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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1.이력사항
다큐멘터리 사진가 김문호
프리랜서 사진가 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1989년 도시의 사람을 찍은 개인전 ‘인간’을 시작으로 소외받은 인간과 사회, 문명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와 도시인 그리고 속도라는 주제로 현대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왔다.
전시
2005년 인권사진전 ‘어디핀들 꽃이 아니랴’
2004년 동강사진축전, 영월 사진박물관
2003년 인권사진전 ‘눈밖에 나다’
2002년 사이버 전시‘질주 그 허망함에 관한 보고서’ 웹진imagepress
1996년, 1993년, 1990년 사진 집단 사실전
1989년 개인전, 그림마당 민
출판
사진
≺눈밖에 나다, 국가인권위원회,휴머니스트≻≺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국가인권위원회, 현실문화연구≻≺네셔널 지오그래픽 필드 가이드, 청어람미디어≻시리즈, ≺DSLR 마스터클래스, 디자인하우스≻ ≺노출의 모든 것, 청어람미디어≻ ≺사진의 구도와 구성, 청어람미디어≻ 외 다수
인문일반번역서
<비노바 바베, 실천문학사>, <바드샤 칸, 실천문학사> <고고학, 과거로 들어가는 문>,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이산출판사>,<사해사본의 진실, 예담출판사>, <인디언 추장 연설문, 도서출판 그물코>, <실크로드 마지막 카라반, 도서출판 일빛>, <평화의미래, 아름다운 사람들> <의자, 지호>, <설탕과 권력, 지호 > <신의 전기, 지호>외 다수
첨부2. 전시개요.
사람과 문명, 도시를 기록 해온 다큐멘터리사진가 김문호가 30여년 동안 작업 해온 작업 중 80여점의 작업을 "On the road"라는 제목으로 전시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내용들은 1989년 이후의 작업들인데 현대문명의 속도와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김문호 사진가의 사진에 소설가 최옥정씨의 글을 덧붙여 도서출판 이른아침에서 단행본으로 책을 출간 할 예정이다.
김문호사진전 초청인
이갑철(사진가), 노익상(사진가), 안해룡(사진가), 성남훈(사진가), 전형근(사진가), 국수용(사진가), 김봉규(사진가), 한금선(사진가), 이상엽(사진가), 임종선(사진가), 임재천(사진가),모종현(사진가), 이규철(사진가), 이우창(사진가), 최항영(사진가),채희완(민족미학연구소 소장),김영복(이문학회 대표),이정래(제일치과원장),노정균(봉의산가는길 대표),현준만(디지털문화예술아카데미 아트앤스터디 대표), 박치음(순천대 교수), 김광휘(고양YMCA사무총장), 김환기(도서출판 이른아침 대표), 정동호(작곡가), 구근회(청강문화산업대 교수), 김인준(국민대 교수),황도(아로믹스 대표), 정동호(작곡가), 최옥정(소설가),최승희(작가), 정성태(DY텔 대표)
주관
사단법인 민족미학연구소/부산민주공원
일시
2009년 11월 17일(화)~11월23일(월)
초대일시
2009년 11월 17일(화) 오후 6시30분
장소
부산민주공원 잡은펼쳐보임방
첨부3. 김문호 사진전 ‘On the road' 작가의 글
“내 머리가 쟁반 위에 놓여
들어오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대단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T. S. 엘리어트의 <J. A. 프루푸록의 연가> 중에서
1983년 나는 작은 출판사에 다니면서 사진을 취미로 시작했다. 나는 처음부터 사람을 찍기 시작했고, 애당초 풍경이라든가 꽃이나 새, 구름 등 사람 이외의 피사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는 무언가 인간의 삶과 사회, 사람냄새가 나는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은 서민대중들의 생활에 가닿았다. 조그만 일제 확대기를 마련하여 집에서 현상, 인화 작업을 시작했다.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작업에 몰두하고 몇몇 월간지, 사보 등에 기고를 시작했지만 수입은 미미했고, 생계를 위해 출판사에서 프리랜서로 번역작업을 병행하였다. 당신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친구들은 모두 사진기를 들고 민주화운동 현장이나 노동운동 현장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 같았고, 사건들은 제쳐두고 오로지 사람들의 일상만을 들여다보고 다녔다.
1989년에는 그간의 작업을 정리하여 인사동 한 화랑에서 조촐한 개인전을 열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나를 민중사진가니 사진을 통한 인간구원이 어떠니 추켜세웠지만 쑥스럽기만 했다.
1990년에 다큐멘터리, 혹은 사실적인 사진작업을 하는 친구들 몇몇이 모여 '사진집단 사실'Real Photos라는 걸 만들어 첫 공동전을 열었다. 이후 93년과 96년 두 차례 더 공동전을 가졌고, 치열한 시대의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의 상당한 호응을 얻었고, 그것이 힘겨운 작업에 잠시 위안이 되었다.
1996년 세 번째 공동전을 준비하던 무렵부터 도시와 도시문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생각은 많고 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다른 친구들은 이런 저런 스포트가 될 만한 소재를 선택하여 작업을 했지만 나는 인간과 문명, 혹은 삶에 대한 나의 생각을 보여줄 수 있는 사진들을 찍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자본주의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사진들이었다. 이제는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의 느낌들을 담을 수 있다면 소재를 가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생각은 많고 사진기는 늘 손에 붙어있지만 작업은 별로 진전이 없었다.
여기에 전시한 사진들은 지난 20년간(1989-2009년) 내가 생각해온 고민들을 사진으로 반영한 결과물이다. 나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에 대한 관심으로 작업을 해왔다. 도시, 혹은 도시문화의 언저리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 내가 본 그들의 모습은 제자리를 잃고 어디론가 쫓기고 있는 그것이었다. 이후 점차 그런 인간상을 만들어낸 현대문명에 회의가 일었고, 내 머리 속에는 항상 인간과 문명이라는 두 단어가 맴돌았다. 나는 내가 보았던 것들,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풍경들에서 이런 나의 생각들의 사실성과 상징성의 흔적들을 채집하려고 무척 고심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과 느낌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작위적인 노력은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작업에서 무척 더딘 사람이다. 어떤 때는 사진가라고 이야기하기도 이야기를 듣기도 계면쩍을 정도다. 그러나 나는 나의 작업이 하나의 멋진 상품이나 예술품이 되기보다는 이 시대를 비추는 진실한 텍스트가 되기를,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에 대한 한 지식인의 짧은 생각의 반영이기를 원한다. 이건 나의 결벽증이고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붙일 생각은 없다. 언젠가는 이 부스러기들이 화석처럼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를 살았던 인간들의 모습에 대한 증언의 한 모퉁이로 남기를 희망한다.
2009년 8월에 김 문 호
첨부4. 김문호 사진전 ‘On the road'에 부친 사진가 이상엽의 글
도시문명에 대한 쓴 고백
- 사진가 김문호의 ‘온 더 로드’
사진가 김문호(50)씨는 독특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사진가의 강렬함이나 터프함 대신에 도인(?) 또는 선비적인 풍모를 가졌기에 그렇다. 술한잔 하면서 몇 마디만 나눠 봐도 사진 이야기보다는 세상 살아가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1983년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했고, 번역 일을 하면서 사진을 취미로 시작했다. 사진을 시작한 처음부터 사람들을 찍었다. 애당초부터 풍경이라든가 꽃이나 새, 구름 따위와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는 무언가 인간의 삶, 사람의 냄새가 나는 어떤 것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그가 ‘사람’을 인식하는 방법은 두 명의 선생에게 사사한 바가 크다. 한사람은 돌아가신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고 또 한분은 장기수 이구영 선생이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과의 만남은 장일순 선생의 전시를 돕기 위한 사진작업을 통해 이뤄졌다고 한다. 원주로 내려가 가르침도 받고 술도 함께하면서 큰 틀에서의 인간 삶, 거시적인 안목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고 사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명의 선생은 장기수 출신의 선비 이구영 선생이다. 한학모임인 이문학회를 이끌며 후학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는 선생에게 사사를 받은 김문호는 이 학회의 회지편집인을 맡고 있다. ‘이문’이란 논어에 나오는 말로 이문회우 以文會友 이우보인 以友輔仁(글을 통해 벗을 사귀고, 벗을 통해 사람됨을 바르게 한다) 중에서 따온 말이다. 김문호는 이구영 선생에는 동양의 정신은 무엇인지, 그리고 사람은 오늘을 살며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하는 시대정신을 배웠다고 한다.
김문호는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작업을 시작해 1989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90년에는 사진가 최민식 등과 함께 <사진 집단 사실 REAL PHOTOS>을 창립해 시대상황을 기록하는데 주력한다. 하지만 수십 권의 인문-예술서를 번역하고 많은 전시회에 참여했으며 25년간 사진 작업을 이어온 그를 바라보는 나로서는 이 책이 그의 첫 번째 저작이라는 점에 곤혹스럽다. 그러니 그의 책에 담긴 사진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1부에서 8부까지 여러 편으로 나뉘어 편집이 됐다. 사실 사진을 무작위로 섞어 보여주던, 정교하게 의도를 넣어 편집하던 독자들이 한권의 책을 모두 보았을 때 큰 차이는 없다. 결국 이미지의 잔상들은 그 작가의 의도를 희미하게나마 눈치 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의 어떤 의도 하에 작은 조각들로 나뉘어 있고 그것이 상징하는 바를 독자들이 이해해 줬으면 했는지도 모른다. 이미 이 글을 읽기 전에 사진을 모두 보았을 독자와 함께 작가의 의도를 한번 추리해보자.
1부의 한 사진은 주유소의 마네킨을 보여준다. 묘한 동질감과 이질감을 일으킨다. 원유를 뽑아 올리고 정제시킨 인간의 노동, 자동차에 주유를 하는 노동은 사라지고 원래 그것이 존재하는 듯 보인다. 드디어 길이라는 하드웨어와 연료가 채워진 자동차를 질주한다. 그 질주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허망함’이다.
2부의 지하철 플랫폼에 선 사람들은 너무 모던해서 뉴욕이나 동경이라 해도 구별이 힘들다. 자본의 고도화는 이런 사람들의 노동에서 나온다. 여기의 키워드는 ‘자본과 노동’이다.
3부는 도시문명과 소외로 읽힌다. 부산 광안리에서 찍은 해변의 사내와 멀리 보이는 아파트는 ‘소외’를 보여준다. 문명으로부터의 소외. 아니면 일탈. 그 사내의 잠은 슬프다.
4부의 젊은이들은 ‘우울’하다. 대학로에 모인 젊은 여성들의 표정이 무표정하다.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는 꿈과 이상을 잃은 듯 보인다. 현실은 쾌락 아니면 절망이다.
5부는 도시의 일상이다. 그 일상은 노동과 휴식 그 중간 어디쯤 있다. 지친 노동 끝에 포장마차에 들러 가락국수 국물을 들이키는 사내의 ‘고독함’이 사진 밖으로 전해온다.
6부의 사진 중 하나는 안산 이주노동자들이 집으로 전화를 하고 있다. 도시는 ‘소통’이 부재하면서 소통을 그리워한다. 이 사회의 일원이지만 누군가는 표류한다. 소통의 부재는 안쓰럽다.
7부는 도시의 ‘상징’을 표현한다. 도시는 그 상징을 소비한다. 하지만 그 상징이 존재하는 현실은 참 부조리하다. 섹시녀와 막걸리처럼 말이다.
8부에서 우리는 도시 속의 ‘가면’을 발견한다. 그 가면은 평소에 사용하기도 하고 어떤 공간에서 특별히 사용하기도 한다. 도시는 익명이고 모니터 위의 글자처럼 “우리 인생은 우울”하다.
“대도시의 문명, 현상 뿐 아니라 삶의 방식 역시 건강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본에 쫓기고 있다. 마치 우리의 사람을 영속시키는 것이 기계의 부속처럼 돌아간다. 이윤을 창출하는 거대한 기계속의 그것처럼. 내 사진은 질주하는 우리 삶의 허망함에 대한 보고서인 것이다.”
<빠빠라기>라는 책이 있다. 빠빠라기는 남태평양 원주민이 백인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백인은 ‘낙원의 파괴자’들이다. 남태평양 티아비아 섬의 추장 투이아비는 그 백인들의 직업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자신들은 물고기를 먹고 싶으면 동료들과 합심을 해 물을 퍼내고 고기를 잡고 구워 먹으면 될 것인데, 백인들은 물 퍼내는 사람, 고기 잡는 사람, 고기 파는 사람, 고기 굽는 사람이 나뉘어 그 일만을 하는 직업이란 것을 갖고 있는 것이다. 즉 노동의 소외를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낙원은 그렇게 파괴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의식하고 있던 의식하고 있지 못하던 우리는 질주의 끝을 모르고 질주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가해져야 한다. 미국의 철강노동자들은 휴일이면 야구중계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아이를 한 팔에 낀 채로 소파에 앉아있다. 그래야 그들은 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쉬고 있는 것일까?”
그의 사진은 특별할 것도 없고, 조금은 식상한 주제를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듣는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요즘의 다큐멘터리사진 방식을 꾸짖는다. 즉 요즘 사진들이 센세이셔널리즘과 스팟적인 화젯거리를 주요 테마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우리 시대를 기록하는 사진인가? 어떤 사진이 오랫동안 우리 삶을 꾸짖고 반추하게 할까? 그는 이야기한다.
“사진가는 자신이 꿈꾸는 ‘사회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과 비교되는 ‘현실’을 기록할 것이고, 결국 자신의 사진은 바로 스스로의 신념에 대한 고백이 되어야 한다.”
이상엽 / 포토라이터
첨부4. 김문호 사진전 ‘On the road'에 부친 소설가 최옥정의 글
사진이 내게 말했다 ....
-시간이 화석으로 새겨진 사진.
씁쓸하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쓴다. 시간의 족적이 선명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앞에 두었다면 소주 한 잔이 어울릴 법도 한데, 쓴맛으로 달콤함의 기미조차 지우고 말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미지가 메시지에 선행한다는 바슐라르의 말을 떠올리며, 이 사진들을 한 마디로 압축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시간이 화석으로 새겨진 사진.
‘지금, 여기’, 즉 현재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예술이라면 작가는 예술가의 역할을 잘 수행해내고 있다. 사진은 과거를 보여주지만 오늘의 우리는 실상 거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가지 못했다. 과거가 더 심화된 모습이 바로 현재라는 점에서 이 사진들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철학을 담을 것인가, 생활을 담을 것인가, 그 둘을 합한 무엇, 또는 그것의 배후를 찾아낼 것인가. 그의 사진은 현실의 포착에 집중되어 있다. 때론 지나치게 즉물적이고 직접적이라는 느낌마저 줄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다만 대상을 발견하는 그 눈은 대상을 떠난, 그것을 넘어선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의 작업은 이 도시, 우리가 발 딛고 매일 숨을 쉬는 이곳에 한정된다. 그것은 어떤 고집스러움으로까지 느껴지는 주제에의 탐색이요, 헌신이다. 모든 강렬한 이미지들은 파편화되지 않고 하나로 모아졌다. 그것은 난해함보다는 집중을 요구하고 보는 사람의 손을 단단히 잡은 채 몰입으로 이끌어갔다. 1980년대와 90년대의 구호와 2000년 이후의 소비문화의 아우성, 그 틈바구니에서 안간힘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비명과 한숨이 들린다. 보여주는 사진이 아니라 들려주는 사진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시간을 달린 우리들의 삶을 사진이라는 암각화에 새겨두었다. Contact and Distance, 접촉과 거리. 사진만큼 소통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이 두 가지 요소에 민감한 매체가 또 있을까. 지극히 어두워서 숨이 막히지만 반딧불이 한두 마리 정도의 빛이 깜박이고 있다. 반복되는 이미지, 그것이 겹겹이 층층이 쌓여 도달하고자 하는 의미망은 우리가 각자 찾아내고 느껴야 할 것이다. 작가는 어둠속의 반딧불처럼 모호함, 해석불가의 이미지들을 곳곳에 숨겨두었다.
방금 전철이 떠난 뒤 한 남자가 꽃을 들고 다음 전철을 기다린다. 카메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손으로 꽃을 매만지는 청년의 얼굴에 드리워진 불안, 그리고 곧 다가올 전철. 그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고 두드려주어야 할 것만 같다. 생생함, 현재에 대한 그 순정한 기록으로써의 장면과 인간 군상들이 여기 있는 사진의 원형질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지하철 시리즈와 외국인 노동자 시리즈는 훗날 화석처럼 이 시대를 증거하리라 믿는다.
질주하는 자동차와 팔차선 도로, 촘촘히 박힌 가로등, 도시의 정령 같은 늙은 가로수, 어둠에 잠긴 아파트, 무리 지어 거리를 헤매는 청소년들, 전화통을 붙든 외국인 노동자, 간판으로 도배한 상가건물, 휴거를 주장하며 전도하는 교인들, 가면을 쓴 사람들과 마네킹, 구두 소리가 들릴 듯 빠른 출근길의 발걸음, 생활사 박물관이라 일컬을 만한 지하철 풍경. 그 속에서 우리는 이십세기를 보내고 새 천년을 맞이했다.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와 우리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궁금하다면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사진을 살펴보라. 왜 사진 속의 사나이는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거나 등을 돌렸는가. 속도와 인간이 부품인 산업사회와 소비를 부추기는 도시문화에 대해 생래적 거부감을 가진 듯 보이는 작가의 지문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 그것이 지뢰가 될지 광석이 될지는 전적으로 보는 이의 발굴능력에 달렸다. 명백한 현실, 사실을 난 이곳에 데려왔다, 더는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노라고 작가는 주장하는 듯싶다.
그가 찍은 사람들 앞에 어떤 형용사를 붙여야 가장 어울릴까. 상처 입은(hurt), 이라는 단어를 맨 앞에 놓아야 할 것이다. 길에 누워 세상을 등진 노숙자든, 피곤에 찌든 출퇴근길의 사람들이든, 불안한 청소년이든 그들의 얼굴과 몸짓과 움직임엔 상처의 흔적이 돋을새김 되어 있다. 다음 작업을 예상할 수 있는 단초가 되는 지점이지만 섣불리 어떤 말로도 예단할 수 없다. 상처의 극복과정은 결국 삶의 균열을 봉합하는 과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회복은 느리지만 건너뛸 수도 피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또 그들.
글을 쓰든, 말을 하든, 사진을 찍든 맞서야 할 대상은 그렇게 압축된다. 여기 있는 사진들은 그것과의 분투를 보여준다. 나와 너 사이에 어떤 말들이 오가든, 우리와 그들 사이에 무엇이 가로놓여 있든, 그곳에 길이 있고 다리가 있고 나침반이 있다고 믿는 걸음이었다.
글을 사진기에 비해 아둔한 도구라고 생각했었다. 단 한 방이면 될 걸 책 한 권을 써야 하다니. 이 얼마나 비경제적인 생산활동인가 개탄했다. 사진기 또한 아둔하기는 마찬가지다. 수천 장을 찍는다한들 결코 배면을 보여줄 순 없으니까. 오직 한 순간, 오로지 정면. 그것이 사진의 매혹이고 또한 함정이다. 불쑥 튀어나온 또 다른 생각 하나, 배면을 멋대로 상상하게 하는 것, 생각을 마구 달려가게 하는 것. 그것이 사진의 마술이고 힘 아닌가?
실마리.
사진 한 장은 실마리일 뿐이다. 이야기꾼이나 철학자나 사업가나 실업자나 그 실마리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자신의 삶의 일면을,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을 발견해야 한다. 삶의 단면, 정지된 화면. 그것을 움직이는 활동사진으로 만드는 건 우리들의 상상력이고 생명력이다.
마지막 한 방울의 쓴 커피를 입 안에 털어 넣는다. 삼천 개의 뼈를 움직여 춤을 추듯, 삼천 개의 뼈를 움직여 시를 쓰겠다는 한 시인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으려 한다.
2009년 8월
최옥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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