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예수님의 캐릭터’
이광호 목사(실로암교회)
[‘예수’의 캐릭터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본화 작업일 뿐 아니라 참된 신앙에 해가 된다: 축구하는 예수, 자전거 타는 예수, 수영하는 예수 등의 모습을 캐릭터로서 상품화하여 일반인들에게 친밀감을 제공하려는 행위는 진리를 훼손할 우려만 커질 따름이다. (불교에서는 유사한 형태의 부처 캐릭터를 내놓고 있음과, 단군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단군을 다양하게 캐릭터화 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타락한 인간들은 항상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신(神)에 대해서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상하며 단정 짓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을 머리에 떠올리며 그림으로 그리면서 그 악한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화가들 가운데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 대해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린 자들도 있다. 그것은 민족주의적 경향을 지닌 비성경적인 위험한 접근이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한복을 알지 못했으며 그런 의상의 옷을 입은 적이 없다.
만일 지구상에 있는 다양한 종족들마다 예수님에게 저들의 전통적 의상을 입히고 대중의 구미에 맞는 형태의 예수를 그림으로 제시한다면 여간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잘못된 기독교 민족주의는 믿음의 선배들을 착각하게 만드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조차 그런 엉터리 그림을 두고 그것이 마치 기독교 신앙을 훌륭하게 표현한 것인 양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것들이 일반화되면 신앙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그에 대한 정당한 신학적 비판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예수님을 형상화하는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캐릭터 하는 작업이 유행하고 있다. 그것은 어른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지만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유년주일학교에서는 갖가지 활동을 하는 예수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진 그림들 위에 예쁜 색깔로 덧칠하게 하는 놀이가 새롭지 않다.
시대적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은 축구하는 예수, 자전거 타는 예수, 아이들과 딱지치기하는 예수, 물에서 수영하는 예수 등 다양한 형태의 상품을 내놓고 있다. 그런 것들을 제작하는 자들은 일반인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친밀감을 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저들의 의도와는 달리 그것은 매우 위험한 작업이다.
그런 캐릭터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인간들 주변에서 생활하는 일상적인 예수님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경외의 대상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사라지게 하고 만다.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대해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함께 놀아주고 생활하는 편안한 이웃 정도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인본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다양한 캐릭터들을 상품화하여 유행시키는 자들 가운데는 그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예수님에 관련된 인위적인 상상을 상품화하여 영리를 취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발상은 하나님의 교회를 혼탁하게 하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발상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성도라면 결코 그렇게 할 수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에는 예수님을 인본적으로 캐릭터화한 그림들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와 같은 종교적 양상은 기독교 뿐 아니라 불교, 유교, 단군교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자전거 타는 부처, 축구하는 공자, 수영하는 단군 등이 곧 그것들이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신앙이 어린 자들로 하여금 종교 다원주의적 사고를 하게 만들 우려마저 없지 않다. 그런 것들을 통해 기독교의 예수나 불교의 부처나 유교의 공자나 모든 종교 대표자들은 훌륭한 성인이라는 인본주의 사고에 물들게 된다. 그것은 신앙에 대해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캐릭터들이 성경에 계시된 예수님을 얼마나 크게 왜곡시키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계시된 말씀 자체로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형상화하거나 캐릭터화 하는 일에 대해 냉철한 비판을 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을 넘어 인간들의 경험적 상상을 통해 표현해내는 실용적인 예수의 캐릭터는 위험한 우상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일은 결국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의 신성을 약화시키고 소위 훌륭한 성인으로 인본화하는 데 주력하게 될 따름이다. 교회는 이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을 가지고 혼탁한 세상을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