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최광희 목사/신학박사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법과 원칙이 무너져 버린 것을 봅니다. 이처럼 기본 질서가 무너져버린 세상에서는 제아무리 의로운 사람인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포기하고 떠난 상황에서 혼자 옳음을 지켜보겠다고 버티다가는 무의미한 죽음이나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뿐인 목숨을 부지하려면 별나게 굴지 말고 권력을 거머쥔 사람들과 적당히 타협하고 어울리든지 그렇게 못하겠으면 조용히 숨어 지내든지 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일 것입니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이 말은 다윗을 아끼는 친구들이 다윗을 걱정해서 해준 말입니다. <쉬운성경>과 <현대인의성경>은 이 말을 각각 이렇게 표현합니다. “터가 무너져 내리는데 의로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법과 질서가 무너지면 선한 사람인들 별수 있나?” 원칙이 사라지고 기초가 무너져버린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이므로 더는 애쓰지 말고 조용히 숨어서 목숨이나 지키라고 하는 이 말은 현실적으로 맞는 분석이고 실속있는 처방입니다.
원칙과 기초가 무너지는 일은 과거에 수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4000년 전 소돔에 살던 롯도 소돔 사람들의 문란함 때문에 의로운 심령이 상했습니다(벧후 2:8). 3000년 전 다윗의 시대에도 하나님 편에 선 사람은 외로웠고 위험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사의 여러 시대에도 의인은 외롭고 위험했습니다.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똑같을까요?
다윗을 아끼는 친구들은 다윗에게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이고는 어두운 데 숨어서 마음이 바른 자를 향해 쏘려고 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니 혼자서 헛되이 죽지 말고 새 같이 산으로 피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고마운 충고입니까? 하지만 다윗은 그들에게 대답합니다. “충고는 고맙지만 나는 하늘의 하나님을 믿는다. 내가 믿는 의로우신 하나님은 의로운 일을 좋아하신다.”
오늘날에도 의인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 혼자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겠니? 그러다가는 너 혼자 아깝게 죽는 수가 있어. 너의 순수하고 간절한 마음은 안다만 살아남으려면 너무 나서지 말아라.” 그런데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충고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이 모범 답안을 제시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다윗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날 주변을 돌아보면 법과 원칙과 질서가 무너질 대로 무너진 것을 발견합니다. 교회 밖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 내부 상황도 심각합니다. 중요한 직책을 맡았으면 영적 전투의 선봉에 서야 할 텐데 유불리를 따져가면서 움직이는 것을 볼 때 과연 하나님을 섬기는지 자신을 섬기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긴 그 직책을 거머쥐겠다고 세상 사람도 하지 않는 방법을 동원했으니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지 그것이 내게 무슨 상관입니까? 남들이 산으로 도망하여 목숨을 부지하든지, 무기를 갖추며 활을 가지고도 전쟁의 날에 물러나든지(시 78:9) 그게 내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살고 죽는 것과 나를 판단하는 것은 사람들이나 상황이 아니라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의로우셔서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는 여호와는 인생을 통촉하고 계시며 여호와는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자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는데 말입니다(대하 16:9).
성경과 교회사에는 홀로 죽는 길로 걸어간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방주를 만든 노아는 당시에 미친 사람이었고, 골리앗 앞에 나아간 다윗은 철부지였지요. 기세등등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홀로 싸운 엘리야는 돈키호테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리 외로워도 여호와께 붙어 있었기에 그들이 옳았음을 증명했습니다. 물론 의인이 스데반처럼 실패할 때도 있지만 그것도 의로우신 하나님이 마련하신 이기는 방법입니다. 스데반이 첨벙 빠진 그 자리에 또 다른 테트라포드(Tetrapod)가 쌓이고 쌓여서 결국에는 거대하고 거룩한 방파제가 만들어졌으니까요. 그리고 헛되이 죽은 스데반은 하늘에서 찬란한 스테파노스 (Στέφανος=면류관)가 되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