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마다 진실한 땅을 밟는다. / 법전 스님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동안거(2013) 결제 법어
태암보장(呆菴普莊)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결제 기간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습니다.
“발걸음 발걸음마다 진실한 땅을 밟는다.”
구순(九旬)안거 동안 온몸으로 돌아다니며 나타났다가 숨고,
거두었다가 펼치며, 종횡무진으로 잡았다가 놓아주고,
여기저기 구멍을 뚫고는 동쪽에서 솟았다가 서쪽으로 가라앉는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이미 상근기로서 옮긴 발걸음마다
진실한 땅을 밟은 것입니다.
만약 그 정도의 경지가 되지 못한다면
오늘부터 무조건 걸망을 매달아놓고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하근기는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포행하거나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선당(禪堂)을 벗어나지 않을 때
이것이 바로 발걸음 하나하나를 도량으로 만드는 일인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청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이미 역대조사를 두루 참문한 결과가 될 것이니
이 어찌 결제의 수승한 공덕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일주문 바깥을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평탄한 대로는 아닙니다.
앉은 자리에서 한 마디 언구(言句)를 옮길 때마다
그 앞에는 구덩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조사들이 던져놓은 뜻과 언구(言句) 마저도 때로는 함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참선은 어떤 것 혹은 무언가에 의지해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저 화두를 붙들고 열심히 정진하는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식(識)으로도 분별할 수 없고 알음알이로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리게 되면 곧바로 종지(宗旨)를 잃어버립니다.
성문 연각조차 어수선하게 만들고
십지보살마저 우왕좌왕하게 만듭니다.
말길로 표현할 방법이 끊어지고
마음으로 헤아릴 도리가 소멸하였기에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마가다국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만나지 않으셨고,
유마거사는 비야리성에서 입을 다물고 침묵했던 것입니다.
보보비신업(步步非身業)이요
성성비구업(聲聲非口業)이며
염염비의업(念念非意業)이라고 했습니다.
결제란 걸음마다 몸으로 업을 짓지 않는 것이며,
말마다 입으로 업을 짓지 않는 것이며,
망상으로 생각의 업을 짓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제 기간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납자에게
태암(呆菴)선사는 ‘발걸음마다 진실한 땅을 밟는다’ 고 하신 것입니다.
동안거 결제를 헛되게 보낼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은 각자 들고 있는
화두의 간절함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보살무두공합장(菩薩無頭空合掌)하고
금강무각만장권(金剛無脚謾張拳)이라
보살은 머리가 없어 공연히 합장만 하고
금강신장은 다리가 없어 넌지시 주먹만 펴 보이네.
출처 : 금음마을 불광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