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청 '무료 결혼 1호' 커플
유리벽면 세련된 새 청사구청장 흔쾌히 "무료개방"
예식비 아껴 남은 돈으로 청소년 돕는 장학금 내놔
29일 낮 12시, 서울 성북구청 성북아트홀에 결혼행진곡이 울렸다.화사한 한복과 정장을 입은 하객 36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턱시도를 입은 신랑 강태성(44·국민대 행정대학원 조교수)씨가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 최재언(34·홍익대 컴퓨터공학과 강사)씨를 맞았다.
지난 5월 완공된 성북구청 청사는 외벽이 유리로 돼 있고, 지상 1층부터 건물 맨 위층인 12층까지 건물 중심부가 시원하게 탁 트인 세련된 건물이다. 강씨 부부는 성북구청에서 결혼식을 올린 첫 신혼부부다.
신랑 강씨가 지난 6월 볼일을 보러 구청에 갔다가, 평소 알고 지내던 직원에게 "혹시 여기서 결혼식도 올릴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 직원은 "구청장님께 직접 여쭤보라"고 했다. 강씨는 곧장 서찬교(66) 구청장을 찾아갔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서 구청장은 그 자리에서 흔쾌히 오케이했다. "결혼식 비용까지 대줄 수는 없지만, 공간만이라면 얼마든지 무료로 주민들에게 빌려주겠다"고 했다.
구청이 식장으로 제공한 성북아트홀은 원래 구청 직원들의 세미나와 회의에 쓰이는 200석 규모의 소극장이다. 규모(518㎡·157평)와 시설이 어지간한 예식장 못지않았다. 하얀색, 붉은색 조명 20여개가 신랑 신부가 선 연단을 환하게 비추고, 싱싱한 생화 장식 사이로 레드카펫이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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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일 낮 12시 서울 성북구청에서 열린 결혼식에서 신랑 강태성씨와 신부 최재언씨가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행진하고 있다./박종우 객원기자
주례를 맡은 김정훈(49·서울 축복교회 당회장) 목사가 "'늦깎이' 신랑이 신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 팔굽혀펴기 5개만 시켜보겠다"고 하자 하객들 사이에 폭소가 터졌다. 팔굽혀펴기를 마친 신랑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신부와 함께 레드카펫 위를 행진하자, 팡파르와 함께 알록달록한 색실 폭죽이 터졌다.
구청장실은 혼주들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아트홀과 같은 4층에 있는 교통지도과 사무실은 신부 대기실과 폐백실로 변신했다. 구청 직원들이 회의용 원탁테이블을 치우고, 널찍한 공간에 빨간 장미꽃잎을 흩뿌리고 병풍과 소파, 조명 등을 설치했다.
이날 구청은 아트홀과 사무실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한편, 결혼식 당일 하객들에게 주차장을 모두 개방했다. 구청은 엘리베이터 4대 중 1대를 하객 전용 엘리베이터로 지정해 하객들이 손쉽게 '주차장→아트홀(식장)→지하 1층 직원식당(피로연장)→12층 옥상정원(피로연 후 산책·담소)'을 오가도록 배려했다.
나머지 준비는 강씨 부부가 직접 했다.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대여비는 지인이 소개해준 업체에서 할인받고, 야외사진 촬영은 생략했다. 부부가 다니는 교회 신자들이 결혼식 축가를 불러줬다.
부부가 남들처럼 욕심을 부린 유일한 부분은 피로연이다. 직원식당에 출장뷔페를 불러 하객 1인당 2만5000원에 바비큐·초밥·탕수육 등 뷔페 350명분을 차렸다. 뷔페업체에서 식장 장식과 피로연장 테이블 세팅을 무료로 해주는 조건이었다. 강씨 부부의 결혼식 비용은 모두 1000만원 안팎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7년간 유학한 강 교수는 "파리 사람들은 결혼식을 구청과 성당에서 각각 한 번씩 올리지만, 비용은 우리 돈으로 500만원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며 "나도 저렇게 알뜰하면서 멋지게 결혼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왔다"고 했다. 강씨는 "예식장이나 호텔에서 했으면 8월이 비수기라는 것을 감안해도 최소한 1500만원 이상 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객들도 '구청 결혼식'에 만족해했다. 축가를 부른 나정현(28·서울 신당동)씨는 "청첩장에 구청이라고 쓰여 있기에 낡은 건물일 줄 알았는데 일반 예식장보다 훨씬 세련되고 깨끗해 놀랐다"고 했다. 하객 김종호(24·서울 삼성동)씨는 "구청이라 찾기도 쉽고 주차장도 넓어서 좋았다"며 "나도 교수님처럼 나중에 이런 곳에서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노명복(56·경기도 용인시)씨는 "대학교수가 구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해서 솔직히 놀랐다"며 "신랑 신부가 검소하면서도 분위기 있게 결혼식을 치르는 모습을 보니 사람됨이 남다른 것 같다"고 했다.
성북구 관계자는 "신랑이 결혼식 전날 구청에 찾아와 '덕분에 알뜰하게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며 아낀 비용 일부를 저소득층 청소년 장학금으로 내놨다"고 했다.
서찬교 구청장은 "이번 결혼식을 계기 삼아 앞으로도 신랑과 신부 중 한명만 우리 구에 살면 구청을 결혼식장으로 무료 개방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