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커’ 장점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
돈육시장 50% 이상 농가가 주도를
지금 우리 양돈업계의 관심은 온통 한-EU FTA협정과 더불어 대형 팩커 육성책에 집중되어있다.
지난 수년간 우리 양돈업계는 위생적인 요인에 의한 최악의 생산성 문제와 축산 환경 문제 등에 발목이 잡혀 있을 동안 우리와 최초로 FTA를 체결한 칠레의 대형 팩커인 아그로슈퍼사는 2014년 관세장벽이 완전히 없어지는 우리나라 시장을 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는 실체가 드러나자 우리업계나 정책당국 모두가 다급해진 것이다.
우리 양돈산업은 UR협정 이후부터 급격히 전업농·기업농형태로 변모하면서 농업식품분야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산업으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산업 경쟁력에 있어서는 양돈선진국과는 아직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전체의 이익을 위한 정책기조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국가 간 FTA체결로 그 보호막이 하나씩 철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막대한 자본을 중심으로 한 양돈업계열화 즉, 종돈·사료·사육·도축·가공·유통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통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대형 팩커의 등장은 현재의 사육기능 중심의 우리 양돈농가의 시각으로 보면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여러해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몇 개의 기업형 팩커의 태동은 시작되었으며 급격히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 또한 자본주의의 냉엄한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8천여 양돈농가와 공존할 수 있게 우리 실정에 맞는 FTA 대응모델을 찾고 그에 걸맞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러한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우리의 시장을 넘보는 양돈강국을 살펴보면 하나는 미국·남미 기업중심의 대형 팩커이고 또 하나는 유럽의 덴마크와 같은 생산자 중심으로 한 협동조합형태가 있다. 이 둘 모두 거대한 계열화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양돈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형태의 장점을 어떻게 우리 실정에 맞게 잘 적용하느냐에 그 답이 있다고 본다.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 양돈농가들은 대부분이 농업협동조합에 가입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농협조직을 중심으로 그 해법의 실마리를 풀어 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안이라고 본다.
더욱이 농협중앙회를 포함한 회원조합에서는 종돈·사료·도축·가공·유통 등의 산업기반시설을 상당히 보유하고 있다. 다만 너무 많은 조직들이 혼재해 제각각 사업을 하다 보니 누구도 시장지배력을 갖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부분을 재편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대안 중 하나로 지역적 또는 기능이 비슷한 조합끼리 사업을 연합하거나 또는 통합하여 대형 팩커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업계가 찾고자 하는 가장 현실적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두들 침묵하고 있지만 이제는 용기 있는 행동이 필요할 때이다. 남은 기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조합원인 농가와 양돈산업의 생존을 위해 지도자들이 몸을 던져야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리하여 국내 수많은 돈육브랜드를 통합해 국민 누구나가 인정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로 육성해 적어도 국내 돈육시장의 50% 이상을 생산농가들이 주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치열한 유통시장에서 농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FTA하의 우리 양돈산업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생산농가들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누가 봐도 생산성향상·원가절감의 주체는 양돈농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농가들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동안 미뤄왔던 분뇨처리 문제만 하더라도 2012년부터 국제협약에 따라 해양배출이 중단됨에 따라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한다.
그리고 양돈업관련 산업종사자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사료·약품·기자재 등 관련 산업은 양돈업 생산성과 원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함께 위기상황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특히 종돈분야는 산자수와 육질뿐 아니라 농장위생문제까지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양돈산업의 근간인 바 종자산업의 가치를 위해서라도 빠른 구조조정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양돈업은 한-EU FTA의 최대 피해 업종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정부당국에서는 협회 등 생산자 단체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따른 대책과 지원에 아낌이 없어야 할 것이다. 양돈 농가가 중심이 되어서 산업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