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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9/22일(목) - “티벳불교의 유구한 역사를 만나다~~”
[ 삼예사 -> 칭푸신산 -> 창주사 ]
남경에서 온 중국 도반인 장지용 거사와 같은 방을 썼다. 황칭 보살이 운영하는 남경 해모정사에서 몇 명 안되는 거사님이고, 황칭 보살님을 도와 여러 굿은 일을 많이 하는 좋은 분이라고 큰스님께서 소개하시며 칭찬을 하신다. 1주일 동안 같이 지내며 보니 참 심성이 착하고 열심히 수행하는 훌륭한 도반이다. 첫날 밤 어떤 인연으로 넨롱스 법과 만나게 되었는 지 이야기 나누며, 이 세상 모든 일이 인과의 소치라는 것을 다시 한번 서로 확인하면서 이렇게 수승한 정법과 스승님을 만난 인연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본격적인 첫날 순례길. 조찬을 하러 내려가자 식당에 티벳인들의 주식인 짬빠와 야크 수유차가 준비되어 있다.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리고 이 음식들이 고산반응 감소에 도움을 준다하니 모두들 호기심 반, 기대 반 티벳식 식사를 맛보았다. 생각보다 괜찮았는 지 많은 분들이 맛있게 드신다.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나 몇가지 밑반찬이 곁들여지니 아침식사가 평소보다 더 풍성해 보인다.
드디어 버스에 탑승하고 출발~~. 첫 행선지는 라싸 남쪽이자 얄롱짱뽀 북쪽 강변에 위치한 삼예사(桑耶寺)이다. 삼예사는 티벳 역사상 처음으로 불.법.승 삼보가 모두 완비된 첫 사원으로 780년경 티송데쩬 왕 시절에 건립되었다. 티벳 불교의 역사에서 삼예사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삼예사를 건립하기 위해 티송데쩬 왕이 인도의 밀교 대성취자인 빠드마삼마바, 즉 연화생 대사를 초청하였고, 연화생 대사가 티벳에 도착하여 여러 가피를 내려 삼예사를 최종적으로 건립하고, 7명의 최초 출가승을 배출하는 등 티벳 땅에 인도 후기 불교의 정수인 금강승 밀교가 전수되었기 때문이다.
삼예사의 건립과 관련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티송데쩬 왕이 삼예사를 건립하기로 결정을 하고, 여러 후보지 중에서 얄롱짱뽀 강변 헤이볼산 옆의 부지를 정한 이후, 인도와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당대 최고의 건축기술자를 모아 사원 건설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왠일인지 낮에 사람들이 열심히 건물을 지어 놓으면 밤만 되면 다시 원래대로 계속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지으면 무너지고, 다시 지으면 무너지고... 도무지 사원 건립이 진척을 보지 못 하자, 왕은 어찌하면 좋을지 대신들과 상의를 하였다. 그러자, 어느 대신 (나중에 지명보살이라로 불림)이 아뢰길 밤마다 사원이 다시 무너지는 것은 필시 마장의 장애로 인한 것이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성취자의 법력으로 마장을 조복받는 방법 밖에 없다면서 이를 할 수 있는 분은 인도에 계시는 밀교 수행의 대성취자로 알려진 연화생 대사 밖에 없다고 추천하였다. 이에 티송데쩬 왕은 신하의 말을 받아들여 연화생 대사에 올릴 많은 공양물을 준비시켜 그 신하가 직접 인도로 모시러 떠나도록 하였다. 신하가 천신만고 끝에 연화생 대사를 만나 티벳 왕의 간청을 전하니, 시절인연이 무르익었음을 안 연화생 대사가 드디어 처음으로 티벳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티벳 국경에 도착하자 입국을 방해하는 곳곳의 산신, 토지신들의 마장을 법력으로 하나씩 조복을 받은 연화생 대사는 삼예사에 이르러 헤이볼산의 산신 등을 위할 바 없는 법력과 신통력으로 조복을 받으니, 그 이후부터는 아무런 문제없이 삼예사 건립이 진행되었다 한다. 낮에는 사람이 짓고, 밤에는 산신 등 비인간들이 건물을 지어 삼예사를 완성하였는 데, 황칭 보살의 부연설명으로는 이런 이유로 삼예사 건물중에는 사람들이 만든 것과 귀신들이 만든 건물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고 한다.
버스가 삼예사까지 가는 동안 차안에서 금강칠구와 섭수자재를 독송하라는 큰스님 말씀에 따라 모두들 소리를 맞추어 독송을 한다. 삼예사 근처에 다다르니 주변 산세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어제 얄롱짱뽀 건너편에서 보았던 그 산들이다.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 보통 산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난다. 버스가 삼예사 담장 옆을 지나간다. 생각했던 것 보다는 길도 넓지 않고,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아침 일찍 와서일까... 버스가 주차장에 도착하여 드디어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하차한다. 주차장에서 우리를 맞이 하는 이들은 길에 배를 죽~ 깔고 편하게 늘어져 있는 검정색의 개들이다. 모두들 주인 없는 들개들이다. 예전이 큰스님 말씀이 티벳 사원 인근에 들개들이 많이 있는 데, 대부분 전생에 그 사원들과 인연이 있어 들개로 태어나 그중 일부는 알게 모르게 사원의 호법신 역할을 한다고 하셨는 데, 아마도 이들이 그들인 모양이다. 중생들의 끊임없는 윤회고통이 이런 것이 아닐까...
각지에서 각자 준비해 온 공양물을 나누어 들고 들어간다. 생각보다 정문크기나 사원 면적은 커 보이지는 않는다. 사원 건물이 평원에 건립되어 있는 것 같아 눈길이 간다. 정문을 들어서니 사진에서 보았던 삼예사 대웅전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그 앞에 광장에 서너개의 하얀색 굴뚝에서 액운을 내쫓고 업장을 소멸해 준다는 나뭇잎을 태우며 나오는 연기와 향내가 사원을 감싸고 있다. 언뜻 보아도 오래되었음 느낄 수 있는 대웅전이다. 다같이 대웅전을 들어서니, 앞이 잘 안 보인다. 한걸음 내딛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법당 안이 어두운데, 그래도 이미 많은 스님들과 참배객들로 부쩍거리고 있음은 알 수 있다. 가이드 말이 전기가 오늘 나갔단다. "허걱~ 천신만고 끝에 온 순례길인데, 법당 안을 제대로 볼 수 없다니..." 이것도 다 인연의 도리라니 생각하며 발걸음을 내딛어 본다. 어둑해도 엄숙하고 경건한 법당 분위기는 고스란히 마음을 적신다. 큰스님을 따라 법당 1층 맨 뒤쪽에 있는 부처님 앞으로 바로 모여 준비한 공양물을 올리고 넓지 않은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바로 약공 회공을 올렸다. 기도문이 안 보여 각자 핸드폰을 이용해 불을 밝히고, 전심을 모아 한줄 한줄 염송해 나간다. 천년 고찰의 어둑한 대웅전 법당 안에서 울려퍼지는 기도 독송의 공덕으로 육도윤회계에서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이 하루빨리 성불해탈하기를 발원해 본다.
약공을 마치고, 황칭보살님이 부처님 불상에 개금을 새로 하고 옷도 갈아드리는 개금불사를 해 드리도록 마무리 하는 동안, 각자 부처님 불상을 중심으로 3번 꼬라를 돌고 앞쪽으로 나와 보니 멋지게 금색으로 된 연화생 대사 불상이 보인다. 황칭 보살님이 모두들 그 앞으로 이끌고는 간단히 설명을 이어간다. 이 연화생 대사 불상은 삼예사에서 제일 오래 된 것이고, 연사 대사의 25대 제자 중 한분이자 엔롱상스님의 전생이신 남카랑빠 존자가 직접 가피하신 불상이라며, 가피력이 수승하니 꼭 인사드리고 가라 한다. 그때 찍은 사진을 지금 다시 보아도 이 연화생 대사 불상은 한눈에도 힘이 넘치고 기백이 느껴지며,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하게 된다. 연화생 대사님이 삼예사에 오신 때가 780년경이니 1,200여년만에 그 자리에서 스승님의 법신을 만나 공양 올리고 기도를 하였으니 잊지 못할 날이다.
1층 참배를 끝내고 2층에 있다는 박불관으로 올라간다. 이름은 박물관이나, 사실은 작은 방으로 된 법당이다. 어제 호텔에서 황칭 보살님이 12년전에 상스님 모시고 라싸 왔을 때 이야기를 여러가지 해 주었다. 그 중 하나가 삼예사에 보물들이 많은 데, 연화생 대사가 쓰시던 지팡이와 각종 법구, 연화생 대사 머리카락 등이 있다는 것이다. 상스님 모시고 왔을 때는 그 유품들을 직접 친견하고 상스님께서 직접 하나하나 설명과 함께 제자들에게 그 유품들로 가피를 해 주셨다 하면서, 요즘에는 직접 보기가 쉽지 않지만 내일 잘 이야기 해 보겠다 하였다. 어제 이야기 한 그 유품들이 보관된 곳이 이 박물관이란다. 그런데, 전기가 안 들어오니 방안에 유품들이 어디 있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주는 황칭보살님이 삼예사 스님 한분을 모시고 와 설명을 하도록 해 준다. 손전등으로 유리벽장 안쪽에 있는 유품을 비추며 연화생 대사 쓰시던 지팡이, 법구 등을 하나씩 설명을 듣다 보니, 또다시 1,200여년 전으로 돌아간 듯 한 착각이 든다.
법구 중에는 하얀 색 소라고동(일명 하이로)도 있는 데, 이것과 연관된 일화를 나중에 황칭 보살에게 들을 수 있었다. 연화생 대사를 인도로 모시러 갔던 대신(지명보살)은 나중에 스승님의 지도하에 큰 성취를 얻었다. 그는 콧물과 기침이 자주 나와 항상 하얀 천을 가지고 다니며 콧물을 닦아내었다. 오랜 세월동안 같은 천을 쓰다 보니 누가 보기에도 그 천은 지저분해 보였다. 이에 제자들이 지명보살에게 "스승님, 가능하면 그 천을 새것으로 바꾸시지요. 너무 더러운 것 같습니다." 라고 하자, 지명보살이 답하길 "오, 너희들이 보기에 이 천이 지저분해 보이더냐? 정말 그렇게 보이느냐?" 라고 하면서 천을 들고 있던 손을 한바뀌 천천히 휘돌리자 그 천이 깨끗한 하이로로 바뀌었다. 그렇게 얻어진 하이로는 이후 법회에서 계속 사용되었고, 그런 소중한 법구가 지금까지 삼예사에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결코 신화가 아니라 진실이다. 생사를 초월한 큰 스승님들은 사실 신통이 자재하시기에 이런 일은 손바닥 뒤집기만큼이나 간단한 일일 것이다. 믿고 안 믿고는 결국 각자의 신심과 청정심에 달린 일이니, 윤회계의 모든 일이 부처님의 가피와 현현임을 진정으로 청청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이런 일화에서 불법에 대해 큰 신심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
법당을 나와 다같이 기념사진 한장을 찍고, 삼예사 내 식당으로 가 라싸에서의 첫 점심을 같이 하고 나오니, 하얀 대형 탑이 눈에 들어온다. 삼예사는 기본적으로 부처님이 머무시는 불국토를 형상화 한 만다라를 실제로 구현한 것이기에 모두 4개의 대형 탑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이 백색 탑인데, 이 또한 엔롱상스님과 깊은 인연이 있다며 황칭보살이 이야기 해 준다. 20여년전 백탑을 중수하여 세우려 하였는 데, 이상하게도 낮에 작업을 해 놓으면, 밤마다 다시 무너지고 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마치, 삼예사를 처음 건립할 때 낮에 지어 놓으면 밤에 모두 무너진 것 처럼... 그래서, 다들 논의하기를 이 백탑을 다시 제대로 세우려면 연화생 대사의 진실화신이 직접 와서 가피를 해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렇게 시간들이 지나는 중 엔롱상스님과 불모님께서 제자들을 이끌로 삼예사로 순례를 오게 되자, 모두들 상스님께 백탑 상황을 말씀드리고 가피를 청하였다. 이에 상스님은 불모님과 함께 백탑 현장 앞에서 직접 금강무(일명 라마 댄스, 한국의 승무 같은 것)를 추고 나자, 모든 공사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백탑을 다시 제대로 세울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백탑 주변으로 탑돌이하는 마음가짐이 예사롭지 않다. 마치 상스님과 불모님께서 상주하시는 생각도 들고, 탑돌이 하는 우리들을 따뜻하게 돌봐주시는 것 같다.
삼예사를 떠나려고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데, 앞쪽에 작은 동산 같은 나즈막한 산이 덩그라니 보인다. 이 산이 삼예사 건립 당시 가장 장애를 많이 일으키던 산신이 머물렀던 곳이고, 티벳 민족들의 건국 설화가 전해지는 헤이볼산이란다. 용화선원 기도집에 있는 "장애를 소멸하는 기도"에 보면 연화생 대사의 행장을 찬탄하는 문구중에 "담쇼하닝의 닝둥에서 산신 탕하얄슈를 조복하고 헤뽀리산의 꼭대기에서는 남녀귀신들을 모두 조복하시니..." 등이 있는 데, 여기에 나오는 헤뽀리산이 지금 보이는 헤이볼산이다. 또한 티벳 민족의 건국설화에 의하면, 오랜 세월전에 명상수행을 하며 철저히 계행을 지키는 원숭이 모습에 반한 나찰녀가 적극적으로 구혼하여 낳은 여섯명의 자식들이 점점 사람으로 진화하여 오늘날의 티벳민족이 되었다 하는 데, 그 무대가 이곳 헤이볼산이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체탕이라는 도시의 뜻이 "원숭이가 뛰어 노는 곳"이라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이런 성스러운 산이기에 그전에 상스님께서 삼예사에 오시면 반드시 헤이볼산을 한바퀴 이상 꼬라를 돌았다고 한다. 이번에는 시간이 안 되어 꼬라를 돌지 못 하나 언젠가 다시 한번 삼예사를 방문하게 되면 꼭 꼬라를 돌 수 있기를 발원해 본다.
차에 올라타 다음 행선지인 칭푸신산(青浦神山)으로 향한다. 삼예사에서 직선거리로는 불과 15km 떨어진 곳이지만, 이곳으로 가는 길은 이제 막 포장길이 만들어진데다 입구까지 산세가 가파르고 험해서 버스가 곡예하는 듯 산 입구를 향해 이동한다.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자 약간 부슬부슬 내리는 빗줄기만 우리를 맞이할 뿐 보통 유명 관광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북적이는 인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럴까? 나중에 알게 된 것이, 이 칭푸신산은 일반 여행객들은 있는 지 조차도 모르는 곳으로 오직 금강승 밀교 수행과 있는 순례객들만 가끔 어려운 길을 헤치고 찾는 곳이라 한다. 심지어 동반하는 가이드조차도 여기는 처음왔다고 한다. 이 곳은 연화생 대사, 예세초겔(이씨춰자) 불모, 무구광 존자(롱첸빠 존자) 등 티벳 불교 닝마빠의 대성취자들이 직접 무문관 수행을 하였던 동굴이 모여 있는 신성한 기도 수행처라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칭푸신산을 올려다 보니,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줄기 사이사이로 무수히 많은 기도 암자들이 보이고, 저멀리 산정상 부근은 신묘한 구름자락에 휩싸여 있어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느낄 수 있다. 고도계를 살펴보니 이미 해발 3,900m를 가리킨다.
황칭보살님 설명에 의하면 이곳 칭푸신산에는 200개 가까운 수행 동굴이 있다고 한다. 산정상 부근 제일 높은 곳에 연화생 대사가 직접 수행하신 동굴부터 해서 그 아래 멀지 않은 곳에 예세초겔 불모 수행처, 그리고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무구광 존자의 수행동굴과 부도탑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예전에 엔롱상스님이 이곳을 방문하셨을 때 현지에서 수행하던 수행자들이 상스님 가피를 요청하면서 무언가 증표를 남겨달라고 하자, 상스님께서 수행 열심히 하라고 하시면서 바위 위에 발을 올려 선명하게 바위 위에 발자국을 남기신 곳이기도 하다 (이 내용은 상스님 전기에 모두 기록되어 있음). 이렇게 수승한 곳에 직접 방문할 수 있다니... 이런 소중한 인연을 이끌어 주신 큰스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차에서 내리자, 큰스님께서 먼저 앞장서 올라가신다. 이곳은 정말 수승한 성지이기에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연화생 대사, 예세초겔 불모 수행 동굴까지는 올라갔다 오자 하신다. 산 입구에 있는 비구니 사원을 간단히 참배하고는 큰스님께서는 한걸음에 앞서 올라가신다. 이미 상당히 높은 곳에 올라왔기에 고산반응이 오신 분들도 있고, 산세가 가파르기에 자신있는 분들만 큰스님을 따라 나선다. 10여분쯤 올라가다 보니 벌써 숨이 턱턱 찬다. 큰스님은 벌써 어디 가셨는 지 보이질 않는 데, 다행히도 남경의 장거사님이 보병이 든 배낭을 매고 큰스님을 쫒아 먼저 올라간 듯 하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숨은 가쁘고... 1,200년전에 연화생 대사님도 이렇게 가쁜 숨을 내쉬며 이 길을 올라가셨을까? 아니면 신통으로 하늘을 날아 올라가셨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숨이 차 올라 힘들어 잠시 숨을 고르려고 멈추어 뒤돌아 산을 내려다 보니, "와~" 하는 탄성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 시원한 장관이 눈 앞에 펼쳐진다. 답답한 가슴이 빵~하고 터진다. 험준한 산세이지만, 좌우로 산봉우리들이 열병식하듯이 차례로 몸을 숙이고, 저 멀리는 얄롱장뽀 강이 유유하게 흐르며, 그 너머로는 5,000미터 이상의 높은 산봉우리들이 호위하듯이 좌우로 넓게 몸을 펼쳐놓고 있다. 칭푸신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하고 수승한 기운을 좌우의 산봉우리와 전면의 강물과 산맥들이 소중하게 감싸고 있는 듯 하여 그런 기운을 전달받았는지 온 몸에 전율이 흐른다. 다시 힘을 내어 30분이상 더 올라가니 가까운 곳에 큰스님과 몇분 법우님들 목소리가 들린다. 고도계는 이미 4,300m를 가리킨다. 같이 만나 산위를 올라다 보니 연화생 대사 수행처를 가려면 아직 더 올라가야 한다. 거리는 불과 이제 얼마 안 남아 보이긴 하지만 시계를 보니 이제는 하산을 해야만 한다. 눈 앞에 보이는 연화생 대사, 예세초겔 불모님 수행 동굴과 옆으로 보이는 무구광 존자 부도탑을 향해 간단히 삼배를 올리고, 큰스님과 장거사가 그래도 가까운 곳에 보병을 묻어다 하시니 그나마 아쉬운 마음을 거두고 하산길에 오른다. 다음번에 올때는 반드시 수행 동굴을 방문할 수 있기를, 또한 엔롱상스님의 발자국을 친견할 수 있기를 발원하며 발길을 돌린다.
칭푸신산 입구에 있는 비구니 사원에는 상스님과 불모님 사진이 소중히 모셔져 있다. 상스님께서 라싸에 오실 때마다 이 비구니 사원에 많은 보시를 해 주셨다고 한다. 워낙 외진 곳에 있는 사원인데다 비구니만 모여 수행하는 곳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기에 상스님께서 항상 마음을 많이 내 도움을 주셨단다. 이런 말씀을 전해들을 때마다 일체 부모중생을 위해 나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조건없이 영원히 중생을 도와주겠다는 보리심을 항상 잊지 않고 실행할 수 있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칭푸신산과 관련해 나중에 큰스님께서 설명해 주시길 칭푸신산에서 연화생 대사와 예세초젤 불모가 수행한 행적이 하현 회공 기도문의 불모님 약전에 모두 나와 있다고 하신다. 실제로 하현 회공 기도문을 살펴보니, 약전의 제2품종 부분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부차전왕칭푸개창동 수무사호성취수지명
(이어 칭푸개창동굴에 가서 불사법을 수행하여 장수지명을 성취하고)
회공 기도문에 나와 있는 곳을 실제로 참배하고 직접 눈으로 스승님께서 수행한 곳을 둘러보았으니, 이 소중한 인연에 절로 머리숙여 큰스님께 감사드린다. 언젠가 다음번에 방문할 때는 이번처럼 시간에 쫓기지 말고 칭푸신산에만 며칠 머물면서 스승님 수행 동굴에서 기도 공양 올릴 수 있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발원해 본다.
아쉬운 발길을 거두고 버스에 올라타 다음 순례지인 창주사(昌珠寺)로 향한다. 다시 얄롱장뽀 강을 건너 체탕으로 돌아오는 동안 피곤함에 한숨 자고 일어나 눈을 뜨니 푸르디 푸른 티벳의 하늘이 반겨준다. 편안한 마음으로 푸른 하늘과 구름을 구경하는 중에, 얼핏 강건너 보이는 구름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자세를 다시 잡고 핸드폰으로 몇장 사진을 찍어 본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역시나~" 큰스님 모시고 순례길을 오를 때마다 항상 같이 따라다니며 도와주시는 용왕님과 호법신들이 모습을 내보이셨다. 불보살님과 스승님의 가피가 신심있는 불제자들에게는 항상 같이 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스승님의 은덕에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을 확인해 본다.
창주사에 도착하니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되어간다. 삼예사와 칭푸신산에서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서둘러 창주사에 도착하였다. 다소 피곤함을 느껴지기에 창주사는 좀 간단히 둘러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왠걸... 나중에 창주사를 모두 둘러보고 나니, 오늘 하루 일정의 대미를 여기서 장식하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 했다.
창주사는 티벳의 3대 천성불변사원(삼예사, 조캉사원, 창주사)중의 하나로 티벳의 33대 왕 송첸캄뽀 재위 시절인 640년 전후에 세워졌으니 1,400년 역사를 가진 고찰이다. 송첸캄뽀는 티벳의 전성기의 첫 문을 연 걸출한 영웅으로서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는 외국에서 온 두명의 왕비가 있었는 데, 한분은 당나라에서 온 문성공주이고, 다른 한분은 네팔에서 온 적존공주이다. 문성공주는 녹색따라보살(뢰도모)의 화신이라고 하며, 적존공주는 백색따라보살(백도모)의 화신이라고 한다. 티벳 역사와 불교사에서 이분들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창주사도 마찬가지이다. 일찍이 송젠캄뽀가 살펴보니 티벳 지형은 본래 나찰녀가 누워있는 형태로 되어 있어 이 나찰녀를 누르지 않으면 나라가 안정될 수 없음을 알고, 나찰녀의 관절에 해당하는 곳에 모두 12개의 사찰을 세워나가게 되는 데, 그 첫번째가 창주사이다. 이곳은 원래 작은 호수이었는 데, 호수에는 5개의 머리를 가진 용이 살고 있어서 사원을 세우기가 곤란하였다. 이에 송첸캄뽀는 대붕새로 변하여 호숫가에 대기하고 있다가 용이 물위로 나오면 그 머리를 하나씩 쫓아 버려 용을 제압하니, 호수의 물도 마르게 되어 사원을 지을 수 있었다 한다.
창주사 건립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며 드디어 창주사에 들어간다.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 너무나도 편안한 기운이 몸과 마음을 감싸돈다. 너무도 도량이 편안하다. 마치 밖으로 돌아다니다 편안한 집에 돌아온 느낌이다. 제일 먼저 순례의 발길이 머문 곳은 직접 말씀을 하시는 뤼도모 불상이다. 어둑어둑한 복도를 지나 1층 법당 뒤쪽으로 들어서자 작은 방 하나가 온통 따라보살상으로 가득차 있다. 그 중 입구 오른쪽편에 많은 분들이 서서 기도 합장을 하고 있다. 그곳에 있는 불상은 큰 뤼도모가 작은 뢰도모를 가슴에 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데, 가슴에 위치한 작은 뤼도모 보살상이 말씀을 하시는 분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실제로 12년전 엔롱상스님께서 창주사를 방문했을 때 상스님께서 뤼도모 불상 앞에서 합장 공양을 올리자 작은 뤼도모 보살님이 친히 말씀을 하셨다며, 직접 목격한 황칭 보살님이 설명을 해 준다. 모두들 경건한 마음으로 신심을 모아 뤼도모 보살님께 공양을 올리고 합장인사를 드리며, 좀처럼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 한다. 끝없이 윤회 고통을 받는 중생을 보며 대비심에서 저절로 흘러나온 관세음보살의 눈물이 변신하여 화신의 모습을 보이신 분이 따라보살님이기에, 이처럼 귀중한 뤼도모 보살상 앞에서 하루빨리 윤회고통에서 해탈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합장 기도를 올린다.
뤼도모 보살상을 뒤로 하고, 2층으로 올라간다. 2층 야외에서 마주하는 법당의 겉모습과 파란 하늘이 너무도 편안한 조화를 이룬다. 아름다운 모습에 반한 우리 보살님들은 삼삼오오 모여 연신 사진을 찍는다. 밝게 웃는 모습들에서 마음의 평안함이 우러나오는 듯 하다. 잠시 휴식을 뒤로 하고 서둘러 2층 뒤 건물 별채에 있는 법당으로 들어간다. 법당에 올라가니 벽에 걸려있는 한폭의 아름다운 탕카가 우리를 먼저 맞이한다. 뤼도모 보살을 그린 탕카로서, 문성공주가 직접 한올한올 수를 놓아 그린 탕카이다. 중국 국보로 지정된 이 탕카 앞에 많은 분들이 합장 기도와 공양을 올리고 있다. 문성공주는 겨울에는 이곳 창주사에서 생활을 하였다 하니, 그 추운 겨울 부처님을 향한 청정한 신심을 바탕으로 정성을 다해 이 아름다운 탕카 자수를 완성하였으리라. 탕카 속의 뤼도모 보살님이 따뜻한 웃음과 함께 우리를 내려다 보며 가피를 보내주신다.
뤼도모 탕카를 지나 작은 방안으로 다같이 들어간다. 그곳에는 라싸에서 제일 유명한 연화생 대사 불상이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연화생 대사 생존시 당신께서 직접 가피하여 조성된 것으로, 불상 점안식을 마치고 직접 말씀하시길, "이 불상은 나와 한치도 다름이 없으니, 나 연화생 대사이노라"라고 하셨다 한다. 그리 크지 않은 불상이나, 상호가 너무도 원만하고, 특히나 얼글 가득 편안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이 바라보는 이들에게 무한한 가피를 내려주시는 듯 하다. 가만히 불상을 바라보며 합장을 하니, 나도 모르게 감사의 웃음이 번진다. 이 연화생 대사 불상 또한 직접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2년전 엔롱상스님께서 방문하셔서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하시자, 연화생 대사 불상은 분명한 소리로 상스님의 법명을 부르셨다고 한다. 연화생 대사의 진실화신이 본인 앞에 와 공양을 올리니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하시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닐까... 우리 같은 범부는 우리를 부르는 연화생 대사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는 없으나, 불상 앞에 참배하고 공양 올리는 모든 인연있는 제자들에게는 아마도 똑같은 마음으로 모두들의 이름을 불러 주시리라 생각된다.
이곳에서도 역시나 황칭보살님의 안배로 개금불사를 보시하였다. 보시 안배가 끝나자, 관리하시는 스님께서 우리들을 데리고 한명씩 연화생 대사 불상 앞으로 들어가 참배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 하신다. 조금 전에 참배는 불상 앞으로는 나아갈 수 없었지만, 이제는 직접 불상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공양을 올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두들 한명씩 참배를 하고 나오니, 바로 개금을 시작하신다. 얼굴 주위부터 소중하게 새로운 금칠을 해 드린다. 정성스런 손놀림에 바라보는 우리 마음도 같이 청정해 진다. 얼굴 부분만 개금을 마친 후, 나머지는 금주 토요일 하현 회공일에 맞추어 한번 더 전신 개금을 해 주시겠다고 한다. 개금을 하는 동안 우리는 큰스님을 모시고 불상 앞에서 소리를 맞추어 금강칠구와 연사심주를 정성껏 염송하니, 연화생 대사님이 고맙고 기특하다고 말씀하시는 듯 하다. 섭수자재 기도문 염송을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오는 발걸음이 모두들 가벼워 보인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연화생 대사 불상과 인연에 지극한 마음으로 감사드린다.
가이드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다른 일행보다 늦게 창주사 일주문을 나서는 데, 저 뒤에서 황칭 보살님이 아까 개금 불사 도와주던 스님과 같이 나온다. 스님과 몇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황칭 보살님이 문성공주가 쓰시던 방을 볼 수 있냐고 물어보자, 그 스님께서 선뜻 보여주겠다고 하시며 앞장 서는 것이 아닌가… 조금전 가이드가 ‘여기에 문성공주가 쓰던 방이 유명한 데, 오늘 시간이 늦어 못 봐서 아쉽다’라고 하였는 데… ㅎㅎ. 아마도 개금불사하고 정성스레 참배하던 모습들이 보기 좋았나 보다. 일주문을 나서 바로 왼쪽 건물로 가 보니, 아주 오래된 방 하나가 문이 잠겨 있는 데, 스님이 직접 문을 열어 우리를 들여보내준다. 그리 크지 않은 방이다. 현재 보수 공사 중이라 조금 어수선하지만, 벽에 그려진 벽화들이 오랜 세월을 지내온 곳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 방은 문성공주가 매년 겨울이면 와서 머물며 수행하며 지내던 곳이고, 송첸캄뽀 왕이 오시면 같이 생활하고 수행하던 공간이라고 한다. 그 당시 모습 그대로이고, 벽화 역시 그때 그려진 것이데 오래되어 색도 바래고 형상도 흐려졌지만 40여분의 송첸깜뽀 왕의 모습을 살펴보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두 분이 수행하시던 공간이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관세음보살(송첸캄뽀)과 뤼도모 보살(문성공주)이 같이 상주하며 수행과 중생교화를 하셨던 곳이니 참으로 수승한 성지라 할 수 있다.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비심을 쫓아 보리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방안에서 세번 꼬라를 돌아본다.
버스에 올라타 저녁식사 장소에 도착하여 식사하면서 오늘 하루 일정에 대해 이야기들을 나눈다. 하루만에 너무도 의미가 큰 세 곳이나 참배하고, 참배하는 곳마다 성지 순례의 가피를 직접 느끼고 다녀서인지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칭푸신산에서 연화생 대사 등 수행동굴을 직접 참배 못한 것과 창주사의 연화생 대사 불상과 뤼도모 보살 탕카를 사진에 담을 수 없었던 것이 아쉽지만, 마음 속 깊이 가피와 깨달음의 울림이 깊이 남아 있기에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이런 수승한 인연을 만들어 주신 큰스님께 감사드리며, 내일의 순례일정을 기대하며 라싸 성지순례의 첫날을 마친다.
첫댓글 오늘은 꿀감동. 마치 그 자리에 저도 같이 있는듯 감동이 전해지네요.
나도 발원해야지. 이생에 못하면 내생에서라도 순례할 수 있기를..
문성공주님께서 수놓으신 뤼또모님 모습을 뵐 수 있게 되기를..
감사합니다_()_
시간되면 꼭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