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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방어선 구축
교위 강맹우는 또 바빠진다.
교위 왕허가 왕궁의 3군과 4군의 동이족 병사 이천 명을 북해로 이동시켰으나, 나머지 1군과 2군의 배치 문제로 곤란하다.
1군과 2군은 산동성에서 반도의 주 통행로인 청주지역을 거점으로 하여 남북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도록 명령하였으나, 통솔자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청주 靑州에서 태산 泰山을 거쳐 남쪽 일조 日照 해변까지 200여 리를 차단하면, 남쪽의 청도 靑島와 북쪽의 연태 烟台와 동단 東端에 위치한 위해 威海 등의 산동반도는 육지로부터 완전히 고립 孤立된 섬이나 다름없다.
원계획은 청주성에서 남쪽 태산까지 80리에 1, 2군의 병력을 집결시켜 1차 방어선을 구축한 후, 각 길목을 3, 4군이 점거하여 동이족에게 길을 안내하고, 동이족 이외의 외부인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1, 2군 통솔자들이 제대로 지휘를 하지 않는다.
아니, 병사들을 통솔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하화족 병사 중에 몇몇은 이미 신 황실이 몰락했다는 것을 알고 군에서 이탈하였으며, 또 일부는 동이족의 명령을 듣지 않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표한다.
할 수 없이 1, 2군은 하화족 통솔자에게 일정량의 군량미 軍糧米를 떼어준 후, 태산 泰山 아래에 주둔하라고 맡겨 버린 후,
동이족으로 구성된 3, 4군으로만 방어선을 구축한다.
병사수가 삼 천 명밖에 안 되니 산동반도 전체를 방어하기에는 인원수가 절대 부족하다.
그래서 태산 이남 以南의 일조와 청도 쪽은 포기하고, 제남 齊南에서 청주성으로 오는 대로와 광주 光州와 북해 방면의 해변 海邊 교통로만 확보하기로 방어선을 대폭 축소 시켰다.
발해만 방면의 광주, 북해와 래주만 萊州灣 항로만 확보한 셈이다.
큰 범선은 래주만의 북해 항구로 들어오고, 작은 선박은 북해 동쪽의 양안 마을 포구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북해 방면에 거주지가 별로 없는 흉노인들을 대형 범선으로 대릉하로 이주시키며, 산동 부여인들을 중소형 선박으로 가까운 조선하로 우선 이동하기로 하였다.
5. 봉래 포구 蓬萊 浦口
며칠이 지나자 과연, 장영의 이야기대로 많은 사람이 양안 마을로 몰려들었다.
부여 扶餘인 들과 흉노 출신이 반반이다.
남부여대 男負女戴로 많은 인원이 집결하니, 조용하던 한촌 寒村이 어수선하다.
한준이 며칠 전 자치기 놀이에서 내기에 진 대가로 잣 알, 반 되박을 갖고 왔다.
이중부는 잣 알 두 줌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나머지는 범일을 불러 친구들에게 나눠주라 하고는 한준과 같이 마을에서 가까운 봉래 포구 蓬萊 浦口로 나갔다.
봉래 蓬萊라는 포구는 북해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진시황과 관련된 지명이다.
전국 戰國 7개국을 통일한 진시황.
관중 關中에서 발흥 勃興하여 중원 中原까지 복속시킨 후, 관중에서 가장 먼 지역이라 그런지,
진 왕실이 동이족 출신이라, 동쪽에 바다가 있어 그런지,
하여튼 산동 지역에 상당한 애착 愛着을 보인다.
중원에는 동서남북으로 오악 五岳이 있다.
동악 태산 東岳 泰山, 서악 화산 西岳 華山, 남악 형산 南岳 衡山, 북악 항산 北岳 恒山, 중악 숭산 中岳 崇山 등이 있는데,
이들 오악 중에 가장 중요한 산을 택하라고 한다면
대륙 중원 中原에 자리하고 있는 산의 지리적인 위치나 봉우리의 높이, 산세 山勢크기 등을 고려 考慮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림사 少林寺가 있는 중악인 숭산이나, 풍광 風光이 빼어난 서악, 화산 華山을 택할 것이다.
그런데,
진시황은 하필이면 별 특징이 없는, 동악인 태산을 선택하여 정상 頂上에 올라 제일 높은 봉우리를 옥황봉 玉皇峰이라는 이름을 ‘떡’하니 갖다 붙이더니, 그곳에서 황제 등극 차례를 치른다.
황제 등극 차례 皇帝 登極 茶禮란
‘자신이 세상을 평정하여 인간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음을 하늘에 고 告하니, 천자 天子로 인정해주시고, 앞으로도 많은 축복을 계속해서 내려주십사’하고 하늘에 기원하는 행위다.
동이족이라고 알려진 요임금이 처음으로 태산에서 제를 지낸 후, 황제가 처음이다.
시황제 始皇帝가 처음으로 태산에서 등극행사를 치르니 다음부터는 자동이다.
황제가 되면 필히, 태산에 올라 등극식을 지내야만 진정한 황제로 인정되는 것이다.
중원을 통일한 진시황이 천하를 다 차지하고, 태산에서 거창한 등극행사까지 치르고 나니 다른 욕심이 또 생긴다.
이제는 죽기가 싫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인데,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 參羅萬像,
모두 자신이 마음껏 할 수 있는 것들인데, 이들을 놔두고 이승을 떠나기가 아쉽다.
그러니,
죽음이 두려워진다.
진시황의 본명은 정(政)이다.
진(秦) 왕실(王室)의 성(姓)이 영(瀛) 씨다. 그러므로 영정이다.
그런데 사기(史記) <여불위전(呂不韋傳)>에는 여불위(呂不韋)가 진시황의 생부(生父)라고 되어있다.
춘추필법의 대표적인 역사서가 사기 史記다.
그런데, 밝히기 거북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언급한 것을 보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그 연유 緣由는 영정은 기원전 259년.
한단에서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온 진나라 공자 영자초와 그 부인 조희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조희는 조나라 수도 한단의 미인으로, 조나라의 거상 여불위가 데리고 있었다. 여불위는 조희를 영자초에게 바쳤고, 조희의 미모에 반한 영자초는 조희를 아내로 삼았다.
사기 여불위 열전에서는 이 과정에서 원래 조희는 여불위의 아들을 임신하고 있었으나, 여불위가 정치적 목적에서 조희가 자신의 아들을 임신한 것을 숨겼다고 기록이 되어있다.
그러나,
사기 본기 史記 本紀에는 ‘진시황은 장양왕의 아들이다’라고 분명히 서술하고 있고, 사기 집해에 따르면 '영자초와 조희가 혼인한지 12개월 뒤에 영정을 낳았다’라고 하고 있으니, 혼인 후에 바람을 피운 것이 아니라면 생물학적으로 여불위는 진시황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
여하튼 간에, 영정은 줄곧 조나라에서 자라났다,
기원전 256년.
조부인 소양왕 영직이 백전불퇴 百戰不退의 명장 名將, 백기 白起 대장군을 앞세워 천자 天子의 나라, 주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소양왕은 얼마 후, 사망하였고 그 아들인 효문왕 영주가 즉위했다.
이에 영자초는 처자와 여불위를 데리고 진나라로 돌아와 태자에 책봉되었으나,
효문왕은 즉위한 지 3일만에 사망하고, 태자 영자초가 즉위하니, 이가 장양왕이다.
장양왕은 몸이 매우 허약하였다. 3년 뒤에 아버지 장양왕이 훙서 薨逝 하자,
영정은 13세의 어린 나이로 진나라의 제 31대 국왕의 자리에 즉위하였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앉으니, 태후 조희가 섭정한다.
그런데, 태후의 사생활이 너무 문란하여 애비도 모르는 아이까지 둘이나 낳는다.
실은 태후의 시종인 노애의 아이들이다.
성인이 된 진시황은 참다 못하여 노애와 그 아이들을 잡아 죽여버리고, 모후 母后를 유폐 幽閉 시켜버린다.
그리고 사생활이 문란하고 정치에 야욕이 큰 모후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지고, 배신감이 크다 보니 여인 女人들을 멀리한다.
결국, 진시황은 죽을 때까지 황후를 두지 않는다.
성인이 된 황제로서 황후 책봉식이 없는 황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런 조희 태후가 죽으면서 한 말이 있는데,
죽음을 앞두고 아들인 진시황을 보고는 “여자를 믿지 말라”는 유언을 한다.
황후를 두지 않은 진시황은 어머니의 유언을 따랐는지도 모른다.
2세 호해 胡亥와 3대 황제 자영도 황후 책봉식이 없다.
그러니 중국의 첫 번째 황후 皇后는 한 고조. 유방의 부인 여치 呂雉가 정식으로 황후가 된다.
악명 惡名 높은 여걸 女傑인 여태후 呂太后다
그런 유래를 간직한 진시황은 순시 도중 산동 반도에 다다랐고, 시황제의 행차는 낭아산에 도착했다.
시황제는 해변의 풍경이 맘에 들어 3개월 정도 머물렀는데 어느 날,
해안 海岸에서 이상한 것을 보았다.
바다 가운데에 아름다운 한 섬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잠시 후,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오늘날의 신기루라고 추정하고 있다. 실제 이곳에서는 지금도 신기루가 가끔 목격되며 1시간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신기루 속의 섬은 요동 반도에 부속된 도서나 한반도의 백령도 인근의 섬으로 추측된다.)
얼마 후,
제(濟 : 산동성)에 사는 서복 徐福이라는 귀곡자 鬼谷子의 제자인 방사 方士가 시황제가 보았던 섬은 전설상의 봉래산 蓬萊山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봉래산에서 불로불사약 不老不死藥을 구해오겠다고 했다.
이에 혹한,
시황제는 서복이 필요하다는 모든 준비를 빈틈없이 해주었다.
서복이 출항 出港할 배에는 수많은 보물과 소년 소녀 3,000명이 실렸다. 그리고 서복은 떠났으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진시황이 봉래산을 보았다던 그 지점이 봉래 포구다.
봉래 포구 마을의 아이들은 여름철에는 가끔 바닷가에 나와 멱을 감기도 하고 바위틈에 숨는 칡게를 잡기도 하였는데,
요즘은 바닷가보다는 강변 쪽으로 많이 다녔다.
바닷물이 몸에 닿거나 머리카락에 묻으면 소금기 때문에 해수 海水가 마르면, 피부가 따가워지고 머리카락은 뻣뻣해진다. 그런 감촉이 싫어서 다시 강에 가서 소금기를 민물로 씻어 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강변이 오히려 소년들이 놀기에는 더 좋다.
해변의 칡 게보다 더 큰, 갈대 게가 무진장 있으며 강바닥을 자세히 살피면 어른 손바닥보다 더 커다란 강도다리도 맨손으로 가끔 잡을 수 있다.
강도다리는 바닷물보다 염분이 없는 민물을 더 선호한다.
강의 모랫바닥에 안착하여 양쪽 지느러미를 서너 번 날갯짓하여 모래를 제 몸 위로 끼얹으면 흔적을 찾기 어렵다.
사람이 접근하면 보호색을 띠고 있어, 가만히 있으면 발견하기가 무척 어려운데,
오히려 멀리서 관찰하면, 강도다리는 긴장을 늦추고 가끔 눈을 끔벅거리는 게 보인다.
그때 두 손을 앞뒤로 포위하여 아가미 쪽을 아래위로 ‘꽉’ 잡으면 쉽게 잡힌다.
좌광우도라, 넙치는 두 눈이 좌측에 붙어 있고, 가자미는 두 눈이 오른편에 붙어 있는데, 특이하게 가자미과의 강도다리는 두 눈이 광어처럼 좌측에 있다.
오랜만에 바닷가에 나오니, 속이 다 후련하다.
해변의 작은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에는 큰 선박들이 수십 척 정박해있다.
저렇게 많은 배는 처음 본다.
늘 고기잡이하는 작은 어선들만 보아오다 원항용 큰 배들을 보니 신기하다.
포구가 비좁아 큰 선박들은 해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사람들이 배에 선승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남녀노소가 뒤섞여 있는 걸 보니, 아마도 가족 단위로 배에 오르는 모습이다.
이중부도 어렴풋이 사 년 전의 생각이 난다.
아주 큰 배를 타고 이곳에 온 것 같았는데, 워낙 오랫동안 배를 타서 뱃멀미하며 고생한 기억이 새롭다.
사로국을 떠나오기 전, 근오지 강변에서 같이 뛰어놀던 친구들 얼굴도 보고 싶다.
똘이, 담비, 가마우지, 왕잠자리, 민들레 등등
‘이제 그 녀석들도 많이 컸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빨리 고향 근오지로 돌아가 소꿉놀이하던 동무들을 만나고 싶다.
옆을 보니 한준이도 조용히 바다의 배들을 보고 있다.
항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조금은 튀는 성격인데, 며칠 전 대결에서의 패배 때문인지 오늘은 조용하다.
한준은 이중부의 눈길을 느꼈는지 이중부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그러더니 “너 어디서 무술 배웠지?” 묻는다.
한준은 며칠 동안 이중부와 싸웠던 모습을 되새겨 보았던 것이다.
이중부가 전개하는 무술이 형의 무술과 닮은 점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
그런데, 다섯 살 더 많은 형보다도 오히려 중부의 무술 실력이 더 뛰어나 보인다.
도무지 이해되질 않는다.
이 년 전,
시비가 붙었을 때도 힘은 중부가 더 세지만 중부가 그때는 무술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술 고수로 변신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중부는 박지형이 곁에 있을 때는 비밀로 하기로 하였으나, 지형은 이미 여기를 떠났고 중부 자신도 며칠 안에 이곳을 떠나기로 한 이상, 이제 비밀로 할 필요성이 없다.
“그게 궁금해?”
“그럼... 사부가 누구지?”
“사부... 박지형이야”
“응??”
“하하하, 왜? 못 믿겠어?”
“농담하지 말고...”
“하 하, 농담 아니야, 진짜야”
“그~으~래”
“그래, 박지형이 내 사부님이야.”
“그럼 박지형이 너보다 더 고수야?”
“물론이지, 너랑 나랑 둘이 함께 덤벼도 장담 못 해”
“설마~~”
“너 우리 마을 꼬마가 미친개를 한방에 박살 냈다는 소문 못 들어봤어?”
“어... 그럼, 그 꼬마란 녀석이 박지형이야?”
“그렇지, 실력이 그 정도야”
“으 음...”
“하하,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대결해봐”
“좋아, 내 확인해 봐야겠다”
“그건 그렇고, 우리는 박지형과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어.”
“고향이 어딘데?”
“아, 사로국 바닷가에 있는 근오지란 곳이야”
“사로국?”
“응, 그래”
“큰 배로 보름씩 가야한다는 그 먼 곳이 고향이야?”
“그래, 근데 너희 집은 이사 안가?”
“우리도 형이 돌아오면 사로국으로 가기로 했는데, 형이 군에 있으니, 어떻게 될지 몰라”
“흠, 같이 가면 좋겠는데”
“그러게, 그런데 박지형은 누구에게 무술을 배웠지?”
“아~ 박지형 아버님이 박달 거세님이야, 사로국 대군 大君이셔”
“그렇구나, 그럼 그 무술이 사로국 무술이겠네?”
“그렇지, 그런데 그 원류 源流는 단군조선과 부여에서 전래된 무예지”
“아 하, 그래서 형이 사용하는 무술과 비슷한 면이 많구나”
“그렇겠지, 같은 동이족 부여의 무예이니까”
“고향이란, 근오지는 어떤 곳이지?”
“근오지 斤烏支는 여기와 같은 강이 있는 바닷가인데 주위에 낮은 산들이 많아, 개울도 많고.. 그래”
“그럼, 산이 많으니 땔감 하기가 수월하겠다.”
“그렇겠지, 그런데 나도 일곱 살 때 떠나왔으니 자세한 건 잘 몰라”
“그렇겠군, 나도 가보고 싶다”
“그래, 같이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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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과 모레는 쉽니다.
귀농사모, 본 카페의 시농제 참석차, 영주 선비촌으로 갑니다.
첫댓글 https://m.cafe.daum.net/refarm/5LPJ/3129?svc=cafeapp
요청하신 방 을 개칭하여 글을 이동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10회와 20회분이 누락되었네요.
좋은글 감사
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