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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실수로 책 전권을 다 올려 반이상 지우겠습니다.
이 책의 시리즈((인터넷교보문고에서검색했으며법륜시리즈라 되어있습니다))
마라의 편지
팔정도(개정판)
불교
칠각지
사리뿟따 이야기
우리는 어떤 과정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가...
염수경(법륜 12)
부처님 그분
자비관(법륜 8)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
구도의 마음 자유
하 나
부처님, 그분
생애와 가르침
THE BUDDHA
HIS LIFE AND TEACHING
피야다시 스님 지음
(The Wheel Publication No. 5 A/B)
부처님, 그분
“세월은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부처님은 조금도 멀리계시는 것 같지가 않다. 그분의 목소리는 지금도 우리들의 귓전에 속삭이듯 일러주고 있다. 삶의 투쟁에서 도망치지 말고 냉철한 눈으로 맞서라고, 그리하여 이 생에서 보다 큰 향상과 성숙을 위한 기회를 찾으라고. 불교는 인도의 바라나시(베나레스)시(市) 근처의 사르나트에서 탄생하였다. <리스 데이비즈>(T.W. Rhys Davids) 박사*1는 말한다. “내가 알기로는, 불교의 긴 역사를 통틀어, 불교도들이 아무리 장기간에 걸쳐 득세를 한 곳에서 일지라도 타종교인을 박해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탄생 이 위대한 종교 註1, 불교의 창시자인 부처님께서는 2500여년 전에 살았었고, <고타마 싣닫타>(Gotama Siddhatta) 註2 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분의 아버지는 크샤트리아(무사)계급에 속한 왕으로 현재 네팔 국경지역 근처의 카필라바투(迦毘羅城)에서 사키아(釋迦)족의 영토를 통치하고 있었다. 오월 보름날, 때는 봄철, 나무는 잎과 꽃 열매가 무성하고 사람과 새 짐승들이 모두 즐거움에 젖어 있을 때였다. 그때 <마하마야>왕비는 당시의 풍습에 따라 아기를 낳기 위해서 성대하게 꾸민 마차를 타고 카필라바투를 떠나 친정인 데바다하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은 중도에 끝나 버렸다. 왕비는 두 도시 사이에 위치한 아름다운 룸비니 동산에 이르자 꽃이 만발한 무우수 아래서 아들을 낳았던 것이다. 룸비니(현 지명은 룸민데이)는 바라나시에서 북쪽으로 백마일 거리에 있으며 눈덮인 히말라야의 영봉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그로부터 316년 후 <아소카>황제 *2 는 <싣닫타>왕자가 태어난 성지임을 표시하는 거대한 석주를 세웠다. 석주에는 아소카문자 93자로 된 다섯줄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귀절이 있다. 이 거대한 석주는 지금도 볼 수 있다. 서기 7세기 중엽 중국의 구법승 <현장>법사가 여기에 왔을 때는 석주는 이미 벼락으로 부러져 있었지만 ‘어제 깎은 듯 생생하다’고 했다. 그 후 오랫동안 잊혀져 오던 룸비니 동산은 1896년 저명한 고고학자 <커닝엄>(Cunningham)장군 *3 에 의해 발굴, 확인됨으로써 룸비니의 전설이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었다. 왕자가 태어난 지 닷새째 되던 날, 왕은 여덟 명의 현자를 청하여 아기의 이름을 짓고 또 왕자의 앞날을 점쳐 달라고 부탁했다. 현자들은 왕자에게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란 뜻으로 <싣닫타>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바라문들은 심사숙고한 후 일곱명은 두 손가락을 펴보이면서 말했다. “오! 왕이시여! 이 왕자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전 세계의 통치자인 전륜성왕(轉輪聖王: Cakravarti)이 되어 온 세계를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세속을 떠나 출가한다면 왕자님은 정등각자(正等覺者)가 되어 사람들을 무지에서 구해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현명하고 젊은 <콘단냐>만은 왕자를 바라본 후 오직 한 손가락만 펴보이면서 말했다. “오! 왕이시여! 이 왕자는 언젠가는 진리를 찾아 떠날 것입니다. 그래서 정등각자가 될 것입니다.” 왕자가 태어난 지 이레만에 어머니 <마하마야>왕비가 세상을 떠났다. 아기는 이모 <고타미 파자파티>에 의해 양육 되었다. 이들 부부가 아기에게 쏟은 정성은 극진하여 아기는 온갖 호강을 다 누리며 자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왕은 왕자로서 받아야 할 교육에도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왕자는 갖가지 학문에 능통하게 되었고 무술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싣닫타>왕자는 어린 시절부터 가끔 깊은 명상에 빠져들곤 하였다. 네 가지 충격적인 체험 왕자가 장성하자 부왕은 아들이 가정을 이루어 왕실의 훌륭한 후계자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현자 <콘단냐>의 충격적인 예언이 항상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정말 어느날엔가 왕자가 훌쩍 집을 떠나 고행자의 떠돌이 생활로 뛰어들까봐 두려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관습대로 왕자를 열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콜리야성의 <숟파붇다>왕과 <파미타>왕비의 외동딸이며 왕자의 외사촌인 아름다운 <야소다라>공주와 결혼시켰다. 공주는 왕자와 동갑이었다. 왕자의 생활은 참으로 호사스러웠다. 기록에 의하면 왕자는 인도의 세 계절에 맞는 궁전을 각기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세속생활의 즐거움이라면 무엇 하나 빠진 것이 없는 가운데 춤과 노래, 사치와 쾌락에 파묻혀 괴로움이라곤 전연 모르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듯 아들을 쾌락 속에 묻히게 하여 세속에 붙잡아 두려는 부왕의 노력도 결국엔 허사였다. 호기심어린 아들의 눈으로부터 인생의 모든 고(苦)를 감추려는 <숟도다나>왕의 노력은 오히려 <싣닫타>왕자의 탐구심만 키워 주어 결과적으로 진리와 깨달음을 구하려는 결의를 더욱 굳혀 줄 따름이었다. 철이 들면서 왕자는 차츰 세상의 비애에 대하여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어느날 왕자가 마부 <찬나>를 데리고 왕실 정원으로 놀러가다가 일찌기 보지 못했던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노쇠한 한 늙은이가 기력이 완전히 쇠잔하여 슬픈 목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왕자님, 도와주세요. 나를 일으켜 세워주세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집에도 못가고 죽을 것 같아요.” 이것이 왕자가 경험한 최초의 충격이었다. 또 어느날은 가죽과 뼈만 앙상하게 남은 버림받은 한 사내의 모습을 보았다. 병 때문에 전신의 기력이 탈진되어 인간다운 우아함이나 기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비참한 모습이었다.세번째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어깨에 메고 화장터로 가면서 비통해 하는 어느 친족들의 장례행렬을 만난 것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런 비참한 광경들에 왕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우기나 마부의 말에 의하면 그 자신도 사랑하는 아내 <야소다라>도, 그밖의 모든 친척들도, 아니 그 누구도 예외없이 늙고, 병들고, 죽기 마련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런 일이 있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왕자는 한 출가 사문과 마주치게 되었다. 사문은 시선을 아래로 한 채 앞만 바라보며 신중한 걸음걸이로 고요하고도 침착하게, 초연하고도 걸림없는 당당한 자세로 걷고 있었다. 왕자는 사문의 평온한 모습에 깊이 감동되었다. <찬나>는 이 사문이, 생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진리를 찾아서 청정한 삶을 살고자 세속을 등진 사람이라고 일러주었다. 순간 왕자의 마음 속에 출가에 대한 깊은 생각들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왕자는 깊은 사색에 잠긴 채 궁중으로 발길을 돌렸다. 고뇌와 번민에 싸여 답답하기만 하던 마음 속에 마침내 한가닥 서광이 비쳐든 것이다. 궁궐 밖 세상을 접하면 접할수록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왕자는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궁궐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야소다라>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나에게 장애(Raahula)가 생겼구나’라고 말하면서 왕자는 궁궐로 들어갔다. 위대한 출가 그날 밤, 달빛은 교교하고 사위는 적막에 잠긴 가운데 (그날은 유월 보름날 저녁이었다.) 왕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생의 절정 은 시절은 늙음으로 끝나고, 인간의 감관은 가장 필요할 때에 그를 저버린다. 혈기 왕성하고 건장하던 사람도 병이 나면 정력과 건강을 상실하고 만다. 결국 예기치 못했던 죽음이 갑자기 다가와 이 짧은 일생에 종지부를 찍어버린다. 분명 이 늙음과 병듦으로부터, 이 만족할 수 없는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러자 젊음과 건강 그리고 수명에 대해 지니고 있던 교만심(mada)이 그에게서 사라졌다. 이 세 가지 마취(교만)가 헛되고 위험한 것임을 알게 되자 그는 자기 자신과 처자, 그리고 고통받는 일체중생을 위해, 늙고 병들고 고통받고 죽는 것으로부터의 궁극적 해방을 기어이 찾아내어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충동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註1 그가 대각(大覺) 성불로 완성되는 구도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이와 같은 깊은 자비심 때문이었다. 꽃다운 젊은 시절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사랑하는 아내 <야소다라>가 그의 하나뿐인 아들 <라훌라>를 낳은 그밤에, 그는 아내와 아들, 아버지 그리고 권력과 영광이 약속되어 있는 왕좌를 모두 떨쳐버리고 떠나갔다. 이제 수행자의 옷차림을 한 보살註2 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삶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숲속의 고독한 생활로 들어섰다. 굴레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평안,즉 열반을 향한 구도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리하여 위대한 출가는 이루어졌다. 그는 처음에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푿타>라는 유명한 두 현자에게 각기 가르침을 구했다. 그들은 선정의 대가들인 만큼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다 배우면 높은 선정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리라고 보살은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선정을 닦았고 마침내 그 선정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바라던 최상의 깨달음은 아니었다. 이 두 스승이 가르치는 지식과 선정의 경지에서 보살은 만족할 수 없었다. 보살은 그의 목표가 아직 요원하다는 것을 느꼈다. 편력 끝에 그는 마침내 가야지방의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우루벨라에 도착했다. 그곳의 조용하고, 울창한 숲과 맑은 강물이 마음에 들었다. 부근에는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어서 탁발하기에도 안성마춤이었다. 고행 당시 인도에서는 심신을 정화하고 궁극적인 해탈을 얻으려면 극심한 고행이 필요하다고 믿는 수행자들이 많이 있었고, 그 점은 지금도 역시 마찬 가지이다. 수행자 <고타마>는 이 생각이 옳은지 그 진실성을 확인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곳 우루벨라의 숲에서 <고타마>는 마음이 육체의 속박을 벗어나 해탈의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되기를 희구하면서 자신의 육체를 조복받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자신과의 싸움은 그야말로 처절한 것이었다. 나무잎새와 뿌리만으로 연명하였을 뿐 아니라 그 양마저도 극도로줄여 나갔다. 옷은 쓰레기더미에서 주운 형겊으로 기워 만든 누더기를 걸쳤으며, 잠은 시체들 옆이나 가시덤불 위에서 잤다. 이같은 극 6년이란 긴 세월을 격렬하게 투쟁한 끝에 거의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원대한 목표에는 단 한 발짝도 더 다가서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행이 얼마나 헛된 짓인가를 체험을 통해 명백하게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조금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분발하여 원래의 목표를 향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처럼 극도로 쇠잔한 몸으로는 어떤 길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고행과 단식을 그만두고 다시 정상적으로 음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의 쇠약해진 몸은 이전의 건강을 되찾았고, 고갈되었던 기력도 곧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의 다섯 동료들은 실망한 나머지 그의 곁을 떠나가 버렸다. 그들은 <고타마>가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보살은 이런 일에 조금도 동요되지 않았다. 자신의 청정함과 정진의 힘을 확고히 믿고 있었기에 스승의 지도나 도반의 도움없이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최후의 시도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대각(大覺)을 이루시기 바로 전날 오전, 보살이 좌선을 하고 있을 때 부유한 장자의 딸인 <수자타>가 우유죽을 드렸다. 이 수행자가 신인지 인간인지 알 수 없었던 수자타는 “존귀한 분이시여, 당신의 큰 뜻이 부디 성취 되어지이다.”고 기원했다. 이것이 보살이 깨치기 전에 드신 마지막 음식이었다. 마침내 깨치시다 가야(현재 붓다가야)의 네란자라 강 둑위에 있는 한 나무註1 아래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은 보살은 불퇴전의 결심으로 정진에 마지막 힘을 쏟고 있었다. “이 몸이가죽과 힘줄, 뼈만 남고 피와 살은 다 말라서 죽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정등각(正等覺)을 얻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노라.” 보살의 노력은 이처럼 지칠 줄 모르는 것이었고, 보살의 헌신은 이처럼 시들 줄 모르는 것이었으며, 진리를 깨치어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결의는 이처럼 단호한 것이었다. 보살은 출입식념(出入息念; anaa-paana sati) *4 에 전념하여 초선(初禪)에 들어가 거기에 머물렀다. 다시 차례대로 제2선 제3선 그리고 제4선에 들어가 머물렀다. 이와 같이 마음에서 모든 때를 닦아내어 평온한 마음을 이룬 다음, 이 마음을 과거 생(生)을 기억하는 지혜[宿命智; Pubbenivaasaanussati- ~naa.na]쪽으로 기울였다. 이것이 보살이 초저녁(오후 6시1~10시)에 성취한 첫번째 지혜였다. 다시 보살은 온갖 형태의 중생이 각기 지은 업에 따라 좋은 상태로 또는 나쁜 상태로 태어나고 죽는 것을 아는 지혜[死生智; Cuti-upapaata~naa.na]쪽으로 기울였다. 이것이 한밤중(10시~새벽2시)에 성취한 두번째 지혜였다. 다시 그는 번뇌를 소멸시키는 지혜[漏盡智; AAsavakkhaaya-~naa.na]쪽으로 기울였다.註1 그는 여실히 깨달았다. 즉 ‘이것이 고(苦)다. 이것이 고의 생기(集)이다. 이것이 고의 멸(滅)이다. 이것이 고의 멸에 이르는 길(道)이다.’ 그는 여실히 깨달았다.‘이것이 번뇌다. 이것이 번뇌의 생기이다. 이것이 번뇌의 멸이다. 이것이 번뇌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이렇게 보살 고타마는(탄생한 날과 같은) 5월 보름날 *6 , 서른 다섯의 나이에, 영원한 진리인 네 가지 성스런 진리[四聖諦]를 완전히 파악함으로써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시어, 일체 중생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위대한 의사, 대의왕(大醫王), 붇다가 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다른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과 구별되는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그분이 신이라든가 초자연적 존재와 어떤 관련도 전혀 맺지 않았다는 점이다.그는 신도 아니고 신의 화신(化身)도 아니며 어떤 신비적 존재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한 인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비범한 인간, 초인적 인간이었다. 그분은 자신이 성취한 모든 것을 인간의 지성과 노력의 결과로 돌렸다. 그 어떤 스승으로부터, 그것이 사람이든 신이든 간에 일체 도움을 받지 않고 오직 자신의 꾸준한 정진에 의해서 보살은 최고의 정신적, 지적 성취를 달성했다.청정의 극치에 이르른 것이며 인간성이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자질을 완성해 낸것이다. 문자 그대로 지혜와 자비의 구현자였고, 이 지혜와 자비는 그 후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어서 두 가지 기본 지침이 되었다. 부처님은 결코 계시 종교에서 처럼 영혼을 구제하는 구세주로 자처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인간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해 있으며, 이러한 가능성을 계발하여현실화 시키는 길은 오직 인간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을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과 깨달음을 통해 실증해 보이셨다. 이처럼 부처님은 깨달음과 해탈이라는 지상의 과제가 전적으로 인간의 노력이 가 닿는 범위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셨던 것이다. 사실, 신이나 초자연적 존재의 도움에 관계없이 해탈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 더구나 각자가 자신의 책임하에 스스로 취하는 행위에 의해서만 고(苦)로 부터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신 분은 인류 역사상 부처님이 처음이셨다. 아무리 해탈을 구걸하고 빌어봐야 그 누구도 이를 성취시켜 줄 수는 없다. 연기(緣起) 깨달은 직후 일주일 간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 앉으셔서 해탈의 무상법열(無上法悅)을 누리고 계셨다. 이레가 되던 날 초저녁 부처님은 삼매(Samaadhi)에서 나와 연기(緣起)에 관해 순서대로 관하셨다[順觀]. 그날 한밤중(中夜)에 부처님은 역(逆)으로 연기를 관하셨다.[逆觀]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무지가 완전히 멸하면 의지의 형성작용도 멸하고, 의지의 형성작용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등등, 이리하여 이모든 고의 덩어리가 멸하게 된다.” 그날 새벽녘에 부처님께서는 연기를 순(順)으로 또 역(逆)으로 관하셨다.[順逆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즉 무지가 있음을 연으로 의지의 형성작용이 있고… 등등. 이리하여 이 모든 고의 덩어리가 생겨난다. 법의 바퀴를 굴리시다(初轉法輪) 세존께서 보리수 근처에 홀로 계실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깨달은 이 법(法, Dhamma)은 심오하여 알아차리기도 이해하기도 힘들며,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만이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을 좋아하여 그 즐거움에만 탐닉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이 진리, 즉 연기법을 알아차리기는 어려우리라. 또한 모든 조건 지워진 것[行]의 정지(靜止), 일체의 생성요인(upadhi)의 방기(放棄), 갈애의 소진, 탐욕을 멀리함[離慾; viraaga],멸진(滅盡; nirodha), 열반을 알아 차리기는 어려우리라. 설혹 내가 법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번거롭고 피곤할 것인가.”註1 이와 같은 생각을 하자 부처님께서는 법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불안(佛眼) *7 으로 세계를 둘러보니, 사람들 가운데에는 눈이 엷게 가리운 사람도 두텁게 가리운 사람도 있고, 근기가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있고, 선량한 자질을 가진 사람, 나쁜 자질을 가진 사람, 가르치기 쉬운 사람, 어려운 사람, 현재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위험에 당면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두루 섞여 있는 것이 여실하게 보였다.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도다. 귀있는 자들은 기대할지니라.”註2 누구부터 법을 가르칠까 생각해 보니, 옛날 스승이었던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푿타>가 생각났다. 그들이 현명하고 식견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안으로 살펴보니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전에 동료였던 다섯 수행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기로 마음을 정하셨다. 그들은 아직도 소득없는 극단적인 고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이 베나레스의 이시파타나註1에 있는 녹야원에 머물고 있는 것을 아시고 세존께서는 베나레스까지 약 150마일의 도보 여행을 시작하셨다. 가야를 떠난 지 얼마 안되어 노상에서 <우파카>라는 수행자와 마주쳤는데, 그 사람은 세존의 거룩하신 모습에 감동한 나머지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어느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나에겐 스승이 없고, “벗이여! 당신은 일체의 승리자라는 말이군요.”하고 <우파카>는 말했다. <우파카>는 머리를 흔들고 빈정거리며 말했다. “그럴런지도 모르지요.”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여래(如來)를 벗이라는 말로 불러서는 안되느니라. 그러자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두번째도, 비구들은 부처님께 똑같은 말을 하였고, 부처님도 똑같은 대답을 하셨다. 세번째도 비구들은 똑같은 반문을 하였다. 부처님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태도를 바꾸려 들지 않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비구들이여! 일찌기 내가 그대들에게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지 말해보라.” 이와 같이 간절하신 부처님 말씀에 감복한 다섯 고행자들은 비로소 승복하게 되었다. “아닙니다.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최상의 현자, 자신을 조어(調御)하신 분께서는 참을성과, 친절로, 지혜와 방편으로 다섯 고행자의 마음을 조복시켰다. 부처님의 말씀에 감복하고 확신을 갖게 된 사문들은 드디어 가르침을 받아들일 자세를 갖추게 된 것이다. 중도(中道) 그날, 서력 기원전 528년 7월 보름날 저녁, 해가 지면서 때 맞춰 달이 막 떠오르고 있어,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시파타나의 녹야원에서 부처님은 그들에게 법을 설하기 시작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두 가지 극단은 출가자들이 가까이 해서는 안되느니라. 다시 부처님은 그들에게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셨다.고(苦), 고의 생기(苦集), 고의 멸(苦滅), 고의 멸에 이르는 길(苦滅道)의 네가지 성스런 진리가 바로 그것이다.註1 이렇게 지고하신 부처님께서는 진리를 선포하심으로써 마침내 법의 바퀴(Dhamma-cakka)를 굴리기 시작하셨다. 이 첫 법문, 녹야원의 메시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땅위를 걷는 모든 생물의 발자국이 코끼리의 훨씬 큰 발자국에 담길 수 있는 것과 같이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포괄된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각 항목을 설명하시면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법들에 관해서 눈(眼;cakkhu)이, 지(智;~naa.na)가, 혜(慧;pa~n~naa)가, 명(明;vijjaa)이, 광(光;aaloka)이 나의 내면에 나타났다.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관한 나의 통찰지혜[知見;~naa.nadassana]가 움직일 수 없는 확실한 것으로 밝혀지기 전에는 나는 결코 자신이 비할 바 없는 지고의 깨달음(無上正等覺)을 얻었다고 선언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런 진리에 관한 나의 지견이 움직일수 없는 확실한 것으로 분명해지자 그때 비로소 나는 비할 바 없는 지고의 깨달음을 얻었음을 선언했던 것이다. 그러자 다시 나의 내면에 지견이 솟아났다. 즉 내 마음의 해탈(心解脫)이 확고부동하며(akuppaa me ceto vimutti), 금생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더 이상의 몸받음(再生)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註1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다섯 비구는 환희에 차서 세존의 말씀을 찬탄했다. 신사파 숲에서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얼마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가는 신사파 숲의 메시지에서 다시 확인된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손에 드신 잎사귀는 얼마되지 않습니다. 저편 숲에 있는 잎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렇다. 비구들이여, 내가 완전히 깨닫고서도 너희들에게 설하지 않은 것은 많다. 내가 너희들에게 설한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비구들이여! 왜? 내가 그 모두를 설하지 않는가? 그것들은 유익하지도 않고 청정한 삶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싫은 마음을 일으킴(厭離; nibbidaa ) 탐욕을 멀리함(離慾) 멸진(滅盡) 적정( 寂靜) 완전한 지적능력(神通智;abhi~n~naa )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이끌어 주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내가 그것들을 설하지 않은 이유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내가 설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진리들은 실로 유익하고 청정한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역설하신다. “나는 오직 한가지를 알려줄 따름이니 괴로움과 괴로움의 멸진이노라. (dukkhamceva pa~n~naapemi, dukkhassa ca nirodham)”.註2 이렇듯 명쾌하게 일러주신 말씀을 올바로만 이해한다면 불교를 다 이해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이 이 한가지 원리의 적용일 뿐 다른 어떤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어떤 부처님이든 발견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이 사성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사성제야말로 어떤 시대의 부처님 일지라도 한결같이 가르치실 전형적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명의 중의 명의(名醫) 우리는 부처님을 또한 가장 뛰어난 명의(名醫), 최고의 의왕(醫王)으로 이해 하고있다. 그분은 실로 필적할 이 없는 치유자 이시다. 무엇 보다도 부처님이 네 가지 진리를 설하시는 방법부터가 의사가 취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의사로써 그 분은 먼저 병을 진단하고, 그 병의 원인과 발생 과정을찾아낸 다음 병의 제거 방법을 검토한 후 처방을 내렸다. 고(苦:dukkha)는 병이다(苦). 갈애가 병의 발생원인 또는 근본 원인이다(集). 갈애를 없앰으로써 병이 제거된다. 그것이 치유이다(滅). 여덟가지 성스런 길은 그 처방이다(道).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께 스승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부처님이라고 불리우십니까 하고 여쭈었을 때 부처님이 해주신 대답은 명확했다. 바로 네가지 진리에 대해 완전한 지혜를 갖췄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대답은 이러하다. “나는 알아야 할 바를 알았고, 이시파타나의 녹야원은 부처님이 처음으로 법을 선포하시어, 법륜이 구르기 시작하였고, 또 다섯 고행자가 귀의한 곳이기 때문에 교법[法]과 승단[僧]의 탄생지가 되었다.註2 법의 전파 그해 부처님은 우기(雨期)註3를 녹야원에서 보내셨다. 이 석달 동안 <야사>를 필두로 새로이 50여명의 젊은이들이 승단에 들어왔다. 이제 부처님은 60여명의 제자를 거느리게 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아라한으로서 법을 깨닫고 충분히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분들이었다. 우기가 끝나자, 부처님은 이들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인간계와 천상계의 모든 결박에서 해방 되었도다. 그대들도 역시 인간계와 천상계의 모든 결박으로부터 해방 되었도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아가 많은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이 세상에 대한 자비심에서, 신들과 인간들의 이익과 안녕, 행복을 위해 편력하라. 두 사람이 한 방향으로 같이 가지 말라. 그래서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한 이 법을,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이 법을 선포하라. 청정한 삶을, 완전하고 순결한 이 성스런 삶을 선포하라. 세상에는 눈이 과히 흐리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법을 듣지 못하면 그런 사람들 마저 정도에 들 기회를 놓치게 되고 말것이다. 세상엔 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루벨라로, 세나니가마로 가서 법을 가르치겠노라.”註1 이하 마지막까지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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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하나 하나 친 것이 아니고 복사 붙이기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실수로 책 전권을 다 올려 반이상 지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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