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출근 인파로 붐비는 4호선 지하철 안, 스물한 살 여대생 Y 양의 한 손은 손잡이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나머지 한 손은 쉼 없이 스마트폰 위를 오가기 바쁘다.
'야 이번 주 라디오 스타에 누구 나왔음?'
'안알랴쥼'
'아 진짜ㅡㅡ'
'그래도 소용없음 안얄라쥼'
'단호하네 단호박인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와의 카톡에 결국 웃음이 터지고만 Y 양. 혼자서 스마트폰을 보며 킥킥대는 Y 양을 옆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Y 양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그렇게 단체 카톡방에서 한참을 노닥거리다 페이스북 버튼을 누른 Y 양. 뉴스피드에는 친구들의 소식과 함께 '좋아요'를 누른 페이지의 새 게시물이 떠있다.
'여자들의 동영상'에 올라온 오늘의 핫한 동영상은 뭐지?'
'응답하라... 깜짝놀랐던 기.습.뽀.뽀...♡'
본방을 놓친 드라마에서 나온 키스신을 편집해 놓은 동영상이 재생된다.
어머, 어머 이래서 이 계집애들이 카톡방에서 난리였던 거였구먼. 완전 대.박.
등굣길부터 두근거리는 가슴에 Y양의 입꼬리가 또 한 번 쓱 올라간다. 이제 Y 양에게 SNS는 용돈 부족으로 끊은 모닝커피보다 더한 필수품이 됐다.
유행어 좀 빨리 익히고 가실게요~ 느낌 아니까!
'안얄라쥼' '스릉흔드' '단호하네 단호박인줄' 'ASKY' '두둠칫'
이 중 반 이상을 적절한 상황에 사용해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좀 안다'라고 자부할 수 있다. 구입한 지 2년이 채 안 된 스마트폰이 누가 '줘도 안 가지는' 폰이 될 정도로 급변하는 기술만큼 유행어의 유통기한 역시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최근엔 SNS의 파급력에 힘입어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라, 몇 개의 인기 유행어를 몰랐다간 순식간에 '어디서 살다 왔냐'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예전에는 유행어가 주로 TV, 만화책 등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SNS에서 파생된 유행어가 주류를 이룬다. 아직도 유행어라는 말에 'OTL' '안습' '뭥미' 밖에 생각이 안 나는 당신을 위해 정리했다. 2013 핫 트렌드 유행어들과 그 어원!
Chapter 1. 유행어 from SNS
"안알랴줌"
'안알랴쥼'은 한 '카카오스토리' 유저의 시크한 댓글로부터 시작됐다. '왜 아무도 내가 힘들다는 걸 몰라주지'라는 센치한 글에 지인이 남긴 '먼일있냐ㅋ'라는 댓글에 쿨하게 '안알랴쥼'이라 답한 것. 이 대화를 담은 캡처 사진에 '빵' 터진 네티즌들이 많은 질문에 '안알랴쥼'이라고 답하는 쿨한 태도를 답습하기 시작했다. 이 유행어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은 많은 지인의 동시다발적인 냉랭함에 당황했다는 후문.
"단호하네 단호박인줄"
스마트폰의 캡처 기능은 단언컨대 현재의 '유행어 폭발 현상'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유행어 역시 한 커플의 카카오톨 화면을 캡처한 사진들로부터 비롯됐다. 헤어지자는 남자의 말에 너무나도 단호하게 'ㅇㅋ'라고 답하는 여자. 남자는 뒤늦게 장난임을 고백하지만 여자는 답이 없다. 그리고 남자가 남긴 한마디. '단호하넹ㅎㅎ 단호박인줄'. 안타깝게도 정말 '단호박'이었던 여자에게 하지 말았어야 할 장난을 했던 남자의 상황에 대한 안쓰러움과 너무나도 쿨한 여성의 태도에서 유발되는 웃음에 이 문장 역시 네티즌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이제는 '단호하다'라는 말 뒤에 단호박이 오지 않으면 어색할 정도.
"안생겨요(ASKY)"
수많은 솔로에겐 마치 양파와 같이 눈물을 자아내는 단어, '안생겨요'를 영문 첫머리 글자로 표기한 것이 'ASKY'다. 많은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글에 달린 한 댓글이 시초였다. '여자친구는 어떻게 생기는 거냐'는 한 유저의 질문에 끊임없이 '안생겨요'라는 댓글이 달렸고, 이를 좀 더 고급(?)스럽게 'ASKY'로 부르기로 한다. 앞에 '애인'이라던가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 등의 주어를 붙이지 않는 것이 이 유행어의 묘미다.
"스릉흔드"
지금 한 번 어금니를 꽉 깨물어보라. 그리고 '사랑한다'라고 말해봐라. 누구든 '스릉흔드'라고 발음하게 된다. 한 커뮤니티의 유저가 미용실에서 가서 찍은 사진과 함께 '으즈므니... 그긴 즈르지 믈르그 흐쓸 튼드(아주머니 거긴 자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라고 어금니를 꽉 깨문 심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글에서 유행한 어투. 처음에는 주로 분노에 대해 표현할 때 반어법으로서 '스릉흔드'라고 썼지만 지금은 그냥 '사랑한다'의 격한 표현으로 쓰인다. 여러 가지 응용 방식이 있다는 게 매력 포인트.
"두둠칫"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며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한 그림이 연상되는 단어 '두둠칫'. 이 단어의 유행의 비결에는 한 이모티콘이 있다. 고양이 얼굴에 사람 몸을 한 것 같은 이모티콘은 참으로 흥이 나는 포즈로 '두둠칫'이라는 흥얼거림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한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헤어짐을 고하는 와중에 카카오톡으로 친구에게 보낼 이모티콘을 잘못 보내 화제가 된 이모티콘이다. 격하게 신이 난 상황을 표현할 때 자주 쓰곤 하는데, 그 단어와 이모티콘의 절묘한 매치가 항상 웃음을 유발한다.
Chapter 2. 유행어 from TV
아무리 SNS유행어가 대세라 해도 TV 유행어야말로 언제나 사람들의 가장 좋은 대화 소재거리. 기본적으로 TV 유행어와 SNS는 탄탄한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TV에서 파생된 유행어가 SNS를 통해 퍼지며 더 많은 인기를 얻고, 그로 인해 TV 프로그램의 인기나 어떤 인물의 인기가 가속도로 올라가기도 한다.
"니나니뇨"
2013년의 예능 신예 '존박'. 그가 <방송의 적>에서 보여준 캐릭터에 사람들은 빠져들었다. 그가 만들어낸 가장 큰 유행어는 바로 그 뜻도, 맥락도 짐작할 수 없는 '니냐니뇨'. 그가 좋아하는 냉면을 먹고 너무나도 흥이 난 나머지 뱉어낸 의미 없는 단어 '니냐니뇨'의 오묘하면서도 매력적인 어감에 사람들은 홀리고 말았다. '두둠칫'과 함께 신나는 기분을 표현하는 또 다른 유행어로 인기몰이 중이다.
"잠시만요, OO들어 가실게요. 느낌 아니까."
유행어 제조기 <개그콘서트>의 현재 가장 '핫'한 코너는 바로 '뿜 엔터테인먼트'. 이 코너에 등장하는 콧대 높은 톱스타 역의 신보라 곁에서 신보라의 스태프 역할을 맡은 개그우먼이 신보라가 등장할 때마다 "잠시만요. 보라 언니 OO하고 들어 가실게요"라고 외친다. 이 말은 그 특유의 억양과 당당한 존칭 오류가 맞물려 웃음을 자아낸다. 김지민의 '느낌 아니까'라는 대사 역시 연예계를 풍자하는 듯한 유머로 그야말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금부터 내가 OO한다 홍홍홍"
언제나 화제를 몰고 다니는 <무한도전>의 가요제. 이번 2013년 '자유로 가요제'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정형돈이었다. 너무나도 진지한 태도로 프리스타일 랩을 선보이겠다고 무대로 나간 그는 '홍홍홍'이라는 귀엽기만 한 콧소리 가득한 랩을 선보여 시청자들을 '빵' 터뜨렸다. 현재 '홍홍홍'은 무한도전의 폭발적인 인기와 결합해 다양한 패러디를 낳고 있다.
"왜 때문에 그래요?"
주말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에서 먹방의 달인으로 등극한 가수 윤민수의 아들 후. 볼살 통통 귀여운 후가 실수로 '뭐 때문에'를 '왜 때문에'라고 말한 영상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어머~너무 귀여워~'라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왜 때문에'는 높은 활용성을 자랑한다. 특히 귀여워지고 싶은 사람들이 '뭐 때문에'를 '왜 때문에'로 대체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문법의 지나친 파괴는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SNS안에서 내 입맛대로 골라보는 콘텐츠, 페이스북 페이지
또 다른 최근의 SNS문화 트렌드는 바로 '페이스북 페이지'. '페이지'는 내 취향에 맞는 사람을 불러 모으기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굳이 또 다른 웹사이트 계정을 개설하지 않아도 '좋아요'를 눌러 페이지의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구독하게 할 수 있다. 동영상, 사진 등의 각종 콘텐츠를 직접 올릴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수많은 사람의 취향만큼이나 다양해진 페이스북 페이지는 유저들을 만족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각 시기별 이슈들에 대해 포스팅하는 페이지나 대학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페이지의 인기가 뜨겁다.
'좋아요'수가 몇십만에서 많게는 백만까지 넘어가는 인기 페이지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로 젊은이들이 쉽게 공감할 만한 내용이 많다는 것. '좋아요' 수가 무려 16만명이 넘는 '대학생의 정석' 페이지는 대학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대학생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들을 포스팅하는 것은 물론, 시험기간에는 시험기간을 보내는 대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대학생 특유의 모습을 싣는다. 방학 땐 방학을 즐기는 대학생의 모습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포스팅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두 번째로는 모바일로 페이스북을 많이 이용하는 유저들의 특성을 이용한 자극적인 사진이나 동영상 등의 콘텐츠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좋아요' 수가 100만 명이 넘는 '세상에서 가장 웃긴 동영상' 페이지에는 2분이 넘지 않는 동영상이 대부분이다. 짧은 동영상을 클릭해 보다 보면 시간이 어느새 훌쩍 간다.
이외에도 여자와 남자라는 특정 계층을 노린 '여자들의 동영상' '남자들의 동영상', 각종 음식과 식당을 누비는 '먹방 페북', 대한민국 20대 남자들의 격한 공감을 사는 '군대' 이야기를 하는 페이지 '자네가 주임원사인가?' 등 다양한 취향의 사람을 공략한 여러 페이지가 존재한다. 한 개인 페이스북에 들어가 그 사람이 '좋아요'를 누른 페이지만 살펴봐도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
과유불급(過猶不及) : 모든 사물이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최근 '좋아요' 100만 개 이상을 보유한 페이지, '피키캐스트'가 갑자기 없어져 논란이 일었다. '피키캐스트' 측은 페이스북 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삭제 조치를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일부 저작권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했다. 이 외에도 사망하신 본인의 아버지와 '셀카'를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사건, 이화여대 스타벅스에서 자주 보이는 남성을 '변태남'이라고 지칭하며 허락없이 얼굴이 드러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사건 등, SNS는 창의력과 소통의 창고인 동시에 그 자유로움과 무절제함으로 인해 언제든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시한폭탄의 창고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타인의 관심'을 근원으로 하는 SNS의 특성상, '선정성'은 언제나 큰 문제이나 '표현의 자유'의 보호와 충돌한다는 견해 때문에 규제 역시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지금 SNS의 파급력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쉽게 퍼져 나가고, 쉽게 재생산되며, 너무나도 쉽게 많은 것들이 온라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20대에게 SNS는 가장 가깝고 친숙한 장난감이다. 그러나 장난감은 언제까지나 장난감이어야 할 뿐. 무심코 잘못 끼운 나사 하나는 장난감의 몸집을 지나치게 키워 '나'를 잠식할 수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재미'가 넘치는 세상이다. 그러나 어떤 놀이에도 '규칙'이 있어야만 그 재미가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