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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2월 26일 수요일
[(녹) 연중 제7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주님께서는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신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이를 막지 말라며,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는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신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4,11-19
11 지혜는 자신의 아들들을 키워 주고 자신을 찾는 이들을 보살펴 준다.
12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이른 새벽부터 지혜를 찾는 이들은 기쁨에 넘치리라.
13 지혜를 붙드는 이는 영광을 상속받으리니
가는 곳마다 주님께서 복을 주시리라.
14 지혜를 받드는 이들은 거룩하신 분을 섬기고
주님께서는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신다.
15 지혜에 순종하는 이는 민족들을 다스리고
지혜에 귀 기울이는 이는 안전하게 살리라.
16 그가 지혜를 신뢰하면 지혜를 상속받고 그의 후손들도 지혜를 얻으리라.
17 지혜는 처음에 그와 더불어 가시밭길을 걷고
그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 오리라.
지혜는 그를 신뢰할 때까지 자신의 규율로 그를 단련시키고
자신의 바른 규범으로 그를 시험하리라.
18 그러고 나서 지혜는 곧 돌아와 그를 즐겁게 하고 자신의 비밀을 보여 주리라.
19 그가 탈선하면 지혜는 그를 버리고 그를 파멸의 손아귀에 넘기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8-40
그때에 38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 가운데 자기 집단 중심의 사고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수에게 유익한 일이나 공동선 자체를 추구하기보다는 자기 집단이 그 선을 행하고 인정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다른 집단을 견제하고 비난하는 이른바 진영 논리를 앞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승을 자기들이 독차지해야 한다는 듯 자기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스승의 이름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것을 견제하는 제자들의 옹졸함과 반대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지지자로 여기시는 예수님의 관용이 대조적입니다. 사실 누가 선을 행하는지보다는 선이 행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이, 공동선이 실현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사람은 명시적으로 예수님의 일행이 아니라 해도 예수님을 믿었기에 그분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그리스도인들만의 것이 아니고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이름입니다. 칼 라너가 말한 ‘익명의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듣지 못하였거나 스스로 그리스도 신앙을 부정하거나 무신론자라고 해도 삶으로 복음과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일치에 대한 가르침에 이바지하기도 한 이 표현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표현입니다. 한편으로는 본인의 종교나 종교적 신념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라도 복음과 예수님을 위한 실천으로 인간의 구원에 협력하는 이는 예수님께 지지자로 인정받으리라는 희망을 드러냅니다. 누구에 의해서든 복음의 가치가 널리 퍼져 가기를 바라고 기도합시다.(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요즘 계속 봉독되고 있는 집회서는 참된 지혜가 어떤 것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집회서는 유다교 문학의 지혜 장르를 보여주는 탁월한 본보기가 되는 성경입니다. 집회서에서 ‘소피아’로 인격화된 지혜는 자신과 하느님의 영원한 관계에 관해 설명하고, 모세의 율법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르러 지혜에 대한 개념은 대폭 확장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간 자칭 지혜롭고 슬기로운 존재라고 자처했던 사람들, 비본질적인 것, 가시적인 것에 집착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것, 내면적인 것을 놓쳐버린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로움의 끝판왕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사실, 지혜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스스로 지혜의 최첨단을 걷고 있다고, 사실 가장 우둔하고 어리석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지상에서 가장 똑똑한 척했지만, 사실 가장 멍청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무엇에 앞서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영영세세 지속되는 또 다른 세상, 하느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인식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들이 가장 큰 은총의 선물임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함께 지상천국을 건설할 수 있음을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지혜로운 사람은 나 자신의 부족함을 기꺼이 수용하는 사람입니다. 부족하고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심을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주님께서 거처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여기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입니다.
인류 역사상 지혜로움으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솔로몬은 지혜를 인격체처럼 여기며 지혜를 찬미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가 지니고 있는 스무 가지 이상의 속성을 쭉 나열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짚어보니 오늘 우리 신앙인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지혜는 명석합니다. 거룩합니다. 유일합니다. 다양합니다. 섬세합니다. 민첩합니다. 명료합니다. 청절합니다. 티 없이 맑습니다. 분명합니다. 손상될 수 없습니다. 선을 사랑합니다. 예리합니다. 자유롭습니다. 인자합니다. 항구합니다. 확고합니다. 평온합니다. 전능합니다. 모든 것을 살핍니다. 명석합니다. 깨끗합니다. 빠릅니다.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합니다.
남은 인생 여정을 좀 더 지혜로운 사람, 그래서 하느님으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우리는 ‘말’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혼자 하는 말은 ‘독백’이고, 상대가 있는 말은 ‘대화’입니다. 어떤 사람은 대화하고 나면 기분이 좋고, 다음에 또 만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화를 통해서 뭔가 문제를 해결하고, 배운 것 같은데, 다음에 또 만나고 싶지 않고, 기분이 나쁠 때가 있습니다. 우연히 대화에서 조심해야 할 6가지 태도를 들었습니다. 이 6가지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어렵다고 합니다. 첫째는 ‘판단’입니다. 이야기를 다 들어보지도 않고, 선입견을 품고 판단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입니다. 율법 학자들은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리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도 예수님의 말씀과 표징은 들어보지도 않고, 예수님을 잘 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도 피부색으로, 외모로, 직업으로 사람을 쉽게 판단하곤 합니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한다면 상대방과 대화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비난’입니다.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을 비난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저자는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서 기적을 행하는 것이다.’ 율법 학자들의 비난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나왔습니다. 자기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질투에서 나왔습니다. 저도 비난의 유혹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신부님들과 차를 나누어 타고 강화도로 연수 갈 때였습니다. 1호차에 탄 신부님들이 2호차에 있는 신부님들의 허물을 이야기했습니다. 휴게소에서 2호차를 타게 되었는데 거기서도 1호차에 있는 신부님들의 허물을 이야기했습니다. 나중에 화장실 가기도 겁났습니다. 제가 없을 때 저의 허물을 이야기할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의 허물을 자주 입에 올린다면 대화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셋째는 ‘비교’입니다. 자녀에게 ‘네 형을 보아라. 얼마나 잘 하니. 내 친구를 보아라. 힘든 가운데서도 공부를 얼마나 잘 하니.’라는 말을 자주 한다면 이는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하느님 앞에 우리는 모두 한 형제, 자매입니다.
넷째는 ‘강요’입니다. 자녀들의 능력과 재능을 보지 않고, 부모님이 원하는 걸 요구하면 자녀에게 큰 상처를 주기 마련입니다. ‘우리 집안은 모두 법대를 갔으니, 너도 법대를 가야 한다.’라고 말하면 아이의 재능을 가로막게 됩니다. 부모의 강요 때문에 법을 공부하지만, 사법시험에 실패하면 부모도 크게 실망하게 됩니다. 강요는 당장은 효과가 있겠지만 창의력이 사라지면 경쟁력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다섯째는 ‘충고’입니다. 자녀들에게나, 부하직원에게 ‘나 때는’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면 대화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아직 미혼인 자녀에게 일찍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도 큰 부담이 됩니다. 저는 ‘주민등록증’이 나온 사람에게는 웬만하면 충고하지 않는 편입니다. 성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운전할 때도 충고는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충고를 잘못하면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너나 잘하세요.’
여섯 번째는 ‘합리와’입니다. 판단하고, 비난하고, 비교하고, 강요하고, 충고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이렇게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그러게, 잘하지! 그랬어. 네가 잘했으면 내가 이렇게 말했겠니.’ 대화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합니다. 대화는 상대방과 소통하는 거라고 합니다. 2000년 전에 빌라도는 손을 씻으면서 예수님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며 합리화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대사제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2025년의 대한민국에서도 ‘합리화’를 하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비상계엄은 국회의원들이 의회 독재를 해서 경고 차원에서 했다고 합니다. 비상계엄은 국민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했기에 계몽령이었다고 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잘못도 없다고 합니다.
“지혜는 자기의 아들들을 키워 주고 자신을 찾는 이들을 보살펴 준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이른 새벽부터 지혜를 찾는 이들은 기쁨에 넘치리라. 지혜는 곧 돌아와 그를 즐겁게 하고 자신의 비밀을 보여 주리라. 그가 탈선하면 지혜는 그를 버리고 그를 파멸의 손아귀에 넘기리라.”
<더불어 함께>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마르 9,39-40)
믿음은 믿음을
막지 않으며
믿음은 믿음과
맘껏 어울립니다
희망은 희망을
막지 않으며
희망은 희망과
맘껏 어울립니다
사랑은 사랑을
막지 않으며
사랑은 사랑과
맘껏 어울립니다
믿음은 믿음과
다투지 않으며
믿음은 믿음을
한껏 북돋웁니다
희망은 희망과
다투지 않으며
희망은 희망을
한껏 북돋웁니다
사랑은 사랑과
다투지 않으며
사랑은 사랑을
한껏 북돋웁니다
믿음은 믿음을
시샘하지 않으며
믿음은 믿음을
오롯이 믿습니다
희망은 희망을
시샘하지 않으며
희망은 희망을
오롯이 희망합니다
사랑은 사랑을
시샘하지 않으며
사랑은 사랑을
오롯이 사랑합니다
오늘의 성인
성녀 이사벨라 (Isabella)
신분 : 동정녀
활동지역 : 프랑스(France)
활동연도 : +1270년
같은이름 : 이사벨, 이자벨라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8월 25일) 왕의 동생이자 루이 8세(Louis VIII) 왕의 딸인 성녀 이사벨라는 여러 곳의 혼처를 거부하고 하느님께 동정을 서원하였다.
그녀는 주로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던 중 그녀의 모친이 사망한 뒤에는 파리(Paris)의 롱샹(Longchamps)에 성녀 클라라의 수도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을 세우고 엄격한 수도생활에 전념하였으나 수녀가 되지는 않았다.
더욱이 원장 직책은 한사코 거절하였다.
그녀는 1270년 2월 23일 롱샹의 수도원에서 선종하여 그곳 성당에 묻혔다.
1521년 교황 레오 10세(Leo X)는 롱샹 수도원에서 그녀의 축일 기념 성무일도를 바칠 수 있도록 승인하였다.
1688년 1월 25일 롱샹 수도원의 수녀들은 그녀의 축일을 8일 축제로 지낼 허락을 받았고, 1696년에는 모든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서 8월 31일에 축일을 기념하도록 승인을 받았다.
그들은 현재 9월 1일에 성녀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성녀 이사벨라는 이사벨(Isabel)로도 불린다.
성녀 바울라 몬탈 포르네스(성 요셉 데 갈라산즈의)
신분 : 설립자, 수녀
활동연도 : 1799-1889년
같은이름 : 갈라산스, 갈라상스, 몬딸, 빠올라, 빠울라, 칼라산스, 칼라산즈, 파올라, 파울라
성 요셉 데 갈라산즈의 성녀 바울라 몬탈 포르네스(Paula Montal Fornes de San Josephus de Calasanz)는 1799년 10월 11일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Barcelona) 부근 해안도시인 아레니스 데 마르(Arenys de Mar)에서 태어나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녀는 겸손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성장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냈다(1799-1829년). 1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녀는 홀로 다섯 자녀를 기르는 어머니를 위해 장녀로서 고된 일을 하며 가사를 도왔다. 동정 마리아께 대한 사랑과 본당에서의 영성생활을 통해 많은 어려움을 이겨냈는데, 이런 경험을 통해 그녀는 그 시대에 소녀와 젊은 여성 그리고 부인들이 교육과 문화를 접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자신을 부르고 계심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국경도시이자 군사 요새인 헤로나(Gerona) 인근의 피게라스(Fiqueras)에 눈길을 두었다. 1829년 나이 서른에 그녀는 절친한 친구인 이네스 부스케츠(Ines Busquets)와 함께 그 지역의 중심지로 이주하여 소녀들을 위한 첫 번째 학교를 열었다. 이 학교는 기존의 소년들 중심의 학교와는 전혀 다른 학교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통해 교회 안에서 소녀와 젊은 여성들의 전인적 그리스도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카리스마의 사도직이 탄생하였다. 이 사도직은 여성들이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 사회를 변혁하는 것을 지향하였다. 그래서 그녀를 따르는 이들은 교육이라는 네 번째 서원을 발함으로써 다른 이들과 구분되고 있다.
1837년 이후 그녀와 그녀의 공동체는 성 요셉 데 갈라산즈(8월 25일)의 정신을 온전히 따르며 그의 영성과 규칙에 따라 살고자 했다. 그런 목적으로 자신의 고향인 아레니스 데 마르에 1842년 두 번째 학교를 설립한 이후 그녀는 바르셀로나 인근의 해안도시인 마타로(Mataro)에서 성 요셉 데 갈라산즈가 설립한 그리스도교 교리 형제회(일명 Piarist)의 신부들을 직접 만났다. 그리고 1846년 바르셀로나 북쪽의 사바델(Sabadell)에 세 번째 학교를 개교했는데, 이 학교는 그녀가 교육을 통해 이루고자 한 사도직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바델의 학교에서 그녀가 그리스도교 교리 형제회 신부인 야신토 펠리우(Jacinto Feliu)와 아구스틴 카사노바스(Agustin Casanovas)와 함께 하게 된 것은 하느님의 섭리였다. 그들의 도움과 지도를 받아 그녀는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형식의 수도회에 대한 교회법적 틀을 갖추게 되었다. 1847년 2월 2일 그녀는 마리아 수녀회(Daughter of Mary, 또는 경건한 학교 수녀회 Pious School Sisters)의 일원으로서 처음부터 함께한 동료인 이네스 부스케츠, 펠리치아 클라벨(Felicia Clavell), 프란치스카 데 도밍고(Francisca de Domingo)와 함께 서원을 하며 성 요셉 데 갈라산즈의 바울라라는 수도명을 택했다. 1847년 3월 14일 사바델에서 열린 총회에서 그녀는 총장이나 부총장의 직책을 맡지는 않았지만 일생을 통해 수녀회를 이끌었다. 그녀가 설립한 수녀회는 1860년 교황 비오 9세(Pius IX)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다.
1829년부터 1859년까지 그녀는 열정적으로 활동했고 개인적으로 7개의 학교를 개교하였다. 1829년 피게라스의 학교를 시작으로 해서 1842년 아레니스 데 마르, 1846년 사바델, 1849년 이구알라다(Igualada), 1850년 벤드렐(Vendrell), 1852년 마즈노우(Masnou), 1859년 올레사 데 몬세라트(Olesa de Montserrat)에 학교를 열었다. 그리고 다른 4개의 학교, 즉 헤로나(1853년), 블라네스(Blanes, 1854년), 바르셀로나(1857년), 소예르(Soller, 1857년)의 학교를 설립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수녀들의 교육에 힘썼고, 자신의 일생에서 매우 역동적이며 예언적인 시기를 살았다.
1859년 개교한 바르셀로나 인근 올레사 데 몬세라트(Olesa de Montserrat)의 학교는 그녀가 개인적으로 설립한 마지막 학교로, 가장 좋아하던 곳이었다. 가난하고 작은 이 마을의 수녀원에서 그녀는 종신서원을 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물렀다(1859-1889년). 이 30년의 시간은 그녀의 값진 증거와 관대하고 거룩한 삶의 모범으로 혜택을 받은 올레사의 소녀와 젊은 여성들에게 은총의 시기였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사랑하고 존경했고, 그녀는 수녀회를 위해 전적으로 하느님께 순명하였다. 그녀의 교육 방법은 그녀가 설립한 학교의 교육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녀의 영성은 성 요셉 데 갈라산즈의 모범을 따르는 것과 자신들의 고유한 카리스마를 통해 여성들의 전인적인 그리스도교 교육을 완성하도록 돕는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었다. 1889년 2월 26일 올레사 데 몬세라트에서 그녀가 선종했을 때 이미 그녀가 설립한 수녀회는 3백 명이 넘는 회원들이 에스파냐 전역에 걸쳐 19개의 학교를 운영하며 설립자의 유산인 교육 이념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녀는 1993년 4월 18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1년 11월 25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는 특별히 19세기의 여성들에게 교육 사도직을 통해 사랑과 희망의 새로운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그녀가 자신의 생애를 통해 이룬 이 교육 활동은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그녀의 정신을 따르는 수녀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성 에텔베르트 (Ethelbert)
신분 : 왕
활동지역 : 켄트(Kent)
활동연도 : +616년
같은이름 : 에텔베르뜨 에텔베르토 에텔베르투스 에뗄베르또 에뗄베르뚜스
560년 영국 켄트 왕국의 왕(560-616년)이 된 성 에텔베르트는 5세기에 브리타니아를 침입한 게르만족 중 하나인 주트족(Jutes) 헹기스트(Hengest)의 후손인 에오르멘릭(Eormenric-Irminricus)의 아들이다.
560년 아버지로부터 켄트의 왕위를 이어받은 그는 집권 초기에 웨식스(Wessex)의 시올린(Ceawlin)으로부터 브리타니아 전체 통치권을 빼앗으려고 시도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프랑크족 메로빙거 가문의 샤리베르(Charibert)의 딸 베르타(Bertha)와 결혼함으로써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였다.
그런데 베르타는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므로 결혼 조건으로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베르타는 상리(Senlis)의 성 리웃하드(Liudhard, 5월 7일) 주교를 대동하여 왔으며, 에텔베르트는 그에게 왕국의 수도인 캔터베리(Canterbury)의 옛 성당인 성 마르티누스(Martinus) 성당을 하사하였다.
한편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는 영국 브리타니아족을 침략한 픽트족,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 등 이교 민족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라는 사명을 주어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5월 27일)를 켄트로 파견하였다.
성 에텔베르트는 597년 켄트 해안에 도착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정중하게 맞이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설교와 사도직은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고, 그의 설교와 모범을 보고 성 에텔베르트 왕은 같은 해 예수 성탄 대축일에 여러 신하들과 함께 세례를 받음으로써 앵글로 색슨족 중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자 왕이 되었다.
당시 왕권이 절정에 다다랐던 성 에텔베르트는 세례를 받은 후 앵글로 색슨 교회의 선교에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캔터베리 대주교좌의 초대 대주교가 되었다.
성 에텔베르트는 자신의 신하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여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을 격려하였다.
그는 거의 56년 동안 선정을 베풀다가 616년에 사망하였다. 그의 유해는 캔터베리의 성 베드로와 바오로 수도원 성당에 베르타 왕비와 나란히 안치되었다.
그는 에텔베르투스(Ethelbertus)로도 불린다.
성 네스토르 (Nestor)
신분 :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마지두스 (Magydus)
활동연도 : +251년
같은이름 : 네스톨, 네스똘, 네스또르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팜필리아(Pamphylia)와 프리지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의 총독 폴리오는 가장 잔인하게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하였던 인물이다.
그 당시 마지두스의 주교는 성 네스토르였는데,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던 이상적인 사목자였다.
그는 자신이 박해의 주요 대상인줄 알고 있었지만 신자들의 안전을 더 걱정한 나머지 집에서 운명을 기다리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관리들이 다른 신자들보다 자신을 먼저 잡아감으로써 신자들이 피신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을 때 군인들이 들이 닥쳤다.
이때 재판관은 그에게 힐문하였다.
“그대는 황제의 명을 모르고 있단 말인가?”
이에 네스토르는
“나는 전능하신 분의 명을 알고 있소.” 하고 대답했다.
재판관이 배교하고 신상 앞에 희생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매 뿐이라오.”
이리하여 그는 총독 폴리오로 부터 직접 십자가형에 처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는 십자가를 메고 가면서 주위에 서성거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고하였다.
“모두 무릎을 꿇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기도하시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신자와 비신자까지 모두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총독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성녀 멕틸다 (Mechtildis)
신분 : 수녀, 신비가
활동지역 : 헬프타(Helfta)
활동연도 : 1240/1-1298년
같은이름 : 멕띨다, 맥틸다, 맥띨다
성녀 멕틸다는 로데스포르프(Rodersforf)에서 수녀가 되어 처음에는 어린이들의 교육을 맡았다.
1258년 수녀들이 작센(Sachsen)의 헬프타로 옮겨가서 3년이 지난 후에 성녀 대 제르트루다(Gertrudis, 11월 16일)가 수녀원 교육을 받으러 들어왔는데, 이때 그녀는 겨우 다섯 살이었다.
그래서 성녀 멕틸다는 성녀 제르트루다가 장성할 때까지 돌봐주고 뛰어난 신비가로 키웠으며, 자기 자신도 ‘그리스도의 나이팅게일’이 되어 그녀와 같은 신비적인 길을 걸었던 인물이다.
그녀의 제자인 성녀 제르트루다가 자신의 신비체험을 써내려 갈 때, 처음에는 그것을 쓰지 말도록 경고하였으나 주님께서 성녀 멕틸다의 마음에도 감도하셨기에 결국 위대한 책이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성녀 멕틸다도 영적인 체험을 기록했는데, 이것이 “성녀 멕틸다의 계시록” 혹은 “특별한 은혜에 관한 책”으로 불리는 책이다.
그녀는 1298년 11월 19일 헬프타 수녀원에서 선종하였다.
성녀 멕틸다는 공식적으로 시성된 바 없으나 그 때문에 그녀에 대한 신심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하크본(Hackeborn)의 멕틸다 또는 마틸다(Mathildis)로도 불리는 그녀의 축일은 교황청의 특별한 허락을 받아 그녀가 속한 수도회 내에서 2월 26일 또는 27일에 기념하고 있다.
그외에 11월 16일 또는 19일에 기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