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요일
영월군 북면..평창군 미탄면 육백마지기(청옥산)..영월 북면..영월 김삿갓면..각화사..춘양역..경북 영양군 일월면
태백산 각화사(太白山覺華寺) / 전통사찰
-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봉화군태백산각화사중건기」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661~681) 때 원효(元曉)가 창건,
각화사 귀부(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안내표지판에는 686년(신문왕 6)에 창건.
고려 예종 때 국사(國師) 무애 계응(無礙戒膺)이 중건.
1606년(선조 39) 삼재불입지(三災不入地) 가운데 한 곳인 이곳에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를 건립하여 왕조실록을 수호하게 함. 이후 8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하여 국내 3대사찰의 하나가 되었다.
1913년 의병을 공격하기 위하여 일본군이 사고와 절을 불태웠다고 하며, 혹은 1945년 광복 후 소실되었다고도 한다.
1926년에 달현(達玄)이 법당을 비롯한 다섯 동의 건물을 중건하였고, 1970년에 금오(金烏)가 요사채를 중건하였다.
1988년 사고 건물을 발굴하고 사고지를 정비하여 1991년 2월 26일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인터넷-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용)
각화사는 옛 정취는 없다. 춘양면 충양중학교에 삼층석탑이 있다. 남화사(지)란 절이 있었다고 한다.
원효가 각화사를 건립하고 남화사를 폐문하였다는 설명이 있다. 남화사는 춘양현 현내에 있고 각화사는 산에 있다.
마을 가까이 있는 절을 폐하고 굳이 산에 간 까닭이 있을까?
불교계는 유교와 마찰을 피해 조선시대 억불에 대한 말을 잘 안 한다.
산령각
각화사 귀부 / 경북 유형문화유산
고려 초기에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를 지냈던 김심언(金審言)이 지은 통진(通眞)대사비의 비좌로 쓰였다고 한다.
현재는 새로 만든 비석이 있다. 비와 이수는 새로 만든 것.
각화사기적비, 각화사 사적비인 셈이다. 내용은 확인하지 않았다.
절 아래 여러 부도가 있다. 석종형으로 조선 중기/후기 때 고승들의 탑으로 여겨진다.
봉화 서동리 동서삼층석탑 / 보물
-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춘양중학교/한국산림과학고 교정에 있다. 이곳이 옛 남화사란 절의 터다.남화사는 각화사가 서면서 폐사.
이 탑은 통일신라후기 만든 것으로 여기고, 1962년 해체/복원 때 서탑에서 사리병과 작은 토탑(土塔) 99개가 발견되었다.
운곡천
봉화 한수정 / 보물
-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조선 중기 학자인 충재 권벌(冲齋權橃)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손자 석천공 권래(石泉公權來)가 1608년(선조 41)에 건립.
1741년(영조 17)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丁자형 평면의 건물이 동남향으로 위치하여 있고, 와룡연(臥龍淵)이라 불리는 연못이 삼면에 둘러져 있으며,
연못과 정자 사이에는 초연대(超然臺)라는 이름의 바위가 있다.
홍수로 운곡천에 옹벽을 세워한수정에서 운곡천과 춘양의 풍광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한수정 주위는 연못으로 한수정은 작은 섬이다. 연못 물이 푸르지 않고 탁한 것도 아쉽다.
춘양역, 여주역에서 시작하여 춘양역을 지나 태백으로 간다. 강릉역이 종점.
봉화 의양리 섲조여래입상 / 경북 유형문화유산
-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설명문엔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만든 것으로 나온다. 또한 불상이 뒤어난 작품이라고 하였지만, 나느 고개를 갸우뚱한다.
키에 비하여 얼굴과 몸통이 넉넉하다. 머리와 몸통은 한 돌로 조각하였고, 머리 부분이 조금 큰 느낌.
춘양역 뒤 마을 텃밭 한쪽에 전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