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브라질 월드컵 개막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월드컵' 하면 아직도많은 사람들은 2002년 6월을 떠올린다. 월드컵 첫 승과 16강이라는 목표를 넘어 4강에 도달했던 한국 축구의 위상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당시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준 2002년의 영웅들은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1. 이운재 | 2002년 한일월드컵 준비 기간 내내 김병지와 첨예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지만 대회가 시작되자 전 경기에 출전하며 확실한 1인자로 올라섰다. 이후 독일월드컵에서도 맹활약하며 아시아의 거미손으로 이름을 날렸다.하지만 2007년 아시안컵 대회 도중 몇몇 선수들과 함께 술을 마신 것이 뒤늦게 밝혀져 대표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지역최종예선을 앞두고 대표팀에 복귀, 베테랑의 힘을 보여주며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2011년에는 프로 데뷔 후 줄곧 몸 담았던 수원 삼성을 떠나 전남 드래곤즈에서 선수 생활을 한 뒤 2012년 은퇴했다.
2. 현영민 | 건국대 재학 시절 히딩크 감독에 의해 전격 발탁됐고 울산 현대에 입단한 뒤 월드컵 무대까지 밟았다. 단 1초도 출전하진 못했지만 월드컵이후 정확한 크로스와 롱 스로인을 앞세워 K리그 정상급 풀백으로 올라섰다.2010년 FC서울로 이적했고 지금은 전남드래곤즈에서 중이다.
3. 최성용 | 양 측면 수비와 중앙 미드필더를 볼 수 있고 크지 않은 체구지만대표팀 내 최고의 체력과 맨마킹 능력을 자랑했다. 이영표, 송종국, 이을용의맹활약에 월드컵 본선에서 출전 기회는 없었다. 2003년 일본인 탤런트 아베미호코씨와 결혼했고 2006년까지 수원 삼성에서 활약한 뒤 일본(요코하마FC,자스파 쿠사츠)에서 주로 활약했다. 강원FC 코치를 거쳐 수원 삼성 코치로 활동 중.
4. 최진철 | 홍명보, 김태영과 함께 홍태철 트리오로 불리며 철벽 수비라인을구축했다. 당시 대표팀 최장신(187cm)으로 상대 스트라이커와 수 많은 공중전을 펼쳤다. 16강 이탈리아전에서 크리스티안 비에리와의 맞대결을 백미였다.2004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가 2005년 복귀, 독일월드컵에도 참가했다.2007년 전북 현대에서 은퇴한 그는 2009년 강원FC의 창단 코치로 합류했다.현재는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지도자로 일하고 있다.
5. 김남일 | 박지성, 안정환과 더불어 2002 한일월드컵이 낳은 최고의 스타.시원한 마스크와 남자다운 언변, 카리스마로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다. 2003년네덜란드 엑셀시오르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를 노크했다가 돌아온 뒤 2005년전남 드래곤즈에서 수원 삼성으로 이적해 3년 뛰다가 일본, 러시아 무대를 거쳐 2012년 K리그로 복귀해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다. 2014년부터 전북 현대에서 활약 중. KBS 아나운서 김보민씨와의 결혼으로 화제가 됐다.
6. 유상철 | 폴란드전에서 쐐기골을 기록했고 중앙 미드필더로서 김남일과 뛰어난 호흡을 자랑했다. 이후 K리그(울산 현대)와 J리그(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오가다 2005년 울산에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다양한 방송활동(날아라슛돌이 등)과 유소년 지도자(춘천기계공고, 유상철축구교실)를 겸업하다가2011년 7월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현재 방송 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 중이다.
7. 김태영 | 이탈리아전에서 상대 선수(비에리)의 팔꿈치 가격에 코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하고도 투혼을 발휘해 박수 갈채를 받았던 수비라인의 파이터.뛰어난 운동능력과 집념, 스피드로 무장했었다. 스페인전부터는 붉은색의 안면 보호 마스크를 쓰고 나와 ‘타이거 마스크’라는 별명도 얻었다. 2005년 전남에서 은퇴한 뒤 지도자로 변신했고 올림픽 대표팀 수석코치를 거쳐 현재는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다.
8. 최태욱 | 이천수와 함께 부평고 시절부터 최고의 유망주로 꼽혔다. 빠른발과 정확한 슈팅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20세의 나이에 대표팀에도 승선했다.월드컵에서는 터키와의 3,4위전에 교체 출전했다. 월드컵 이후 기복 심한 모습을 보였지만 전북 현대 이적 후 부활에 성공했고 FC서울을 거쳐 지금은 울산에서 뛰고 있다.
9. 설기현 | 16강 이탈리아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다. 벨기에(앤트워프,안더레흐트)를 거쳐 잉글랜드(울버햄프턴, 레딩, 풀럼)에서 활약하며 유럽 무대에서 긴 시간 활약했다. 특히 2부 리그(울버햄프턴)를 거쳐 프리미어리그까지 밟으며 유럽에서의 새로운 성공사를 보여줬다. 레딩 시절에는 갓 승격한팀의 에이스 역할을 맡으며 맹활약했다. 이후 사우디 아라비아(알 힐랄)에서도 활약했고 2010년부터는 K리그에 입성,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 현대를 거쳐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다.
10. 이영표 | 월드컵 이후 10여년 간 한국 축구 부동의 풀백으로 활약했다.당시 히딩크 감독이 공격수가 아닌 측면 수비수에게 10번을 줘 화제를 모았다. 지도자들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선수. 박지성과 함게 PSV에서 활약했고이후 잉글랜드(토트넘), 독일(도르트문트), 사우디 아라비아(알 힐랄), 미국(밴쿠버 화이트캡스) 등에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마쳤다. 현재 KBS 축구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11. 최용수 | 황선홍과 함께 90년대 한국 축구를 이끈 대표 스트라이커. 하지만 한일월드컵에서는 안정환, 설기현, 박지성 등 젊은 후배들의 등장으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일본(제프 이치하라, 주빌로 이와타)에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2006년 FC서울로 복귀, K리그에서 은퇴했다. 서울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 2011년 황보관 감독 사임 후 감독대행으로 부임해 뛰어난 지도력을보였고 이후 정식 감독으로 취임해 팀을 이끌고 있다.
12. 김병지 | 골키퍼라는 포지션에 최초로 스타성이라는 개념을 심어준 개성넘치는 스타. 한일월드컵에 참가했지만 벤치에서만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K리그에서는 줄곧 최고의 골키퍼 위치를 점했다. 2007년 허리 부상으로은퇴 위기도 맞았지만 불굴의 집념으로 복귀, 2009년 K리그 통산 500경기에출전하며 살아 있는 역사가 됐다. 현재 K리그 최고령 선수로 전남 드래곤즈에서 활약 중.
13. 이을용 | 2002년 월드컵에서 1골 2도움을 기록, 한국 선수로는 가장 많은공격포인트를 올렸다. 길었던 무명생활과 한때 축구 선수를 그만두고 밑바닥인생을 살았던 인간 드라마가 월드컵 내내 화제였다. 대회가 끝난 후 터키의트라브존스포르에 입단해 좋은 활약을 펼쳤고 UEFA컵 무대도 밟았다. 이후 K리그로 돌아와 FC서울과 강원FC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2011년 고향팀 강원FC에서 은퇴했고 강원의 코치 겸 스카우트를 맡기도 했다. 현재는 유소년 축구지도자로 활동 중이다.
14. 이천수 | 뛰어난 재능과 당돌한 플레이로 주목 받았던 당시 대표팀의 막내. 2003년 여름, 당시 한국 축구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스페인의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한 뒤 누만시아에서도 임대 선수로 뛰었다. 2005년 울산으로 복귀해 팀을 K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K리그 최고의 스타에 등극한 뒤2007년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 입단하며 다시 유럽 무대에 입성했다. 그러나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K리그 복귀한 뒤에는 수원 삼성,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었다. 2009년 전남 코칭스태프와의 충돌 후 임의탈퇴를 당했고 사우디아라비아(알 나스르), 일본(오미야 아르디자)를 거쳐 현재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다.
15. 이민성 | 1998년 도쿄대첩의 영웅으로 각인되는 수비수. 한일월드컵에는주전 스리백의 백업 멤버로 참가했다. 최진철의 체력이 고갈된 독일전에 교체투입됐고 터키와의 3, 4위전에 풀타임 출전했다. 월드컵 후에는 K리그 소속팀(포항 스틸러스, FC서울)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성공적인 변신을 했다. 2008년 서울에서 은퇴했고 이후 용인시청과 광저우 헝다의 코치를 거쳐 현재 전남드래곤즈 코치를 맡고 있다.
16. 차두리 | 한일월드컵 당시 고려대 소속으로 이천수와 더불어 유이한 아마추어 선수였다. 불세출의 스타 차범근의 아들로 주목 받았고 대회 기간 동안놀라운 스피드와 힘을 선보이며 축구 선수로서의 잠재력을 나타냈다. 대회 후독일 분데스리가로 건너간 차두리는 프랑크푸르트, 마인츠, 프라이부르크에서활약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주전 풀백으로 활약한 그는 대회 후 셀틱에 입단, 후배 기성용과 멋진 호흡을 보여주며 2011/2012시즌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현재 FC서울에서 활약 중이다.
17. 윤정환 | 탁월한 패싱감각을 앞세운 플레이메이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미드필드 운용 전략에서는 중용되지 못했다. 한일월드컵에서 단 1분도 뛰지못했다. 세레소 오사카에서 뛰다 2003년 성남 일화로 이적하며 K리그에 복귀,이후 전북 현대에도 몸담았다. 2006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사간 토스에서플레잉코치로 활약했다. 2010년 사간 토스 감독으로 취임, 2011년 팀을 1부리그로 승격시키며 팀의 영웅이 됐다.
18. 황선홍 | 폴란드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는 월드컵 4강으로 가는 첫 돌을놓았다. 4강 신화를 이끌며 대표팀에서 받던 비난을 일거에 날린 그는 2002년명예로운 현역 은퇴를 선택했다. 지도자로서의 변신을 준비하던 황선홍은2008년 K리그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프로 감독으로서 데뷔했다.2011년에는 친정팀 포항으로 둥지를 옮기며 감독 인생의 2막을 열었고 2013년팀을 K리그 우승으로 이끄는 등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 안정환 |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미남 스타. 골을 넣으면 아내를 위해 결혼 반지에 키스하는 세레머니로 ‘반지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일월드컵에서 미국전, 이탈리아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팀 내 최다 득점자에 올랐다. 특히 이탈리아전에서는 연장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 헤딩 골든골을 기록해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당시 소속팀이던 이탈리아 페루자와의 계약 분쟁으로 월드컵 이후 무적 신세가 되는 불운을 겪었다. 일본(시미즈 S펄스, 요코하마 F 마리노스), 프랑스(FC메츠), 독일(뒤스부르크), 중국(다롄 스더)를거쳤고 K리그의 수원 삼성, 부산 아이파크에서도 뛰었다. 은퇴 후 개인사업과K리그 명예 홍보대사 등을오 활동했고 현재는 MBC 축구해설위원을 맡고 있다.
20. 홍명보 | 한국 축구의 영원한 리베로. 한일월드컵 당시 주장으로서 팀을이끌었고 스페인전에서는 4강 진출을 결정짓는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켰다. 2002년 황선홍과 함께 대표팀에서 은퇴했지만 2003년 미국으로 건너가MLS의 LA갤럭시에서 2년간 뛰며 한국, 일본, 미국을 거치는 현역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2005년 핌 베어벡 코치의 적극적인 권유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독일월드컵 대표팀에 코치로 합류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 U-20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그해 U-20 월드컵 8강 진출의 성과를 냈다.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했고 2013년에는 국가대표팀 감독에 부임했다.
21. 박지성 | 한일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 최고의 영웅. 포르투갈전에서 16강진출을 확정짓는 결승골을 터트렸다. 거스 히딩크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번에 입단했고 성공적으로 유럽 무대에 적응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4/2005시즌에 PSV가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2005년 여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도장을 받아 잉글랜드 최고의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2012년 프리미어리그 QPR로 이적한 뒤 2013년부터는 임대 선수 신분으로 네덜란드 PSV에서 뛰고 있다. 대표팀에서는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22. 송종국 |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었던 루이스 피구를 꽁꽁 묶으며 일약 세계적인 선수로 도약했다. 월드컵 직후 당시 멤버 중 최고 이적료를기록하며 네덜란드의 페예노르트에 입단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모습을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2005년 K리그로 돌아온 그는 수원 삼성, 울산 현대를거쳤다. 2008년에는 수원의 주장으로서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알 샤밥), 중국(텐진 테다)에서도 활약했다. 2012년 초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현재는 TV 예능프로그램과 MBC 축구해설위원 등 방송인으로 활약 중이다.
23. 최은성 | 이운재, 김병지의 뒤를 받치는 써드 골키퍼로 한일월드컵에 참가했다. 1997년 프로 데뷔 후 줄곧 대전 시티즌에 몸 담으며 K리그 최고의 원클럽맨으로 각광을 모았다. 하지만 2012년 대전과의 계약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으로 은퇴 위기에 몰렸다가 극적으로 전북 현대로 이적하며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감독. 거스 히딩크 | 19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으로 한국에게 0-5 참패를 선사했던 감독. 2000년 12월 월드컵을 개최하는 대한민국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한국축구의 강점을 극대화한 토탈사커를 내놓았고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연출했다. 대회 후 PSV 감독으로 복귀해 네덜란드 무대를 정복했다. 독일월드컵 때는 호주 대표팀을, 유로 2008 때는 러시아 대표팀을 이끌며 잇달아 성공사를썼다. 첼시 임시 감독직을 맡아 FA컵 우승을 이끌며 마이더스의 손임을 증명했다. 터키 대표팀 감독을 거쳐 러시아의 부자 구단 안지 마하치칼라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여전히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가며 국내에 히딩크 축구센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드림필드 등을 개설하고 있다. 올 여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할 예정이다.
글=KFA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