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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도립공원내 가야산 자락의 아름다운 비경 아홉곳에 대한 역사·문화·생태 자원을 활용한 스토리텔링 주제로 옛 가야9곡길 복원하였으며 가야구곡의 유래는 조선 영조 때 병조판서를 지낸 병계 윤봉구(尹鳳九, 1681~1767)선생이 가야계곡의 아름다운 비경인 아홉 곳(관어대, 옥병계, 습운천, 석문담, 영화담, 탁석천, 와룡담, 고운벽, 옥량폭)을 ‘가야구곡’이라 칭하고 문집에 기록해 놓음으로써 비롯되었다. 또한 가야구곡을 따라 산재해 있는 관광자원인 덕산온천, 남연군묘, 덕산향교, 헌종태실, 광덕사, 보덕사, 옥계저수지, 상가저수지, 가야산등 덕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탐방할 수 있다 .
▷코스경로 : 덕산온천 관광안내소 → 옥계저수지( 2.6㎞) → 옥계리 마을회관(1.8㎞) → 옥병계(0.4㎞) → 석문담(1.2㎞) → 남연군묘(1.6㎞) → 와룡담(0.6㎞) ▷거리/소요시간 : 16㎞/4시간 ▷난이도 : 보통
▷문의 : 예산군청 환경과 (041)339-7503, 덕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 (041) 339-893
헌종대왕 태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이라는 남연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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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군 묘의 지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윗가야골에는 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의 묘의 자세는 풍수지리가 일컫는 명당의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다. 뒤로 가야산 서편 봉우리에 두 바위가 문기둥처럼 서 있다는 석문봉이 주산이 되고, 왼쪽으로는 옥양봉, 만경봉이 덕산을 거치면서 30리에 걸쳐 용머리에서 멎는 청룡세를 이루고, 오른쪽으로 백호의 세는 가사봉, 가엽봉에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맥이 금청산 월봉에 뭉쳐 감싼 자리이다. 동남향을 바라보면 평야를 지나 멀리 60리 떨어진 곳에 있는 봉수산이 안산이 된다. 남연군 묘 앞에 있는 장명등 창으로 남쪽을 바라보면 그 동그란 창 새로 보이는 곳이다. 또 청룡맥의 옥녀폭포의 물과, 백호맥의 가사봉계곡의 물이 와룡담에 모였다가 절앞에서 굽이치며 흐르니 임수의 지세도 얻었다 할 수 있다. 가야사는 그 두 물줄기가 합치는 곳이었다. 금탑이 있던 자리라는 남연군 묘는 그 뒤 우뚝 솟은 언덕빼기이니, 흔히 절 마당이나 법당앞에 탑을 놓는 방식과는 달리 절 뒤쪽의 언덕에 탑이 있었던 것만이라도 예사자리는 아니다. | | 1845년 3월 18일 흥선군은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고, 7년후 1852년(철종 3)에 둘째 아들 재황(아명 명복)을 얻었고, 그로부터 11년 뒤인 1863년 철종의 뒤를 이어 조선 21대 고종으로 왕에 올랐다. 고종의 아들이 순종이 되었으니 2대 천자를 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바록 조선왕조의 마지막을 장식한 비운의 황제였을망정 황제는 황제였다. |
대원군은 가야산과 가야사의 음덕에 보답하는 의미였는지 아니면 자신의 욕심이 지나쳤음을 뉘우치는 의미였는지 모르지만, 고종이 등극한 2년째 되던 해에 남연군의 묘 맞은편 산기슭에 있는 서원산 기슭에 절을 짓고 '보덕사(報德寺)'라는 이름을 내렸고, 남연군 묘 앞에 보이는 땅은 절에 귀속하게 하였다. 보덕사 경내에는 부서진 것이기는 하지만 석 등의 화사석이 하나 전해지는데, 이 화사석의 사면에 새겨진 사천왕의 조각을 보면 제법 정교한 것이 하대신라풍이어서 가야사에서 옮겨온 것이리라고 추측되어 진다. 이 절은 토목금벽으로 치장하여 대단히 화려하였으며, 많은 전토와 보화가 내려졌다고 전하는데 6.25때 소실되었고, 근래에 중창되어 수덕사의 여승들이 정진하는 도량이 되어 있다. 가야사 터가 광활한 느낌의 도량이었다면 보덕사는 이와 대조적으로 산중턱에 감춰진 듯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
| 위치 온양에서 삽교로 가는 중간에 덕산면 상가리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덕산온천을 비롯하여 수덕사, 윤봉길의사의 사당과 옛집터가 남아있어 명승지로 각광받고 있다. - 소재지: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 사적: 지방문화재 자료 제 187호 - 남연군묘는 기념물 제80호 - 남연군 비는 문화재자료 제191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