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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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내가 평소대로 식빵과 우유와 달걀 후라이를 차려놨다. 아침 식사가 이게 다냐고 물어보니 아내가 말하기를 당신 치아 임플란트 때문에 금년에는 보름음식을 생략했다고 한다. 시쿤둥한 표정으로 아내를 처다보며 아침을 먹었다.
매년 새해 보름날 아침엔 오곡밥 나물등을 먹으며 한 해의 건강을 빌어야 하는데 이빨 아프다는 핑계로 생략했다? 귀찮아서 하기 싫은 마음을 안다고 비야냥조로 말하니 참 야속한 양반이라며 저녁에 상차릴테니 배터지게 드시라한다.
오후에 안양천을 산책하다보니 정월대보름 민속놀이 축제가 있다는 플레카드를 보았다. 고향 생각이 나서 저녁에 구경가기로 했다. 비는 오는 듯 마는 듯 내리고 날이 어두워 지기 시작하자 오목교 다리위와 뚝방길 산책길과 행사장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농경사회의 傳來의 놀이인 달집태우기의 달집은 큰 규모로 세워저 있다. 달집이 잘 보이는 오목교 다리위 뚝방길에는 사람들로 빼곡이 차 있고 마이크에서 농악소리로 흥을 돋구고 있다. 안양천 상류 구로동 쪽에서 불꽃을 쏘아 올리며 축제가 시작된다.
구청장 인사말에 이어 미사일같은 불 폭탄이 날아와 달집에 불을 붙이니 활활 타기 시작한다. 밤 축제의 백미는 역시 불꽃놀이다. 불꽃이 터지는 요란한 소리와 밤하늘에 퍼지는 각양각색의 불꽃 모양에 탄성을 지르며 목동의 빌딩에서 뿜어나오는 불빛과 어우러져 밤하늘을 아름답게 연출하는 것이 壯觀이다.
달집이 고루 고루 잘 타오르면 그 해는 풍년이고 도중에 꺼지면 흉년이라 한다. 달집이 타면서 넘어지는 쪽의 마을이 풍년이 든다고 한다, 예전엔 볏짚과 긴 나무와 생소나무 가지로 높다랗게 쌓아 만들어 놓고 불을 놓으니 활활 타던 모습이 기억난다.
쥐불 놀이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깡통의 바닥과 옆을 못으로 바람 구멍을 내고 양쪽 끝부분에 가느다란 철사로 매듭을 만든 손잡이로 휙휙 휘두른다. 깡통에 남은 잔불을 하늘로 던지면 밤하늘의 별들과 불꽃이 어우러진다. 쥐불 놀이는 땅을 기름지게 한다고 하니 열심히 휘둘렀다.
텅빈 넓은 논에서 늦게까지 놀다보면 어른들이 불장난 하면 오줌 싼다고 겁을 주거나 놀리곤 하셨다. 지금 생각해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세월이 흘러도 그리운 그 시절이다. 불장난 그만 하고 퍼뜩 들어와 자라고 하던 어머니 말씀도 귀에 쟁쟁하다.
학교 공부보다는 山川을 누비며 놀던 유년시절었다. 목동 고층빌딩에서 뿜어나오는 아름다운 불빛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오곡잡곡밥에 나물 반찬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다. 양주로 귀밝이 술을 한 잔하고 아침에 아내에게 짜증낸 것이 미안하다. 대보름 행사도 참여하고 보름음식을 먹으니 나는 배부르다. <高村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