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 2장. 대혈투의 서곡 08/22 22:47 361 line
2. 대혈투의 서곡
그는 반년 전에 현천도장과 기련산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어쩌면 인
연인지 현천도장은 그 고검남을 무척 귀여워했다. 그 당시 그는 영약
을 캐어다가 구전속명금단(九轉續命金丹)을 만들어 고검남의 반신불수
와 경맥이 통하지 않는 병을 치료해 주겠다고 응낙했었다.
고검남은 막북의 빙천설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혹독한 한기가 깊이
경맥으로 스며들었다. 반드시 천산설련이나 해남(海南)의 주과를 배합
해야 구전속명금단이 효혐을 나타낼 수 있었다.
현천도장은 고검남이 단약을 먹고 두명의 현문 정종의 고수가 내공
으로 거의 막혀 있는 경맥을 두두려 타통시키면 병이 즉시 치유될 것
이고 무공의 성취에 있어서 두 배의 효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치료하지 않고 놔두면 그 한동(寒毒)이 심폐로 침투해서
고검남은 열여섯 살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도 했었다.
고명원은 마교 출신이고 익힌 내공이 방문(旁門)의 격진지법(激進之
法)이었기 때문에 손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인데, 현천도장이 아들의 절
증(絶症)을 치료해 주겠다고 약속하자 미칠 듯이 기뻐했다.
그는 적지 않은 정성을 드려 해남검파의 포위 공격을 뚫고 그 파에
남아 있는 단 한 알의 주과를 취득할 수 있었다. 나중에 다시 홀로 천
산으로 뛰어들어 무림에 명성을 떨친 절예(絶藝)인 분심인(焚心刃)으로
천산신검(天山神劍) 적군좌(狄君左)를 패비시키고 한 알의 천년설련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런 후에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빠른 말을 몰아 무당산으로 달
려왔던 것이다. 뜻밖에도 그가 무당산에 도착했을 무렵 그 인자한 현
천도장은 이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그는 본래 무당 장문 현천도장의 서거가 잘못되었다는 의심을 갖지
않았다. 다만 현천도장의 마지막 얼굴이라도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고검남의 생사 존망이 달린 구전탈명검단이 연성이
되었다면 얻어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현천도장과 앙숙이던 두 사람이 그가 세상을 떠날 때 공교롭
게도 무당산에 와 있는 것이었다.
현천도장의 죽음이 천하에 두루 알려지고 장례식에 오도장과 나엽대
사가 참석해서 조의를 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공교롭게도 현천도장이 서거하기 전날 밤에 산 위로 오른 것
이었다.
무엇이 공동장문과 아미장문으로 하여금 밤을 도와 무당으로 달려가
게 만들었을까?
현천도장의 병이 악화되어 죽기 전에 그들을 만나 보고 싶어했다면
있을 법한 일이지만, 현천도장의 가장 친한 친구 곤륜장문(崑崙掌門)
옥진자(玉眞子)는 어째서 부름을 받지 않았을까?
고명원은 머리 속으로 재빨리 이와 같은 생각을 해보았으나 오도인
과 나엽대사가 밤을 도와 무당으로 오른 원인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는 냉정한 시선으로 그 젊은 도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송풍은 재
빨리 해검암 뒤로 돌아가 그 몇 자루의장검을 보따리에 싸서 돌 탁
자 아래에 있는 상자 안에 넣는 것이었다.
그는 냉랭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송풍 도장, 설마하니 노부가 그 몇 자루의 검을 빼앗기라도 한단 말
인가?]
송풍은 얼굴을 붉혔다.
[아닙니다. 선배님, 오해하지 마십시오. 본문은 해검암 앞에서 풀어놓
은 검을 반드시 잘 보관해 두었다가 돌려주어야 합니다. 어젯밤에 장
문인께서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에 일시에 미처 갈무리하지 못해서.
..]
고명원은 눈빛을 반짝였다.
[자네는 장문인이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했지? 그 분은 병도 없고 아
프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세상을 등진 것인가?]
송풍은 불쾌한 듯 말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이 정하는 것인데 그 누가 미리 죽을 날
을 알 수 있겠소? 장문인이 득도한지 오래 되었지만 서거할 날짜를
미리 알 수는 없지요.]
[자네의 말에도 일리가 있네. 사람이란 미래의 일을 예측하지 못하는
데 어떻게 자기가 죽을 시기를 알겠는가? 노부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천도장이 그토록 높은 수양과 깊은 도행(道行)을 쌓았는데도
너무 일찍 서거하신 듯하네. 다섯 달 전에 기련산에서 그 어르신을 만
나 보았을 적에 무척 건강하시고 정신도 맑아 보였는데 뜻밖에...]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정말 애석한 노릇이야!]
두 도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명원을 바라보았다.
고명원은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물었다.
[현천도장께서는 어젯밤 언제 돌아가셨는가?]
송월은 대답했다.
[장문인은 대략 자시 무렵에 돌아가셨습니다.]
고명원은 다그치듯 물었다.
[어째서 대략이라고 말하는가? 설마하니 그 분이 돌아가신 확실한 시
각을 아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송월은 말했다.
[장문인 홀로 단실(丹室)에서...]
[사제!]
송풍은 호통을 내질렀다.
[사숙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하고 있겠지?]
고명원은 차가운 눈초리로 그와 같은 광경을 지켜보고 속으로 생각
했다.
(저 송월은 아직도 나이가 어려 심기(心機)가 없지만 송풍은 그에 비
하면 훨씬 교활한 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적지 않은 빈틈을 드
러냈다. 아무래도 현천도장의 서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이 분명
하다.)
그는 반드시 모든 것을 밝혀내리라 결심하고 송풍에게 물었다.
[사숙은 무슨 말을 하셨는가? 장문께서 세상을 떠난 일을 천하의 사
람들에게 감추어야 한다고 하던가?]
송풍은 차갑게 대답했다.
[그것은 폐파의 일이니 선배님께서 간섭 마시오.]
이 때 멀리서 세 사람의 그림자가 나는 듯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시력은 예리해서 첫눈에 앞장을 선 중년의 전진(全眞)이 바로 현
천도장을 따라 기련산으로 약을 캐러 갔던 현법도인(玄法道人)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현법과 고명원은 충돌을 빚을 뻔했다. 현법도장이 난파풍검
법(亂파風劍法)을 펼치게 되었을 때 고명원은 현법의 장검을 부러뜨리
고 말았다. 나중에 현천도장이 달려오지 않았다면 현법은 틀림없이 목
숨을 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현법이 내려오면 자기가 산 위로 올라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
리라 내다보았다. 그러나 마음속의 의문을 밝히기 위해서 그는 반드시
상청궁(上淸宮)으로 올라가 현천도장의 마지막 모습을 보리라 결심했
다.
(만약 그가 반대한다면 억지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작정한 그는 대광주리를 왼손으로 받쳐들고 안에 있는 고검
남에게 당부했다.
[얘야, 어쩌면 우리들은 상청궁으로 뛰어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세명의 도사들은 이미 해검암 앞으로 달려왔다. 송풍과 송월 두 도사
가 마중을 나가며 공손히 머리를 숙여 보였다.
[사숙에게 아룁니다. 저 시주가 상청궁으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현법은 흠! 하더니 고명원을 향해 걸어와 한 손을 들어 계수(稽首)했
다.
[무량수불, 알고 보니 고시주였군요. 실례지만 무슨 일로 발걸음을 하
셨소?]
무당산은 현문정종의 무당파가 있는 곳이었다. 무당파는 무림 구대문
파 가운데 하나였고, 고명원은 서방마교(西方魔敎) 출신으로 무림에서
유명한 사도(邪道)의 고수였다.
현문과 마교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현법도인이 그와 같이 묻는 것은
겉으로 볼 때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현문과 고명원은 오개월 전 기련
산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현천 노도장과 고명원과의 약속을 알고 있
으면서 그렇게 질문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
다.
고명원은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도장, 다섯 달 전 우리는 기련산에서 만나지 않았소? 당신은 장문인
과 노부가 약속한 일을 모른다는 말이오?]
현법은 담담하게 웃었다.
[그 당시 빈도와 고시주 사이에 오해가 있었고 고시주 덕택으로 빈도
는 몸에 중상을 입었기 때문에 우리 작고하신 장문인과 고시주가 무
슨 약속을 했는지 빈도는 모르고 있소.]
고명원은 무거운 어조로 물었다.
[당신은 정말 모른다고 잡아뗄 셈이오?]
현법도인은 소리내어 웃었다.
[하! 하! 하! 빈도는 분명히 모른다고 하지 않았소? 고시주는 어째서
잡아뗀다고 하시는 거요? 설사 고시주와 우리 작고하신 장문 사형이
약속을 했다 해도 그것은 쌍방간의 사사로운 일이오. 장문 사형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니 그 약속 또한 소용이 없게 되었는데 시주는 어째
서 상청궁으로 올라가겠다는 것이오?]
[노부는 현천도장의 친구인데, 갑자기 그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어찌 그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있겠소?]
현법은 차갑게 응수했다.
[장문 사형이 당신을 친구로 여겼는지 잘 모르지만 지금 폐파에서는
새 장문인을 추대하고 있는 중이고, 또 작고하신 장문인의 장례를 의
논해야 하오. 결코 어떠한 사람도 산 위로 올라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소.]
[어떠한 사람도 산 위로 올라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겠다고?]
고명원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어떠한 사람도 그럴수 없다는 것이오?]
그는 일부러 어떠한 사람이라는 다섯 글자에 힘을 주었다.
현법도장은 그 말을 듣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어떠한 사람도 산 위로 올라갈 수 없소.]
고명원은 냉소했다.
[흥, 그렇다면 오도인과 나엽대사는 사람이 아니오?]
현법은 안색이 변했다.
[고시주는 두 분이 산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셨소?]
고명원은 되물었다.
[노부가 직접 볼 필요가 어디 있소? 설마하니 그 일이 사실이 아니란
말이오?]
현법은 매서운 눈빛으로 송풍과 송월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송풍은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숙였다.
[송월 사제가...]
송월은 고개를 숙였다.
[저는... 저는...]
현법도인은 대노했다.
[밥통들. 저리 꺼지지 못해!]
고명원은 낭랑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 하! 하! 옳소! 사람들이 모두 도장처럼 총명하다면 무슨 일이건
수월하게 해결되었을 것이오!]
현법도인은 안색이 시퍼래졌다.
[고시주는 비아냥거릴 필요 없소. 오늘 폐파에서는 귀하가 산 위로 오
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오!]
고명원은 안색을 굳혔다.
[만약에 내가 반드시 올라가겠다면?]
현법도인은 냉랭히 대답했다.
[그렇다면 고시주는 폐파와 적이 되는 것이오.]
고명원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노부는 무당파를 적으로 삼는 재미가 어떤지 맛보아야겠군!]
현법도인은 응수했다.
[설사 시주가 상청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해도 무당산에서 내려가
지는 못할 것이오.]
고명원은 두 눈에서 매서운 광채를 쏘아내며 소리쳤다.
[누구든지 노부가 산 위로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적으로 알겠소. 현법, 당신은 노부의 적이 되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아시오?]
현법은 잠자코 있었다. 그의 등뒤에 서 있던 송풍과 송월도 천천히
옆으로 비켜 섰다. 아니 기각(崎角) 자세로 섰다.
고명원은 호통을 내질렀다.
[무당이 노부를 적대시한다면 무당파 제자들 피가 상청궁에서 해검암
까지 흘러내릴 것이다. 현법, 노부가 미리 말하지 않았다고 탓하지 마
라.]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
뎠을 적에 검광이 번쩍이며 두 자루의 장검이 비스듬히 그의 가슴팍
에 있는 요혈을 찔러갔다.
고명원은 두 눈을 부릅떴다. 미간에 짙은 살기가 피어올랐고 그의 입
에서는 무서운 호통이 떨어졌다.
[꺼져!]
손을 쭉 뻗자 한 줄기 붉은 그림자가 날카로운 파공성을 일으키며 뻗
쳐나났다. 두 자루의 장검은 어느 덧 그 괴이한 장력에 두 토막이 나
고 말았다.
고명원은 광소를 터뜨렸다.
[으핫핫! 쌀알같은 구슬이 감히 태양과 빛을 다투다니...]
손을 벼락같이 내려치자 두 마디의 처참한 비명과 함께 송풍과 송월
은 여덟자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아침 햇살 아래 그들의 가슴팍에는 새빨간 손자국이 나 있었다.
해검암은 무당으로 오르는 첫번째 중요한 관문이었다. 무당파의 고수
가 아니면 해검암을 지키는 임무를 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송풍과 송
월은 혈수천마의 일초도 견뎌내지 못하고 죽어버렸으니 그 끔찍한 혈
수인(血手印) 사공(邪功)에 현법은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현법은 노해 소리쳤다.
[고명원, 당신은 정말 심보가 악독하군!]
고명원은 냉랭히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두 자루의 검이 노부의 칠감(七坎)과 쇄심(鎖心) 두 혈도를
찔러 올 때, 당신은 어째서 악독하다고 하지 않았지? 흥! 노부는 무림
에서 사도(邪道)로 일컬어지지만 정파로 자처하는 사람들처럼 비겁하
진 않소!]
현법은 장검을 뽑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도명(道明), 빨리 산 위로 올라가서 현청(玄淸) 사숙에게 알려라. 혈수
천마가 무당산을 피로 씻으려 하고 있다고 전해라. 나는 이곳에서 도
안(道安)과 더불어 막아 보겠다.]
그 중년 도사는 나는 듯이 산위로 달려 올라갔다.
고명원은 광소를 터뜨렸다.
[하! 하! 하! 어딜 가려고?]
광소를 터뜨리며 그는 일장이나 솟아오르더니 신형을 쏜살처럼 움직
여 도명에게 덮쳐갔다.
현법은 나직이 호통치며 검을 휘둘렀다. 검광이 번쩍이는 순간 고명
원을 노리고 삼검을 공격했다.
혈수천마 고명원은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발길질을 했다.
팍!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그의 발끝이 현법이 쥐고 있는 검을 걷어차
고, 그 탄력을 이용해서 원자세 그대로 덮쳐갔다.
도명은 상반신을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며 장검으로 반원을 그
려 거화요천(擧火燎天)을 펼쳐 혈수천마를 후려쳤다.
고명원은 광소를 터뜨리며 오른쪽 소맷자락을 번쩍 쳐들었다. 마치
철판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그 소맷자락이 후려쳐 오는 장검과 마주
치는 순간 장검은 즉시 퉁겨 나갔다.
도명은 얼굴을 위로 쳐들고 있었기 때문에 고명원의오른발이 그의
얼굴을 밟아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짧은 거리 안에서 그는 자기가 절대적으로 피할 수 없다
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절망한 끝에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발바닥이 바로 그의 머리통을 밟아버리려는 그 순간, 별안간 나직하
고 희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버지! 그를 용서해 주세요!]
그 소리는 대광주리 속에서 흘러나왔다. 도명의 입에서 터져나온 비
명 소리와 비교해서 아주 미약했으나 고명원의 귀에는 마치 천둥소리
처럼 똑똑히 들렸다.
그는 흠칫해서 오른발을 도명의 코끝에서 불과 두치 정도 남긴 곳에
서 거두어들이고 왼발에 힘을 주어 도명의 왼쪽 어깨를 밟았다.
우지끈!
하는 음향이 울려 퍼지고 도명은 왼쪽 견골이 바스러져 땅바닥에 고
꾸라지고 말았다.
고명원은 그 밟는 힘을 빌어 여덟자 밖으로 몸을 날려 사뿐히 땅위
에 내려섰다.
등뒤에서 현법과 도안이 장검을 들고 협공해 왔다. 고명원은 몸을 빙
글 돌리며 그들을 마주 보았다.
현법은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노마두, 네가 고집을 피워 무당산 안으로 뛰어든다면 오늘 너는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 것이다.]
고명원은 소리내어 웃었다.
[하! 하! 하! 노부는 강호를 이십 년간 주름잡으며 일대검성 매화상인
과 일대 일로 싸울 때를 제외하고 적수를 만나지 못했다.]
현법도인은 냉랭히 대꾸했다.
[네가 구대문파와 적이 되겠다면 나도 더 할 말이 없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품속에서 물건을 꺼내 하늘을 향해 던졌다.
허공에서 잇달아 아홉 번의 폭발음이 들렸다. 둥그런 붉은빛 속에 아
홉 점의 파란 불꽃이 곧장 허공으로 쏘아져 나아가고 있었다.
[구자연환탄(九子連環彈)!]
그는 속으로 적이 놀라며 다시 의문을떠올렸다.
(무당은 또 언제 사천당문(四川唐門)과 결탁했을까?)
그는 살기를 띠고 냉랭히 입을 열었다.
[노부는 오늘 피로 무당을 씻는 한이 있어도 이번 일을 꼭 밝혀내고
말겠다. 현법! 당당한 무당파에서 사천당문과 사통할 줄은 몰랐다.]
현법은 안색이 음침해지면서 도안에게 말했다.
[우리는 양의검진(兩儀劍陳)을 펼쳐서...]
고명원은 호통을 질렀다.
[잡도사, 죽고 싶냐!]
그의 우람한 체구가 급히 달려들었다. 얼굴에 살기가 가득하고 소맷
자락은 한 조각의 붉은 구름 같았다.
현법은 깜짝 놀라 큰소리로 외쳤다.
[양의초분(兩儀初焚)! 공격!]
도안 검을 휘둘러 공격해 왔다. 그러나 고명원은 바짝 달려들면서 다
섯 손가락을 칼날처럼 세워 비스듬히 찔렀다. 마치 번개처럼 촘촘한
검의 그림자를 뚫고 바로 현법의 가슴팍에 격중되었다.
[으악!]
처참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장검이 그의 손에서 날아갔다. 현법
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고 대뜸 피부가 새까맣게 타면서 이곳 저곳
에 물집이 툭툭 불거졌다.
도안은 검을 반쯤 펼쳐 내다가 눈앞에 벌어진 그 끔찍한 광경에 깜
짝 놀라 손쓰는 것을 잊어버리고 멍청하니 서 있었다.
현법의 새까맣게 탄 입술이 한차례 부르르 떨리고 절망의 눈빛이 떠
올랐다. 그는 공허한 시선으로 앞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었
다. 한참 후에야 그의 입에서 한마디가 새어 나왔다.
[분심마인(焚心魔刃)!]
이 공허한 음성이 허공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고명원은 이미 대광주
리를 받쳐 들고 몸을 돌려 산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혈수천마 고명원은 단숨에 이십여 장이나 달려 올라갔으나 무당의
제자는 한 사람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산 속이 이토록 조용한 것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다. 폭풍 직전의
고요와 같구나.)
그는 무척 영민한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현천도장의 죽음에
의혹을 품지 못했으리라.
그는 현천도장이 오늘 아침 단실에서 죽었다는 말을 듣고 더욱 의혹
을 느꼈다. 공동장문 오도인과 아미장문 나엽대사가 상청궁으로 갔고
사천당문의 사람도 산 위로 올라갔기 때문에 그는 직감적으로 현천도
장의 죽음이 그 세 사람과 관련이 있다고 내다 보았다.
(만약 이 가운데 어떤 음모가 있다면, 음모를 꾸민 자는 틀림없이 전
체 무당파의 힘을발동시켜 나를 물리치려 할 것이며, 나로 하여금 그
들의 음모를 폭로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이번에 산 위로 올라가면
틀림없이 목숨을 건 싸움이 붙게 될 것이다.)
그는 자기가 상청궁 안으로 뛰어들면 자기가 구대문파의 적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그는 지금 반신불수의 아들을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와
아들의 안전을 돌보아야 했다.
마음속으로 무수한 상념이 떠올랐다. 한참 동안 그는 무당산에서 물
러나야 할 것인지를 결정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걸음을 옮겨
놓고 있었다.
그는 길옆에 한 채의 팔각정이 있는 것을 보고 대광주리 안에 있는
검남에게 당부했다.
[남아, 우리 좀 쉬었다가 다시 산 위로 오르자!]
고검남은 대광주리 안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아버지, 밤새워 달려오느라고 지치셧으니 좀 쉬도록 하세요.]
고명원은 성큼성큼 팔각정 안으로 들어가 대광주리를 돌 의자 위에
올려놓고 그 자신은 그 옆에 앉았다.
그는 운기조식을 한차례 하고, 마교(魔敎)의 윤회대법(輪 大法)을 돋
구어 진기를 몸 안에서 세번 돌도록 만들고나서 길게 숨을 내쉬고 눈
을 떴다.
[검남아...]
그는 자기 아들을 바라보았다.
[너는 이 아버지가 상청궁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고검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가셔야죠!]
고명원은 물었다.
[어째서? 현천도장께서는 이미 돌아가셨고 우리들은 그를 만나 뵐 수
가 없다. 뿐만 아니라 무당파에서도 우리 부자 두 사람이 찾아오는 것
을 싫어한다. 어쩌면 이번에 올라갔다가 무당파와 큰 원한을 맺게 될
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고검남은 웃었다.
[저는 아버지가 일부러 저에게 묻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제 짐작으
로, 현천도장은 틀림없이 약을 만들 때에 단실에서 해꼬지를 당했을
거라는 생각이에요. 어쩌면 그 어르신께서 저의 병을 고쳐 주려고 약
을 만들다가 해침을 받아 돌아가셨는지도 모르지요. 우리들이 무당산
에 온 이상 어떻게 그 분의 마지막 가는 얼굴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겠어요. 어쩌면 그 나쁜 사람을 찾아내어 그 어르신의 원수를 갚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고명원은 너무 대견해서 웃었다.
[하! 이 녀석 봐라.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했느냐? 너는 무엇을 보고
현천도장이 남의 해침을 당해서 돌아 가셨다고 단정했느냐?]
고검남은 설명했다.
[그건 현법이 한 말을 들어보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요. 어떤 내막
이 없었다면 그는 얼마든지 우리를 산 위로 올려 보낼 수 있었을 것
이고, 또 우리가 현천도장과 약속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가 장문인의 사제라면 틀림없이 이번 사정을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도 그는 거짓말을 했으니 틀림없이 음모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고명원은 아들의 총명함에 마음 속으로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
으로는 괴로웠다.
그는 자기의 아들이 나이는 어리지만 그토록 총명하고 사리 분석이
탁월하며 생김새도 귀엽지만, 불구의 몸으로 태어나 열 네 살이 되도
록 걷지도 못하고 치료를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죽게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던 것이다.
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봅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