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탕서 본 야생마의 무법천지!
솔향 남상선/수필가
한적한 갑사의 솔향이 그리워 산사 숲을 찾았다. 수천, 수백 년 된 아름드리 고목들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이따금 정적을 깨는 청설모의 나무 타는 재능에다 보기 어려운 다람쥐까지 선을 보여주고 있었다. 도심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선약과도 같은 솔향에 코를 씰룩거리며 어려운 줄 모르고 수목 사이를 걸었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무거울 때 찾는 산사 숲인데, 그 날은 소나무 잣나무들이 새로운 깨우침으로 나의 스승이 돼 주고 있었다. 영접을 위해 도열한 듯한 소나무 잣나무들이 송무백열(松茂栢悅)이란 단어를 떠오르게 했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이니 친구 잘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좋아하는 마음을 새겨야겠다. 이런 좋은 말이 있는데도, 남 잘되는 걸 보고, 시기 질투하며 배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니, 그런 사람들에게 정문일침(頂門一鍼)이 됐으면 좋겠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하루빨리 사라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많이 걸어서인지 다리가 무거웠다. 대중탕 사우나에 가서 몸의 피로라도 풀고픈 생각이 간절했다. 산사 하산 길을 재촉하여 가장동 사우나 대중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후 6시 정도 시각,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별난 인상을 한 몇 사람이 신경을 쓰이게 했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전신에 문신을 한, 두 사람이 왔다갔다하며 분위기를 어둡게 하고 있었다. 생김새도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용의 문신이나 혐오감을 주는, 전신에 괴상망측한 그림을 그린, 두 사람이 주변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있었다. 자기의 몸가짐이나 치장은 자의로 하는 거라지만 타에 혐오감을 주거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중탕 온탕에 들어가기 위해 샤워를 하고 있는데,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돌려 바라보니, 형제처럼 보이는 어린이가 낄낄대며 함성을 지르는 거였다. 아마도 7세, 10세 정도는 돼 보이는 개구쟁이 같아 보였다. 개구쟁이답게 온탕 높은 곳에 올라가 욕탕 물속으로 뛰어내리기도 하고 요란한 물장구에 괴성까지 지르는 거였다. 수영 실력을 겨루느라고 그랬는지 퉁탕거리는 물장구에 소리까지 요란했다. 대중탕서 지켜야 할 기본상식은 안중에도 없는 야생마들이었다.
펄펄 뛰는 야생마 개구쟁이 형제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자식들임에 틀림없었다.
자식이 귀엽고 사랑스럽다지만 가르칠 것은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알아야 할 것을 제때제때 가르치지 않으면 자식을 사람처럼 생긴 짐승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인간은 교육이 없으면 사람다운 면모를 잃게 된다. 그리하여 인사할 줄도, 감사할 줄도, 고마워할 줄도, 모른다. 또 교육을 받지 못한 무지한 사람은 무질서에 빠져 규율 속에 사는 생활이 어렵게 되고 적응이 안 돼 힘겨운 생활을 하게 된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온실속의 관상식물처럼 키워서는 안 된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워서도 안 된다. 때로는 눈보라와 비바람에 시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맹추위, 어떤 더위라도 견뎌낼 수 있도록 굳세게 키워야 한다. 자식은 야생초처럼 키워야 한다. 그래야 세상 풍파 다 견뎌낸 자생력으로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야생마 형제들의 난동 같은 그 와중에도 한 구석엔 머리가 허연 노옹과 중학생 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있었다.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로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손자는 할아버지 등의 때를 밀고 발을 닦아드리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반포보은(反哺報恩) 고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인생사 산전수전 다 겪은 할아버지는 눈을 지긋이 감고 계셨다. 무법천지를 만드는 야생마의 난동을 보시고서도 마냥 포용하는 모습이었는지 말씀 한 마디를 안 하셨다.
‘대중탕서 본 야생마의 무법천지!’
같은 야생마의 난동을 보고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던
할아버지는 포용력이 돋보여 존경스러웠다.
난동을 부렸던 야생마의 태도에
무언으로 일관한 아빠의 태도는
교육을 포기한 사람 같아 왜 그리 미운지 몰랐다.
자식은 온실의 화초로 키우지 말고
눈보라 비바람을 함께하는 야생화로 키워야 한다.
첫댓글 저도 아이들을 과잉 보호한것
같아서 걱정을 많이 하였습니다.
지금이라도 자생력을 길러줘야 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