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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5-21
그 손이 이루셨도다 / 김봉수 목사
가끔 교회당을 새롭게 건축한 후에 그 입당예배나 혹은 다른 예식을 할 때에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일을 이루어낸 사람들에 대한 치하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수고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그러한 행사를 가진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건축을 한다는 것, 집을 한 채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정말 건축을 한다는 것은 쉬운 아닙니다.
그러므로 거대한 교회당을 건축한 후에 그 수고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그들이 노고를 치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면서 가지는 태도는 전혀 다른 각도에 맞추어져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오늘 본문 15절에서 솔로몬은 먼저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왜 솔로몬이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으로 시작하는지 본문에 나타나는 몇 가지를 살펴보면,
먼저 15절 하반부에 <그 손으로 이루셨도다>라는 말씀을 봅니다.
우리는 이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동원되고 이스라엘의 많은 역군들의 손이 수고한 것을 압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의 손, 그 손이 성전 건축을 이루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20절을 보면,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도다>라고 솔로몬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20절 중반에서도 <내가 여호와의 허하신 대로>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자, 솔로몬이 이러한 표현으로 묘사하는 그 근본 동기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솔로몬이 시127편에서 자신의 분명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다같이 시127편을 찾아봅시다.
이 시편 표제에 보면 <솔로몬의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솔로몬이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把守軍)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자신의 신앙을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이 솔로몬의 신앙을 성전 건축하는 것에 맞추어서 고백을 한다면,
<여호와께서 성전을 세우시지 아니하시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수고와 이스라엘 역군들의 모든 수고가 다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명한 하나님을 향한 자세, 하나님에 대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던 솔로몬이었기에 성전을 건축하고 난 후에 <그 손으로 이루셨도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하면서부터 자기를 드러내기를 좋아했던 존재들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점이 있다면 그것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간입니다.
바벨탑을 쌓으면서 자기들의 이름을 내려고 했던 것은 한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는 아예 자기 PR시대라고 하면서 남들 앞에 자기를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시대입니다.
어쩌면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놓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드러내기에 가장 좋은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 기다려 왔던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것도 이스라엘의 영웅 다윗이 건축하지 못한 성전을 자기의 시대에 건축한 것입니다.
두로왕 히람과의 회담에 성공한 공로를 내세울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대통령들이 자기들이 어떤 회담을 성공적으로 성취하고 나면 그것을 얼마나 크게 드러냅니까?
솔로몬의 회담 성공은 충분히 자랑거리입니다.
그 회담의 결과로 두로와 시돈의 그 뛰어난 기술자들이 동원되지 않습니까?
혹은 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혜롭게 동원해서 성전을 건축한 일도 자랑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용하셔서 성전을 건축한 일도 역시 자랑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자신에 대해 자랑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주님은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고, 정말 가치도 없는 우리들, 쓸모 없는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자랑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낮아지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것도 죽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아주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눅17:10을 같이 찾아봅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이것이 바로 주의 일꾼의 바른 자세입니다.
솔로몬은 이와 같은 자세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할 때에 우리의 힘만으로는 지극히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도무지 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과연 솔로몬이 그 좋은 재료를 가지고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겠습니까?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 건축이 가능했다는 것을 알았던 솔로몬은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열왕기서가 바벨론 포로지에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바벨론 포로지에서 이 성전이 완공되는 모습을 읽으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바벨론 포로지에 있는 주의 백성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는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까?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바벨론 포로지로 끌려온 그들에게 이 말씀은 소망을 줍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신 성전이기에 하나님께서 회복시킬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바벨론 포로지로 끌려온 유대인들 중에 대부분은 소망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무지 자기들의 힘으로는 그 포로지에서 고국으로 돌아갈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조국이 자기들을 구출해 낼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 포로들은 혹시 자기들의 나라가 전쟁에 이기면 구출 받을 수 있다는 소망이 있었지만, 바벨론으로 끌려 온 유대인들은 이미 나라가 망한 후에 끌려 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유대인들에게 본문은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열왕기 기자는 <그 손으로 이루셨도다>라는 하나님의 손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좀 더 자세히 성경을 보면 성경에는 온통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이루어 가시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만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이 아닙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그 능력의 손으로 세상을 지으시고 사람을 빚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인간들은 도무지 자기들의 힘으로는 그 사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죄 문제, 우리의 죽음의 문제, 우리 인간들의 모든 문제를 우리 스스로는 도무지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선언하십니다.
<다 이루었다>
그렇습니다.
그 손으로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셨습니다.
솔로몬 성전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성전도 이루시고, 장차 우리가 들어갈 그 새 예루살렘 성전도 주님이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바라보는 눈에 실패한 사람들을 성경에서 역시 볼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이 말년에 넘어졌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왕이 되어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를 바라보면서 잠시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잊고 자기의 능력, 자기의 권세가 얼마나 큰지 확인하는 작업을 합니다.
나라가 왕성해졌을 때 온 백성들 앞에서 <이 나라가 이렇게 왕성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이루셨도다>라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더라면 다윗은 그 옛날 이미 죽은 목숨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다윗 왕국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잊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 그런 실수를 가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을 가끔 잊어버리고 자기의 업적을 계산해 봅니다.
히스기야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앗수르의 산헤립을 자기의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아무리 히스기야가 기도를 했다고 해서 히스기야의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기도를 한다는 것은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아무런 힘도 없으니 하나님이 이루시옵소서>라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바른 기도는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기도로 앗수르에 맞선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은 승리를 주시고 히스기야의 나라를 든든하게 하십니다.
죽을병에 들었는데 히스기야는 기도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승리하고 건강해지고, 나라가 든든해지자 그의 마음에 교만함이 들어온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사신이 왔을 때 그 바벨론 사신들에게 하나님의 손을 설명할 수 있는 얼마나 좋은 기회이겠습니까?
우리 힘으로는 앗수르를 이길 힘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얼굴이 뜨뜻하여 돌아가도록 하셨다는 사실,
자기는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다는 사실을 증거하기에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런데 히스기야는 자기 나라의 군기고와 내탕고를 다 보여줍니다.
자기 실력으로 마치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행동을 하였던 것입니다.
역대하 기자는 이 히스기야에 대해 하나님께서 시험하셨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솔로몬에게 역시 그와 같은 넘어짐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다윗도 이루지 못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합니다.
궁전도 아주 거대하게 잘 지었습니다.
이제 한 번쯤 자기의 실력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고 싶지 않겠습니까?
실제적으로 예수님 당시에 헤롯은 예루살렘 성전을 43년 이상 짓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의 실력을 드러내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그 성전의 건축은 하나님의 약속이었고 그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 능력의 손으로 성전을 이루셨기에 솔로몬은 하나님을 송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아주 성실하게 이루어집니다.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솔로몬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벨론 포로지에 끌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죄로 바벨론에 끌려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약속은 주어졌습니다.
반드시 회복시켜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부지런히 주신 약속입니다.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하여 그 약속을 그 능력의 손으로 이루신 것처럼,
바벨론 포로지에 끌려 온 주의 백성들에게 약속을 주신 그 하나님께서는 그 전능하신 손으로 주신 약속들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포로지의 유대인들은 그 주님의 손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낙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제 주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귀하고 좋은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신구약 성경은 너무나 귀중한 약속입니다.
비록 우리들의 모습이 오늘 초라하고 포로지의 백성들 같을 지 모릅니다.
성전을 짓고자 하나 아무런 재료도 실력도 없는 모습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의 너무나 신실한 약속이 있고, 주님은 그 약속을 그 능력의 손으로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느헤미야를 잘 압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멀리 포로지에 있는 느헤미야가 무엇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그는 술관원장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하는 그 느헤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선하신 손으로 하나 하나 이루어 가셨습니다.
느헤미야도 그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느2:8에 보면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라고 표현합니다.
이제 오늘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난 뒤에 건축 경과보고를 하는 것을 잘 들어보십시오.
오늘날 교회당을 잘 짓고 난 뒤에 하나의 요식행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하고 그 뒤에는 <누구 누구가 이 일을 위해 얼마나 수고했는지 모릅니다. 누가 얼마를 헌금했고, 누가 무엇을 했고> 하는 식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먼저 이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솔로몬을 통해 주신 시편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把守軍)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우리 주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도 기억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우리의 말 잘하는 것도, 우리의 기도한 것도 솔로몬과 히스기야를 보면서 자랑할 것이 못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의 우리의 형편을 보고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그 능력의 손으로 이루어 가실 것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제 송축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신 손으로 우리 자신들과 우리의 일들과 우리의 모든 것들을 이루셨고 이루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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