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3일
통영에서 졸업 53년 만에 고교 동창들 만남이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모임이 3년이나 늦어졌다. 그 사이 세상을 떠난 동창들도 있었다. 사회자 말을 빌면 29회는 남들이 포기할 만 한 것도 지키는 좀 끈질긴 면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한국경제 도약시절 고향을 떠나 열심히 일하다 보니 서울, 부산, 울산까지 가서 터를 잡은 친구들, 백발로 다시 대면 했는데.
요즘 뭐하고 있느냐도 묻기도 했지만 오랜 세월이 흘렸어도 친구들 머리 속 한구석에 아직 은근하게 자리잡고 있는 듯 한건 그 때 그 친구 "공부를 잘했다, 못했다."에 대한 추억?
당시 성적이 좋으면 급장도 되는 등 특혜?가 많았는데 지금와서 동기에 대한 인상이 아직도 그 기준?
인문계다 보니 대개 대학에 진학해 안정되고 대접받는 직업군에 진출하는게 바램이기도 했으니.
왕조시대에서는 부모만 잘 만나면 왕으로, 귀족으로 평생 손에 흙 안 묻히고 살았지만 자유경쟁 시대에서는 실력에 더해 열심히 하면 먹고살기는 문제 없었는데.
요즘 학생들, 여전히 의사가 제일 목표라지만 이젠 공부에 별 취미 없어도 소질이 있으면 학업은 관두고 일찍 JYP, 하이브에 들어가 아이돌이 될 수도 있는 시대.
당시 박상호나 남철수는 시대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서일지 전국적, 세계적인 가수로 클 수도 있는 가능성에 도전할 기회가 오늘날처럼 많지 않았던게 아쉽고,
당시 남이 안하던 패션 디자인 쪽으로 방향을 틀어 마산에서 앙드레 조로 이름 날리던 희백이 처럼 숨어있던 소질을 잘 발휘할 수도 있었는데,,,
장수했으면 앙드레 킴을 능가할 수도 있었을지?
한근이는 교직에 있으면서 그때서야 운동에 소질이 있다는 걸 본인이 깨달아서 열심히 하다보니 부산 지역 테니스계에서는 한 수 배우려 줄을 섰었다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지금도 족구 등 만능선수처럼 활동하고 있다니 학문이란 분야 외에서도 개인의 탈란트를 잘 찾은 동기들의 자기계발 사례들이 놀랍다.
마산고 동기들, 어릴 때부터 꼭 공부라는 한 분야 뿐 아니라 사업, 예술, 문화, 체육 등 다 방면에 잠재적인 소질을 각자 보지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재능을 가졌던 많은 친구들이 당시 "공부지상주의" 때문에 빛을 못 보고, 하고 싶은 걸 할 여건이 안되 펼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는 그 때 유도를 했다.
3학년 1학기 까지.
마산 예선을 거쳐 도민 체전에 나가 김해농고한테 1:6 (개들은 밥만 먹고 유도만 했는지 도사들 같았다. 우리의 호프 흥조도 지고 마지막에 분투한 화이팅이 좋았던 현수만 계속 기합을 넣으면서 밧다리 공격, 결국 이겼다. 나는 실력은 별로였는데 더해 대적한 "김농" 선수는 그중에서도 에이스였다. 키가 대략 1m80~90은 되는듯 했다. 잡히자마자 허리튀기로 반판 먹었는데 그 선수, 한판이 안되서 성이 안찼는지 "씩" 내려다 보더니 누르기도 안하고 그냥 풀었다.)
참패로 끝난 뒤 이학진이가 "우리 이제 유도 그만하고 공부하려 가자." 해서 모두 그만뒀다.
그런데 애그, 졸업 앨범 만들 시점에 표 선생님의 징그런 바리깡이 내 머리 가운데를 두동강 내는 바람에 53년이 지난 지금도 김덕규가 띄운 앨범 중 유도부 사진에 여전히 까까머리로 등장할 줄이야.
50여 년이 지난 그 날 밤에 다시 만난 유도부 흥조, 학진이, 현수, 그리고 나 네명이 함께 기념 촬영을 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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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몇 십년만에 처음 본 친구들이 많아 뇌가 심한 흥분상태에 빠졌나보다. 한시적 룸메이트였던 의우가 그건 교감"선생"이 와서 그렇다는데(교감"신경?")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밤에는 아주 드물게 아침녁까지 깊은 잠을 잤다. 장거리 여행으로 피곤해서 아님, 오랜 친구들을 만난 편안함 때문이었을지?
첫댓글 새삼 유도부도 있었구나 생각이 드니....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네....
아뭇턴 만나서 좋은 것이여....ㅎㅎㅎ
그걸로 미안할 것까지는 뭐. 사실 앨범 찍으려고 급조된 특활반들이 더러 있기는 했던 것 같아.
그리고 허현도 선생님도 유도 지도 선생님이라기 보다 인기가 좋아 부원들 모두 모시자고 해서 사진을 찍었었네. 강당에서 연습하다가 태권부와 대련을 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무덕관 유도장에 다녔는데.
나는 뭐 썩 유능한 선수는 아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