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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네가지 형식과 종류
이 승 훈
시의 형식과 종류
(1)시는 어떻게 분류 되는가
본 강의에서는 시를 서정시, 실험시, 민중시를 분류하여 강의하였다. 그러나 시를 분류하는데 있어서는 시인이나 학자들에 따라 편의에 의해 또는 연구 목적에 따라 다르게 분류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시는 형식상으로 정형시, 자유시, 산문시로 분류하고, 내용상으로는 서정시, 서사시, 극시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반해 이승훈은 그의 저서 <시작법>에서 시의 유형을 설명시, 논증시, 경험시, 묘사시로 분류하여 문장의 기술방식 이론에 따르고 있다.
그리고 테드 휴즈는 <시작법>에서 글감에 대한 시 쓰기를 작법으로 강의하기 위해 ①동물과 시 ②바람과 기후 ③사람들에 대한 글쓰기 ④풍경에 대한 시쓰기 ⑤주변인물에 대한 시쓰기 ⑥환상속의 생물에 대하여 ⑦산문을 쓰는 법 등으로 나누어 시의 유형을 살펴보았다. 한편 홍윤기도 그의 저서 <시창작법>에서 ①삶의 의미추구의 시 ②시의 풍자적 표현 ③시의 문명비평의 형태 ④전쟁시 ⑤서정시 ⑥서경시 ⑦꽃을 노래한 시 ⑧무생물의 시 ⑨기행시 ⑩통일염원의 시로 한국시의 유형을 테마별로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시는 기준의 척도와 목적에 따라 다르게 분류될 수도 있다.
이 강의에서는 이승훈의 분류가 창작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어 그의 이론을 발췌 보완 설명하여 강의된다.
(2) 글의 기술방식에 따른 네가지 유형
글을 쓰는 동기나 목적에 따라 기술 방식은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기술의 방식에는 설명(說明), 논증(論證), 묘사(描寫), 서사(徐事)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의 방식은 문체의 종류나 문장의 기교와 결코 무관하지 않는다. 특히 문체의 종류와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예컨대 논증의 기술 방식은 대체로 건조체 및 간결체로 써야 제격이다의 예가 그것이다.
따라서 기술방식에 대한 고려는 문체의 종류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시인의 메시지나 글감에 따라 그 기술양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글의 기술 방식에 따라 시의 네 가지 유형을 살펴보고 창작의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가) 설명시
설명은 어떤 사물이나 사상을 알기 쉽게 풀이해서 쓴 기술양식이다. 그러니까 설명은 어떤 과제에 대해 ‘무엇인가’또는 ‘어떠한가‘에 대한 물음의 응답 형태로 기술하게 된다. 설명의 구체적인 방법에는 ①정의 ②예시 ③비교와 대조와 유추 ④분류와 구분 그리고 ⑤분석이 있다.
먼저 설명시를 쓰는 방법부터 살피기로 한다. 설명시란, 물론 맥노글린이 말하듯이, 말하는 이의 주장이 포함되기는 하지만, 대체로 대상에 대한 자신의 관념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쉽게 간추려 말하면 설명은 ‘주어+서술어’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때 주어에 해당되는 것이 소위 소재이며, 서술어에 해당되는 것이 그 소재에 대한 시인의 관념이다. 이러한 소재에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이 있다. 특수한 것으로는 특수한 장소, 사건, 대상, 인물 혹은 자신의 특성 등을 들 수 있고, 일반적인 것으로는 일반적인 관념이나 진리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시인이 이렇게 특수한 소재가 아니라 소위 일반적인 소재를 설명하는 시의 보기로는, 그러니까 하나의 일반적인 관념이나 진리를 소재로 하는 시의 보기로는 김현승의 <견고한 고독>을 들 수 있다. 시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
단단히 마른
흰 얼굴
그늘에 빚지지 않고
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
또 하나의 손발
거대한 신들의 정의 앞엔
이 가는 창끝으로 거슬리고
생각하는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
이 마른 떡을 하룻 밤
제 살과 같이 떼어주며
결정된 빛의 눈물
그 이슬과 그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
피와 살
제 생명의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도
더 휘지 못한
마를대로 마른 목관악기의 가을
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
굳은 열매
쌉슬한 자양
에 스며드는
에 스며드는
제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
이 시의 소재는 ‘견고한 고독’이라는 관념이다. 다시 말하면 고독의 견고함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설명시의 형식에 따르면 ‘견고한 고독’이 주어가 된다. 이 주어에 대한 서술이 3연을 빼고 각 연을 형성한다. 이 시의 구성양식은 그렇기 때문에 각 연이 S+P.V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P.V을 형성하는 각 연의 중심 낱말을 ‘흰 얼굴’(1연), ‘단 하나의 손발’(2연), ‘피와 살’(4연), ‘굳은 열매’(5연), ‘제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6연)이다.
(나) 논증시
논증은 명증하지 않은 사실이나 원칙에 대하여 진실 여부를 논거하여 글쓴이가 증명하려는 기술 방식이다.
논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논리적 설득이다. 물론 감정에 바탕을 둔 설득도 중요하긴 하나 정적인 단계에 앞서 지적 또는 논리적 설득이 이루어져야 하며 감정의 차원은 표충에 드러나서는 안 된다.
논증의 또 하나의 특징은 그 목적이 대립과 갈등의 해결에 있다는 점이다. 기존에 있는 의견이나 견해와 글쓴이의
그것들과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 대립을 해소하는데 이 기술 방법이 차용되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논증은 아무 대상이나 그 과제가 될 수 없다.
쟁점이 되는 명제(proposition)가 전제되어야 한다.
논증에 있어서 명제는 단일 명제로서 일관성과 명료성 그리고 공정성을 가져야 한다. 막연해서는 안 되며 분명해야 한다.
논증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논거의 확실한 추론이 필요하다. 논거는 검증을 분명히 한 사실(fact)과 사계의 권위자의 의견이나 견해로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논증의 추론적 방법으로는 크게 귀납적 추리와 연역적 추리가 있으며, 삼단논법적인 논리와 변증법적 논리등을 차용하게 된다.
그러나 시의 경우에는 이러한 서술방법이 말 그대로 엄격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대체로 논리적 형식을 취하기만 하면 된다. 흔히 어떤 사실에 대해 자신의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방식으로는 인과율의 논리를 따른다.
그러나 시에서는 어디까지나 시적 인과율로 나타난다. 시적 인과율이란 일상적으로 수용되는 자연법칙을 낯설게 만들면서 시적 공간을 빚는다. 그렇긴 해도 형식의 측면에서는 원인-결과 혹은 결과-원인의 형식을 드러낸다.
이러한 시적 인과율에 따라 구성된 논증시의 보기로는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를 들 수 있다. 시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꽃닢이 피려고
간 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이 시에서 노래되는 것은 사실 명제이다. 그것은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고, 천둥이 쳤고, 무서리가 내리고 시인에겐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국화가 피었다는 명제이다. 국화가 피었다는 사실에 대한 시인의 판단이 시 속에서는 결과 -원인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다) 묘사시
묘사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사상(事象)을 언어로 그려 보이는 기술 양식이다. 대상을 개념화하기 위해 유형화 또는 일반화하지 않고 그 구체적인 모습이나 상황을 그려 보여주는 것이 묘사이다.
따라서, 묘사는 실용문보다는 문예문에서 많이 차용하여 쓰게 되는데 이 기술 방법은 설명적 묘사와 암시적 묘사가 있다. 전자는 기술적 묘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설명을 목적으로 할 때 사용되며, 후자는 사물의 직접적인 인상을 요구할 때 필요하게 된다.
다시 묘사는 주관적 묘사와 객관적 묘사로 그 방법을 나누어 설명되기도 하는데 전자는 관찰자의 심리적 반응등을 기술하는 심리 묘사등을 일컬으며, 후자는 대상의 객관적 상태를 서술하는 데 쓰이게 된다.
묘사를 할 때는 주의하여 지켜야 할 사항이 있다.
① 낯선 대상을 묘사할 때는 그 대상에 대한 정의 또는 설명이 우선하여야 한다.
② 대상을 묘사할 때는 읽는이의 이해를 위해 전체구조 및 세부 구조에 대한 묘사를 해야 한다.
③ 묘사는 시간 혹은 계절 순서에 의해 또는 공간 이동의 순서에 따라 차근 차근 묘사해야 한다.
④ 대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설명할 때 색깔, 크기, 무게, 거리 등 디테일한 언어로 묘사해야 한다.
⑤ 묘사 범위에서 벗어난 분야에 대해서는 언급해서는 안된다.
⑥ 회화의 제 기법에 유의하면 참고가 될 것이다.
예1) 묘사의 시
눈이 내린다.①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손이
흔들린다②
눈은 내린다③
눈은 내리기만 한다④
아이들은 손을 흔든다⑤
눈은 손 사이로 아이와 눈은
여전히 내리기만 한다.⑥
아이와 눈은
몸이 서로 흔들리는 것도 모르고 손을 흔든다⑦
흔들리는 것이 사랑인가⑧
兪漢根 <사랑 . 넷> 전문
유한근의 시 <사랑 . 넷>의 경우도 시각적 이미지를 동적(動的)으로 움직이는 역동적 이미지로 처리하므로써 그 시가 생동감(生動感)과 함께 또한 신선감(新鮮感)으로 충만되는 이미지화에 성공하고 있다. ‘흔들리’던 손이 ‘흔든다’로 바뀌고 있는 것이 그 하나의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시강의(詩講義)를 통해서 늘 입버릇처럼 학생들에게 ‘움직이는 시’를 쓰라고 권유하고 있다. 이 <사랑 . 넷>이야말로 움직이는 시의 한 전형을 이루는 작품이다.
흔히 시의 주제나 내용을 너무 거창하게 다루려다가 실패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처럼 가장 단순한 듯 사상(事象)을 부드럽게 처리하는 가운데 목적하고 있는 주제인 ‘사랑’에 접근했다는 것은 이 시인의 이미지 처리 기법의 두드러진 역량(力量)을 보여준다.
그런 뚯에서 좀더 자세히 이 작품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①을 비롯해서 ③,④,⑥은 눈이 내리는 시각적 장면묘사가 위주이고, ②를 비롯해서 ⑤와⑥은 손의 흔들림을 위주로 묘사하고 있다. 물론 ⑥의 경우는 앞에서 예시했듯이 공시적으로 양쪽이 상호간에 협동작용을 하고 있다. 그리고⑦에 이르면 결론이 성립된다. 즉 ‘아이와 눈은 /몸이 서로 흔들리는 것도 모르고 손을 흔든다’고 하는 현상(現象)의 미학(美學)이다.
(라) 서사시
서사는 사건이나 상황을 서술하는 기술 방식이다. 이 양식은 소설이나 수필 등, 산문 문장으로 쓰여지는 문학적인 글에서 흔히 사용하게 되는 방식이다.
서사가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세 가지의 기본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움직임(acting, movement), 시간(time), 의미(意味 meaaning) 등이다.
서사는 ‘무엇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해답을 이야기로, ‘어떻게, 왜 발생했는가’의 질문에 대한 해명을 구성으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사는 움직이는 대상 자체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움직이는 대상의 본질적인 의미 파악을 위한 이야기와 구성과 결코 무관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서사는 인물이 벌이는 사건 기술에 있어 필수적인 이야기의 제시다.
사건이나 상황의 진행은 한 시점에서 다른 시점에까지 이르게 되는 시간의 흐름이다. 그러나 소설적인 시간은 반드시 자연적인 순차에 의해서 배열되지는 않는다. 조선조 소설의 경우에는 시간적인 순차에 의해 사건이 엮어져 나가지만 현대소설에서는 그것이 무시된다. 이는 구성의 효과에 따라 구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의 경과 없는 사건의 흐름은 가능해지지 않는다.
서사의 사건은 의미와 긴밀한 연관 속에서 구조된다. 의미를 배제한 사건은 처음부터 가능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의 사건은 전체가 의미의 유기적 구조에 따라 자리를 잡게 되며 일괄성과 통일성, 그리고 종합성을 지녀야 한다. 여기에서의 서사시, 이야기가 있는 시의 대표적인 시는 서정주의 연작시 <질마재 신화>이다.
극적 서정시보기
어떤 싸움의 기록 / 이성복
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하며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을
휘들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또 눈알을 부라리며 이 씨발놈아 비겁한 놈아 하며
아버지의 팔을 꺾었고 아버지는 겨우 그의 모가지를
문 밖으로 밀쳐냈다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신발 신은 채
마루로 다시 기어올라 술병을 치켜들고 아버지를 내리
찍으려 할 때 어머니와 큰누나 작은 누나의 비명,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땀 냄새 술 냄새를 맡으며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테야
법도 모르는 놈 나는 개처럼 울부짖었다 죽여 버릴테야
별은 안보이고 갸웃이 열린 눈틈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라일락꽃처럼 반짝였다 나는 또 한 번 소리질렀다
이성복, 「어떤 싸움의 기록」부분
<감상>
이 시에서 전개되는 것은 어떤 싸움이고
그것은 술에 취한그가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으로 그를 내리치며 시작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대해 시인,
곧 주체는 거리를 유지하며 비판하거나 정서를 매개로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보여 줄 뿐이다. 이렇게 시인이 극적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 주기만 한다는 점에서 이 시는 극적양식을 띤디
중요한 것은 대체로 드라마가 3인칭 시점임에 비해 이 시의 극적
장면은 1인칭 시점으로 제시된다는 점. 따라서 시 속에 나오는
'나'는 슈타이거가 말하는 주체가 아니라 극중 인물 가운데 하나이며
주체, 곧 시인은 이 싸움을 보고하고 기록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에는 극적상황에 참여하는 '나'와
이 상황을 보고하는 '나'가 있다. 극적상황이 객체라면 이 상황을 보여
주는 시인(극작가)은 주체이고 이 시의 경우 주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른바 절대 정신으로 존재한다. 그는 존재하지만 그는 극의 논리를
따라가고 상황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말하지 않고 그저 보여 줄뿐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시인이 보여주는 극적상황이고 시인은 보이지 않는다.
이 시가 보여 주는 것은 술 취한 그와 아버지의 싸움이고 시인은 싸우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언급도 비판도 없다. 싸움이 환기하는 것은 격정이고
우리는 이 싸움의 미래, 곧 어떻게 결말이 날 것인가에 흥미가 있다.
과연 싸움은 어떻게 끝나는가? 화가 난 '나'는 ' 이 동네는 법도 없는
동네냐'고 소리치며 죄짓기 싫어 팔을 가볍게 떨고 문틈으로는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아버지는 '문 열어 두라'고 말하며 끝난다.
알기 쉬운 현대시 작법-자유시에도 운이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형시뿐만 아니라 자유시의 경우도 각운rhyme에 의해 시의 음악성이 강조된다.
각운은 흔히 낱말의 동일한 위치에서 동일한 소리가 반복되는 현상,
한국어의 낱말은 일반적으로 초성, 중성, 종성으로 되어 있고,
따라서 각운은 초성이 반복되면 두운alliteration, 중성이 반복되면 요운internal rhyme,
종성이 반복되면 말운rhyme이 된다.
각운이란 말은 운율을 맞춘다는 의미와 머리, 허리, 다리에서 다리가 되는 운,
곧 말운이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각운은 광의로 두운, 요운, 말운을 포함하고 협의로는 말운에 해당한다.
물론 각운은 낱말과 낱말 사이에도 적용되고 시행과 시행 사이에도 적용된다.
다음은 낱말과 시행 양자에 걸쳐 두운이 나타나는 경우.
말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치며
마치 천리 만리나 가고도 싶은
맘이라고나 하려볼까
- 김소월 <천리만리>
먼저 낱말의 경우 1행에는 "말리지 / 못할 / 만치 / 몸부림치며"에서 알 수 있듯이
네 낱말의 머리에 "ㅁ"이 반복되는 두운 현상이 나타난다.
"만치"를 독립된 낱말로 읽지 않는 경우 1행은 "못할 만치 / 몸부림치며"가 되고 이 때는 "못할 / 몸부림"의 두운 현상 "-만치 / -림치며"의 요운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1행의 첫소리, 2행의 첫소리, 3행의 첫소리는 모두 ㅁ으로 시작되는 두운 효과를 준다.
문제는 말운이고, 정형시의 경우도 우리시에는 말운 현상은 없고 운 대신 형태소나 낱말이 반복된다.
윤동주의 대표작 <서시>가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것은 무슨 사상의 깊이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음악성 때문이고,
그것도 두운과 요운 현상 때문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중략)......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먼저 "하늘을 우러러"가 문제이다. "하늘을 우러러"란 무슨 뜻인가?
정확하게 표기하면 "하늘을 쳐다보며"이거나 "하늘을 공경하며"이다.
그러나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라고 표현한다.
"쳐다보며". "공경하며"가 아니라 "우러러"라고 표기한 것은 무엇보다 요운의 효과 때문이다.
"하늘을 / 우러러"의 경우 "-ㄹ-/ -ㄹ-"이 반복되므로써 요운 현상이 나타나고.
따라서 "하늘을 쳐다보며"나 "하늘을 공경하며"가 단순한 의미 전달을 목표로 한다면
이런 표기는 미적 효과를 목표로 하고 시가 예술일 수 있는 것은 이런 미적 책략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한 점"도 문제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라고 말하지는 않고 "
결코 부끄럼이 없기를" 혹은 "죽어도 부끄러움이 없기를" 이라고 말한다.
혹시 일부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하는 식으로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서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말에는 시간을 알리는 경우나 점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아니면 "한 점"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그것도 한 점 부끄러움이라니?
그렇다면 두 점 부끄러움도 있고 세 점 부끄러움도 있단 말인가?
이런 표기는 앞에 나온 "하늘"과 관계되는 바.
두 낱말 모두 첫 소리가 ㅎ으로 되어 있고 따라서 두운 효과가 있다.
요운 현상은 2행 "부끄럼이 없기를"에도 나타난다.
"-ㄲ-/-ㄱ-"의 반복이 그렇다. ㄲ과 ㄱ은 다르지만 이 시행이 경우 비슷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마지막 행이 아름다운 것 역시 "-밤-/-별-/-바람-"의 요운 현상 때문이다.
결국 윤동주의 <서시>는 사상이 아니라 소리 효과, 음악성,
그것도 섬세한 운의 효과가 감동을 주고 그의 시가 명시인 것은 이런 예술성 때문이다.
우리시에는 정형시든 자유시든 말운 현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각 시행의 끝이 비슷한 혹은 같은 소리로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말운은 아니지만 각 시행의 끝에 비슷한 혹은 같은 소리가 음으로써 미적 효과를 낳는 경우는 많다.
엄격하게 정의하면 앞에서도 말했지만 각운rhyme은 각 시행의 끝소리가 같은 소리로 조직되는 것이고,
따라서 협의로는 말운을 뜻한다.
그러므로 두운 역시 각 시행의 첫 소리가 같은 소리로 조직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위에 인용한 두 편의 시 가운데 김소월의 시가 두운 현상에 적합하고
윤동주의 경우는 변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요운 현상 역시 각 시행 중간에 같은 소리가 나오는 경우이고
한 시행 속에 나오는 경우는 요운의 변형,
혹은 자음조화consonance나 모음조화assonance로 읽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말하자면 "팔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치며"는 자음조화,
"마치 천리 만리나"는 모음조화로 읽을 수 있다.
우리시의 경우 각 시행이 끝이 같은 소리가 오는 이른바 말운 현상은 없지만 비슷한 소리(?)가 오는 경우는 있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뻔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듯 눈엔 듯 또 핏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말운의 정확한 보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시의 미적 효과는 각 시행의 끝에 비슷한 소리가 오기 때문이다.
1행, 3행, 7행은 "끝없는 / 뻔질한 / 끝없는"의 ㄴ소리가 반복되고
2행, 4행, 8행은 "-네 / -네"의 같은 모음이 반복되고
5행, 6행,은 "듯 / 곳"의 ㅅ소리가 반복된다.
그러나 이런 소리의 반복은 말운 현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시의 경우 각 소리들은 각 낱말의 종성에 위치하는 소리가 아니라
낱말이거나 어미 활용에 속하고(끝없는, 흐르네,인 듯)
굳이 종성에 위치하는 소리를 찾자면 "곳"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같은 ㅅ소리를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이 소리는 운이 아니라
"곳"이라는 낱말의 반복이기 때문에 말운이 아니다.
여컨대 우리시의 경우 말운이 아니라 같은 어미나 낱말이 반복되고 이런 반복이 미적 효과를 준다.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 (2) - 이승훈 | ..... 문학문예 강좌
2 리듬은 숨결이다
시는 일정한 거리에 오면 행갈이를 하고 신문은 행갈이 없이 계속 진행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다음은 행갈이의 보기.
손발이 시린 날은
일기를 쓴다
무릎까지 시려오면
편지를 쓴다
부치지 못할 기인 사연을
이 시를 산문으로 표기하면 이렇다. "손발이 시린 날은 일기를 쓴다. 그리고 무릎까지 시려오면 부치지 못할 기인 편지를 쓴다." 그러나 시인은 이렇게 표기하지 않고 왜 행을 갈아가며 표기했을까?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리듬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리듬이 함축하는 의미 때문이다. " 손발이 시린 날은 / 일기를 쓴다"는 시행을 읽는 경우 무엇이 다른가? 전자의 경우 우리는 중간에서 쉬지 않고 비슷한 속도로 리듬 없이 계속 읽어 나간다. 예컨데 "손발이 / 시린 날은 / 일기를 / 쓴다"처럼 중간에서 쉬고 동시에 이런 휴지에 의해 우리는 "손발이"와 일기를"을 강조하게 된다. 이 두 부분, 특히 "손"과 "일"에 강세가 놓인다.
한편 이런 읽기는 산문과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산문의 경우 의미는 "손발이 시린 날", 그러니까 추운 날은 일기을 쓴다는 사실, 곧 하나의 정보뿐이지만 시의 경우 "손발이 시린 날"은 독립적인 의미를 띠면서 다음 행과 연결된다. 따라서 이 시행은 단순히 부사구의 기능, 말하자면 "일기를 쓴다"는 중심 문장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2연의 "무릎까지 시려 오면"과 대립되고, 따라서 추위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시린 손발과 일기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렇지 않은가? 손발이 시린 시간에 어떻게 일기를 쓴다는 말인가? 물론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손발이 시리면 따뜻하게 녹여야지 무슨 일기인가? 그러므로 이런 표현은 아이러니이고 이런 표현이 시적 효과를 준다.
요컨대 행갈이 때문에 "시린 손발"은 추위에 대한 감각, 삶의 추위, 가난, 고독을 의미하고 "일기" 역시 자기 성찰, 자기 고백, 지기와의 만남 같은 여러 의미를 함축한다. 이런 의미는 가슴이 시린 밤이면 시를 찾아 나서고(3연), 등만 보이는 사람을 보이는 사람을 부르고(4연) 마침내 자신을 유월에도 녹지 않는 서리꽃으로 인식하는(5연) 전체 시와 관계된다.
중요한 것은 리듬 때문에 행갈이를 하고 이런 행갈이가 독특한 시적 의미를 함축한다는 것.
그렇다면 리듬rhythm이란 무엇인가? 리듬이란 흔히 율동 혹은 운율로 번역한다. 그러나 좀더 세분하면 첫째로 율동이라는 일반적 개념, 둘째로 운율이라는 문학적 개념, 셋째로 음의 강약을 나타내는 박자라는 음악적 개념, 나는 다른 책에서 리듬을 광의 율동 개념과 협의으의 운율 개념으로 나누어 살핀 바 있다. 율동이란 주기적인 반복 운동이고 운율이란 시의 경우 소리에 의한 주기적 반복 운동을 뜻한다.
따라서 광의의 개념인 율동은 시를 포함하여 일제의 우주현상, 자연현상, 생명현상에 두루 나타난다. 율동은 좀더 부연하면 상이한 요소들이 재현하는 주기적 반복 현상을 말한다. 우주의 경우 일출 / 일몰의 반복, 자연의 경우 바다는 썰물 / 밀물의 반복, 생명의 경우 인간의 호흡이 그렇다. 내쉼/ 들이쉼의 반복이 삶이고 이런 반복이 머추면 인간은 죽는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숨쉬기이고 숨쉬기는 호흡이 암시하듯이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일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호흡은 숨결을 거느리고 그것은 숨쉬는, 호흡하는 속도나 높낮이를 뜻한다. 요컨대 호흡과 숨결은 생명의 본질이고 시, 음악, 회화의 리듬도 비스한 의미르 띤다. 시의 고향이 리듬이고 리듬이 숨결이라는 것은 이런 사정을 전제로 한다. (이승훈, 시작법, 탑 출판사, 1988. 111~112면 참고)
시의 경우 리듬은 크게 정형시와 자유시로 나누어 살필 필요가 있다. 정형시는 말 그대로 리듬이 일정한 형식을 소유하고, 자유시는 그런 형식에서 자유롭다. 정형시의 리듬은 율격meter과 각운rhyme이 대표적이고 자우시의 경우도 작운은 존재하고우리 시의 울격은 흔히 음수율, 음보율,로 나타난다 (좀 더 자세한 것은 이승훈, 위의 책.114~123면 참조 바람)
자유시의 리듬은 정형시의 울격이나 일상어의 억양를 변형시킨 경우와 리드의 단위로 이런 소리 요소를 포기하고 형태소, 낱말, 어귀, 이미지, 어절, 통사 및 그 형식의 반복에 의해 성취되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리듬의 단위를 소리에 두는 경우와 소리가 아닌 문법적 요소에 두는 경우이다. 전자를 전통적 리듬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현대적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에는 김소월, 박목월, 등이 후자에는 이상, 김수영 등이 포함되고, 나는 자유시의 리듬이 보여주는 이런 양상을 다른 책에서 살핀 바가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다른 문제들을 살피기로 한다 (이승훈 , 같은 책,128~146면)
"문학과 비평사/ 시작법 문비신서 23"
이승훈의 알기쉬운 현대시작법. 저자는 춘천출생으로 196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시집 <비누>외 <시론>등 다수의 작품이 있으며, 현대문학상,한국시협상등을 수상했다. 시인마다 시를 쓰는 방법이 다르듯 시쓰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시인은 시를 쓸때 자신이 어떤 방법으로 시를 쓰는지를 생각하면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룰을 알아야하고, 그 룰을 지키면서 시를 쓰는 것이라고 하는 '이승훈의 알기쉬운 현대시작법'은 시쓰기의 룰, 방법을 알기 쉽게 설명하며 '어떻게 시작할까?' '말하지 말고 보여 주라' '시인은 감각이 예민해야 한다' '비유적으로 말하기'등을 수록했다.
펌/ <이승훈의 알기쉬운 현대시작법> 중에서
첫댓글 벌써 옮기셨네요. 이승훈의 알기쉬운 현대시작법... 고맙습니다.
두고 두고 음미하며 보겠어요. 좋은 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