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도 미국-캐나다 합동대의 K2 등정과 비극
K2 (8,611m)의 피라미드형 남벽의 우측과 동벽의 경계에 아브루치(남동릉) 능선이 지나고,
좌측 서벽과의 경계에 남남서릉(매직라인)이,
네그로토 콜에서 몇 개의 바위 스퍼와 능선 중간지점의 아이스캡(얼음모자)
또는 머시룸(Mushroom·버섯형 모자)이라 불리는 수평빙원을 지나 다시 웅장한 암릉으로 치솟아 있다.
1979년 프랑스의 정예 클라이머들이 이 K2의 최난코스 8,350m 지점에서 악천후로 퇴각했고,
1981년 일본 남서릉팀이 오른쪽으로 서벽 상부를 횡단하여 남남서릉 8,350m 지점에 도달,
오타니 대원과 셰르파 사비르가 프랑스대의 미등 구간으로 등정했으며,
1986년 레나토(이탈리아)가 이 능선의 8,300m 지점까지 단독 등반한 후
폴란드대의 브뢰츠와 피아세츠키, 보치크(체코)가 초등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74E900C4BEB391A31)
남벽 중앙립과 하키스틱 걸리라는 쿨와르를 지나 아브루치의 정상능선에 연결되는 루트는
1986년 폴란드의 쿠쿠츠카-피오트로브스키 조가 초등했다.
그 우측에 아브루치 능선 상의 숄더(7,900m)로 이어지는 남남동릉이 솟아 있는데,
1981년 프랑스-독일대가 7,400m 지점까지,
1983년 더그 스코트(영국)의 4인조 국제대가 7,600m 지점까지 진출했고,
1986년 유고의 토모 체센이 이 능선을 단독등반하고 숄더에서 남동릉으로 하산했다고 주장했다가
나중에 숄더 조금 못 미치는 지점에서 퇴각했다고 말을 바꾸었다.
1993년 6월6일 미국 스테이시 앨리슨 대장이 이끄는 미국-캐나다 합동대는 K2 BC(5,000m)에 도착했다.
그들은 C3까지만 난코스에 고정자일을 설치하며 아브루치 능선으로 무산소 등정할 계획이었다.
슬로베니아 주축의 국제대가 이미 이 루트에서 등반 중이었다.
미국-캐나다팀은 전진캠프(5,250m)와 C1(6,000m)을 구축했다.
1986년 C1 아래쪽에서 한국팀에 고용된 셰르파 알리가 낙석에 맞아 숨진 사고가 있었고,
5,900m지점에서 당시 이탈리아 대원 중에서 가장 건강했던 푸초 대원이 폐렴(폐수종)으로 사망한 적이 있다.
미국-캐나다팀의 필과 댄이 하우스침니 위쪽에 C2(6,700m)를 구축했을 때
폭풍설이 K2 상부를 강타하여 등반을 일시 중단했는데, 국제대는 심설과 강풍 속에서 계속 사투를 벌였다.
6월13일 국제대의 카르솔리오(멕시코)와 대원 3명은 8,000m 지점에 C4를 구축하고,
다음날 4명 모두 등정에 성공했다.
카르솔리오와 한 대원은 K2 상부에서 비박하고, 다음날 블리자드 속에서 무사히 C4로 귀환했다.
전날 C4로 케케크와 한 대원이 올라와서,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2인용 텐트 한 동에서 6명이 함께 지낼 수 없어
카르솔리오와 그로셀리는 화이트아웃 속에서 C3로 하산을 강행했다.
C4에서 뇌수종 증상을 보이는 케케크 대원을 동료 3명이 침낭에 싸서 끌고 하산했으나 그는 절명하고 말았다.
6월21일 미국-캐나다대의 댄, 필, 짐은 C2를 출발하여 선등대가 설치한 안전한 고정자일을 이용하기도 하며
여러 개의 수직 바위스텝이 있고, 가장 가파른 구간,
즉 블랙 피라미드를 암벽등반으로 돌파하고 C3 예정지(7,450m)에 짐을 데포시켜 놓고 하산한 뒤,
이튿날 앨리슨 대장과 존 하이가 설동을 파고 C3를 구축했다.
그 위쪽 7,529m 지점은 거기에 홀로 남아 있던 백만장자 월프 대원과
그의 구조를 시도하던 3명의 셰르파가 폭풍설로 사망, 최초의 K2 희생자가 발생한 지역이다.
그리고 숄더(7,900m) 조금 위쪽 7,925m 지점은 1938년 미국 제1차 휴스턴대의 최고 도달지점이다.
1986년에는 K2 남벽 초등자 피오트로브스키가 남동릉으로 하산 중에
숄더 아래쪽 빙벽에서 아이젠이 벗겨지며 추락사하기도 했다.
7,711m와 7,468m 지점은 1953년 미국 2차 휴스턴대의 C8와 C7의 위치다.
폭풍설로 C8에 여러 날 갇혀 있던 등반대가 환자 길키 대원을 C7으로 후송하는 과정에서
3개 자일조가 한데 얽혀 추락하는 것을 쇠닝이 혼자서 필사적으로 확보하여 대참사를 가까스로 막았으나,
결국 눈사태로 길키가 실종된 비극의 현장이다.
6월23일 국제대의 괴란 크로프(스웨덴)가 C4로부터 단독으로 등정에 성공한 후
폭풍설이 K2를 강타하여 미국-캐나다대는 또 다시 등반을 중단했다.
7월5일 필, 짐, 댄이 C3에 진출했을 때
악명 높은 K2의 폭풍설은 국제대의 부러진 텐트폴 한 개와 넝마가 된 텐트천 한 조각만을 남겨 놓고 C3의 흔적을 지워 버렸다.
그들은 눈삽으로 2시간 동안 단단한 눈더미를 깊이 파헤치고 설동 입구를 찾아냈다.
7월6일 세 사람은 서로 자일을 묶고,
그 때까지 여러 명의 산악인들이 화이트아웃 속에서 조난당했던 지역에
오렌지색 깃발을 매단 대나무 막대로 촘촘히 등로 표시를 하면서
8시간 동안 2km를 올라 8,050m 부근에 소형 텐트로 C4를 구축했다.
이 부근이 바로 1954년 이탈리아대의 보나티 대원이 셰르파 마디와 정상공격용 산소를 운반하고,
텐트나 침낭도 없이 얕은 눈구덩이 속에서 고통의 밤을 지새웠던 장소다.
또한 1986년 폭풍설로 7명의 산악인이 여러 날 갇혀 지내다가
디엠베르거와 바우어 두 사람만 생환한 비극의 장소다.
필은 소형 텐트에서, 댄과 짐은 아래쪽 국제대의 텐트에서 휴식을 취하고
오전 2시45분 캠프를 출발하여 30~40도 경사의 설사면을 올랐다.
그들 앞 8,200m 지점에 폭 2, 3m, 경사도 45도의 좁은 걸리, 즉 보틀넥(Bottleneck·병목)이 나타났다.
1986년 폴란드의 매직라인 초등자 브뢰츠가 암흑 속에서 동남릉으로 하산 중에 추락사한 곳이 바로 여기다.
그 좌측에는 1939년 미국 산악인 비스너가 셰르파 파상 라마와 8,382m 지점까지 무산소로 진출했던 암릉이 뻗어 있었고,
우측에는 무너져 내릴 듯 위협적인 현수빙하의 빙탑이 솟아 있다.
K2에 적설량이 적은 해에는 보틀넥의 암벽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거나
베르글라(바위 위에 형성된 얇은 얼음)가 형성되어 이 구간이 까다롭지만,
1993년에는 걸리에 심설이 들어차 있어 킥스텝으로 올랐다.
댄 대원은 한 번 슬립했으나 아이스액스로 재빨리 제동을 걸어 무사했다.
그들은 보틀넥을 오른 후 좌측 바위절벽 위쪽으로 트래버스했다.
세락지대 밑을 통과하자 현수빙하와 좌측 설사면 사이에 파우더스노가 들어차 등반이 까다로운 넓은 스노코너가 나타났다.
C4를 출발한 지 12시간만인 오후 2시57분 필 대원이 등정하여 총 아홉 번째 미국인 K2 등정자가 되었다.
짐 대원은 하산하는 필과 마주친 지 15분 후에 8,600m 지점에 올라 댄을 기다렸다.
둘이 함께 등정하여 첫 번째 캐나다인 K2 등정자가 되자고 사전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45분 후 댄 대원이 나타나 그들은 함께 K2 정상을 밟고, 오후 6시15분 보틀넥까지 트래버스를 완료했다.
짐 대원은 누적된 피로로 인해 보틀넥에서 두서너 번 비틀댔지만 무사히 내려와 C4쪽으로 트래버스하면서 위쪽을 쳐다봤는데,
댄이 막 보틀넥 상부에 접어들고 있었다.
안심하고 있던 그는, 잠시 후 무엇이 쾅 부딪치는 커다란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댄 대원이 설사면으로 굴러 떨어지며 점점 가속이 붙어 짐 대원 옆을 쏜살같이 지나
100m 아래 작은 바위에 부딪치고 남벽의 넓은 걸리로 사라졌다.
짐 대원은 급히 200m를 더 내려가 레지에서 그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러댔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짐 대원은 아연실색하여 맥이 풀린 채로 C4로 올라와 필과 2차 공격조인 앨리슨 대장 일행에게 비보를 전했다.
다음 날 허리케인이 눈보라를 일으켜 가시거리 제로상태에서 그들은 어렵사리 C3에 도착했는데
휴식을 취하는 동안 설동 입구에 벗어 놓은 필 대원의 배낭이 강풍에 날아가 버렸다.
7월30일 또 다른 국제대의 요스비크 대장(독일), 아나톨리(카자흐스탄), 메츠거(독일), 로크(호주)가 등정했는데,
메츠거와 요스비크 대장은 하산시 추락사했다.
그 날 스웨덴대의 젠센과 빈드너도 등정했는데, 빈드너는 하산시에 뇌수종 증상으로 추락사했다.
젠센은 보틀넥에서 댄 대원이 떨어뜨린 아이스액스를 발견했다.
그 해 캐나다의 남남서릉 등반대는 네그로토콜 위쪽 400m 지점까지 진출하고 퇴각한 후,
다시 남벽 중앙의 쿠쿠츠카-피오트로브스키 루트로 6,000m 지점까지 진출하고
등반이 여의치 않아 우측으로 남벽을 트래버스하여 남남동릉으로 아브루치 능선상의 숄더에 도달,
남동릉 8,000m 지점까지 진출하고 하산했다.
1994년 스페인대가 이 남남동릉으로 처음 등정했고,
2000년 우리나라의 영호남합동대(대장 박정헌)가 이 루트로 등정했다.
20.2cm x 25.4cm, 110쪽. 1994년 캐나다 탄탈러스 출판사 간행.
이창기 전 강릉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