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꽃 ‘한지’ 세계에 알리다.
....박 금 숙
“잘 다녀 오겠습니다.”
이른 새벽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떠난 8박 10일의 일정 ‘2015 모로코 한지문화제’
11월 21일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는 파리드골공항을 거쳐 모로코라바트 살레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의 초겨울을 연상케하는 날씨는 비교적 쾌적하였다.
공항에서 우리를 맞이한 가이드는 모로코의 원래 정식이름은 ‘모로코왕국’이라는 설명을 시작으로 모로코왕국에 대해 알려주었다.
수도는 라바트이고 동쪽과 남동쪽은 알제리, 남쪽은 서사하라와 접해 있으며, 북쪽은 지중해, 서쪽은 대서양에 면해 있다. 면적 71만 평방킬로미터, 인구 3,200만명이다.
“대한민국의 7배이다”는 말이 더 잘 이해가 되었다.
국민소득은 3200$~3300$이고 국민 대부분은 아랍-베르베르인이며 아랍어와 베르베르어를 사용한다.
입헌군주국으로 헌법에 의해 왕에게 최고 행정권이 있고 왕이 총리를 임명한다.
7세기말 이슬람 세력의 침략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이슬람교를 믿게 되었다. 이후 알모라비데·알모아데 왕조 등 여러 왕국이 통치했다.
19세기에 유럽 열강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1912년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1956년에 독립했다.
모로코는 빠르게 현대화되고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지만, 많은 고대의 건축물과 전통적 관습을 보존하고 있다. 대서양의 주요한 항구인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이 도시는 모로코 산업과 상업의 중심지이다.
모로코는 지금은 베르베르인으로 알려졌지만, 좀더 정확하게는 아마지그인 토착 유목민들의 전통적 거주 지역이다.
모로코는 대규모 이민에 영향을 받아서 원래는 그 지역 밖에서 와서 정착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오랫동안 도시 공동체를 이루었던 지역이다.
매우 이른 시기부터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았던 이 지역은 나중에는 로마 제국이 정복했던 가장 서쪽 지역이 되었다.
모로코는 1912년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으나, 1956년 다시 독립을 얻었다.
모로코는 오늘날 북아프리카 지역에 있는 유일한 왕조이다.
수도 라바트의 북쪽으로 대서양 연안이 가깝다. 다른 항구도시들로 지브롤터 해협에 면해 있는 탕헤르, 대서양에 면해 있는 아가디르, 지중해에 면해 있는 알호세마가 있다. 페스 시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훌륭한 재래시장인 수크로 유명하다.
모로코의 화페는 디람을 쓰고 있다.
다음날 호텔 조식 후 페스로 출발했다.
인구 130만의 페스(Fes)는 일찍이 AD 8세기 말에 최초의 이슬람 왕도로 정해졌던 고도로 그 후에도 다시 모로코의 수도로 정해졌던 모로코 굴지의 대도시이다.
1981년 구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미로의 도시로 섬세한 금속 세공과 목각, 타일공예, 가죽천연 염색으로 유명하단다.
모로코의 종교, 문학, 학문의 중심지이고 전국에서 또 타국가에서도 많은 학생들과 성자들이 메데르사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러 찾아오고 있다고 했다.
1100여 년간 왕조가 여러번 바뀌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수도가 라바트로 이전 되었어도 현재까지 계속 발전되어왔다.
페스(Fes)는 크게 세 구역으로 구분된다.
즉 구도시(페스 엘발리)와 유태인 구역과 왕궁이 있는 중간도시(페스 엘지드), 그리고 관공서가 있는 신도시((빌레 뉴벨레)이다.
이 곳 메디나는 9400여개의 좁다란 골목들이 미로처럼 이리저리 얽혀 있어 지리를 잘 모르면 한 자리에서 뺑뺑 돌다 마는 곳이 많다고 했다.
외적의 침입에서 피하고 그들이 출구를 찾느라고 갈팡 질팡하는 동안 적을 무찌를 수 있도록 좁다란 골목으로 복잡하게 설계했다고 한다.
이 복잡한 미로에 시장과 모스크, 학교 메데르사, 주택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우리의 일정은 모로코의 수도 라바크와 마라케쉬에서 닥종이인형전시와 한지전시품과 체험, 패션쇼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 보다 늦게 도착한 짐들 때문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지만 같이 간 일행들의 능숙한 일처리로 많은 모로코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 곳에도 한류의 열풍은 뜨거워서 모로코에 있는 대학에서 한국어과가 있을 정도이고 대학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독학으로 드라마와 한국음악을 듣고 연습하며 배우는 듯 했다.
“안녕하세요? 한국사람이예요?”
“저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요.”
히잡을 쓴 여성들이 하나 둘 전시장에 모여들었다.
닥종이인형을 보고 신기해 하며 닥종이인형 체험에도 열광하였다.
라바트에 있는 한국대사관과 모로코 문화부에서 페이스북과 인터넷으로 한국문화체험으로 2015 한지문화제에 대한 홍보를 듣고 보고 온 분들이었다.
마침 한지에 대한 흥미를 가진 예술가들도 와서 체험도하고 닥종이인형과 한지전시품을 관람하면서 한지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내느라 통역하시는 분이 시종일관 애를 썼다.
전시장 안쪽 공연장에서는 패션쇼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장비가 많이 부족하고 가지고 간 한지 옷들이 모로코 모델들에게 맞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다행히 패션쇼는 정해진 시간에 올려 졌고 처음 보는 듯 한 얼굴로 즐거워 하는 그들의 표정은 모델들이나 관람하는 사람 모두 흥미로와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전시와 체험 그리고 패션쇼는 라바트에서는 처음있는 일이라고 했다.
라바트의 일정을 잘 마치고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인공인 험프리보가트가 운영하던 카페를 재현 해 놓은 RICK'S CAFE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다음 모하메드 5세 광장과 핫산 2세 사원을 돌아보고 마라케쉬 도시에 도착했다.
마라케쉬가 그리운 건 세계여행을 하는 아들과의 만남이 있어 더욱 그러했다.
아들과 함께 걸었던 젤마엘프나광장은 포장마차와 상점 노점들이 얼마나 빽빽하게 들어서 있던지...
어느 곳은 한 번 들어가면 빠져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밀집해 있어 멀리서 바라만 보고 나오기도했다.
다음 날 마라케쉬 국립 왕립극장에서 닥종이인형 전시와 체험 패션쇼를 준비하였는데 마찬가지로 열악한 환경을 멋지게 탈바꿈 시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닥종이인형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구매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마라케쉬 부시장이 닥종이인형을 구매하였다.
전통은 세계의 모든 것을 넘나드는 듯했다.
그날 밤 마라케쉬 부시장 초청 만찬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모로코 전통 공연과 모로코의 전통 음식인 꾸쉬꾸쉬가 동양의 한과 멋을 닮은 듯 내 생각에 오래 머물렀다.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사자성어가 새록새록 떠오르는 나라 모로코왕국에서 한류의 꽃 한지를 알리고 나니 가슴이 부풀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미로의 도시 구페스, 섬세한 금속 세공과 목각, 타일공예, 가죽천연 염색공장 터너리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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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에서 닥종이인형을 만들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나고 있다.
닥종이인형을 30년 째 만들고 있는 나에게 한지는 호흡과도 같은 존재이다.
요즘 코로나 19의 창궐로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의 숫자가 현저히 줄고 있다.
벌써 6년이 지난 일을 기억하며 한지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 번 불태워 본다.
... 박금숙
한지에 풀칠하고 붙이기를 사계월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는 시간이다.
눈,코, 입을 만들며
고귀한 시간으로 이끄는 행위들이 아름답다.
한 겹 한 겹 붙여가며
인생의 희노애락을 부여잡는다.
한지인형의 탄생을
천년의 염원을 담아 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