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수 시집 {사과꽃이 온다} 출간
한현수 시인은 전북 전주에서 출생했고, 2008년 시집 『내 마음의 숲』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2012년 계간시전문지 {발견}으로 등단했다. 시 전문계간지 『발견』의 편집위원이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활동 지원금을 받았다(2015). 시집으로 『오래된 말』, 『기다리는 게 버릇이 되었다』, 『눈물만큼의 이름』, 시편 묵상시집으로 『그가 들으시니』가 있다. 현재 분당 야베스가정의학과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현수 시인의 {사과꽃이 온다}는 그의 여섯 번째 시집이며, 그는 그의 종교적 상상력을 통하여 우리 인간들을 구원할 수 있는 이상세계를 펼쳐보인다.
사과꽃으로 하늘이 열리고, 사과꽃으로 태양이 떠오르고, 사과꽃으로 구원의 말씀이 쏟아진다. 사과꽃은 전인류의 스승이고, 사과꽃은 전인류의 지혜이고, 사과꽃은 전인류의 양식이다. 사과꽃이 온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영양가가 풍부한 사과꽃이 온다.
어느 산골 마을 농부는 사과꽃이 핀다고 말하지 않고 사과꽃이 온다고 말한다 사람이 오는 것처럼 저만치 사과꽃이 온다고 말한다 복을 빌어 줄 때도 너에게 사과꽃이 온다고 말한다 하늘이 열리길 바라는 것처럼 사과꽃을 말한다 정성을 다했는데 사과꽃이 오지 않으면 한 해 쉬어 가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보내 주는 분을 아는 것처럼 사과꽃을 기다리고 사과꽃의 배후를 말한다
---[사과꽃이 온다] 전문
동양이나 서양, 혹은 아프리카나 북중미 등, 우리 인간들이 꿈꾸는 것은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며, 우리 인간들은 모두가 다같이 ‘오점 없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전인류의 스승들은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다가 간 사람들이며, 우리는 말을 배우고 뛰어 놀 때부터 그 스승들의 책을 읽으며, 그 스승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부처라는 사과꽃이 오고, 예수라는 사과꽃이 오고, 마호메트라는 사과꽃이 온다. 호머라는 사과꽃이 오고, 괴테라는 사과꽃이 오고, 셰익스피어라는 사과꽃이 온다. 공자라는 사과꽃이 오고, 소크라테스라는 사과꽃이 오고, 칸트라는 사과꽃이 온다. 부처와 예수와 마호메트와 함께 천국이 오고, 호머와 괴테와 셰익스피어와 함께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 펼쳐진다. 한현수 시인의 [사과꽃이 온다]는 가장 거룩하고 성스러운 소식 중의 하나이며, 모든 걱정과 근심이 다 사라지는 기쁜 소식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과꽃은 농부의 생명이자 피이며, 사과꽃은 농부의 꿈이자 행복이고, 그 모든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씨앗을 뿌린 대로 싹이 나고, 그 가꾼 정성만큼 열매를 수확할 수가 있다. 꽃은 모든 존재의 결정체이자 그 존재의 증명이라고 할 수가 있다. 꽃은 정직하고 순수하며, 꽃은 그 무엇 하나 숨길 수가 없다. 영양이 부족해도 험이 있고 비바람을 맞았거나 걱정과 근심이 있어도 험이 있고, 그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어야 꽃의 아름다움은 그 절정을 이룰 수가 있다. 그러니까, “어느 산골 마을 농부는 사과꽃이 핀다고 말하지 않고 사과꽃이 온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오는 것처럼 저만치 사과꽃이 온다고 말”하고, “복을 빌어 줄 때도 너에게 사과꽃이 온다고 말한다.” 사과꽃으로 하늘이 열리고, 사과꽃으로 태양이 떠오르고, 사과꽃으로 구원의 말씀이 쏟아진다. 사과꽃은 전인류의 스승이고, 사과꽃은 전인류의 지혜이고, 사과꽃은 전인류의 양식이다.
독서는 농부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행위와도 똑같다. 독서는 농부가 풀을 뽑고 거름을 주며, 지극정성으로 사과나무를 가꾸는 것과도 똑같다. 예수와 부처를 공부하며 예수와 부처를 심고, 공자와 소크라테스를 공부하며 공자와 소크라테스를 심는다. 데카르트와 칸트를 공부하며 데카르트와 칸트를 심고, 뉴턴과 아인시타인을 공부하며 뉴턴과 아인시타인을 심는다. 전인류의 스승은 인간 중의 인간이며, 어릴 때부터 이 스승들의 책을 읽으며, 그 스승들과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친구를 사귀어도 전인류의 스승을 존경하는 친구들과 사귀며, 그들과 상호토론과 상호비판을 통해서 모두가 다같이 전인류의 스승이 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사과꽃이 온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시인이 탄생한다.
앞마당에 큰 풍경을 열어두었다// 누구나 들뜬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은/ 둘이 하나 되는 강,// 새떼를 몰고 휘돌아 갈 때// 다산茶山을 만든 두물머리는 넌지시 두 눈까지 치밀고/ 난 한걸음 떼었을 뿐인데// 첫마디부터 묵언!// 마음에서 강 하나씩 일어나게 하라고/바람이 오백 년 은행나무 손끝을 친다
―「수종사」, 전문
오백 년 된 은행나무로 유명한 수종사가 시적 대상이 되고 있다.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둘이 하나 되는 강”이라든가 “다산을 만든 두물머리”, 혹은 “마음에서 강 하나씩 일어나게 하라고” 등의 표현에서 강에 대한 시인의 초점화된 관심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주된 관심사인 강은 “앞마당에 큰 풍경을 열어두었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수종사라는 절이 품고 있는 풍경 속에 있는데, 그것이 수종사가 시인에게 감명적으로 다가온 이유이기도 하다.
수종사가 품고 있는 강이 전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이다. “첫마디부터 묵언!”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 말도 하지 말하는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하는 것은 곧 침묵하라는 것인데, 침묵하라는 것은 곧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세상을 관조하며 타자를 받아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품고 있는 신념과 주장을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두지 말고 세상의 이치와 흐름을 받아들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강이 전하는 두 번째 메시지는 “마음에서 강 하나씩 일어나게 하라”는 전언인데, 이러한 메시지 역시 자연의 섭리를 깨우치고 받아들일 것을 강조하고 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물의 흐름은 도(道)를 닮아 있으며, 그러한 물의 흐름이라는 이치를 따르는 것이 지극한 도에 이르는 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마음에서 강 하나씩 일어나게 하라”는 강의 메시지는 바로 이러한 이치를 체현하고 있는 전언으로서, 위대한 수동성이 삶의 이치라든가 자연의 섭리와 닿아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다음 시를 보면 위대한 수동성에 도달하는 길이 곧 돌아가는 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나무 속으로 들어가세요/ 한 걸음씩 가운데로 들어가세요/ 나이 들수록 안으로 들어가세요/ 비어있는 공간이 너무 많아요/ 머뭇거리지 말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세요/ 가운데는 춥지 않아요/ 거기서 당신의 몸을 조금씩 줄이세요/ 단단해질 때까지 숨을 죽이세요/ 밀착 밀착/ 조금만 더 안으로 밀고 들어가세요/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쑥쑥 자라날 수 있습니다/ 지구 끝까지라도 닿을 수 있습니다/ 바깥에는 꽃이 피고 있어요/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이번 역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나이테역」, 전문
“나무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 “한 걸음씩 가운데로 들어가”라는 것,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 등의 표현에서 안으로 응축하고 집중하라는 시적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기를 권장하는 것은 안으로 들어가면 “비어있는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 등의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상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쑥쑥 자라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지구 끝까지라도 닿을 수 있”다는 것, 혹은 “바깥에는 꽃이 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시인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당신의 몸을 조금씩 줄”여야 하고, “단단해질 때까지 숨을 죽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시인이 강조하는 바에 따르면 나무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 한 가운데로,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러한 틈입이 매우 긍정적인 가치를 산출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왜 시인은 이토록 안으로 들어갈 것을 권유하는 것일까? “나이테역”이라는 제목에 유의해 보면, 나무 안쪽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곧 나이테의 중심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을 뜻하고, 나이테의 중심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곧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테의 중심이란 곧 가장 오래전에 생성된 나무의 중심이며, 과거의 시간이 오롯이 남아 있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인이 강조하는 것처럼 나이테의 중심으로 들어가라는 것은 곧 순수했던 유년의 시공으로 돌아가라는 것, 세속의 때가 묻지 않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럴 때 숨쉴 수 있는 비어있는 공간이 나타나고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럴 때 자아는 우주만큼 커다랗게 확장할 수 있으며 세상에는 꽃이 피어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현수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인 사과꽃이 온다의 시세계를 조망해 보았다. 맑고 깨끗한 심성으로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시적 이미지와 시적 사유가 그윽하고 아득하게 펼쳐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인은 세상의 더러움과 오물을 청소하는 청소부처럼, 혹은 세상에 만연한 고통과 질병을 치유하는 의사이자 영혼의 치유자처럼, 그리고 독자들을 성스러운 영역으로 인도하는 사제이자 샤먼과 같은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인이 신성한 영역을 시적 공간에 펼쳐 놓는 것은 그것을 통해 독자들이 영혼의 정화를 체험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맑은 영혼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공감과 어울림, 그리고 섭리와 이치에 귀의하는 위대한 수동성을 지닐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시인의 시적 메시지와 시의식, 그리고 시적 태도에서 종교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여전히 우리 시에서 종교적 영역이 필요하다는 하나의 방증이 될 것이다.
----한현수 시집 {사과꽃이 온다}, 도서출판 지혜, 값 1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