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은 텔레비전을 가장 많이 이용하고,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정보와 오락을 주로 습득하는 꼭 필요한 미디어라고 말한다. 한국의 노인들은 그 어떤 시청자 집단보다도 충직한 시청자군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1970년대 이후로 발전을 거듭해온 한국 노인 프로그램은 서구 방송사와는 차별되는 한국 텔레비전 방송의 특성이다. 노년의 삶에서 텔레비전은 세상을 향한 창문,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 일상을 구분해 주는 시계, 가상의 공동체, 의견지도자다.
1. 노인의 텔레비전 시청하기
성인들의 텔레비전 시청 시간은 연령이 증가하면서 점점 더 늘어난다. 이러한 현상은 수십 년 동안 반복적으로 확인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노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고,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며, 정보와 오락을 주로 습득하는 중심적이고 꼭 필요한 미디어가 지상파 TV다. '2011년 방송매체 이용 행태 조사'에 따르면 텔레비전은 전 연령층 모두에서 높은 이용률을 보였지만 연령이 높아질수록 TV를 거의 매일 이용하는 비율이 높다. 60세 이상의 96.2%, 50대의 94.4%가 거의 매일 TV를 본다고 응답했다. 조사 시점에 따라 오차는 있지만, 한국 노인은 일일 평균 4시간 내외, 일본 노인은 3∼6시간가량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새로운 미디어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노인들의 텔레비전에 대한 충성심에는 변함이 없다. 신규 미디어 이용으로 인한 미디어 대체 효과 조사에서 20대의 39.4%는 새로운 미디어 이용으로 텔레비전 이용시간을 줄였다. 60대 이상의 경우에는 불과 2% 정도만 텔레비전 이용시간을 단축했다. 독거노인일수록 텔레비전 시청량이 더 많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텔레비전에 대한 친밀감은 더 커진다.
1970년대 이래로 서구의 노인 시청자 연구들은 노인들이 뉴스, 다큐멘터리, 공공정책 분야를 선호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프로그램 취향에서 노인 남성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반면 여성은 드라마와 낮 시간 드라마, 게임쇼, 대담 프로그램을 선택해 성별 차이가 있다(Rubin & Rubin, 1982). 노인들이 선호하는 세 가지 프로그램 유형은 뉴스, 정보성 다큐멘터리, 영화로 나타났다(홍명신, 2010). 한국 노인들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선호도도 외국의 경우와 유사하다. 노인 집단은 텔레비전을 장시간 보지만 프로그램을 고르는 자세는 선택적이다. 뉴스와 드라마에 대한 선호도가 뚜렷하다. 그 다음으로 스포츠, 연예·오락, 교양·다큐멘터리, 영화, 코미디, 토크쇼 등이 뒤를 잇는다(한국방송광고공사, 2006).
내용이나 포맷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에 대한 취향도 관찰된다. 노인들은 노인 배역이나 나이든 배우들이 포함된 프로그램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이에 발맞춰 최근에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실버 드라마가 나오는가 하면 중장년 연기자들의 새로운 면면을 발견하게 된다. 안방극장에서 권위적인 아버지의 전형을 자주 연기했던 '대발이 아버지' 이순재 씨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가족 몰래 야한 동영상을 몰래 보는 한의사로 분해 '야동순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가족으로부터 엄마 독립 선언을 한 주인공(김혜자)과 함께 보청기로 무장한 노년의 로맨스가 회자되었다. 심술궂고 권위적인 태도로 며느리를 타박하는 과거의 시어머니상 못지않게 막강한 경제력을 갖고 권력, 경험, 지혜를 두루 갖춘 원로 할머니 배역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2. 노인이 텔레비전을 사랑하는 이유
노인들이 텔레비전을 좋아하는 것은 노년기의 신체적·경제적·사회적 환경과 관련이 있다. 첫째, 텔레비전은 인쇄물이나 라디오와 달리 시청각을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에 감각기관의 쇠퇴를 겪고 있는 노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둘째, 연금 수입 등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대다수 노인은 제한된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저렴하거나 무료인 텔레비전은 강한 경쟁력을 갖는다. 셋째, 노인들은 텔레비전을 마음껏 시청할 수 있는 충분한 여가시간이 있다. 넷째, 자발적으로 사회적 활동에서 은퇴한 노인들은 미디어 이용이 늘어나지 않지만, 은퇴를 원하지 않았는데 퇴직하게 된 노인들은 잃어버린 활동의 대체물로 미디어를 대한다. 그래서 은퇴한 노인과 독거노인들은 직업이 있거나 배우자가 있는 노인들보다 일일 텔레비전 시청시간이 더 길다.
루빈(Rubin & Rubin, 1982)에 따르면 노인들의 텔레비전 이용 동기는 ① 정보·학습 ② 오락 ③ 경제성(무비용) ④ 편리성 ⑤ 사교 ⑥ 휴식 ⑦ 시간 보내기 ⑧ 각성·흥분 ⑨ 대화 소재 ⑩ 습관 ⑪ 행동규범 ⑫ 도피·망각 ⑬ 상품광고 ⑭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분류되었다. 이 가운데 '정보·학습'과 '오락'은 가장 명확한 이용 동기다. 노인들에게 텔레비전 시청은 스스로가 쓸모없고, 지루하고, 외롭고, 고립되어 있다는 기분에 맞서고 이를 물리치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Schramm, 1969). 텔레비전 속의 인물들, 특히 드라마 등장인물에 대한 친숙함이 실제 인간관계를 대체한다. 혼자 생활하는 노인들에게 다른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의사 사회관계가 유지된다. 스스로 외롭다고 느끼는 노인일수록 텔레비전에 등장한 외롭고 고립된 노인들 문제에 관심이 많고 이를 보면서 기분전환을 맛본다.
한국의 노인들은 정보·지식 획득, 습관적 시청, 흥미·오락, 시간 보내기에 비중을 두고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다만 한국 노인들은 외국 노인과는 달리 텔레비전을 타인과 교류하거나 상호작용을 위한 도구로 느끼지는 않는다(정재민·김영주, 2007). 텔레비전의 내용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노인일수록, 그리고 텔레비전을 친숙하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시청 만족도가 높다. 노년의 삶에서 텔레비전은 세상을 향한 창문,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 일상을 구분해 주는 시계, 가상의 공동체, 의견지도자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3. 텔레비전 노인 프로그램
우리나라 최초의 노인 프로그램 <장수만세>를 기획한 홍순창(1951~ ) 전 KBS PDⓒ 커뮤니케이션북스
한국 노인과 텔레비전의 인연은 두텁고 각별하다. 1970년대 흑백텔레비전 보급과정에서 고향 어르신들에게 텔레비전을 보내주는 '효자 TV' 캠페인이 벌어졌다. 고령화 문제가 전무하던 1973년에 경로효친사상과 가족의 화목을 위해 최초의 노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TBC 〈장수만세〉가 첫선을 보였다. 무엇보다 노인 프로그램은 한국 방송사들이 수십 년 동안 발전시켜 온 한국 방송의 대표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텔레비전의 역사가 텔레비전 일방으로만 이뤄진 역사가 아니듯 노인 프로그램도 때로는 국가의 정치 변화, 경제정책, 전통문화, 방송정책 등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요인에 의해 파도처럼 요동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사주의 의지, 외국 노인 프로그램의 영향, 인구정책의 변화, 민간방송의 개국, 외환위기 등 여러 요인이 지상파 노인 프로그램의 편성 및 내용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실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TBC 〈장수만세〉, KBS 〈100세 퀴즈쇼〉, SBS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처럼 황금시간대에 편성되어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면서 전 국민에게 사랑 받은 프로그램도 적지 않았다. KBS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노인 데일리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EBS 〈효도우미 0700〉처럼 기부 프로그램의 신기원을 연 프로그램도 있다. 노인 프로그램을 교양정보라는 작은 틀에 가두지 않고 개념을 제대로 정립한다면 한국 노인 프로그램의 전망은 그렇게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2010년대 노인 대상 프로그램은 감소했지만 노인 수신자를 위한 프로그램은 물론 노인(노화)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프로그램, 노인에 의한 프로그램은 줄어들지 않았다.
노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남자의 자격 : 청춘합창단〉, 중년을 대상으로 하는 퀴즈 프로그램인 〈퀴즈쇼 사총사〉, 평범한 시골 여성 노인의 요리 지혜를 배우는 〈잘 먹고 잘 사는 법 : 김혜영의 시골밥상〉 등의 프로그램은 노인 프로그램의 저변을 넓히고 있다. 노인 프로그램은 '노인용'에 안주하기 보다는, 가족 프로그램, 오락 프로그램이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함께 지닐 때 더 큰 사랑을 받았다(홍명신, 2012).
4. 노인 방송, 실버 방송
인류 최초로 초고령 국가에 진입한 일본은 기존의 텔레비전 방송 전체가 시니어 방송화되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 텔레비전 수상기를 켜도 노인·노화에 관한 유익한 메시지가 쏟아져 나온다. 미국에서는 1991년 노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케이블 TV 네트워크인 '골든 아메리칸 네트워크'가 출범했다. 노인 단체나 시니어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기업, 마을 단위의 은퇴 공동체들도 크고 작은 방송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에릭슨 CCRC가 운영하는 RL TV는 기존 방송사들이 간과해온 은퇴자, 노인 시장에 눈을 돌렸다. 2006년에 개국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케이블TV 시스템 오퍼레이터들이 가장 선호하는 프로그램 제작사가 되었다. 텔레비전 방송의 꽃이라고 불리는 에미상을 받았고 탐사 보도, 다큐멘터리, 연출, 진행 등 다양한 부문에서 후보작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12월에 아시아 방송 네트웍스가 '실버 TV'를 개국했다. 실버 TV는 노인을 대상으로 오락, 교양, 의료, 법률 등 다양한 장르를 직접 제작하거나 기존 지상파 방송에서 방송했던 노인 프로그램을 다시 보여 준다. 노인 방송은 2007년에 잠시 르네상스를 맞았다. 공익채널 선정을 앞두고 실버 TV 이외에 실버아이, 한국실버방송이 개국했다. 그중 '실버 TV'가 저출산·고령화 사회 대응 분야에 '육아방송'과 함께 공익채널에 선정되면서 실버 방송의 바람은 잦아들었다. 한편 건양대 공연미디어학부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2006년도 학과 특성화 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뉴 실버 인터넷 방송국을 개국한 바 있다.
참고문헌
- 정재민·김영주(2007). 노인층의 텔레비전 이용행태와 충족에 관한 연구. 《한국언론학보》 51권 3호, 172~200.
- 홍명신(2010). 지상파 텔레비전 노인 대상 프로그램의 새로운 변화: 제작자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 『문화경제연구』, 13권 2호, 47∼68.
- 홍명신(2012). 『TV와 시니어』.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 Rubin, A. M., & Rubin, R. B.(1982). Older Person's TV Viewing Patterns and Motivations, Communication Research, 9(2). 287~312.
- Schramm, W.(1969). Aging and Mass Ccommunication. In M. Riley, J. Riley, & M. Johnson(Eds.). Aging and society: Vol. 2. Aging and the professions(pp.352∼375). New York: Russell Sage.
[네이버 지식백과] 노인과 텔레비전 (노인과 미디어, 2012, 커뮤니케이션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