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신앙을 가진 이들이 말하곤 했다. 주님은 한쪽 문을 닫을 때 동시에 다른 쪽 문을 열어놓는다고.
그다지 동의하진 않지만 그 논리를 빌자면, 미자에게 ‘시’라는 출구가 생긴 것이다. 번개처럼 이미 와
있는 사건들을 미자는 시를 쓰며 헤쳐 간다. 손바닥만한 수첩을 수시로 꺼내어 느낌과 생각을 한 줄
한 줄 밀고 나간다. ‘오백만원만 주세요’ ‘협박하나’는 가장 애절한 시구다. 원래 시는 지독한 리얼리즘이다.
하지만 고통의 서사를 통째로 스캔하여 보여주면 시가 아니다. 마음 아픈 것만으로는 결코 시가 되지 않는
다. 우리가 파란만장 인생을 소설 같다고 말하지 시 같은 인생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다. 시는 전개가
아니라 함축, 분출이 아니라 절제다. 그리고 시는, 기필코 아름다움에 관여해야 한다.
이창동의 <시>는 그런 점에서 시의 본령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다. <밀양>에서 전도연이 목 놓아 울며
분출했다면 <시>에서 윤정희는 속울음 삭이며 흐느낀다. 미자는 삶에서 만나는 고통스러운 긴장을
안고 끌고 가다가 마침내 시를 분만한다. 몸속에서 뜨거운 해가 쑥 빠져나오듯이. 부패와 부조리로 막힌
세상을 시가 뚫는다. 죄의식을 모르는 수컷들의 세계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미자. 병든 이의 몸을 연신
씻겨내는 미자. 손자의 때 낀 발톱을 정성스레 깎아주는 미자. 더러움을 벗기고 어여쁨을 보려는 미자.
아름다움에 연연하는 이에게는 새로운 통찰이 움트고, 길가에 떨어져 터진 살구를 연민하는 이는 윤리
적인 선택을 내리게 돼 있다고 나는 믿는다. 세상이 더럽고 추하고 짐승스럽다고 하더라도, 더러움이,
추함이, 짐승스러움이 세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김현). 그것이 문학의 실천적 본성이며,
기복이 없는 일급 이창동의 영화 <시>다.
글 출처ttp://beforesunset.tistory.com 천개의 눈 천개의 길 561125629^http://beforesunset.tistory.com/464^N561125629561125629^http://beforesunset.tistory.com/464^N ㅣ 은-유
첫댓글 내가 살만할 땐 시를 읽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해서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생이 막막할 때 삶에 지칠 때 처방전을 찾기 위해 시집을 편다.
공감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