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4] 강경렬 (姜慶烈) - 몸 태워 어둠을 밝히고 8. 고생 뒤에는 반드시 축복이 - 1
1 “상희(相熹)야, 엄마가 지옥 가면 너도 지옥 가야지. 어떻게 너만 천국에 가겠다고 엄마의 뜻을 거역하는 거야” 2 나는 상희(相熹)를 방안에 가두어 놓고 사정없이 회초리로 내리쳤다. 어린 상희였지만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도 천국 가고 나도 천국 가야지요” 3 막무가내인 상희(相熹)는 그만 기절하고 만 것이다. 병원에 가서 의식을 회복하고 난 뒤 상희는 엄마의 말씀대로 통일교회 학생부에 나가 보았다.
4 처음에는 단어장만 뒤적이며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있으면서도 최용석(崔容碩)씨의 열강에 차츰 귀를 기울이게 됐다.
5 그 이후 엄마의 가는 길이 결코 나쁜 길이 아님을 깨닫고 정성을 다하여 뜻을 따르게 됐다. 그 후 문수자(文秀子)와 남편의 동생인 문홍권(文洪権) 씨가 72가정 축복을 받았고, 문상희(文相熹)는 430가정 축복가정이 됐다. 6 내가 뜻을 안 이후 거의 집에서 머물지 않고 개척, 부흥집회 주관, 순회 등으로 일관했다. 7 1958년에는 파주교회를 개척하였는데 여기서 모 기성교회의 신도 대부분이 통일교회로 전향하는 역사가 벌어졌다. 8 1959년에는 차상순(車相淳) 목사가 시무하던 야목 감리교회가 통일교회로 넘어오게 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곳에서도 이순희, 이용희씨 등 수 명을 전도했다. 9 1960년도부터는 전국순회사라는 이름 아래 전국을 순회하면서 집회를 주관했다. 1961년 9월부터 서울 제3지역 기대순회사, 1966년 1월부터 강원지구 순회사, 1967년 6월부터 협회 특별순회사, 1971년 6월부터 활동이 불가능해진 1976년 9월까지 충북담당 전국순회사를 계속하였다. 10 1961년에는 선생님께서 최용석(崔容碩) 씨와 나를 대동하고 지구순회를 다니시면서 나는 부흥설교를, 최용석(崔容碩) 씨에게는 원리강의를 맡기셔서 큰 부흥의 불길을 일으키기도 했다. 11 나는 신학이나 목회에 대한 공부를 한 적이 없었지만 내가 강단 위에 서면 놀라운 말씀이 쏟아져 나왔고, 식구들은 감화와 감동을 받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