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강천산, 매 마른 계곡이 한적한 시골길을 연상케 한다.
(전북 순창군 팔덕면(八德面)에 있는 군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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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한낮 온도가 36도를 오르내리고 일부지방은 38-9도의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요즘 날씨는 열대지방인 동남아지역의 날씨와 맞먹는 수준이란다.
한 달 넘게 이어지는 폭염에 극심한 가뭄까지 겹치면서 농심이 타들어가고 있다.
가뭄으로 과수가 제대로 자라지 않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피해가 급등하며,
농경지가 타들어가고 밭작물이 말라죽어가고 있다.
닭, 오리 등 가축이 폐사하고 물고기도 집단폐사 했다는 보도다.
더위 탓에 냉방기 가동이 급증하고 일부 발전설비가 고장이 나면서 전력수급에도
차질이 생겨 “관심”과 “주의”발령을 내리면서 전력당국도 초비상사태란다.
아! 지겨운 이 더위는 언제쯤 끝이 나려나.
어제는 집에서 에어컨 신세만 지는 것도 한계가 있어 아내와 함께 무등산 증심寺
계곡을 찾았지만 오랜 가뭄으로 계곡은 목마른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래도 토끼등 쪽으로 올라갔더니 제법 흐르는 물이 있어 땀 흘린 얼굴도 씻고,
손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혔다.
그래도 계곡이라고 집에 있는 것 보다는 그늘도 지고 시원해서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바오밥”식당에 들려 돌솥비빔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날씨가 워낙 더우니 산을 찾는 사람도 줄어들어 전혀 장사가 안 된다고 식당주인이
푸념을 한다.
그러고 보니 주변식당들이 모두 개점휴업상태인 것처럼 보였다.
무더위 때문에 서민들 생업에까지 문제가 생겼으니 큰일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아내를 부추겨서 순창 강천산계곡을 찾기로 했다.
시원한 물과 점심도시락도 준비하고, 돗자리도 마련해 갔는데 차량주차료를 받던
입구매표소가 패쇠 되어있고,
대형주차장에는 관광버스 서너 대가 주차한 것이 고작이었고 소형주차장 역시
차량 들이 많지 않았다.
그렇게 붐비던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눈에 띠게 한적한 것이 이상했다.
의아해하면서 계곡 쪽으로 발길을 옮겨보니 “혹시나 했던 게 역시나”였다.
사시사철 콸콸거리며 흘러내리던 계곡물이 너무나 조용하다.
매 마른 계곡이 한적한 시골길을 연상케 한다.
순창 강천산(剛泉山)은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숲, 기암괴석과 수십 리에 이르는
깊은 계곡 등 풍부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어,
1981년 1월 7일 국내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크게 자연보호지구, 자연환경지구, 취락지구, 집단시설지구로 나뉜다.
용천山으로도 일컬어지는 강천산(583.7m)은 광덕산(565m), 산성山(603m)과
맞닿아 있는데, 특히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릴 정도로 자연 경관이 뛰어나다.
산세가 높지 않고 웅장하지도 않지만,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흐르는 계곡의 맑은 물과 빼어난 봉우리,
15개가 넘는 크고 작은 계곡들이 곳곳에 산재해있다.
산 입구와 해발고도 300m 능선에는 각각 호수가 한 개씩 있는데
전자를 강천1호, 후자를 강천2호라고 부른다.
산행이정표, 숲속 데-크길, 맨발로 걷기 체험 장, 화장실, 도로변의 쓰레기수거 통,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곳이었다.
군립공원치고는 관리가 제일 잘 된 곳 같았다.
여름철에는 자리를 잡을 수 없이 붐볐던 계곡주변의 숲과 바위들이 너무 한가롭다.
넘쳐흐르는 물은 없어도 바윗돌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이 웅덩이를 채워주고
사람들이 물놀이를 할 만큼의 수량이 있는 곳도 여러 곳 있었다.
병풍폭포에서는 폭포수가 가랑비처럼 흩어져 내리고 있었고,
아내는 폭포부근 다리 밑에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다리 밑이라 바람이 통해 시원하고,
많은 양은 아니어도 폭포수가 흘러내려가는 곳이라 물도 좋았다.
극락橋(교) 밑에는 물도 제법 있어 아이들이 여러 모양의 비닐튜브를 타고
물장구를 치고 놀고 있다.
어른들은 주변 숲 그늘에 앉아서 망중한을 보내고 있다.
강천門을 지났다.
물속에 잠겨있어야 할 바위와 돌들이 물 밖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
바람이 멈춘 계곡 길은 무덥고 숨이 막혔다.
길가에는 가뭄에 상사화(相思花)가 힘겹게 피어있다.
바위봉우리 아래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도선(道詵)이 창건한 강천사가 있다.
더위에 지친 산사(山寺),
사람 그림자도 없이 정적만 흐르고 텅 빈 절 주변에는 빨간 맨드라미와 노란
코스모스만 피어있다.
이곳에는 강천寺 석탑(전북도 유형문화재: 92호)과
입구에 강천寺 모과나무(전북기념물: 97호) 등의 문화유적이 있었다.
신선대(神仙臺), 병풍바위, 범 바위, 어미바위, 부처바위, 비룡폭포, 구장군폭포,
약수폭포 등 이름난 곳이 많았다.
강천寺 앞 내를 건너 남쪽에 정면 1칸의 조선시대의 비각(碑閣)이 있었는데
비각 안에는 순창 삼인대(三印臺 전북유형문화재: 27호) 비(碑)가 있었다.
이 비(碑)는 1744년(영조: 20년) 4월에 세운 것으로 홍여통, 윤행겸, 유춘항 등
군(君)의 선비들이 발기하여 대학자인 이재(李縡)가 비문(碑文)을 짓고,
민우수가 비문의 글씨를 썼으며 유척기가 전서(篆書)를 썼다고 한다.
1506년(연산군: 12년),
중종반정이 성공한 후 중종반정을 주도하고 성공한 박원종 등 반정공신들은,
신수근일파가 반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숙청하고 신수근의 딸 신氏를 폐비시키고
윤여필의 딸인 숙의 윤氏를 새 왕비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새 왕비인 장경왕후는 왕후가 된 지 10년 만에 사망하였으며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유옥 등
세 사람이 비밀리에 이곳 강천산 계곡에 모여서 과거 억울하게 폐위된 신氏를
복위시킴이 옳다고 믿어,
각자의 관인을 나뭇가지에 걸어 맹세하고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이들이 소나무 가지에 관인(官印)을 걸어놓고 맹세한 곳이 이곳이라 하여
삼인대라 부르게 된 것이다.
출렁다리 철다리 밑으로 난 길로 걸어서 구장군폭포를 찾아갔다.
육각 정자가 하나 있고,
산행객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긴 테이블이 여러 개 줄지어 놓여있었는데
햇살가림 막도 처져있었다.
그래도 구장군폭포는 폭포수가 꽤 흘러내리고 있었다.
120m나 되는 높은 곳에서 세 가닥의 폭포수가 줄기차게 내려온다.
마한시대 전쟁에 패한 아홉 명의 장수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자결하려고 했다가
이왕 목숨을 끊을 바에야 싸워서 죽자고 용기를 내어 마침내 싸움에서 크게
이겼다는 전설이 잇는 폭포다,
남근석과 애정을 표현하는 조형물이 있는 작은 동산이 있고,
그 위로 제2강천호가 있었다.
이따금씩 산행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지만 폭포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한 두 명뿐이다.
돌아오는 길에 담양 수북 가는 길에 있는 “참살이”식당에 들려 얼음 둥둥 뜬
시원한 콩물국수를 한 그릇씩하고 왔다.
무더운 하루해가 서산으로 지겹게 넘어간다.
요즘은 남해 앞바다 8-15m 해저에서 건져 올린 자연산 전복이 그야말로 상(上)중의
상품이란다.
자연산 전복을 듬성듬성 썰고 내장도 잘게 으깬 뒤 불린 쌀에 넣어 30-40분 저으며
정성스럽게 끓여 낸 전복죽은 소금만 넣어도 진하고 고소하다.
단백질과 칼슘, 인 등 무기질이 풍부한 전복.
양식 전복은 껍데기가 약간 초록색을 띠고 있는데 반해 자연산은 거무스레하면서도
빨간색을 띠고 있다.
자연산은 맛이 확실히 다르다는데 무더운 여름 보양식으로 전복죽 한 그릇 어떨까요?
(2013년 8월 21일)
첫댓글 매마른 대지위에 햇살이 너무 따갑다. 풀 죽은 나뭇잎이 애처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