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은 한국인의 건강지킴이
윤숙림
한국문인협회 회원 44명이 제25회 인삼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2005년 9월 3일 고향인 충남 금산으로 향했다. 고려인삼의 성가(聲價)가 높은 만큼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하여 매스컴이 떠들썩하게 홍보도 요란했는데 축시를 낭송하실 문협 이사장님과 함께 문인들이 초청받은 기회라는데 의미가 큰 것 같다.
9월이면 처서도 지났으니 가을 기운이 완연하련만 늦더위가 대단해서 한여름 못지않은 고온이니 항상 지구의 온난화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산길을 따라서 거의 3시간 걸려 충남 금산에 도착하자마자 오늘을 있게 해준 시인 장월근 님께서 버스에 올라 와 멋진 환영사로 여독을 풀어 주신다. 과연 금산 인삼의 힘인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듯 연세에 비해 아주 젊고 건강해 보이신다고 초면에도 덕담이 오고 갔다.
우리 일행은 축제가 열리고 있는 현지에 가서 가이드 역할을 해주실 이 선생님의 안내에 다라 유적지 답사에 들어갔다.
700의총의 아름다운 능과 자연박물관에 소장된 임진왜란 유품 등을 보며 400여 년 전의 현장을 눈앞에 그대로 그려보았다. 우리나라가 그래도 이만큼 잘 발전하고 국위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기에 혼은 묻고 계시는 애국선열들께서 지하에서라도 후손들을 보위해주신 은덕이 아니었을까!
산자락을 지나서 멀지 않은 곳에 천년의 수령을 지닌 은행나무가 위용을 자랑한다. 굵은 가지마다 받침대로 힘을 견뎌내듯 오늘 이 시간까지 역사의 현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 민족의 얼이 느껴졌다.
대충 관광을 마치고 점심때가 되어 그 곳 현지의 문인들과 함께 삼계탕을 먹었는데 서울에서 먹던 것보다 과연 인삼 향이 더욱 짙게 느껴졌던 것도 작가들의 예민한 감수성 때문만은 아닌듯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인삼 밭을 향하여 바깥 경치를 훓으며 약 30분 쯤 달려 행사 장소에 도착하니 밭에서 금방 캐가지고 온 하얀 수삼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우리도 팔을 겉어 부치고 수삼 캐기에 나섰다. 물론 요즘은 시중에서 각종 인삼 제품을 손쉽게 살 수 있지만 인삼의 수확철에 행여나 잔뿌리 다칠세라, 조심스레 직접 수삼을 캐어본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인삼은 이름 그대로 우리 인체와 꼭 같이 생겼는데 한 뿌리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맨 꼭대기는 노두, 가은데 부분은 몸통, 뿌리 부분은 미삼이라고 부른다. 약으로 쓰이는 대부분의 약재들은 어느 한 쪽으로만 작용을 하는데 비해, 우리 몸에 기를 살려주는 인삼은 고혈압 체질이나 저혈압 체질은 막론하고 함께 쓸 수 있는 약리작용을 가졌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인삼은 사상방으로 보는 체질 중 특히 소음인에게 최고의 보약이어서 전형적인 소음인인 남편에게 인삼만큼은 철마다 꼭 챙기곤 했던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요즘은 미국으로 이민 간 막내 시누이와 남동생에게 보내는 훈훈한 선물로도 한몫을 톡톡히 해낸다.
축제의 장터에서 우리가 많이 구입한 것은 홍삼제품이었다. 약간 비싼 간식꺼리가 되어 줄 홍삼정과와 홍삼캔디도 인기 품목이고 큰 마음 먹고 홍삼 엑기스를 사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아카시아 꿀에 재어 두고 먹으려고 내 손으로 캔 수삼을 한 보따리나 샀다.
우리 일행은 틈이 날 때마다 기념촬영 하랴, 주어진 시간 내에 알뜰 쇼핑하랴, 부산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일몰 후에 시작된 오프닝 행사에서 신세훈 이사장님의 자작시 낭송이 끝나자마자 귀경을 서둘러야 했는데…….
이성림 회장과 나는 인삼의 향기에 취해서 금산의 밤길을 걷다 잠깐 사이에 일행을 놓치는 바람에 모든 이에게 걱정을 끼치게 되어 더욱 더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되었다. 만약 핸드폰의 없던 시절이었으면 꼼짝없이 한 밤 중에 금산의 미아가 될 뻔 했다.
어찌어찌 택시를 타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관광버스 주차장으로 돌아와 이산가족 상봉을 했는데 우리가 반대방향으로 걸어간 거리가 족히 2킬로가 넘었다니 우리를 유혹한 어둠의 힘이 신기하기만 하다. 아니, 우리를 미혹하게 한 것은 금산 굽이굽이에서 스미듯 불러대는 인삼의 신비한 힘이었을까.
닭다리의 행방
윤숙림
명순 씨는 오늘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사모님이 적어놓은 오늘의 메뉴를 읽어 내려가면서 얼굴에는 살짝 미소를 띤 채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시장
입구에서 단골 야채가게 아줌마에게 눈인사를 한다. 아줌마는 명순 씨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면서 뭔가 찾아내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한다.
"아니, 하룻밤 사이에 왜 그렇게 얼굴이 활짝 피었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봐? 딴 사람 같네 그려" 여기 저기서 호들갑 섞인 일사들을 받는 명순
씨의 발걸음은 날아오를 듯 가볍다. 정육점 아줌마는 명순 씨가 요즈음 혼자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혹시 수상한 로맨스라도 있지 않았나 하
는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쫓고 있다.
명순 씨는 지난감 사우디의 해외개발 공사장에서 건강하게 귀국한 남편과의 재회로, 홀로 지낸 외로운 1년을 청산하는 달콤한 밤을 보냈다. 얼마나 기
다렸던 시간인가. 얼마나 보고 싶은 얼굴이었던가. 고되고 힘든 날이면 밤마다 가슴 가득히 그려보고 잠들던 그 사람이었는데......
명순 씨의 마음속은 어젯밤의 아름다웠던 재회와 포옹의 장면들로 꽉 차서 잔뜩 들떠있었다. 야채들을 이것저것 고르고 급한 걸음으로 걸었다. 지금
그녀는 사모님 댁 일을 빨리 해놓고 집에 돌아가 남편에게 영양가 높은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남편이 자리를 비웠던 1년 동안 가사 일을 맡게 된 사모님댁의 가족 요리로, 선호도 제 1호가 닭찜이다. 여러 가지 야채를 잘 볶아서 굵직하게 잘라진
닭살과 함께 매콤하게 푹 쪄놓은 이 음식은 맛이 일품이라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식탁에 오른다.
명순 씨는 단골로 가는 닭 집에 들어섰다. 이 집 노총각 주인은 제법 끼가 넘친다. 일 년여를 명순 씨만 지켜보면서 애타게 흠모해 온 터라, 행여 남
편이 없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어 내게 오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다림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 남자, 명순 씨를 보자 만연에 행복한 미소를 담
고 넉살 좋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어제보다 더욱 예뻐졌다며 연신 안타까운 시선을 던진다. 그녀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
어오지 않는다. 닭 집 남자는 커다란 닭 한마리를 꺼내 큼직하게 잘라 검은색 비닐주머니에 담았다. 그리고 밖으로 눈길을 둔 그녀를 보장 순간적으로
닭다리 두 개를 꺼내 감춰버리고 모르는 체 건네준다. 그녀는 그것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와 팔을 걷어 올리고 능숙한 솜씨로 닭 요리를 시작한다. 일
을 다 끝내고 사모님의 빈방을 살며시 들어가 거울속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활짝 웃어본다. 그리고 만족한 얼굴로 빨간색 립스틱을 야무지게 바르고
집을 향해 나섰다. 서쪽산으로 넘어가는 붉은 저녁노을에 어젯밤 따뜻했던 남편의 가슴이 겹쳐와 그녀는 가슴이 설렌다.
아침이다. 일어나보니 해가 중천에 떠있고 남편은 이미 출근했다. 어젯밤 늦게까지 그 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던 그녀를 깨우
지 않으려고 남편은 일부러 조용히 출근해버렸다. 일하러 가고 싶은 마음은 조심도 없지만 어제의 행복했던 기분을 떠올리며 기지개를 켜고 사모님 댁
을 향한다.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하면 내일은 일요일. 푹 쉴 수 있지 않은가! 도착하자마자 바삐 메뉴를 건네는 사모님을 배웅하고 장을 보러 가는 그녀는 메뉴를
보면서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닭 집 앞을 막 지나려는 데 노심초사 기다렸던 남자의 눈 속으로 그녀의 모습이 들어온다. 남자는 갑자기 큰 소리로 "
아이구, 이렇게 오실 줄 알았습니다." 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더니 아이스박스 속에서 냉동이 잘 된 닭다리 두 개를 보이며 환하게 웃는다. 그녀는 영문
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본다. "응? 왠 닭다리예요?" 하자 이번엔 남자가 당황한다. 그리고 조금뜸을 들이고 나서 계면쩍게 말한다.
"어제 너무 행복해 보여서 장난을 했는데 모르셨군요? 실은 어제 가지고 간 닭은 다리가 없는 닭이었어요. 죄송합니다."
"예??? 정말이에요? 어쩌나" 하면서 사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어쩔 술 모른다. '왜 안 물어보셨을까? 그래. 오늘 아침에도 별 말이 없으신걸 보면
분명 모르고 계신 걸 거야.'망설였지만 닭다리를 들고 돌아오는 길에 사모님께는 그냥 비밀에 부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일을 마친 후 큼지막한 닭다리 두 개를 잘 싸 집으로 와서 튀김가루를 입혀 누렇게 튀겨냈다. 이것은 직장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위한 특별식이
다. 물론 사연은 얘기할 수 없지만......
한편 퇴근한 사장님이 혼자서 그녀가 차려놓은 상에서 편안하게 식사를 하던 중 습관대로 제일 먼저 먹던 닭다리를 열심히 찾았으나 2개가 다 행방이
묘연하다. '다리 없는 닭 요리라니 이럴 리가 있나' 이상한 일이다. 싶어 냉장고, 냉동실 찬장까지 찾아봤지만 보이질 않아 묘한 생각에 귀가하는 자
녀들에게도 퇴근한 사모님께도 혹시 먹었는가 물었지만 다들 고개를 젓는다. 결국 식구들은 평소 장난기가 심한 사장님이 술김에 먹고서 오리발을 내
미는 것이라고 결론 지은 채 마무리 되었으나 사실을 모르는 그녀. 오늘도 귀갓길 붉은 저녁노을 속을 걸으며 궁금증과 미안함에 조심스레 생각한다.
'사모님께서 과연 이 닭다리의 행방을 짐작이라도 하셨을까. 아무래도 모르는 척, 이번 월급날에는 사모님께 통닭이라도 한마리 대접해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