선근을 일으켜 저를 이익케 하려고 저희 집에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이게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뭐 여기는 또 짜여진 각본의 의한 말씀이긴 하지만은 설사 그런 각본이 아니라 하드라도 나를 깨우쳐 주는 사람은 나를 교화 하기 위해서 내집에 태었났다.
또 그 깨우치는 것이 뭐 이렇게 이 아들들 처럼 꼭 이렇게 깨우치는 것만은 아니예요 아주 그 나쁜 모습 못된 모습 험악한 모습 이런 것을 가지고 깨우치는 수가 더 많잔습니까. 그런 것들도 나 자신을 깨우칠려고 뭔가 나를 가르칠려고 내 앞에 이렇게 나타난 그런 선지식이다 하는 그런 자세를 갖는 것이 참 바람직하죠.
예를들어서 차를 운전하는데 어떤 나쁜운전 습관을 가진 사람이 계속 앞지르기를 한다든지 끼어들수 없는데 끼어든다 하드라도 아 저사람이 나에게 인내심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렇게 선지식으로 잠깐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해석할줄 안다면은 정말 공부한 보람이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11. 두 아들의 덕행(德行)
15 그 때에 운뢰음수왕화지 부처님께서 묘장엄왕에게말씀하셨느니라.
'그러하니라, 그대가 말한 바와 같으니라.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선근을 심은 연고로 세세(世世)에 선지식을 만나느니라. 그 선지식이 불사를 지어 보여주고 가르치고 이익케 하여 기쁘게 하며, 최상의 깨달음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대왕이여, 마땅히 알라. 선지식은 큰 인연이니 이른바 교화하고 지도하여 부처님을 친견하고 최상의 깨달음을 얻게 하느니라. 선지식은 큰 인연이다 그랬습니다 그래 이른바 교화하고 지도하여 부처님을 친견하고 최상의 깨달음을 얻게 한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참 우리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선지식으로 간혹간혹 한번씩이라도 그렇게 그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된다면 참 이익이 큽니다.
정말 이익이 커요 늘 내 자식이다 내밑에 사람이다 내 후배다 뭐 나 하고 비슷한 사람 지가 뭐 알면 얼마나 알아서 이런 마음을 가지면은 손해가 많죠. 항상 귀를 기울리고 뭔가 깨우침을 주려고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 그런 기대감 이런 자세가 불자의 자세가 아닐까 불자가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대왕이여, 그대가 이 두 아들을 보는가. 이 두 아들은 이미 육십 오백 천만억 나유타 항하사 부처님께 공양하고 친근하고 공경하였으며 여러 부처님 처소에서 법화경을 받아 지니고 삿된 소견 가진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바른 견해(見解)에 머물게 하느니라.' 그래 이제 법화경을 받아 지니고라고 하는 것이 뭐 인불사상의 실천자다 이런 뜻이 되겠고 그렇다면은 다른 소견 다른 종교를 갖고 나쁜생각을 설사 가진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되는가 미워하고 증오하고 천시하고 하시 하는 것이 아니라 연민심을 가지고 대할 줄 알아야 되는 거예요. 이게 참 어려운 일인데 그걸 깜빡 깜빡 잊는 경우가 많습니다.
꼭 그 연민심을 가지고 대해야지 무시해버린다든지 에이 저 사람은 뭐 저래 이렇게 자기가 조금 생각이 앞서 있다고 그 만 못한 사람을 하시 한다든지 천시 한다든지 무시 한다든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죠 분명히 자기가 생각이 앞서있고 상대가 좀 뒷서있다손 치드라도 그래도 그렇다면은 그것을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여기 보면은 뭐라고 했습니까 "가엾이 여겨 바른 견해(見解)에 머물게 하느니라." 그랬습니다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하드라도 바른 견해(見解)를 갖도록 올 바른 소견을 갖도록 인생에 대해서 올 바른 소견을 갖고 또 모든 존제의 존제원리를 제대로 깨달아서 그 원리 대로 살아갈 줄 알도록 그렇게 가르치는 것. 어떻게 하드라도 예를 들어서 인과를 어떻게 인과를 좀 알도록 인과를 아는 것이 참 중요하다 이렇게 깨우친다든지 그래 이제 그것은 모르면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어떻게 하드라도 그런 이치를 이해 시키도록 하는 것.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게 이제 법화행자고 불자죠 뭐 법화행자 불자가 뭐 크게 무슨 벼슬 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 다 집어 치운다 하드라도 그러면은 정말 그 사람다운 사람 좀 뛰어난 사람 바람직한 사람이다 뭐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굳이 뭐 불자니 뭐 법화행자니 이런 표현을 쓰지 않드라도요 정말 사람으로써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다 아주 바람직한 사람이다 저 사람은 참 빼어난 사람이야 이런 표현이 더 친숙하고 멋지지 안을까 뭐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12. 부처님을 찬탄하고 서원을 세우다
16 묘장엄왕이 허공 중으로부터 내려와 부처님께 말씀드렸느니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매우 희유하십니다. 공덕과 지혜로 말미암아 정상(頂上)의 육계(肉髻) 광명이 환히 비치시고 눈이 길고 넓으며 검푸른 빛이십니다. 미간(眉間)의 백호(白毫)가 달과 같이 희고, 치아는 희고 가지런하여 항상 광명이 있습니다. 입술은 붉고 아름다워 빈바(頻婆)의 열매와 같습니다.'부처님의 모습을 이렇게 뭐 보신대로 느낀대로 찬탄을 하겠죠. 이마위에 육계는 광명이 환희 비치고 육계 라고 하는 것은 이마 정상에 살이 이렇게 불쑥 높이 솟은것이 부처님의 32상 가운데 하나 인데 그걸 그렇게 좋게 평하고 있습니다. 관상학적으로...
또 눈이 길고 넓으며 검푸르다 하는 것은 청련화와 같다 푸른 연꽃과 같다 또 안장유학 이다 그런 말씀을 앞서 드린바 있죠. 미간(眉間)의 백호(白毫)가 달과 같이 희고,치아는 희고 가지런하다 항상 광명이 있다 입술은 붉고 아름다워 빈바(頻婆)의 열매와 같다 뭐 빈바의 열매가 글쎄요 우리나라로 치면 앵두같다고 할까요 앵두는 너무작죠 앵두의 열배 쯤 되는 그런 그 아름다운 그런 열매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석굴암 부처님 입술도 이렇게 가만히 보면은 초기에 조성 했을때 입술에 붉게 천연색으로 붉은 칠을 했든 것이 간혹 보여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뒤 사람이 또 칠했는지는 모르는데 그전에 우리가 가만히 보면은 부처님의 입술은 붉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 뭐 여성분들의 루즈를 붉은 것을 바르는 것이 아마 이게 부처님의 아름다운 입술 모습을 닮을려고 그러지 안았나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고려 불화가 가장 옛날 불화중에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세계적으로 아주 높게 평가 받는데 그런 고도 보면 다 그렇게 되어 있고 이게 경전에 근거 해서 하는 이야기죠 이런 이야기도 이제 들먹이면서 부처님을 찬탄하는 대목입니다
그 때 묘장엄왕이 부처님의 이렇게 한량없는 백천만억 공덕을 찬탄하고는 여래의 앞에서 일심으로 합장하고 다시 부처님에게 말씀드렸느니라.
'세존이시여, 예전에 없던 일입니다. 여래의 법은헤아릴 수 없이 미묘한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하였으므로 그 가르침의 실천은 편안하고 즐겁고 좋습니다.이것 참 좋은 말이죠 그 가르침의 실천은 편안하고 즐겁고 좋습니다. 그 가르침을 우리가 몸소 실천하면 아주편안하다는 것이고 또 즐겁다는 것이고 아주 좋게 느겨 진다는 것입니다 이래야죠 가르침이 뭐 힘들고 까다롭고 아주 그 애를 먹어야 되고 왠지 뭔가 작심을 해야만 실천할 수 있는 뭐 그런 것이고 이렇게 되었어는 안되겠죠 종교가 간혹 우리 불교안에 그런 요소가 참 상당히 있는데 그런 것은 아니지 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다 깨달으신 분들의 말씀은 한결 같이 자기의 분을 따르고 인연을 따르고 자기의 어떤 근기를 따라서 무엇이든지 할려고 해야지 불합리하게 근기에 넘치고 인연에 넘치고 분에 넘치는 것을 억지로 할려고 하지마라 그랬습니다. 그것이 곧 그야말로 그 가르침의 실천은 편안하고 즐겁고 좋다라고 하는 것이 느런 느낌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제가 오늘부터는 다시 마음대로 행하지 않겠습니다. 삿된 소견과 교만한 버릇과 성내는 등의 나쁜 마음을 내지 않겠습니다.'인연의 도리를 알고 존제의 실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 것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연기와 공으로 되어있다 그것은 모두가 인연소치다 이렇게 알면은 저절로 그렇게 되지 안을까 뭐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떠났느니라."
부모와 두 아들의 현재(現在)라 여기는 이제 참 우리 불자들이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이 특히 대승불교권의 사람들의 사고가 우리 인생은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걸 뭐 윤회라고 하는 그런 표현을 간혹 하기도 하는데 윤회라고 하는 의미는 조금 부정적이 그런 뜻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우리 인생은 끊임없이 반복한다 끝없이 영원한 미래에서 영원한 과거에서 부터 영원한 미래로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 반복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사실은 반복하는 것이다 그 주체는 늘 그사람이 반복된 삶을 펼쳐간다 그래서 조사스님 들의 게송에도 "기회생 기회사후 생사유유 무정기라' 우리가 몇번이나 태어나고 몇번이나 죽었든가 태어나고 죽는 것이 유유히 끊임없이 흐르고 흘러서 멈추지 않는도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영가스님 증도가의 이야기 인데 그것이 윤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인생은 본래로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이 저렇게 흘러가는 모습이 그게 이제 물의 바람직한 모습이고 아름다운 모습이듯이 그 우리 인생도 죽은 존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 인연 따라서 세월 따라서 또 시간 따라서 이리저리 흘러가는 것입니다. 또 흘러가다가 생을 마감하고 그리고 또 다시 태어나고 설사 기억은 못한다 하드라도 또 그언떤 복과 지혜와 그 정신과 이것이 영향을 끼치면서 우리가 지은대로 또 새로운 생을 받고 그러는 거죠.
자 그러한 사고를 우리 대승불교권 불자들이 다 갖고 있고 또 그 영향으로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전생에 뭐 어쩌고 또 과거생에 뭐 옷깃만 스쳐도 오백생의 인연 뭐 이런 등등의 아주 불교 사상이 전한 그런 표현들을 하고 또 그런 사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게 이제 신라적부터 고려로 내려 오면서 그 당시야 전 국민이 모두 불교였죠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거슬려 올라가면 누구없이 불자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뭐 불교를 비방하는 사람이든 무슨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든 거슬려 올라가면 그들의 선조들 다 아주 독실한 불교 신자 였고 불자 였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피속에는 뭐 어떤 종교를 믿든간에 사실 우리의 의식 속에는 우리의 피속에는 그런 그 불심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 한국 사람으로써는 뭐 어쩔수 없는 일이고 또 좋은 현상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13. 부모와 두 아들의 현재(現在)
17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묘장엄왕은 다른 사람이 아니니라. 지금의 화덕(華德)보살이요, 그 아마 법화경 법회중에 저 쯤어디에 앉아 있는가 봐요정덕부인은 지금 내앞에 있는 광조장엄상(光照莊嚴相) 보살이니라.바로 아마 부처님 앞에 앉아 계셔든가 봅니다 묘장엄왕과 모든 권속들을 어여삐 여기어서 저 가운데 난 것이니라. 그 두 아들은 지금의 약왕(藥王)보살과 약상(藥上)보살이니라.그때 아버지를 교화한 두 아들 신통이 아주 뛰어난 두 아들이 지금 저기저기 앉아 있는 약왕(藥王)보살 또 저기 있는 약상(藥上)보살 이 두 사람이 였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게 이제 우리 인생은 본래로 끊임없이 반복하고 또 죽고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우리가 금생에 얼마 만큼 닥느냐 따라서 또 다음 생이 그만큼 못 할 수도 있고 아름 답고 더 발전 될수도 있고 이러한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반복해서 우리가 살아 갑니다 돌고돌고 돌다가 우리가 어디가서 어떻게 만날지 몰라요 그러니까 절대 미워 하거나 원수시 하거나 그 어떤 적을 쌓거나 뭐 이래서는 안되는게 우리 인생사 입니다
그리고 빌린 돈이 있으면 어떻게 하드라도 갚아야지 그걸 안갚으면 나중에 다음생에 그것을 갚게 되요 우리가 빌려준돈 못 받을 경우도 있잔습니까 그건 아마 내가 과거생에 빌려썻다가 미처 못 갚은 것을 아마 금생에 갚았을지도 모릅니다 불자들 대게 그런 생각 많이 하죠 뭐 생각까진 못해도 그건 남의 일이 그렇게 생기면 그런식으로 말을 해서 위로를 하는 경우는 흔히 볼수있잔습니까. 사실 그래요
이 약왕보살과 약상보살은 이러한 큰 공덕을 성취하고는 한량없는 백천만억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모든덕의 근본을 심고, 불가사의한 여러 선근 공덕을 성취하였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두 보살의 이름을 아는 이가 있으면 모든 세간의 천신과 사람들이 또한 마땅히 예배 할 것이니라." 뭐 과거생이 이쯤 된다면 우리가 예배 안 할 수가 없죠 이렇게 해서 묘장엄왕본사품이 끝나면서 18 부처님께서 이 묘장엄왕본사품(妙莊嚴王本事品)을 설하실 때에 팔만 사천 사람들이 번뇌를 멀리하며 때를여의고 여러 가지 법 가운데서 법의 눈이 청정함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이제 묘장엄왕본사품에 대한 그 위력과 공덕을 또 이렇게 간단하게 마무리를 해서 끝내고 있습니다.
앞에서 전기가 여러번 가서 마음이 상당히 쫓겼는데 다행히 오늘 공부 끝날때 까지 이렇게 전기가 무사해서 강의를 할수가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 말씀드릴 것은 내일 부산 불교방송 라디오 방송이죠 오후 4시30분에 약 10분쯤 대화를 하는데 대담을 하는데 대담하는 내용이 열가지 쯤으로 이렇게 이 메일로 왔습니다
그기에 내용이 우리가 이제 법화경 법회를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이게 이제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고 뭐 서울 같은 곳에서 불교가 그렇게 활발하게 포교를 하고 있지만은 이렇게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법화경 학문이 온전히 이렇게 끝나고 그 회향법회를 한다고 하는 그런소식을 방송국에서 듣고 그점에 대해서 인터뷰를 좀 하자고 그렇게 연락이 와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이제 회향법회 뒤에 니르바나 필 하모니 후원을 위한 음악회 이것도 이제 이야기속에 좀 들어있고 그렇습니다. 방송국에 종사하는 이들도 또 방송을 통해서 법을 펴는 이들도 또 이렇게 인터넷이 발달해서 개인적으로 전 세계에 이렇게 인터넷을 타고 부처님 법음이 전해 진다고 하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로 그리고 아주 희유한 일이고 신기한 일이고 상당히 놀라운일로 아마 그렇게 받아 들여지나 봅니다
이런한 것들이 모두가 오늘도 이렇게 예순다섯분이 이렇게 들어와서 열심히 경청해 주시고 평소에 또 여기에 뭐 울력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이것을 재방송을 들을수 있도록 녹음을 올려서 듣게 해주시고 또 재방송을 많은 분들이 듣고 또 이것을 녹취를 해가지고 녹취 30분 강의를 녹취 할려면 다섯시간 여섯시간 걸리는 그런일을 세분이 또 맏아서 하시고 등등 내가 일일이 칭찬은 하지 안습니다만은 그런 뒤에서 남 모르게 그렇게 보살행을 하시는 그런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방송국에서도 알아 가지고 인터뷰를 하게 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분들이 인터넷이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서 불법을 많이 공부하게 되고 또 깨달게 되고 또 각자의 인생에 많은 프러스가 되리라는 그런 마음을 갖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이러한 것은 오로지 우리 염화실 법우님들의 숨은 노고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 법화경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_()()()_
선근을 심은 연고로 세세(世世)에 선지식을 만나느니라. 그 선지식이 불사를 지어 보여주고 가르치고 이익케 하여 기쁘게 하며, 최상의 깨달음에 들어가게 하느니라....나무묘법연화경
번뇌를 멀리하며 때를여의고 여러 가지 법 가운데서 법의 눈이 청정함을 얻었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