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모신문에 실린 반론보도문. 16면 하단에 1단 기사로 처리됐다. ⓒ미디어다음 김준진 | |
지난 10월 언론들은 현대차노조의 언론중재위 제소로 일제히 반론문을 보도했다. 하지만 반론문은 신문에서 눈에 띄지 않는 한 줄 정도에 그쳐 잘못 보도된 '현대차 임금'은 여전히 사실인양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고 있고, '보도'로 인한 여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임단협 관련 보도가 빗발친 뒤 100여 일이 지난 지난달 초순 울산 현대차 공장을 찾았다.
주5일제가 아닌 주7일, 8일제?
생산현장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임단협 결과 9월1일부터 새롭게 '꿈의 주5일제'가 시작됐지만 현장 분위기는 결코 활기차 보이지 않았다.
"와이프가 비아냥거립디다.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고나서부터 '따따불' 철야특근을 하니 돈도 되고 참 좋다'고 말이죠. 임단협에 '주5일제 근무'를 못박았지만 빛 좋은 개살구 일 뿐이죠"
생산라인에서 만난 한 노동자의 말이다.
지난 '98년 현대차 구조조정은 노조원들의 직장관에 큰 분수령이 되었다. 정리해고 277명, 협력업체를 포함해 1만2.000여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을 했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변변찮은 위로금을 손에 쥐고 쓸쓸히 작업장을 떠나야 했다. 그 후 1년이 지난 뒤부터 회사 상황은 점차 호전됐다.
현대자동차는 2000~2003년을 거쳐 매해 최고실적을 갱신했다. 특히 지난해 총매출 26조원, 1조4,000억 당기순 이익을 올렸고, 올해 3분기까지 매출액 17조7천1백44억원 순이익 1조2천9백1억원으로 다시 사상 최고 실적을 올렸다.
이런 최고의 실적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지금도 과거 악몽을 되뇌이고 있다. '벌 때 악착같이 벌어 보자'는 앙다짐이다.
이런 분위기 탓일까. 현대차 노동자들은 스스로 적정 근무 시간을 외면한다.
현대차 노조 노동안전실장 윤복근씨는 "올해 현대차를 포함해 울산 지역 제조업체 노동시간이 오히려 늘어났다"며 "지금 현장은 철야, 특근과 전쟁 중"이라는 말로 분위기를 요약했다. 현대차 실천노동자회(실노회) 김현식 편집위원은 "토요일 아침에 퇴근, 저녁 17시에 다시 출근해 일요일 아침에 퇴근, 당일 17시에 또다시 철야근무에 돌입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전했다.
윤씨는 "어떤 사람들은 토요일 아침 8시에 출근, 주간과 야간 특근을 반복하며 월요일 아침에 퇴근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휴일 수 '연166일'의 주5일 근무제는 실제 현장근무시간으로 주7일, 주8일제라는 노동자들의 푸념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166일 쉬면서 6천만원요?
울산 사람들 사이에서 '현대 자동차 6공장'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현대 자동차 노동자들이 야근, 특근에 시달리다 보니 아내들이 몰래 자주 간다는 울산시내 모 나이트 클럽에 붙여준 이름이다. 그만큼 특근 야근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컨베이어벨트가 쉴 틈 없이 돌아가던 2공장 27반에서 만난 입사 15년차 조현덕 씨(40). 그는 이제 갓 현대차 생산직 평균근속연수 14.4년을 넘겼다. 그는 기자를 만나자 대뜸 "166일을 쉬면서 6천만원이라구요?"라며 언론에 반감을 표시했다. 그는 올해 자신의 연봉이 4,000만원을 조금 넘길 것이라고 말한다.
![]() |
|
잠시 컨베이어 라인에서 나와 신문을 보고 있던 조현덕씨가 임단협 뒤 언론보도를 보고 느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다.ⓒ미디어다음 이성문 | |
조씨는 깁스를 하고 한달 동안 일한 적도 있다. 시급제 개념이라서 쉬면 쉬는 만큼 손해였기 때문이다. 여력이 닿는 한 잔업, 야근, 특근을 많이 해야 '남는 장사'라고 말한다. 다친 부위가 왼손이라 일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남들 쉬는 휴일에도 자주 일하고, 가족과 오붓하게 밥먹을 시간도 별로 없습니다. 신문을 통해 겨우 세상을 접하는데 언론이 너무 한다는 생각이 안들 수가 없더라구요. 놀 거 다 놀면서 6천만원을 받는다면 누구든 우리 공장에서 일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로보트'처럼 일하기에 재교육 기회도 없고 친구, 가족들과 멀어지는 것을 감내하며 4천몇백만원을 버는 게 그게 그렇게 나쁜 일입니까"
역시 2공장에서 만난 입사 9년차 한성덕 씨(34). 그는 "평소 친구들 만날 시간도 별로 없지만, 지난 추석 때 고향에서 만난 친구들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며 "맨날 술사라, 밥사라…. 그 뒤로 월급명세서를 한동안 지니고 다녔다"며 씁쓸해 했다.
그는 당장 다가오는 명절이 제일 두렵다. 내년 설날에도 "월급명세서를 들고 가야할 판"이라는 그의 월급은 주당 2~3번 잔업, 주말과 휴일 특근을 월 평균 2회 정도해서 월 200만원이 조금 넘는다.
'1000만원 인상, 생산직 노동자 평균 연봉은 6000만원'. 현대차 노동자들은 언론에 잘못 알려진 연봉액수 때문에 지금도 친인척들이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하소연한다. '술사라, 밥사라'는 기본이고, 다른 한 노동자는 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그렇게 돈도 많이 벌면서, 왜 아직 집도 못 샀냐, 집에는 쥐꼬리 만큼 돈을 보내냐"고. 그는 아직도 전셋집에 산다.
노동귀족 대신 노동환자만이…
작년 말 연 361일 일해오다 숨진 고 엄광섭 씨는 유난히 과로사가 많았던 지난해 현장을 대표한다. 올해 10월 사망한 고 김종만 씨는 현재 과로사 불승인판정으로 재승인 신청 중이고, 지난달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인 김기대, 황봉영씨도 과로로 추정된다. 현장 노동자들은 대표적인 과로사 요인인 심장마비, 뇌출혈 등 순환기 계통 질환이 언제 복병처럼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순환기 질환 뿐 아니라, 업무와 직간접으로 연관 있어 보이지만 당장 발현하지 않는 수 많은 질환이 도사리는 현장…. 회사는 그런 '부고'소식들에 자주 '개인 질병' 딱지를 붙이곤 한다.
![]() |
|
컨베이어벨트가 있는 공장은 근골격계 질환에 걸리기 더 쉽다. 사진은 라인에서 일하고 있는 한성덕씨 ⓒ미디어다음 김준진 | |
그도 그럴 것이 외장 등 컨베어 라인에 근무하는 이들은 화장실 등 급한 용무가 아니 이상 2시간 작업에 주간은 10분, 철야는 20분을 쉰다. 쉬는 동안 임시 네트를 쳐놓고 비좁은 공간에서 족구를 하고, 만화책을 보기도 한다. 반면 작업은 일정하게 반복되는 업무를 동일한 근육과 운동량으로 마치 기계처럼 움직인다. 잠깐 라인에서 빠질 용무가 생기면 대체 근무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조장이 때때로 그 공백을 메워주기도 한다. 연속성을 가진 컨베어 라인에 구멍이 생긴다는 것이 곧 불량품, 생산차질을 말하는 것이기에 열외는 쉽지 않다.
올해 만 15년차가 넘은 한 노동자는 "올해 목표 연봉이 4800만원"이라고 말한다. 하루 열 시간씩 한달 중 29일을 일할 작정이다. 그는 엔진 변속기커버 만드는 주물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여름엔 당연히 찌는 듯하고, 분진 때문에 문을 닫을 수도 없는 겨울엔 굉장히 춥다"며 한 번 직접 생산 현장을 겪어보고 난 뒤 자신들을 비난해 달라고 했다.
근골격질환을 담당하는 노동안전실장 윤복근 씨는 "현재 울산대 병원 중환자실에 3명이 입원해 있다. 그 중 한명은 지난 7일 기계압착으로 의식이 없는 중상"이라며 "올해 800여명의 산재환자가 발생한 울산 공장이 여기서 1등이다. 산재 최소화를 '노사공동사업'으로 꾸준한 관심을 갖고 개선하지 않는 한 얼마나 더 큰 불행이 닥칠지 모른다"며 현장의 상황을 대변했다.
울산의 한 식당에서 만난 이상혁씨(59)는 "당시 현대차 직원을 가족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은 언론 오보에 대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시큰둥해 했다"며 "실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연봉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려 떠들고 그러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생산직만 피해자? 우리도 피해자
회사 홍보관계자(울산) : 울산 쪽에서 임단협 결과를 먼저 자료로 배포함에도 불구, 우린 아무 것도 모르다 뒤통수 맞은 격이었다. 서울 기자들은 우리가 아닌 서울 본사에서 상대하는 것도 한 이유지만, 여기서는 지역 언론사들의 확인요청 전화에 응한 것이 전부다. '연봉 6000만원', '휴일 일수'에 관한 언급이 우리 쪽에서 나간 적은 절대 없다. 실제로 임단협 막바지에는 다른 데 신경 쓸 겨를도 없다.
회사 홍보관계자(서울) : 당시 현대 기업 전체가 'MH'(정몽헌) 사건으로 뒤숭숭하고 바빴다. 기자들 역시 상가에서 기사를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제공한 자료는 IR(기업설명회) 등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02년 총 매출액에서 회사가 부담하는 전체 노무비용, 즉 '인건비'였다. 여기에는 '연봉 + 각종 복리후생비(학자금, 의료비, 퇴직금, 기타)'이 포함돼 있다. 이를 모 기자가 '인원수'로 나눴고, 임단협으로 올해 인상된 금액에 성과급, 격려금 등을 모두 더하다 보니 올해 1000만원 인상, 평균 연봉 6000만원이라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속보로 다루다 보니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기사가 나갔고, 이를 언론들이 따라 쓰면서 큰 기사거리로 다룬 셈이다.
4년차 사무직 : 예전에는 신입사원 연수 때 한달 간 생산라인에서 일했다고 한다. 우리는 2주간 일할 예정이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당시 노사분규로 1주일간 일했다. 막노동 아르바이트 경험도 많았지만, 신체의 특정부위만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생산라인 노동은 육체적으로 정말 고됐다.
생산직 노동자 아내 : 토요일 철야라도 하고 오면 아이를 데리고 조용히 나갔다가 점심시간이나 오후 늦게 남편이 일어날 때 즈음에야 다시 들어간다. 고생하는 데 잠이라도 편하게 자라는 생각에서다. 솔직히 현대차 직원들이 많이 모여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서로 비교도 된다. 돈도 돈이지만 남편 몸 축내면서까지 부자 되고 싶은 아내는 없을 것이다. |
첫댓글 흑흑 전 나홀로 주5일제를 할려고 하는데..묵고 살려고 일요일 근무는 하고 있습니다.(철야근무) 토요일은 정상 피치라서 무척 힘들고 일요일은 조금 할만하거든요..이번달은 계속 철야..ㅠㅠ
에스테반님이 현대차 근무하시는군요. 언론의 일방적 여론몰이에 많이 답답하셨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많은 수가 자신도 노동자면서 노동문제에 대해서 너무 편협한 시각을 가진 것 같아요. 건강잘 챙기세요
에스테반님~ 화이팅~~~
현장에서의 어려움과 현실의 벽과 싸우고 계시네요, 어쩌면 '모비스'라는 멋진 종목의 발굴도 현장에서의 치열한 노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