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식이의 꿈
인생은 고달프다. 이 세상에 태어나 서커스단의 광대처럼 한평생을 떠돌다가 어느덧 황혼에 다다라서야 지난날을 돌아보는 추억에 얹혀사는 기분이다. 어쨌거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부모 곁을 떠나 고생하며 긴장하는 특별한 직업에 종사하느라 많은 난관도 있었으나 오늘도 별고없이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할 일이다. 더구나 겸손하고 부드러운 배필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어느덧 4명의 손주까지 두었으니 그런대로 행복한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동안 질풍노도(疾風怒濤)처럼 오직 앞만 바라보고 살아왔으나 이제는 뒤를 돌아보며 하나, 둘씩 정리를 할 시간이다. 살아오면서 상처를 주었으면 위로하고, 은혜를 입었으면 보답해야 한다. 아울러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무조건 용서할 일이다. 살아오면서 스쳐 간 모든 인연에 감사하고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고마움을 표할 때이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도회지로 전학하면서 떠났던 고향은 마음속에 그 옛날 그대로 각인되어 있다. 손을 꼽아 셀만큼 불과 2~3번 정도 가보고 말았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장난치고 뛰놀던 동네 친구들 모습도 가물거린다. 하물며 희미하게 떠오르는 동네 어른들의 모습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들린 것이 무려 40년이 지났다. 당시는 조부모님의 산소가 있어 결혼 이후에 인사차 갔던 것인데 그렇게 매서운 세월만 지났다. 이후 다른 선산으로 묘를 이장하고 별다른 연고가 닿지 않아 발 길이 멀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간간하게 고향 친구들의 소식을 접하며 돌아가는 정황은 알고 지낸다.
직장에서 벗어나 지난해 4월부터 집에서 지낸다. 처음에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 외부 출입을 자주 했는데 최근에는 칩거하는 편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란 프로를 보면서 매번 감탄하고 동경을 한다. 아내와 유일하게 함께 시청하는 프로는 터키의 대하 사극인 「위대한 세기」이다. 그러다 보니 주중에 1~2회 정도만 외부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것도 꼭 필요한 경우로 한정하고 나니 직접 대면하는 횟수도 줄어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삼식이가 되고 말았다.
삼식이는 영식이나 무식이와 달리 삼시 세끼 집밥을 먹는 경우를 말한다. 영식이는 집에서 한 끼도 먹지 않고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무식이는 장기 출장 등으로 돈은 벌어 오되 식사는 집 밖에서 해결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에 따라 한 끼는 한식이, 두 끼는 두식이, 세끼는 삼식이라 불린다. 이 가운데서 가장 환영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삼식이다. 젊은 시절엔 온종일 붙어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겠지만 나이 들면서 삼시 세끼 밥 챙기는 게 여간 지겨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한때 우스갯소리로 ‘60대 남편’보다는 ‘90대 「송해」’ 씨가 더 부럽다고 하였다. 아마도 그가 전국을 유람하니 식사를 차리지 않아도 되고, 틈틈이 각 지역의 특산물을 가져오니 식구들 건강에도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불과 얼마 전에 이야기를 들으며 씁쓸한 미소진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나 자신이 삼식이가 되었다.
혹자는 남편이 살림을 함께 하면 무엇보다도 아내를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대개 남편이 살림을 도우면 집안이 화목하다. 그렇지 않으면 냉장고와 빨래통과 다용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살림이란 국 하나 끓였을 뿐인데 왜 설거지가 산더미처럼 쌓이는지, 밥상 물리면 Tv 앞에 마땅히 자리할 사람이 밥 먹은 사람인지 밥 차린 사람인지 깨닫는 과정이다. 주기적인 쓰레기 수거나 청소조차 시원하게 거들지 않으면서 시도 때도 없이 따뜻한 국물에 밥을 찾으며 반찬까지 가리니 삼식이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상이 크게 변화된 것도 없다. 단지 식사에 관해서 상황이 바뀐 것이다. 10시 반에 자고 5시면 일어나 책을 보거나 글을 쓴다. 8시면 아침, 12시면 점심, 6시면 저녁을 한다. 식사를 마치면 잠시 중요 뉴스를 시청하다가 다시 독서 혹은 중국어를 익힌다. 월요일과 목요일은 별도의 시간을 보낸다. 기타를 배우거나 「칸트」의 『순수 이성비판』 수업을 받으러 간다. 매월 2~4회 정도는 아내를 데리고 운동을 하고, 매주 2~3회 걷기를 하며, 1~2회 정도는 외부에서 다양한 지인들을 만나 식사와 술을 마신다. 서울에 거주하는 손주들과는 격주 단위로 오간다. 휴일이라고 하여 늦게 일어나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며 성경도 매일 10쪽씩 읽는다. 외부와 약속을 하면 주로 광화문이나 강남역 혹은 여의도로 정한다. 약속된 시간 전후로 인근에 있는 서점에서 신간 서적을 구매한다. 나름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지내도 은근히 스트레스로 머리가 무겁다.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은퇴 후 남편들 대부분은 오랜 시간을 아내와 같이 있고자 하는 데 반하여 남편과 같이 있고 싶은 아내는 3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나름대로 익숙한 생활의 리듬을 결코 깨트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오죽하면 집을 나서는 아내에게 어디를 가며 언제 귀가하는지 묻지도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 사회를 맞은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편은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남편, 건강한 남편, 요리 잘하는 남편, 상냥한 남편도 아닌 집에 없는 무식이 남편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은퇴에 대비한 준비를 미리 하고 있다. 고향으로 귀향하기 위해 농사일을 배우거나, 식당업을 하기 위해 요리를 배우고 원예나 목공을 익힌다거나 공인중개사 자격을 따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소망하는 매우 소박한 삶의 추구이다. 어느 지인은 은퇴 후에도 양복을 입고 2층에 있는 서재로 꼬박꼬박 출근한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별도 사무실을 두고 출근하여 일도 보면서 사람들과 대면하는 길이지만 누구에게나 손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 미국 젊은이들의 대처 방법은 조금 다르다. 평소에 소비를 철저하게 줄여 향후 25년치 생활비를 모으면 바로 은퇴를 한다. 은퇴 후 그들은 재테크를 기반으로 수입을 유지하며, 더 일해서 돈을 벌지 않는다. 20여 년의 황금기가 생긴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고 한다. 결국에는 경제적인 독립이 있어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재산을 갖기란 생각과 말처럼 쉽지 않다. 젊은 시절에 열심히 일하며 물질적 욕망을 억제하며 살아야 한다. 이는 현재 유행하는 소비주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열심히 벌며 물질적 욕망을 억제한 생활과 인생 후반기의 자유를 바꾼 것이다. 하긴 주변에도 재테크를 잘해 매달 일정량의 수입이 들어오니 연금으로만 살아가는 나의 형편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결국에 나와 동일수준의 삼식이가 아니며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지 않으니 배려하는 마음도 여유가 있다.
삼식이를 면하는 동시에 가정의 평화를 위해 오피스텔로 이사하였다. 여러 가지로 편의 시설이 갖추어진 곳이라 혼자 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평생 꼭 읽고 싶었던 책을 쌓아두고 사색하며 글을 쓰니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다. 어느 날 오피스텔 주변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연이어 울리는 폰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집에서 나와 혼자서 지내고 있으나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생활이다. 아내의 다급한 연락인가 싶어 서둘러 받으니 오늘 만나기로 한 친구의 목소리다. 모처럼 외출이라 그대로 두었던 양복을 꺼내입고 약속 장소로 가는데 발걸음이 사뿐하다. 오늘은 또 어떤 즐거운 일이 있을지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인근에 지하철이 닿으니 얼마나 편리한지 모르겠다.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으로 지내는 혼자만의 생활이 얼마 만인가. 지인들과도 다양한 화제로 이야길 나누거나 친구가 동반한 젊은 여성들과도 대화를 나누니 「엔돌핀」이 솟는다. 종종 친구와 당구, 바둑, 소주까지 걸치며 노래자랑까지 하다 보면 대취한다. 실컷 즐거운 자유를 만끽하고 돌아와 아쉬움으로 비몽사몽(非夢似夢) 하는데 아내의 ‘밥 먹어’라는 소리에 늦잠에서 깨어나니 이른 아침에 꾼 개꿈이었다. 아뿔싸! 보기에도 처량한 삼식이의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다! (2022. 1. 28)
첫댓글 '은퇴하면 부억을 점령하라.' 는 말이 새삼 잘 들리고 있습니다. 설거지, 귀찮긴 하지만 생도시절 빨래할 때보단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며 픽 웃습니다. 동기생의 한 부인이 '내 구역인데 왜 침범하냐.' 며 접근을 금지한다는 말이ㅡ 사실인지 모르지만, 우리 나이에는 남당이 말한대로 '삼식이'가 제일 많아 나오는 화두인 것 같네요. 내가 하는 요리보단 아내의 음식 맛이 더 좋으니 조수 노릇이라도 잘해야겠지요. 의사가 수술 끝내고 인턴에게 마무리 시키는 모습이 떠오르네요. 나도 가끔 남당처럼 꿈을 꾸긴 하지만 ㅡㅡㅡ
나는 삼식이가 안되려고 매주 4회 점심은 Subway 헴버그나 일식초밥
을 며느리것이랑 사가지고와서 며느
리랑 먹었지요.
어떤때는 파출부 아주머니랑 같이 먹
기도하고.
이번 일요일에는 며느리가 이사가니
이제는 삼식고민은 끝
아무리봐도 하루 한번은 외식할것같
아.
좋은글 감사합니다.
남당친구의 글이 요즘 우리가 겪게되는 노후의 일상을 세밀하게 꾸며 주셨네요.남당은 참 행복한 사람이네요.
선친의 過庭(父 훌륭하시어 배운 공부)이 있고,겸손하고 부드러움은 부인이 가장 갖추어야할 덕목이거늘, 부인께서 그러한 順遜의 덕이 있으시고,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4손주가 있으니, 얼마나 모든 것을 갖춘 노후가 아니겠습니까?
서커스의 광대처럼 고달픈 것이 아니라 洪福을 가지고 계시네요.저는 2008년말에 퇴직 하였는데 제 성격상 그 어느 자리도 기웃거리지
않고 귀향할 결심을 하고,그 허전함에 몸서리칠 때, 외줄타기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있었지요.
그래도 그 때의 외로움을 혼자사는 법을 체득하며 슬기롭게 잘 극복 하였어요.저는 열정적으로 일을 할 때가 잡념도 없고 신경을 안쓰기
때문에 태극기 보급 운동의 꿈을 갖게 되었지요.그것이 저를 구해줄 수 있는 희망의 등댓불이기 때문이지요.감사해요.
내가 남당과 꽤나 여럿이 닮아있는 듯하네요.
우선 왼벽한 삼식이라는 점이 그렇고 자연인을 즐겨 본다는 것도 그렇고, 초등학교 6학년 때 도시로 나왔다는 것도 나와 비슷하구요. 난 중학교 입학을 하면서부터 도시에서의 삶을 시작해서 이제껏 도시에 눌러 살고 있구요. 다만 귀향의 꿈을 버리지 앓고 주말 농부의 삶을 살고 있기는 하지만요. 남당이 삼식이 처지를 면하고 자신만의 또 다는 삶을 꿈꾸며 오피스텔로 살림을 나는 남가일몽의 꿈을 꾸는 것 처럼이요.
남당처럼 고전 인문학 서적을 탐독하지는 못하지만, 즐겨 보신다는 터키 대하 사극 《위대한 세기》는 오늘부터라도 보야야 겠네요.
동병상린 삼식이가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아무런 꾸밈없이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만든 말에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어 가는 것 같아요.나는 함께 살 날이 적으니 사식이가 되고 싶고, 산책도 함께 나가고 그리고 가능하면 한 방에서 자려고 노력합니다. 아직도 일과표 대로 생활하는 남당이 부럽고, 늘그막에 용서하고 감사하며 보은하면서 살려는 마음가짐을 본받고 싶습니다. 건강과 가내 행복이 늘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공직이라는 같은 줄기의 일을 하였지만, 은퇴 후의 삶의 모습은 제각기 많이 다른 듯합니다. 그 다름의 척도가 하루 세 끼니 중 몇 끼를 집에서 해결하는 가와 깊이 연계되어 있는 듯합니다. 남당의 경우는 완벽한 삼식이 반열은 아닌데 약간의 엄살로 양념을 하시는군요.
책 읽고, 글 쓰고, 뭔가를 배우고, 자습하고, 친구를 만나고.... 짜임새를 두루 갖춘 생활 패턴이 매우 부럽습니다.
그 중에서도 '상처를 준 사람을 무조건 용서하고, 살아오면서 스쳐 간 모든 인연에 감사하고,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다.' 하신 말씀은 이 아침 저의 영혼에 청량한 종소리를 들려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삼식이도 수도하는 마음으로 하면 아까울 게 하나도 없지요. 마눌림 대신 내가 손수 하는 것도 습관이 되면 삼식이가 아닌 상식이 됩니다. 하찮은 미물에도 모두 혼이 깃들어 있다고 하듯이 삼식이도 나름대로 위대한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삼식이도 경제적 여건에 따라 그 방법이 다르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삼식이든 사식이든 나이가 들 수록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군요. 달콤한 꿈을 꾸셨다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