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7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예언자’라는 책의 작가로 유명한 칼릴 지브란은 ‘우리의 불안은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통제하는 데서 시작된다’라고 말했습니다. 크게 공감되는 말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심하다 싶을 정도로 통제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공부만이 아니라 취미 등의 일상생활까지 통제합니다. 자녀의 미래를 위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사실은 아이가 ‘잘못되지 않을까?’라는 불안 때문입니다. 하지만 통제할수록 더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자기의 통제로 아이가 잘못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더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큰 질병 중 하나가 마음의 병입니다. 이 마음의 병 한 가운데에는 늘 불안이 있습니다. 단순히 미래에 관한 생각, 걱정 때문이 아니라, 나와 가족과 또 만나는 이웃을 통제하려는 욕심에서 마음의 병이 더 커지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많이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남보다 잠도 줄이는 등 더 나 자신을 채찍질했었습니다.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미래는 나의 시간이 아닌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는 시간입니다. 결국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을 더 의미 있게 사는 데 집중하다 보니 저절로 미래의 ‘나’가 바뀌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미래를 통제하려고 해서 굳이 불안 속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통제가 필요한 유일한 시간은 지금. 바로 ‘현재’뿐입니다.
바리사이 몇이 예수님께 항의합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통제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바리사이를 비롯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불안했습니다. 군중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미래가 불안해집니다. 왜냐하면 당시는 로마의 지배를 받는 상황이었고, 군중이 모이는 것을 싫어했던 로마는 군대를 보내서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불안에 예수님과 제자들을 통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봐야 할 것은 ‘지금’이었습니다. 지금 자기들과 함께하는 예수님을 알아야 했고, 지금 예수님 뜻에 맞춰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불안으로 통제를 계속해서 합니다. 자기를 통제하고, 가족을 통제하고, 이웃을 통제하고…. 이렇게 불안으로 통제하려고 할 때, 지금 자기가 해야 할 것을 떠올려야 합니다. 분명히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지금에 충실한 우리와 함께해 주십니다.
오늘의 명언: 내면의 불씨는 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만나는 순간, 그 불꽃은 다시 타오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되살린 이에게 감사해야 한다(알버트 아인슈타인).
사진설명: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첫댓글 찬미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