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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감사드리세”
지난주일은 ‘추수감사절’이었다. 추수감사절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에 정착한 영국의 청교도들이 그 해의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린 1621년부터 시작했다. 우리나라 교회들도 처음에는 청교도들로부터 시작된 감사절의 영향으로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켰다. 그때가 1908년이었다. 1914년에는 11월 셋째 주일 후 수요일로 날짜를 변경했고, 7년이 흐른 1921년에는 11월 둘째 주일 후 수요일에 추수감사절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다가 지금은 대부분의 교회들이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킨다.
혹자는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것은 우리와 맞지 않는다며 오히려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키자는 말을 한다. 지금도 추수감사절을 기존의 11월 셋째주일로 지켜야 하는지 아니면 우리식으로 추석에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왕왕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건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중국집에 가면 무조건 ‘자장면’(‘짜장면’도 표준어임)을 먹어야 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내 개인적인 입장은 기존의 전통에 따라 11월 셋째 주일에 지키는 것도 좋고, 아니면 우리식으로 추석에 지키는 것도 좋다. 추수감사절을 언제 지켜야 하느냐의 문제는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므로 굳이 날짜에 목숨 걸 필요는 없다.
하여간...
지난주일은 날이 날인지라, 점심으로 국수가 아닌 밥이 나왔다. 오후에는 각 부서가 준비한 추수감사절 발표회가 있었는데, 베트남 교인들의 찬양, 교회 어르신으로 구성된 ‘마라나타’ 합주단의 연주 등을 비롯해 여러 부서가 정성껏 준비한 발표로 다양하고 좋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그날 행사의 압권은 영아부의 성경암송이었다. 어느 아이는 제법 성경암송을 완벽하게 했지만, 어느 아이는 엄마의 선창에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따라 하기도 했고, 또 어느 아이는 해맑은 얼굴을 한 채 “헤~!”하는 걸로 퉁 쳤다.
예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생 시절 때 추수감사절이 되면 그날은 하루 종일 축제분위기였다. 강대상 주위에는 교인들이 가져온 각종 과일과 배추, 무, 감자, 고구마 등으로 가득했다. 그때는 설교에는 관심이 없고, 교인들의 눈은 오로지 먹거리인 과일에만 집중되었다. 대부분이 어렵게 살았기 때문이다.
‘저 사과는 나중에 누가 갖고 가지?’, ‘저 배 우리 집에 줬으면 좋겠다...’, ‘어라? 바나나가 있네? 저거 한 입만 베어 먹어도 원이 없겠다...’
예배가 마치면 드디어 일 년에 한 두 번 밖에 먹을 수 없는 고기국밥을 먹었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햅쌀과 무를 썰어 넣은 고깃국...
어머니들은 식사준비로 바쁘고, 아버지들은 예배당 마룻바닥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밥이 올 때까지 이런 저런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이들은 소고기 국밥을 먹는다는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아 소리를 지르며 부산스럽게 교회 안을 뛰어다니다가 “야, 니들 좀 가만히 앉아있어! 조금 있으면 밥 먹을 건데, 너희들 때문에 밥에 먼지 들어가면 좋겠어?” 이러며 혼이 나면 찔끔하여 자리에 앉아 있는 척 하다가 다시 슬근슬근 일어나 좁은 교회 안을 천방지축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식사가 나오면 고기 한 점이라도 더 있는 국그릇에 눈이 돌아갔다. 그날은 교회에서 먹는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걸 몸소 체험하는 날이었다. 식사 후에는 연로하신 할머니들이 여기저기 구석에 누워 한숨 주무시고 아이들은 오후예배까지 교회에서 신나게 놀다가 오후예배를 드리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바로 저녁 예배 후에 있을 행사(주로 찬양과 율동, 그리고 가끔 성극)의 리허설을 했다. 여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뺀지(!)를 발라줄 때, 여자 아이들은 서로 먼저 해달라고 했지만, 남자 아이들은 ‘뺀지 발림’을 당하기 싫어 도망 다니기 바빴고.
난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남자 아이들은 뺀지가 싫다고 하는데도 왜 여 선생님은 굳이 남자 아이들에게 뺀지를 발라주려고 했는지를...
추수감사절 발표회의 준비는 어린 아이로부터 중고등부까지 아울었다. 모든 순서가 끝나면 저녁 9시 반이 훨씬 넘고 어떤 때는 10시 경이 되어서야 끝났다. 그래도 그때는 교인들 대부분이 교회 근처에 모여 살았기 때문에 시간에 큰 구애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추수감사절 행사가 마치면 그걸로 끝이 아니다. 그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성탄절 준비로 바빴다. 그러니 연말이 되면 매일 교회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지금 이렇게 교회를 떠나지 않고 믿음생활을 하게 된 배경에는 어렸을 때의 교회 절기행사라는 자양분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지난주로 추수감사절이 지났으니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성탄절이다. 이번 성탄절 연주는 벧엘 찬양대 담당이며 우리는 25일 예배 때 찬양을 한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지만, 철저히 준비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드리도록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