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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박 완 서
1
달래마을 사람들이야말로 양민이었다.
중농 정도의 자작농들이라 하늘의 뜻에 순응해서 육신 아끼지 않고 땀 흘려 땅 파면 배곯는 일 없었고, 사람이 인두겁을 썼다면 꼭 지켜야 할 몇 가지 법도만은 누구나, 누가 보건 말건 잘 지켰기 때문에 서로 화목했다.
삼태기에 안기듯이 순한 산에 안긴 이 오붓하고 점잖은 마을에도 어느 날 동란의 포성이 들려왔다.
그러나 훗날 그 일대가 격전지로 기록된 깐으론 직접적인 피해를 이 마을은 거의 안 입었다.
마을 사람들은 한 번도 실전을 겪지 못했으며 폭격 한 번 안 당했다. 눈 깜박할 새에 집이 잿더미로 화하고, 금세 뛰놀던 자식의 몸뚱이가 주워모을 수도 없이 산산이 해체되는 얘기를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게 다 해마다 시월 초하룻날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다해 고사를 지내는 달래봉 산제당에 모신 산신령이 영검한 때문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밖의 인명의 피해는 전쟁을 겪고 폭격을 당한 인근 마을에 못지않았다. 몇 달을 두고 전선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대로 세상도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었으니 그때마다 부역했다 고발하고 반동했다 고발해서 생사람 목숨을 빼앗는 일을 마을 사람들은 미친 듯이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청년들은 국군으로 지원하기도 했고, 인민군으로 끌려가기도 했고, 또 남쪽으로 피난 간 사람, 북쪽으로 끌려간 사람도 생겨서 마을 사람들은 줄 대로 줄었다. 어떻게 줄었거나 집집마다 준 식구는 남자 식구들이어서 마을엔 여자들만 남았다. 과부도 있고 생과부도 있고 처녀도 있고 노파도 있었다. 남자라곤 젖먹이 빼곤 아녀석조차 없었다. 걸을 수만 있는 아녀석이면 피난 가는 아버지나 삼촌, 하다못해 구촌 십촌뻘 되는 친척편에라도 딸려 보냈기 때문이다
남자는 대를 이어야 하는 고로 여자보다 귀한 몸이고, 귀한 몸을 보다 안전하게 하는 게 여자들의 도리였다.
세상이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통에 사람이 지킬 도리 같은 건 뒤죽박죽이 되기도 하고 거꾸로 서기도 하고 짓밟히기도 했지만, 여자 남자 사이에 지킬 도리만은 오히려 더 분명하고 당당해져 있었던 것이다.
마을에 여자들만 남게 되자 서로 모함해서 생사람 잡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모함하고 싶고 죽이고 싶은 충동은 마을 어귀에 있는 분교 건물서부터 왔는데, 그곳에 국군이 머무르느냐 인민군이 머무르느냐에 따라서 미운 사람 빨갱이로 고발하고 싶기도 했다가 반동으로 쳐죽이고 싶기도 했다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거기 누가 머물든 관심이 없었다. 누가 머물든 이제 폐촌(廢村)처럼 퇴락하고 인기척이 숨을 죽인 마을을 해코지하지도 않았지만, 이롭게 해줄 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문제는 오로지 어떡하면 세상이 안정되고 남자들이 돌아올 때까지 연명할 수 있느냐였다.
봄은 먼데 집집마다 식량은 바닥이 나고 있었고 하소할 데라곤 없었다. 분교가 비지 않고 주인이 바뀌는 것과는 상관없이 마을의 행정은 오랫동안 공백상태를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에 바뀐 분교의 주인은 국군도 인민군도 아닌 양코배기란 소문이 돌았다.
곧 양코배기들이 껌을 쩌덕쩌덕 씹으며 삼삼오오 떼를 지어 마을의 집 집을 기웃대며 다니기 시작했다.
“색시 해브 예스? 색시 해브 예스?”
여자들만 눈에 띄면 이상한 몸짓을 해 보이며 이런 소리를 했다. 여자들은 질겁을 해서 집 안 깊숙이 도망쳤다. 그리고 몸을 떨었다. 양코배기들의 피부에 개기름이 되어 흐르던 노골적인 육감이 여자들을 깊이 떨게 했다.
양코배기들은 아마 직업적인 양색시를 찾는 눈치였지만, 이 마을에 직업적인 양색시가 있을 리 없었다.
마을은 삽시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여자들은 도저히 혼자서는 견딜 수 없어 한 사람 두 사람 마을에서 제일 큰 집으로 모여들었다.
그 집은 마을에서 제일 클 뿐 아니라 제일 웃어른 뻘 되는 노파가 살고 있는 집이기도 했다. 비록 세상을 잘못 만나 서로 모함하고 죽이고 했지만 이 마을은 보통 시골 마을이 다 그렇듯이 씨족마을이었던 것이다.
밤이 되자 양코배기들의 색시 해브 예스? 색시 해브 예스? 는 발정한 맹수의 울부짖음처럼 절박하고 위혐적인 게 되었다.
노파를 둘러싼 새댁과 처녀들은 오들오들 떨면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다음날도 분교의 양코배기들은 딴 곳으로 옮겨갈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밤이 되었다. 색시 해브 예스? 색시 해브 예스? 양코배기들이 절박하게 외치며 집집의 문을 두드렸다.
“암만 해도 오늘밤엔 뭔 일 당할까보다.”
노파가 메마른 소리로 말했다.
“뭔 일을 당하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말겠어요.”
건넛마을에서 시집온 지 며칠 안 돼 난리를 당하고, 난리난 지 며칠 안 돼 남편을 의용군이란 이름으로 빼앗긴 새댁이 앙상한 어깨를 추스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죽겠어요. 대들보에 목이라도 매서…….”
“나도 우물에 빠져서라도…….”
너도 나도 죽겠다고 나섰다. 죽겠다고 나설 기회를 놓치면 행여 양코배기에게 마음이 있는 화냥년이라도 될까봐 기를 쓰고 죽기를 자청했다.
노파가 희미하게 웃었다.
“죽긴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것들이…….”
할로 색시 해브 예스? 색시 해브 예스? 하는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 왔다.
“암만 해도 내가 코배기들의 색시 노릇을 해야 할까보다.”
노파가 메마른 소리로 느릿느릿 말했다.
“할머니가요?”
목숨을 걸고 정절을 지킬 것을 다짐하느라 석상처럼 엄숙해져 있던 새댁과 처녀들이 일시에 허리를 비틀면서 깔깔댔다.
“옥희야, 네 화장품통 좀 가져온.”
노파는 따라 웃지 않고 엄격한 소리로 말했다. 옥희는 노파의 손녀로 혼인날을 받아놓고 난리를 당해 약혼자는 지금 군대에 가 있었다.
“할머니도 참 망령이셔.”
옥희가 민망한지 할머니의 허리를 꾹 찌르며 눈을 흘겼다.
“나 어느새 망령나지 않았다. 어서 화장품통 가져오라니까.”
노파의 말에 딴사람 같은 위엄이 담겼다.
마을이 평화로울 때 마을의 제일 큰 축제날은 산신제 지내는 날이었다.
남자들은 돼지를 잡고 여자들은 시루떡을 쪘다. 여자들의 일의 총지휘는 늘 이 제일 나이 많은 노파가 맡았더랬었다.
노파는 다달이 있는 부정중이거나, 간밤에 서방을 가까이한 젊은 계집들을 족집게처럼 집어내어 멀리 물리치고 그 일을 했었다.
그때 노파는 앞으로 일 년간의 마을의 길흉화복이 오직 자기 한 몸에 달렸다는 듯이 몸 전체로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을 풍겼더랬었다.
지금 노파를 둘러싼 아낙네들은 그때와 똑같은 위엄으로 당돌하게 빛나는 노파를 똑똑히 본다. 그리고 숙연해진다.
그래도 그중 나이 지긋한 부인이 한마디 한다.
“아주머님, 아주머님 이 젊은것들 몸 더럽히지 않게 하려고 그러시는 건 알겠는데요. 아주머님도 생각해보세요. 연세가 있잖아요, 연세. 아 양코배기들은 뭐 눈이 멀었나요. 화장품으로 눈가림도 어느 정도조…….”
말끝을 못 맺고 킥 웃으니까 좌중의 여기저기서 숨죽인 웃음 소리가 들렸다.
“잔소리 말고 화장품통 가져오라니까, 어서!”
노파는 메마른 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좌중을 압도하는 위엄을 갖추고.
옥희가 마침내 화장품통을 가져왔고 노파를 둘러싼 여자들의 얼굴이 차츰 호기심으로 빛났다.
혼수로 장만해놓은 화장품은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구색이 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내 얼굴에 화장을 시켜다오.”
얼굴도 반반하고 사는 형편도 괜찮아서 난리 전엔 이 마을에서 제일 멋을 부릴 줄 알았던 새댁한테 노파가 화장품통을 맡겼다.
“할머님도 참 망령이셔…….”
새댁이 좌중의 눈치를 보며 일단 사양을 했다.
“그럼 네가 당하고 싶은 게로구나.”
노파의 표정이 별안간 악랄해졌다.
“할머님도 정말 망령이셔.”
새댁이 질겁을 하며 그러나 정확한 손놀림으로 노파의 얼굴에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색시 해브 예스? 소리는 점점 기승스러워지고 등잔불도 기름이 다한 것처럼 침침해졌다. 노파는 새댁의 능숙한 손놀림에 얼굴을 내맡긴 채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느희도 양코배기들 얼굴만 봐가지곤 나이 분간 못 하지? 양코배기들도 우리 나이 분간 못 하긴 마찬가질 거다. 핏줄이 다른 사람끼린 나이 먹는 푼수도 제가끔 다르니까. 그리고 그 짓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껌껌한 데서 하게 돼 있으니까. 암, 껌껌한 데서 하구말구…….”
이 소리는 아마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스스로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소리였으리라.
드디어 화장은 완성됐다. 거울을 본 노파가 만족한 듯 웃었다. 그저 웃음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쥐어짠 것처럼 처참한 교태가 섞인 웃음이어서 보고 있던 여자들은 다 같이 섬뜩했다.
색시 해브 예스? 소리가 마침내 여자들이 모여 있는 큰 집 대문에 와서 멎었다. 양코배기들도 안에서 나는 인기척을 감지했는지 미친 듯이 대문을 흔들어 댔다.
“옥희야, 네 옷도 좀 빌려주렴.”
노파는 옥희의 다홍치마와 노랑저고리로 갈아입 었다. 머리엔 알록달록 줄무늬가 있는 보자기를 썼다.
색시 해브 예스? 소리는 극도로 격렬해지고 거친 발길질에 대문은 곧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이제 다 됐으니 문 열어주고 색시 있다고 해라.”
노파가 바싹 마른 참나무 가지를 꺾는 것처럼 메마르고 확실한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가 빗장을 땄다. 대문이 활딱 열렸다. 여자들은 잔뜩 참았던 오줌을 싸버릴 수밖에 없었던 순간처럼 쾌감과 수치감으로 진지리를 치며 어두운 곳으로 몸들을 피했다.
등잔불이 비추는 곳엔 색시 한 사람만이 남았다. 앞장선 거구의 양코배기가 색시를 번쩍 안았다. 그러나 어두운 구석마다 잠복해 있는 인기척을 감지했음인지 그 자리에서 일을 저지르지는 않고 색시를 안은 채 성큼성큼 대문을 나섰다.
“캄온.”
뒤따르던 양코배기들도 대문을 나섰다. 저만치 지프차가 보였다. 지프차 속에서도 색시는 아기처럼 가볍고 아기처럼 순하게 양코배기의 무릎 위에 있었다.
분교까지는 눈 깜박할 새였다. 밖에서 본 분교는 깜깜했다. 그러나 유리문을 열고 삐걱하는 널쪽 문을 열자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불빛이 노파에게로 쏟아졌다. 동시에 와아 하는 함성이 들렸다. 노파는 양코배기의 품에서 새우처럼 몸을 오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곧 침대로 노파는 내팽개쳐졌다. 그 지경을 당하면서도 노파는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방 안을 살폈다. 앞으로 당해야 할 양코배기의 수효를 알아보려고 함이었다. 다행히 대여섯 명을 넘지 않아 보였다.
노파를 안아온 거구의 양코배기가 노파의 옷을 벗겼다. 세상에, 망측해라. 아무리 공자 맹자의 도리를 모르는 양놈이기로서니 대낮보다 밝은 곳에서 그 짓을 하려 들다니. 노파는 죽은 영감과는 환갑까지 해로했고, 금슬도 좋은 편이었고, 자식을 칠남매나 두었건만 한 번도 등잔불이나마 켜놓고 그 짓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영창으로 비치는 달빛이 고작이었다.
노파는 죽을 기를 쓰고 옷고름과 치마끈을 움켜잡았다. 이제 얼굴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까짓 노파의 힘쯤은 거구의 양코배기에 당해서는 갓난아기의 앙탈만도 못했다.
양코배기는 옥수수 껍질을 벗기듯 한 겹 두 겹 힘 안 들이고 노파의 옷을 벗겨냈다. 그래도 설마 속옷을 벗길 때는 불을 끄겠거니 했더니 웬걸, 노파의 나신은 백주보다도 밝은 불빛 아래 그 흉한 모습을 드러냈다.
칠남매에게 진액을 다 빨리고 이제 늑골과 상접할 만큼 말라붙은 지 오랜 젖가슴과, 겹겹의 주름 사이사이에 칠남매를 길러내느라 늘어나다 못해 터졌던 자국이 물 마른 운하처럼 남아 있는 끔찍한 뱃가죽이 드러났다. 정오의 햇빛보다 더 밝은 불빛 아래.
노파는 이제 반항하기를 그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모기 소리 같은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노파가 반항하기를 포기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파의 마지막 속옷인 잿빛 융바지는 어쩐 일인지 황무(荒蕪)의 언덕처럼 앙상하게 솟은 치골 위에 걸려서 더이상 내려가지 않았다.
노파는 앵앵 가늘게 울며 생각했다. 그것마저 벗겨내 이 환한 불빛 아래 그 아래것이 드러나면 혀를 물고 죽을 수밖에 없겠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기란 얼마나 어렵고도 어려운 일인가 하고.
마저 벗길 것도 없이 양코배기들은 이미 속았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 차라리 쏴 죽여주었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별안간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혀를 물고 죽고 싶게 비참한 상태에서 들었기 때문일까, 노파는 그렇게 티 없이 맑고 즐거운 웃음소리는 생전 처음 듣는 것처럼 느꼈다.
난리가 나기 전에 마을엔 궂은일도 많았지만 즐거운 일도 많았고, 젊은이들은 화도 잘 냈지만, 웃기도 잘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즐거울 때도 그 웃음엔 텁텁한 찌꺼기 같은 게 가라앉아 있었고, 여운은 한숨의 여운을 닮아 있었다. 갓 웃음을 배운 아기가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티 없이 투명하게 깔깔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경황중에도 호기심이 동한 노파는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양코배기들의 동정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양코배기들은 하나같이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마룻바닥에서 허리를 비틀고 배를 움켜쥐고 그렇게 웃고 있었다.
방 속엔 침대에 던져진 노파 외엔 구경거리라곤 아무것도 없이 살벌하기만 했다. 하도 즐겁게 웃는 바람에 노파는 자기도 따라 웃을 것 같아 더욱 앙앙대는 울음소리를 높였다.
이윽고 웃음이 그치더니 누군가가 노파를 일으키고 옷을 주섬주섬 주워다주었다.
노파가 옷을 다 주워입자 깜깜한 밖으로 끌어냈다. 노파는 아마 밖에서 쏴 죽이려 나보다고 간이 콩알만해졌다.
그러나 양코배기들은 노파를 지프차에 태웠다. 그리고 뭔가 상자에 담은 걸 가득가득 실었다.
처음에 노파를 데려갔던 큰 집 앞에다 노파를 내려놓더니 싣고 온 상자들도 모조리 내려놓았다.
양코배기들은 어리둥절한 채 서 있는 노파에게 찝찝 입맛을 다셔 뭘 먹는 시늉을 하며 상자에 든 것들을 가리켰다.
“마마상 짭짭. 마마상 짭짭. 오케이?”
양코배기들은 다시 지프차를 타고 분교 쪽으로 떠났다.
차 소리를 듣고 집 속에 모여 있던 여자들이 일제히 뛰어나왔다.
노파는 빠르게 위엄을 회복하고 우선 양코배기들이 부려놓은 짐 먼저 끌어들이라고 이른다.
상자마다 먹을 것들이었다. 깡통에 든 무과수, 고기, 잼, 과일, 우유, 새콤하고도 달콤한 향기로운 가루, 반짝이는 은종이에 싼 초콜릿 사탕 젤리, 혼란한 그림이 있는 갑 속에 들은 파삭파삭한 과자, 쫄깃쫄깃한 과자……
노파와 여자들은 다만 황홀해서 숨도 크게 못 쉬었다.
그래도 나잇값을 하느라고 노파가 제일 먼저 평정을 회복했다. 그리고 방금 겪은 모험에 대해 비교적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나서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 돌아오고 또 먹을 것까지 잔뜩 얻어온 건 그놈들이 양놈이었기 망정이다. 아, 왜놈만 같아봐라, 나한테 속은 걸 안 즉시로 쏴 죽였을걸. 암, 그 독종들이야 쏴 죽이고말고. 왜놈이 아니고 소련놈만 같아봐라, 아마 늙고 젊고 안 가리고 들이덤벼 욕을 뵀을걸. 쏴 죽일 거 없이 제놈들한테 깔려 죽을 때까지 욕을 뵀을 게다.”
듣고 있던 마을 여자들도 노파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제각기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노파도 마을 여자들도 한 번도 이 나라 밖에 나가본 적이 없고, 마을에 살면서도 양놈이니 왜놈이니 소련놈이니를 직접 사귀거나 대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 사건이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노파는 그 정도의 세계관(?)을 자신만만하게 피력했고, 듣는 사람들 역시 추호의 이의도 없었다. 옳고 그르고는 차치하고라도 아마 그 정도의 세계관은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의 기본적인 상식에 속했기 때문일 게다.
2
전선(戰線)은 조용했다. 그러나 금명 간 일대 접전이 예상되고 있었다. 처음 전방으로 투입돼 실전 경험이 한 번도 없는 병사들에겐 이 폭풍전야의 정적이 정말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다 묘한 풍문이 돌고 있었다. 적의 총알은 숫총각을 좋아한다는 거였다. 그만큼 숫총각이 전사하는 율이 많다는 소리도 됐다.
칼끝같이 아슬아슬한 정적을 견디다 못해 누가 꾸며낸 것이 분명한 이런 풍문은 단박 숫총각이 누구누구란 것을 가려낼 수도 있을 만큼 숫총각들을 불안 일색으로 물들였다.
자기 중대 내의 이런 술렁임을 안 중대장은 원하는 자에게 인근 마을로 한 시간 정도의 외출을 허락했다.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완전히 철수상태라는 것을 중대장이라고 모를 리는 없었다. 그래도 사람의 일엔 항상 예외라는 게 있고, 또 요행이라는 게 있으니까, 약은 놈은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지 않나, 일단 기회라도 줘보는 수밖에, 라고 중대장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대장 역시 큰 기대를 갖고 있진 않았다.
숫총각 김 일병이 같은 숫총각 패거리로부터 떨어져 홀로 접어든 마을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집은 한 집도 없었다. 물론 호롱불이 켜지는 집도 없었다. 보나 마나 빈 마을이었다. 그래서 다들 딴 마을을 찾아갔건만 김 일병은 그 마을에 이끌리고 있었다.
그 마을은 어딘지 혜숙이의 고향 마을을 닮아 있었다.
김 일병은 혜숙이와 작별하러 혜숙이의 고향 마을을 찾아갔을 때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동란 전 김 일병과 혜숙이는 대학 동급생이었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졸업하면 곧 맺어질 것으로 누구나 알고 있었다.
졸업반으로 올라오자마자 동란이 났고 혜숙이는 고향으로 피난 갔고 김일병은 서울에 남아 있었으나 요행 무사했다. 그러나 수복하자마자 김 일병은 곧 입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입대하기 전에 아직도 시골에 머물고 있는 혜숙이를 찾아갔었다.
집집마다 굴뜩에서 연기가 오르는 저녁 무렵이었다. 바람이 없어서인지 굴뚝이 낮아서인지 보랏빛 연기는 자욱하게 땅을 기었다. 그 속에 선(線)이 무던한 초가지붕들이 다도해의 섬처럼 오순도순 떠 있었다.
보랏빛 연기는 차츰 남보라로, 다시 암회색으로 변하는가 했더니 곧 어둠이 왔다.
오라, 시골의 황혼은 굴뚝으로부터 오는구나 하고 김 일병은 그때 생각했었다. 오랜 이별을 앞두고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그날 혜숙이는 애처롭도록 우울했다.
두 사람은 이제 완전히 어둠에 잠긴 마을을 벗어나 뒷동산에 올랐다. 뒷동산엔 무덤이 많았다. 나란히 있는 무덤도 있고 혼자 있는 무덤도 있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무덤도 있었다.
두 사람은 무덤 앞에 있는 상석에 기대앉았다.
“이게 다 누구 무덤이니?”
“우리 조상 무덤.”
“느네 조상은 참 많이도 죽었다.”
김 일병은 자기가 한 말의 바보스러움에 혼자서 픽 웃었다.
“죽지 마, 죽으면 싫어.”
혜숙이가 별안간 김 일병의 가슴으로 무너져내리면서 절박하게 말했다.
“죽긴, 바보같이. 안 죽을게. 사랑해, 사랑해.”
김 일병은 혜숙이를 안고 쓰러지면서 말했었다. 그때 그 동산의 마른풀은 참으로 푹신했었다.
두 사람은 전교생이 다 알아주는 커플이었지만 그렇게 깊은 뽀뽀를 해보긴 그때가 처음이었다.
실은 그때 숫총각을 면할 수도 있었다. 혜숙이 쪽에서 그걸 간절히 바라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김 일병은 그러지 않았다. 불같이 달아오른 혜숙이를 일으켜 옷에 붙은 마른풀을 말끔히 떨어서 들여보냈다.
죽지 않겠다고 장담했지만 만약에 자기가 죽게 될 경우 혜숙이를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게 하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한 일은 잘한 일일까 잘못한 일일까. 적의 총알은 숫총각을 좋아한다는 건 정말일까. 그런 생각을 쓸쓸하게 하며 김 일병은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지 않아도 마을은 빠른 속도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텅 빈 마을을 돌아나오며 김 일병은 혜숙이와 헤어지던 시골길이 생각나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문득 그는 한줄기 연기를 본 것처럼 느낀다. 그것은 미미했지만 확실히 어둠의 빛깔하곤 달랐다.
그는 묘한 착각에 빠져 가슴을 두근댔다. 그 마을은 혜숙이의 고향 마을이고 혜숙이 혼자 남아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그의 시선이 포착한 미미한 연기가 오르는 방향으로 곧장 이끌렸다.
마을에서 제일 작고 초라한 집이었다. 문도 사립문이어서 그대로 밀고 들어섰다.
“안에 누구 계십니까?” ·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뉘시우?”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온 건 노파였다. 비교적 정정한 노파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군인입니다, 국군입니다.”
김 일병은 우선 부드러운 소리로 노파를 안심시켰다.
그 동안 몹시 사람에 주렸던 듯 노파는 반색을 하며 김 일병을 안방으로 이끌었다.
구들목은 따뜻하고 노파는 혼자서 저녁상을 받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혼자 남으셨습니까?”
“영감이 중풍 들어서 데리고 갈 수도 없고 두고 갈 수도 없고 해서…….”
“자손은요?”
“외아들이 국군 나갔다우.”
“네, 그러세요. 그럼 영감님은요?”
김 일병은 새삼스럽게 방 안을 휘둘러본다. 중풍 든 노인이 어디 있나 해서였다.
“세상 떴다우.”
“언제요'”
“며칠 안 돼. 원 지지리도 복도 없는 늙은이지. 진작 죽든지 좀 더 살아 좋은 세상 보고 죽든지 했으면 오죽이나 좋아.”
“그럼 장사도 혼자 치르셨겠네요.”
“장사랄 건 뭐 있수. 그냥 갖다 묻은걸.”
“혼자서요?”
“그럼 누가 있어야지.”
“참 장하십니다.”
“장하긴, 사람이 악에 받치면 뮐 못 하는 줄 알우.”
“그래두요.”
“난 이래 패도 아직 정정하다우. 영감 몸이 그런데다가 어떡허든 자식 하나 있는 건 공부시켜보려고 많지 않은 농사지만 혼자 지은걸.”
“네, 그러셨어요.”
김 일병은 자꾸자꾸 감동을 한다. 그러면서 노파가 좋아져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한다. 두고 온 혜숙이 이야기부터 외출나온 경위까지 설명하느라 숫총각은 총알을 제일 먼저 맞는다는 부대 내의 미신까지 이야기했다.
“저런, 내 아들도 숫총각일 텐데. 아무렴 숫총각이고말고.”
노파의 얼굴에 짙은 근심이 어린다.
“할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필시 숫총각 놀려먹으려고 누가 퍼뜨린 소문일 거예요. 뜬소문이 아니면 미신일 테고요. 이 문명 세상에 누가 미신을 믿습니까.”
이윽고 김 일병이 일어서려는데 노파가 김 일병의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총각, 총각을 면하고 가고 싶잖우?”
“네?”
“미신이건 뜬소문이건 좋다는 거야 왜 못 하우. 목숨은 중한 거라우. 더군다나 기다리는 아가씨까지 있다며.”
“그야 할 수만 있다면야 왜 못 하겠어요. 없으니까 못 하죠.”
“할 수 있어. 내가 면하게 해주지.”
“네?”
김 일병은 질겁을 한다.
“왜 그렇게 놀라우. 놀랄 거 없어요. 자아, 불을 끕시다. 난 아직 정정하다우.”
노파는 불 먼저 끄고 김 일병을 아랫목에 깔린 포대기 밑으로 이끌었다. 노파는 뜻밖에도 풍요한 가슴과 부드러운 살결을 갖고 있었고, 손길은 섬세하다 못해 기교적이기까지 했다. 어둠 속에서 노파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김일병은 도깨비한테 홀린 것처럼 얼떨결에 그러나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숫총각을 면했다.
다시 호롱불이 켜지자 노파는 역시 노파였다. 김일병은 노파를 외면하고 도망치듯 집을 나서려는데 노파가 말했다.
“또 와요.”
또 오라니, 그럼 저 육체에도 욕망이 이글대고 있었고 저 나이에도 그 행위에 대한 기쁨이 있었단 말인가.
자비를 받은 것 같은 고마움이 뭔가 당한 것 같은 억울함으로 변한다. 이런 느낌으로 돌아다본 노파의 얼굴에서 김 일병은 희열과 만족감을 똑똑히 본다.
그는 불의에 뒤집어쓴 구정물을 떨구듯 진저리까지 쳐가며 그것을 떨군다. 그러나 그후 오래도록 김 일병은 그것을 떨구지 못했고, 마침내 여자라는 것에 대한 불결감 혐오감으르 이어졌다.
숫총각을 면했음인지 김일병은 그후에 겪은 수없는 전투에서 무사했고, 휴전이 되고도 일 년 후에 제대했다.
찾아간 혜숙이의 고향집에 혜숙이는 없었다. 혜숙이는 멀리멀리 시집 간 뒤 였다.
“드러운 년.”
김 일병은 그 한마디로 혜숙이에 대한 감정을 처리했다.
환갑이 지난 노파의 욕망도 영감을 묻은 지 며칠 만에 아들 같은 총각을 유혹할 만큼 강했거늘 혜숙이같이 젊은 나이에 어찌 기다리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무덤 앞 마른풀 위에서 불같이 달던 그 음탕한 몸뚱이가……
김일병의 여자에 대한 시선은 이렇게 고정돼 있었다. 물론 그가 혜숙이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가 어른들에 의해 중간에서 어떻게 소멸됐나를 알 리도 없었다.
그후 수많은 날이 지나갔다. 김 일병은 돈도 좀 벌고, 방탕한 생활에 빠졌다. 이제 노파가 “또 와요” 하며 짓던 희열과 만족의 표정을 생각하며 진저리치던 때는 지났다. 그만해도 순진할 때였다. 이제 그는 능글능글해져 있었다. 그는 노파를 회상할 때마다 그의 남성에 대해 더욱 자신만만해져서 방탕을 계속하고 닥치는 대로 여자를 희롱했다.
나의 남성은 적어도 환갑이 넘은 불 꺼진 육체에 새로운 불을 켤 만큼 특이하고 매력적인 남성이다, 하는 엉뚱한 자부심이 그의 방탕행위를 더욱 부채질했고 아닌게 아니라 그를 남성적으로 돋보이게도 했다.
그후 다시 수많은 날이 흘렀다. 방탕에 곯은 몸이 그래도 참한 아내를 맞아 아들 딸 낳고 그럭저럭 살림 재미도 알게 됐다. 이제야 그 사람 철들었다고들 했다.
늦게 철들고 나서도 그는 가끔 노파 생각을 했다. 그때 노파가 자기로 하여 육체적인 희열을 맛보았으리란 생각을 그는 조금씩 수정해가고 있었다.
그때 그를 받아들인 노파의 깊은 곳은 마치 그가 어릴 적 손을 밀어넣은 엄마의 스웨터 주머니 속처럼 무심히 열려 있었고 헐렁했고 부숭부숭했었다. 그 속은 시종 헐렁했고, 부숭부숭하기만 했다. 결코 감각이 살아 있는 고장답지 않았었다.
그럼 “또 와요”는 뭐고, 희열과 만족의 표정은 뭐였을까. 아마 숫총각을 면하고 싶은 사람이 또 있으면 얼마든지 또 와도.좋다는 소리요, 만족과 희열은 자기의 성 (性)이 아직도 남성의 기쁨이 될 수도 있다는 데서 오는 순전히 정신적인 것이었으리라고 그는 그의 노파에 대한 회상을 이렇게 수정해가고 있었다.
그후 또 수많은 날이 갔다. 그는 오십을 바라보는 김 사장이 되었다. 지금도 그는 가끔 노파 생각을 한다. 그때의 노파의 행위야말로 무의식적인 휴머니즘이 아니던가 하고 생각할 만큼 그는 나이를 먹었다. 젊은 날의 그를 그토록 징그럽게 하던 노파의 환희와 만족의 표정조차 평생 잊지 못할 휴머니스트의 미소로서 회상할 수 있을 만큼 그는 나일 먹었다. 나일 먹는다는 건 남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서글프기만 한 건 아니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 두 사람의 노파 이야기는 어느 친구한테 들은 실제로 있었던 노파들 이야기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노파들은 서로 아무런 상관도 없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 말고는.
그런데도 굳이 이 두 노파를 한자리에 모시고 싶었음은 내가 발견한 노파들의 어떤 공통점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욕되도록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노파라든가 할머니라든가 하는 중성적인 호칭이 안 어울리는 강렬한 여자다움을 못 버렸었다. 여자라는 것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나는 차마 그들을 노파라고는, 할머니라고는 못 하겠다. 여자라고밖에는.
지금도 시골에 가면 차들은 뻔질나게 다니는데 포장은 안 된 황톳길이 있다. 그런 길가에서 허구한 날 먼지를 뒤집어써서 마치 도시의 삼류 왜식집 베란다에 장식한 퇴색한 비닐 모조품 꼴이 돼버린 풀섶에서 문득 찢어지게 선명한 빛깔로 갓 피어난 들꽃을 본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알 것이다. 기가 차고 민망한 대로 차마 그게 꽃이 아니라곤 못 할 난감하고도 지겨운 심정을. 그런 심정이 되어 그들 노파를 여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성적인 의미의 여자라두 좋고, 나의 할머니가 툭하면 몸서리를 치면서 전생으로부터 특별히 많은 죄를 짊어지고 태어났다고 믿는 족속으로서의 여자라도 좋고, 심심한 남자들이 각별히 심심한 시간에 그 족속들에게도 영혼이라는 게 있나 없나를 무성의하게 회의하는 대상으로서의 여자라도 좋고, 아기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먼저 얼굴과 호칭을 익히는 엄마로서의 여자라도 좋다. 아무튼 그 노파들은 여자였다고, 죽는 날까지 여자임을 못 면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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