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죽을 힘 다해서 살기 위해 열심히 장사하는 게 잘못입니까? 차라리 잘못이 있어서 쫓겨난다면 이렇게 서글프지는 않을 거예요. 왜 목숨 같은 가게를 잃고 쫓겨나야 하는 겁니까?”
밤새 한숨도 못 잤다. 강제 집행이 들어온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화도 나고 걱정도 되고 하는데 잠이 오나요.” 잠을 못 이룬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강제 집행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항상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3년쯤 전에 찾아온 심장병을 지병으로 갖고 있다. 병원을 예약해 놨지만 강제 집행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가지도 못하고 연기했다.
혹시나 강제 집행이 접수된 것이 있을까 싶어 서초동 법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담당 집행관은 자리에 없다고 했다. 헛걸음만 했다. 서울 종로구 청진동 꼬치구이 정종대포 ‘만복’ 사장 김선희(58)씨의 얘기이다. 5월 26일 <민중의소리>는 김씨를 만났다. 그는 막 법원에 다녀온 참이었다. 얼굴에는 고단함이 묻어 있었다.
김씨는 2006년 권리금 2억원을 이전 임차인에게 주고 들어와 햇수로 10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만복(萬福)’은 ‘남도’의 솜씨가 담긴 맛있는 음식으로 많은 손님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가게 이름은 ‘만 개의 복’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김씨 자신과 “목숨과도 같은” 가게는 이제 벼랑 끝에 서 있다. 맨몸뚱이로 쫓겨날 판이다.
국가도, 법도 그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권리금 약탈’로부터 임차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상가 권리금을 법으로 보장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지난 5월 12일 국회를 통과하고 다음날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전에 계약이 만료된 김씨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법원의 결정대로라면 그는 3월 15일까지만 장사를 할 수 있었다.
개정법에 따르면 임대인은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과 계약을 체결할 협력 의무를 가지게 된다. 만약 법이 가게 계약 기간 중에 국회를 통과했다면 김씨는 신규 임차인과 자연스럽게 양도·양수 과정을 거치면서 권리금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을 것이다. 이 권리금은 김씨가 다른 곳에서 영업을 계속할 수 있는 금전적 기반이다.
그러나 김씨는 기존 법으로도, 새로운 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하게 됐다. 결국 3월 16일 재개업을 선언한 뒤 버티고 있다. 임대인의 대리인이 살고 있는 동네에 가서 1인 시위를 하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도 당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지만 답은 없다. 이러한 싸움은 김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권(‘스스로의 권리’라는 뜻으로 사용)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신부님에게 고해성사를 했어요. 그러고 물었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니까 신부님이 ‘주권을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하더라고요. 하느님도 무조건 희생만을 강요하지 않으니까 주권을 포기하지 말라고, 후회없이 하라고. 이건 주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에요.”
“제가 불 낸 것도 아니고 임대료를 밀린 적도 없어요.
임대인은 장사 할 만큼 했으니 나가라고 했죠.
가장 절박할 때 비인간적인 처사를 한 거예요.”
김씨가 ‘만복’을 운영한 지 7년쯤 지난 2013년 3월. 가게가 있던 건물의 2층에 화마가 덮쳤다. 화재 원인은 김씨나 가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불과 화재 진압을 위해 뿌려진 물로 ‘만복’은 폐허가 됐다. 내부 집기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김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자비로 가게를 수리하기로 했다. 수리비로 4천만원이 들었다.
그러나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대인이 김씨에게 나가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임대인은 화재가 난 김에 가게를 수리해 다른 임차인에게 넘기겠다고 했다. “제가 불을 낸 것도 아니고 임대료를 단 하루도 밀린 적이 없는데, 임대인은 그냥 나가라고 하면서 저에게 명도소송(건물을 비워 넘거 달라는 소송)을 걸었어요. (임대인은) 장사를 할 만큼 했으니 아무 말 없이 그냥 나가라고 했죠.”
김씨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제가 여기 상권을 살리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저도 불 때문에 피해를 엄청나게 봤는데 아무것도 보상도 없이, 심지어 이사 비용도 발생시키지 않고 그냥 알거지로 쫓아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가장 절박할 때 비인간적인 처사를 한 거예요.”
그러나 상가임대차보호법상 계약 기간이 5년이 넘어서 보호를 받을 수도 없었다. 임대인이 퇴거를 요청하면 그냥 나가야 했던 상황이었다. 김씨는 임대인에게 새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이라도 양도·양수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거부당했다.
“(임대인이) 건물을 깔끔히 수리해 주고 임대료를 많이 올려줄 다른 임차인을 원한다고 하더라고요. 신구 임차인 사이에 오가는 권리금은 제가 내고 들어와서 그동안 쌓은 영업 가치인데 저는 받을 권리가 없대요. 그 권리금은 어디로 갔냐고 물어보니 모른대요. 할 만큼 했으니 그냥 나가라는 거예요.” 사회에서는 이러한 임대인의 행위에 대해 속칭 “권리금 약탈”이라고 부른다. 이를 막기 위해 상가임대차보호법도 개정됐다. 하지만 김씨는 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만복은 내 삶이자 목숨과 같은 가게”
“권리금을 빼앗기는 것은 삶을 빼앗기는 것과 같아요”
“‘만복’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가게예요. 제 삶이자 목숨과 같은 가게죠.”
지금의 자리에서 ‘만복’을 운영하기 전까지 김씨는 모진 고생을 하며 살아왔다. 그는 1957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가난한 집안의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중학교만 마치고 가진 것 없이 인천으로 올라와 특별한 기술 없이 작은 회사에 다니다 결혼을 했다. 결혼 후에도 가난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다. 김씨는 어린 딸을 업고 리어카를 끌면서 도너츠 장사를 시작했다.
“어렵게 모든 돈으로 장사를 시작했어요. 그때 유행하던 게 도너츠였어요. 딸이 태어난 게 81년도니까 82년도쯤이었을 거예요. 분유를 살 돈도 없었어요. 보리 삶은 물을 토악질하는 백일도 안 된 딸아이 입에 밀어넣으면서 안양천 부근에서 리어카를 놓고 도너츠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죠.
겨울에는 하루종일 업혀 있던 딸아이의 양손에 동상이 들었어요. 큰 비가 오던 여름에는 리어카 옆에 잠깐 뒀던 딸아이가 수로로 떠내려가는 것을 겨우 건져내기도 했어요. 이러다 둘 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딸아이를 고향에 맡겨놓고 서울로 올라와 남의 집 일, 식당 일 등을 닥치는 대로 했어요. 단 하루도 쉬지 못했어요. 밥그릇마다, 국그릇마다 딸아이 얼굴이 떠올랐어요.”
그래도 그에게는 남다른 손맛이 있었다. 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인천에서 작은 분식집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딸과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행복이었다. 김씨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한 달에 10만원도 모으고 20만원도 모으고. 저라고 남들이 갖고 다니는 좋은 가방 왜 안 사고 싶었겠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살자’며 꾹 참았죠. 좋은 가방이 텅 빈 것보다, 천원 짜리 가방에 만원 짜리가 들어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어요.” 이후 보쌈집도 했고 제과점을 하다가 한 번 크게 실패한 일도 있다.
하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었는지, 2006년 현 위치에 가게를 얻어 ‘만복’을 개업하게 된다. 그는 ‘마지막 장사’라는 마음이었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여기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장사를 하고 끝내야지 생각했죠. 권리금은 일종의 적금처럼 부어놨던 노후의 퇴직금 같은 돈이었어요.”
‘만복’을 운영하면서도 우여곡절은 계속됐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에는 경찰버스와 경찰들이 하루종일 진을 치고 있었던 탓에 손님들의 발길이 뜸했다. 또 청진동 일대 재개발 때문에 7년여간 온동네가 공사판이 되기도 했다. ‘주점’이다 보니 취객들과의 마찰도 있었고, ‘묻지마 강도’에게 두드려 맞아 응급실에 실려간 일도 있다. 남편과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고, 심장병까지 얻었다.
그럼에도 김씨는 “나만 바르게 열심히 일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꿋꿋이 일했다. 임대료도 하루도 밀리지 않았고 성실히 냈다고 한다. 그 사이 딸도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게 됐다. “눈도 못 뜨는 아픈 아이를 업고 병원비를 빌려보려고 안양 박달동까지 두 시간 동안 걸어가던 길에 보았던 목련 꽃봉오리를 기억해요. 그때는 우리 딸이 목련꽃처럼 예쁘게 클 때쯤이면 지독한 가난도 끝나고 서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김씨는 희노애락이 깃든 가게를 잃고 빈손으로 쫓겨날 운명에 처했다. 2013년에 덮친 화재와 임대인의 ‘퇴거’ 요구는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마지막이라고 하고 여기 왔는데, 이렇게 알몸으로 쫓겨나면 더 이상 할 게 없어요. 권리금을 빼앗기는 것은 삶을 빼앗기는 것과 같아요.” 법도 그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김씨는 “사실상 국가가 쫓아내는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부당한 건물주 횡포, 약자에 눈감은 법 앞에 굴하지 않을 거예요”
김씨의 처지를 알고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맘상모)’ 사람들이다. ‘맘상모’는 ‘쫓겨났거나, 쫓겨날 위기에 있는, 쫓겨날지도 모르는 임차 상인들’이 모여 있는 단체이다. 김씨와 ‘맘상모’는 2013년 화재 당시 인연이 닿았다. <민중의소리>가 김씨를 만난 날에도 ‘맘상모’ 회원들이 함께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김씨는 이들과 끝까지 버틸 생각이다.
“버틸 만해서 버티는 게 아니예요. 목숨을 걸고 있는 겁니다. 이미 노후로 접어들었고, 여기서 나가면 생계 자체가 막막해져요. 최악의 상황이 되는 거죠. 제가 만든 영업가치를 법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해요. 떳떳이 지켜낼 겁니다.
어떤 불행에도 참기만 했는데 이제는 못 참아요. 부당한 건물주의 횡포, 그리고 약자에 눈감은 법 앞에 굴하지 않을 거예요. 임대인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함께 사는 법, ‘상생’의 길을 찾았으면 해요. 그리고 저 같은 피해자들이 꽤 많이 있어요. 그런 분들도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첫댓글 힘내세요. 사장님
응원합니다
원래 권리금은 못 받는다고 생각하고 장사하는 거 아닌가요
권리금 2억 줬다는 근거는 확보하고 계신지 큰 액수다 보니 현금으로 주시지는 않았을 거구 수표로 하셨으면 근거가 남을텐데요
사장님 끝까지 힘내세요!!
화이팅 기운내세요
건강잃고, 마음다치면 더 손해잖아요 건강 챙겨가며 기운내세요 응원합니다.
끝까지 잘되시라고 힘찬 응원 합니다^^
기운잃지마시고 건강도 생각하시어 행동하세요.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