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에세이】
고향 선배님과 나눈 ‘여민동락(與民同樂)’과 ‘결기애민(潔己愛民)’
― 시대가 변했어도 옛 선현의 가르침과 정신은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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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에세이】
고향 선배님과 나눈 ‘여민동락(與民同樂)’과 ‘결기애민(潔己愛民)’
― 시대가 변했어도 옛 선현의 가르침과 정신은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 필자의 말
고향 선배님인 윤병전(교육자, 청양 장평초등학교 23회) 선생님이 카톡으로 감명 깊은 글을 보내왔다. ‘여민동락(與民同樂)’ 제목의 퇴계 선생 이야기이다.
▲ 고향 선배님 카톡 글 일부 캡처 - 윤병전 선생님은 문중에서는 ‘아저씨 항렬’이지만 공적인 글에서는 ‘선배님’, 또는 ‘선생님’이라 쓴다.
이런 글을 내게 보내주신 뜻을 헤아려보았다. 물론 선배님의 새로운 창작물은 아니다. 한평생 교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교훈이 되거나 귀감이 될만한 좋은 글이 있으면 인용하기도 하는 ‘교육자료’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담겨 있는 뜻이 좋아 곧바로 감사의 답장을 드렸다. 이와 함께 문득 생각나는 글귀가 있어 경우신문(警友新聞)에 쓴 필자의 에세이도 덧붙였다.
▲ 필자의 카톡 답글 캡처
마침 내일(10.21)은 『경찰의 날』이다. 비단 현직 경찰관뿐만 아니라 나랏일을 하는 모든 공직자와 나누고 싶은 글이라 소개한다. 시대가 변했어도 옛 선현의 지혜와 가르침은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
2024.10.20.
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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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선배님이 보내준 글
여민동락(與民同樂)
퇴계가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양성한다는 소식이 널리 퍼지자, 일찍이 영의정의 벼슬을 지낸 바 있는 쌍취헌 권철이 퇴계를 만나고자 도산서당을 찾아갔다.
권철은 그 자신이 영의정의 벼슬까지 지낸 사람인 데다가, 그는 후일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한 만고 권율 장군의 아버님이기도 하다. 권율 장군은 선조 때의 명재상이었던 이항복의 장인이기도 했다.
서울서 예안까지는 5백 50리의 머나먼 길이다. 영의정까지 지낸 사람이 머나먼 길에 일개 사숙의 훈장을 몸소 찾아온다는 것은, 그 당시의 관습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권철은 퇴계를 친히 방문하기로 했던 것.
도산서당에 도착하자 퇴계는 동구 밖까지 예의를 갖추어 영접하였다. 그리하여 두 學者는 기쁜 마음으로 학문을 토론하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식사 때가 큰 문제였다. 끼니때가 되자 저녁상이 나왔는데, 밥은 보리밥에 반찬은 콩나물국과 가지잎 무친 것과 산채뿐으로 고기붙이라고는 북어 무친 것 하나가 있을 뿐이 아닌가?
퇴계는 평소에도 제자들과 똑같이 초식 생활만 해 왔었는데, 이날은 귀한 손님이 오셨기 때문에 구하기 어려운 북어를 구해다가 무쳐 올렸던 것이다.
평소에 산해진미만 먹어오던 권철 대감에게는 보리밥과 소찬이 입에 맞을 리가 없었다. 그는 그 밥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몇 숟갈 뜨는 척하다가 상을 물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퇴계는 다음 날 아침에도 그와 똑같은 음식을 내놓았다. 권철 대감은 이날 아침에도 그 밥을 먹어낼 수가 없어서, 저녁과 마찬가지로 몇 숟갈 떠먹고 나서 상을 물려버렸다.
주인이 퇴계가 아니라면 투정이라도 했겠지만, 상대가 워낙 스승처럼 존경해 오는 사람이고 보니, 음식이 아무리 마땅치 않아도 감히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사태가 그렇게 되고 보니 권철 대감은 도산서당에 며칠 더 묵어가고 싶어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더 묵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다음 날은 예정을 앞당겨 부랴부랴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권철 대감은 작별에 앞서 퇴계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이렇게 만나고 떠나게 되니 매우 반갑소이다. 우리가 만났던 기념으로 좋은 말을 한 말씀만 남겨 주시지요.”
“촌부가 대감 전에 무슨 여쭐 말씀이 있겠나이까, 그러나 대감께서 모처럼 말씀하시니 제가 대감에게서 느낀 점을 한 말씀만 여쭙겠습니다.”
퇴계는 옷깃을 바로잡은 뒤에 다시 이렇게 말했다.
“대감께서 원로에 누지를 찾아오셨는데 제가 융숭한 식사대접을 못해 드려서 매우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제가 대감께 올린 식사는 일반 백성들이 먹는 식사에 비기면 더할 나위 없는 성찬이었습니다.
백성들이 먹는 음식은 깡 보리밥에 된장 하나가 고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감께서는 그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제대로 잡수시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저는 이 나라의 장래가 은근히 걱정되옵니다.
무릇 정치의 요체는 여민동락(與民同樂)에 있사온데 관과 민의 생활이 그처럼 동떨어져 있으면 어느 백성이 관의 정치를 믿고 따르겠습니까? 대감께서는 그 점에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랄 뿐이옵니다.”
그 말은 폐부를 찌르는 듯한 충언이었다. 퇴계가 아니고서는 영의정에게 감히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직간이었다.
권철 대감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수그렸다.
“참으로 선생이 아니고는 누구에게서도 들어볼 수 없는 충고이십니다. 나는 이번 행차에서 깨달은 바가 많아, 집에 돌아가거든 선생 말씀을 잊지 않고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능지성인이라고나 할까? 권철 대감은 크게 깨달은 바 있어 퇴계의 충고를 거듭 고마워하였다. 그리고 올라오자 가족들에게 퇴계의 말을 자상하게 전하는 동시에 그날부터 퇴계를 본받아 일상생활을 지극히 검소하게 해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의 정치권에는 퇴계 선생처럼 직언하는 분도, 권 정승처럼 직언을 받아들일 줄 아는 분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시정잡배들의 시궁창 속 싸움으로만 보일 뿐이니…
나만 느끼는 불안함인가? 아니면 나라 복이 여기까지인가? 이 아침 옛 선현의 아름다운 행적이 더욱 그리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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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선배님에게 보내드린 글
- 경우신문 윤승원 칼럼
윤승원 칼럼
대전경찰 공직철학 ‘결기애민(潔己愛民)’의 전통
― 대전경찰청 벽에 걸린 ‘액자 글씨’에 유독 시선이 꽂힌 이유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경우회 홍보지도위원
최근에 대전경찰청장실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150만 전 현직 경찰의 법정 단체인 경우회(警友會)에서 마련한 행사에 초대받았다.
이 행사에는 경우회 중앙회장, 대전경우회장, 대전경찰청장, 모범 경우(警友) 가족 등이 자리를 함께한 가운데 경찰관의 삶의 애환에 관해 따뜻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청장실에는 필자의 눈길을 유독 사로잡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결기애민(潔己愛民)’이었다. 일반 사적(私的) 공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의미 있는 글귀이고, 글씨 역시 힘이 느껴지는 명필이었다.
▲ 대전경찰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공직 철학, 『결기애민(潔己愛民)』 - 대전경찰청장실 벽에 걸린 붓글씨 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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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부터 붓과 벼루를 가까이하는 집안에서 성장했다. 어디서든지 유익한 문장이나 빼어난 글씨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이 특별한 문구의 액자 글씨를 보자마자 필자는 사진부터 먼저 찍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글씨라 하더라도 초대받은 정중한 자리에서 폰카를 꺼내어 벽에 걸린 액자 글씨를 찍는다는 것은 예(禮)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 눈으로만 감상하고 나름대로 뜻을 해석해 보는 것으로 그쳤다.
그런데 며칠 후, 경우회 중앙회장과 동행했던 안오모 경우신문 편집국장이 환담 장면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 주었다. 아! 사진을 보는 순간 감탄했다. 필자가 사진으로 찍어 두고 싶었던 『결기애민(潔己愛民)』.
공교롭게도 바로 그 액자 글씨가 아주 잘 드러난 환담 장면 사진이 아닌가. 경우신문 편집국장과 ‘무언의 교감’이랄까, 텔레파시가 이심전심으로 통한 걸까? 환담 장면에 『潔己愛民』이란 액자 글씨가 들어가니 ‘사진의 격조’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 대전경찰청장실, 『모범 경우(警友) 가족』과 환담(2022.10.14.) - 청장실 벽에 걸린 붓글씨 액자 《潔己愛民》가 유독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결기(潔己)’라는 글자에서 ‘청백리’ 이미지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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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구는 사가(私家) 보다 공직자들이 좌우명처럼 바라볼 수 있는 관공서에 걸어두어야 어울리는 문구다. 이 액자를 보면서 ‘결기(潔己)’와 ‘애민(愛民)’의 구체적인 실천 사례와 공직 생활 덕목 몇 가지가 떠올랐다.
■ 첫째는 대전경찰의 전통을 잇는 이른바 ‘황 판사’ 론이다.
황 판사라는 별명을 가진 황인수 경정은 1982년 청백리상 수상자로서 대전경찰서(현 중부경찰서)에서 근무했다. ‘판사’라는 별칭은 ‘올곧은 성품’과 ‘공정(公正)’의 상징적 의미로 붙여준 것이다.
1970년대 필자가 충남 도경에 근무할 때, 그는 대전경찰서 보안과장(현재 생활안전과장)이었다. 그의 부인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행상을 하다가 노점 단속반에 걸렸을 때도 예외 없이 즉결재판을 받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자신이 얼마든지 봐줄 수 있는 즉심 주무 책임자였지만 가차 없이 즉결심판에 넘겼다.
불우 청소년이나 어려운 주민들에게는 남모르는 선행을 베풀었다. 자신은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면서도 밀수품 단속에 공을 세워 받은 보상금을 보육원에 보내는가 하면, 불우 청소년을 위해서는 야간학교를 열기도 했다. ‘지기추상 대인춘풍(持己秋霜待人春風)’의 본을 보여준 경찰관이었다.
■ 둘째는 윤소식 대전경찰청장의 대전일보 기고문(2022.10.14.) 「청렴, 시민에게 신뢰받는 경찰의 첫걸음」 중 한 대목이 떠올랐다.
요즘 경찰은 ‘사적접촉 통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불법업소 종사자와 접촉하지 않는다. 수사 사건 당사자나 변호인 등 사건 관계인과도 사적으로 접촉할 수 없다.
경찰업무와 연관성이 높은 업체에 속한 퇴직 경찰관을 사적으로 만날 경우에도 사전 신고해야 한다. 외부 청탁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제도다.
더 엄격한 것은 경찰관서 근무 직원 간에도 ‘사건 문의 금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내부 직원이 담당 수사관에게 사건을 문의하는 행위는 그 의도와 관계없이 사건 처리 공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제도다.
■ 셋째, 필자가 ‘애민(愛民)’ 액자를 보면서 떠오른 것은 다산 정약용이 강조한 ‘애민 육조(愛民六條) 정신’이다.
○ 제1조 양로(養老): 어른을 공경하다 ○ 제2조 자유(慈幼): 어린아이들을 사랑하다 ○ 제3조 진궁(振窮):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다 ○ 제4조 애상(哀喪): 세상 떠난 자를 슬퍼하다 ○ 제5조 관질(寬疾): 아픈 자들을 너그럽게 보살펴주다 ○ 제6조 구재(救災): 재난을 돕다.
일선 경찰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대목은 하나도 없다. 이와 함께 따라다니는 공직자 덕목이 ‘결기(潔己)’다. ‘결기 정신’을 가장 문학적으로 표현한 시가 있다.
‘독서논도불구전(讀書論道不求錢) / 결기애민불요전(潔己愛民不要錢), 글 읽고 도를 논하면서 사니, 돈 구할 일 없고 / 청렴결백해 백성 사랑하며 사니, 돈이 필요 없네’ 겸재 정선의 시 ‘청백리’ 한 구절로 알려져 있다.
※ 관직 생활을 한 겸재 정선(1676~1759)에 이어, 다산 정약용(1762~1836)도 『목민심서』에서 「결기애민불요전(潔己愛民不要錢), 제인이물불여전(濟人利物不餘錢)」이란 말을 남겼다. 「몸을 깨끗이 하고 국민을 사랑하는데 돈이 필요하지 않고, 사람을 구제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 돈이 남을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 등장하는 ‘결기(潔己)’와 ‘애민(愛民)’이 바로 대전경찰청 벽에 걸려 있는 ‘붓글씨 액자’의 뜻과 일치한다.
공직 수행하는 경찰관의 가슴마다 아름답게 수놓아지길 바라는 문학적 표현이다. 대전경찰의 자긍심과 신뢰받을 만한 전통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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