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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사내아이를 낳았는데(27)
말씀: 계 12:1-6. 2025년 1월 5일 일요일 오전 11시
오늘 말씀은 “한 여자와 사내 아이”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계시록에서 주인공의 상대역, 맞수인 사탄(용)이 등장합니다. 흔히 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설이나 신화에만 등장하는 신비의 동물, 정체가 없는 미지의 동물, 상상 속의 동물로 여기지만 성경을 통해 용이 실존하는 짐승이며 그의 정체는 사탄임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용은 전설이나 신화에 등장하는 용과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그는 사탄이며 계시록 12장에 등장하는 이 용은 하늘에서 전쟁을 벌이다 쫓겨나고 20장에서 결박되어 바닥없는 구덩이에 던져 천년 동안 가두고 봉인됩니다(계20:3).
성경에는 용들에 대해서 여러 번 나오는데 그냥 짐승으로서의 용들과 사탄으로 불리는 용을 구분해야 합니다. 이는 양들이 많지만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고, 사자들은 많지만 유다 지파의 사자는 동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수많은 뱀들이 있으나 옛 뱀이라 불리는 존재는 야생 뱀이 아니라 그룹이었던 루시퍼요, 에덴동산에 나타난 사탄을 말합니다. 용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용들(dragons)은 많지만 큰 용이라 불리는 자는 사탄 하나입니다.
[그 큰 용 즉 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상을 속이는 자가 내쫓겼는데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12:9). 그 큰 용, 저 옛 뱀은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영적 존재로 다양하게 불립니다.
창세기에서는 여자를 속이는 자 뱀으로 나옵니다. 욥을 고소하며 시험하자고 제안했던 자도 사탄입니다. 다윗을 격동하여 인구 조사를 하게 한 자도 사탄입니다.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한 자도 사탄입니다. 성경은 포도주(독주)를 용들의 독(신32:33)이라고 합니다. 사탄은 상징이나 비유적인 어떤 존재가 아니라 문자적으로 실재하는 존재입니다.
먼저 용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저 하늘 위의 바다에는 용들이 있습니다.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들 가운데 있는 용들의 머리들을 깨뜨리시며 리워야단의 머리들을 부수어 산산조각 내시고 그를 광야에 거주하는 백성에게 먹을 것으로 주시며](시74:13-14). 여기 나오는 용들은 저 하늘 위 깊음이란 바다에 있는 동물들입니다. 깊음의 바다에 있는 생물들로서 주로 천사들의 음식입니다(시78:25).
천사들이 용들을 잡아다 음식으로 먹는다는 말은 아마 어느 나라 전설이나 공상 과학, 만화에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용들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 살을 광야의 백성들에게 만나로 주셨다고 말합니다. “리워야단의 머리들을 부수어 산산조각 내시고 그를 광야에 거주하는 백성에게 먹을 것(만나)으로 주시며”(시74:14).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용들의 머리들(13)과 리워야단의 머리들(14)이란 표현입니다. 같은 말을 다르게 두 번 표현했다면 용이 곧 리워야단입니다. 이 표현을 마음에 새겨 두시기 바랍니다. [용들과 모든 깊음들아, 너희는 땅에서부터 {주}를 찬양하라.](시148:7). 주님은 용들과 깊음 들에게 주를 찬양하라고 하십니다. 용은 깊음 들에 있으며 이 깊음은 창세기1:2절의 깊음으로 하나님께서 윗물과 아랫물로 나누실 때 궁창 위에 두신 물(깊음, 혹은 바다)입니다(창1:6-7). 이사야서를 펴 보십시오. 이사야서에는 용들의 처소란 말이 자주 나옵니다(사13:22, 34:13, 35:7, 43:20).
이스라엘이 바빌론 포로기 때 예루살렘은 황폐하게 되었는데 주님께서 그곳을 용들의 소굴로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렘9:11, 10:22). 예루살렘 외에도 하솔(렘49:33), 바빌론(렘51:37)이 용들의 거처가 될 것이란 주의 말씀이 있습니다. 버가모 교회가 곧 사탄의 자리라고(계2:13)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나 바빌론에 동물로 용들이 살았다는 역사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영적인 존재로서 마귀들을 언급하는 말입니다. 주의 영광이 떠난 예루살렘, 주의 백성들이 죄로 말미암아 포로가 되어 버린 그곳이 용들의 거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빌론은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로서(계17:5) 마귀들의 처소요 모든 더러운 영의 요새가 된 곳임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계18:2). 실제 용들이 있고 마귀들을 언급하는 용들이 있는데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용은 붉은 큰 용으로 마귀요 사탄이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는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라 실존하는 존재입니다.
12장의 주제는 후삼년 반 동안 이 땅에 있는 이스라엘은 어떻게 큰 환란을 통과할 것인가? 이것이 주제입니다. “그 큰 용 즉 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상을 속이는 자”(12:9)가 등장하고 짐승이 등장하는 후 삼년 반 동안이 본격적인 큰 환난의 시작입니다.
12장에 등장하는 여자는 신약 교회가 아닙니다. 신약교회가 광야로 도망가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부양받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교회는 큰 환난 전에 이미 하늘로 들림 받습니다. 여자는 마리아도 아닙니다. 그녀는 육신으로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큰 환난 때까지 2천년을 살아있을 수는 없습니다.
11장은 두 증인이 “천이백육십 일”(11:3) 동안 예루살렘에서 대언합니다.
12장은 이스라엘이 “천이백육십 일”(12:6) 동안 광야로 도피하고 주님께서 예비한 처소에 거하며 부양을 받는 내용입니다.
13장은 큰 환란 때 적그리스도와 거짓 대언자의 활동을 기록합니다.
14장은 땅의 심판입니다. 어느 성경이나 그러하지만 특히 계시록 12장은 구약성경의 예언을 살피지 않고서는 올바른 해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본문만 가지고 해석하려하므로 하나님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해석들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교리를 깨닫게 하시는 자들은 갓난아이들이 아니라 젖을 떼고 젖가슴에서 물러난 자들입니다. [그분께서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시려는가? 그분께서 누구에게 교리를 깨닫게 하시려는가? 젖을 떼고 젖가슴에서 물러난 자들에게 하시리니] (사28:9)
주님은 한 구절에서 모든 것을 말씀하시지 않고 여기에도 조금, 저기에도 조금씩 진리를 찾는 자들에게 알려 주십니다. [이는 반드시 훈계 위에 훈계가 있어야 하고 훈계 위에 훈계가 있어야 하며 줄 위에 줄이 있어야 하고 줄 위에 줄이 있어야 하되 여기에도 조금 저기에도 조금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그분께서 더듬는 입술과 다른 언어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사28:10~11)
계시록 12장은 “한 여자”가 누구인지 “사내아이”가 누구인지 교파별로 학자마다 해석과 의견이 서로 다른 시끄러운 장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고 해석하는 방법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비교함으로 본문이 스스로 해석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의미를 정의하고 규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바를 듣고 깨달아 믿고 순종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계시록 12장은 어떤 내용입니까? 큰 환란 때 이 땅에 남은 이스라엘에 관한 장(章)입니다. 큰 환란 때 이스라엘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큰 환란이 야곱(이스라엘)의 고난이란 사실을 잘 압니다(렘30:7). 큰 환란은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을 시험하고 정련하고 심판하는 기간입니다. 큰 환란 때 이스라엘은 지상의 다른 어떤 민족, 왕국보다 더 큰 피해를 입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성전에서 자신을 하나님으로 보이며(살후2:4) 경배를 요구할 것입니다. 짐승의 형상을 세워 경배를 요구합니다. 이마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자는 상거래를 일체 금지해 버립니다. 이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어디론가 도망가거나 주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마귀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피해서 도망가야 합니다. 반면 오늘날의 교회는 마귀를 대적하고 이기는 자들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나타나니라. 한 여자가 해를 옷으로 입고 있는데 그녀의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녀의 머리 위에는 열두 별의 왕관이 있더라.](계12:1).
하늘에 큰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한 여자가 해를 옷으로 입고” 있습니다. 그녀의 발아래에는 달이 있습니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열두 별의 왕관이 있습니다. 성경을 꾸준히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 표현은 매우 알기 쉽고 분명한 구절입니다. 소위 목회자들, 학자들이란 분들이 여자의 신원,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저마다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거나 자기들이 좋아하는 해석을 찾습니다.
로마 캐톨릭은 이 여자가 바로 성모 마리아라고 주장합니다.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는 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해석입니다. 어떤 이들은 한 여자가 주님의 신부인 몸 된 교회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교회는 여자로 언급되는 곳도 있습니다. 교회는 어린양의 신부이니 만큼 한 여자를 교회라고 하면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리아나 교회는 전혀 말도 안 되는 해석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여자란 말 대신 마리아나 교회를 대입해 보면 성립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2007년 곤지암기도원에서 계시록 특강을 할 때 “그 여자”란 말에 “교회”와 “마리아”를 대입해서 함께 읽어보기도 했는데 전혀 말이 안 됩니다.
그럼 “한 여자”는 누구입니까? 성경에서 여인으로 불리는 존재가 마리아나 교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시 여인으로 나옵니다. 계시록에는 4명의 여자들이 나오는데, 계시록 2장에서 이세벨이란 여자가 나왔습니다. 자신을 여대언자라 하며 성도들을 가르치고 꾀어 음행하게 하고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는 여자입니다(계2:20).
12장 본문에 한 여자가 나옵니다. 17장에는 큰 바빌론이라 불리는 창녀가 나옵니다. 이 여자는 많은 물들 위에 앉은 큰 음녀요(계17:1)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로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주홍색 짐승 위에 앉아 있습니다(계17:3). 그 여자는 자주색 옷과 주홍색 옷을 차려입었고 금과 보석들과 진주들로 꾸몄으며 가증한 것들과 자기의 음행으로 인한 더러운 것으로 가득한 금잔을 손에 가지고 있습니다(계17:4).
마지막으로 어린양의 신부가 나옵니다(계22:17).
자, 그럼 계12:1절의 해로 옷 입고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머리에는 열두 별이 있으며 왕관을 쓴 여자는 누구입니까? 성모 마리아도 영광스런 교회도 아닙니다. 성경 어디엔가 답이 있습니다. 창37:9-10에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또 그가 다른 꿈을 꾸고 그 꿈을 자기 형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가 또 꿈을 꾸었는데, 보소서,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내게 경의를 표하였나이다, 하고는 그 꿈을 자기 아버지와 형들에게 고하매 그의 아버지가 그를 꾸짖으며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이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하니라.](창37:9-10).
요셉이 꾼 꿈에 따르면 해와 달과 열한별은 이스라엘 지파 전체를 말합니다. 본문에는 해와 달과 열한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들로 모두 한 가족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이고 요셉을 포함한 열두 형제가 열두 지파로 곧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이 구절을 읽을 때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자기 민족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인 줄로 아는 익숙한 표현입니다. 그들은 매주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라를 읽을 때 이글을 창세기에서 읽고 듣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꿈에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내게 경의를 표했다고 말했는데 다시 말해 해는 아버지 야곱, 달은 어머니 라헬, 열한별은 자기 형제들로 비유되었습니다. 이는 누구의 추측이 아니라 야곱과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듣고 자기들을 지칭하는 말인 줄 알고 아버지는 요셉을 꾸짖고 형제들은 요셉을 미워하고 죽이려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고쳐주셨습니다(창32:28). 더 나아가 그 야곱에게서 열두 아들들이 태어났고 그들이 곧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스스로 해로 옷 입은 여자의 정체를 이스라엘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가 총리가 되어 곡식을 관장하는 자가되었을 때 요셉의 형제들이 곡식을 사러 이집트로 내려가 총리가 된 요셉에게 무릎을 꿇고 경배하며 곡식을 구했습니다(창42:6). 이로써 요셉이 꾼 꿈은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해로 옷 입고 발아래에 달이 있고 머리에 열두 별의 왕관이 있는 영광스러웠던 때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일은 천년 왕국 때 이스라엘의 지위, 영광을 예언합니다. 민족들의 머리가 되는(신28:13) 때 그들의 모습이 계시록 12:1에 기록된 모습입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때론 과부처럼, 때로는 창녀처럼 보일 정도였고 AD 70년 이후 1948년 까지 나라 자체가 아예 없었습니다. 그러나 멀지 않아 해와 달과 열두 별이 있고 머리에 왕관을 쓰고 온 땅의 중심 국가가 될 것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하늘의 왕국(천년왕국)이 세워지면 이스라엘의 모습은 하늘에서 본 큰 이적과 같은 그런 민족이 됩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녀가 아이를 배어 해산의 고통을 겪는 가운데 울부짖으며 출산하려고 진통을 겪더라.](계12:2). 이 여자는 아이를 배어 울부짖으며 출산하려고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임신한 여자가 출산을 하려는 것은 해산의 날이 다가왔거나 그 전에 조산을 하는 경우입니다. 성경에서 산고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문자 그대로 아이를 낳을 때 겪는 고통이고 하나는 심판의 고통을 산고에 비유합니다.
[내가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은 산고를 겪는 여자의 소리 같고 첫아이를 낳는 여자의 고통 소리 곧 시온의 딸의 소리 같았도다. 그녀가 스스로 탄식하며 자기 손들을 펼치고 이르기를, 이제 내게 화가 있도다! 살인자들로 인해 내 혼이 지쳤도다, 하는도다.](렘4:31).
이스라엘이 치른 산고의 고통은 아이를 낳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판으로 말미암은 고통이 그렇게 컸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시는데 그들이 받을 고통이 “산고를 겪는 여인 같은 고통에” 사로잡힌다고 합니다.
이런 구절들은 성경에서 제법 많이 나옵니다(렘13:21,49:24,50:34).
특히 큰 환란 때 이스라엘이 겪는 고통이 이것입니다. [이제 너희는 묻기를, 남자가 아이를 배어 산고를 겪느냐? 하고 또 알아보라. 모든 남자가 산고를 겪는 여인같이 자기 손을 허리에 대며 모든 얼굴이 창백하게 변함을 내가 봄은 무슨 까닭이냐? 슬프도다! 그 날이 커서 어떤 날도 그것과 같지 아니하니 그 날은 곧 야곱의 고난의 때니라. 그러나 그가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으리라.](렘30:6-7). 아이를 낳는 여자의 고통을 남자가 겪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큰 환란 때 이스라엘에는 남자마다 산고를 겪는 여인같이 고통을 겪는다고 말합니다. 이 고통이 얼마나 클지는 각자 생각하고 상상해 보십시오.
하늘의 보좌로부터 쫓겨난 사탄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사사건건 대적하고 훼방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일에는 반드시 개입하고 방해를 합니다. 여기에 동반되는 이스라엘에 임하는 고통이 대단합니다.
3절입니다. [또 하늘에 다른 이적이 나타나니라. 보라,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큰 붉은 용이 있는데 그의 머리들 위에 일곱 개의 왕관이 있고](계12:3). 또 하늘에 다른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1절에는 한 여자였고 3절에는 큰 용입니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큰 붉은 용인데 그의 일곱 머리에는 일곱 개의 왕관이 있습니다. 요한은 계속해서 놀라운 광경을 보고 있습니다. 하늘에 나타난 큰 이적을 통해 여자, 하늘에 있는 붉은 용을 각각 보았는데 이것은 엄청난 장면들입니다.
9절에 보면 이 붉은 용이 사탄이요 마귀임을 말해 줍니다. 에덴의 동산에 나타나 이브를 속였던 뱀은 옛 뱀이라고 불립니다. 사람들은 뱀이나 양이나 염소, 독수리 등에 대해서는 알지만 용들에 대해서는 신화나 전설에서 들은 것이 전부입니다.
동양인들 특히 중국 사람들은 용을 매우 좋아하고 숭상합니다. 그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용꿈을 꾸었다면 길몽으로 행운이 올 줄로 기대합니다. 성경의 용은 청룡도 흑룡도 황룡도 아닙니다. 붉은 용입니다. 그는 사탄이며 옛 뱀이며 루시퍼입니다. 용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독특하게 생긴 짐승입니다.
욥기 41장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깊음의 바다에 있는 리워야단이란 이름의 한 존재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데 그 생김새와 힘, 그가 하는 일 등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십니다. 욥41:18-21, [그가 재채기를 하면 빛이 번쩍이고 그의 눈은 아침의 눈꺼풀 같으며 그의 입에서는 타는 등불들이 나오고 불꽃들이 튀어나오며 그의 콧구멍에서는 끓는 솥이나 가마솥에서 나오는 것 같이 연기가 나오는도다. 그의 숨은 숯을 피우고 그의 입에서는 불꽃이 나오며](욥41:18-21).
지상에는 이런 동물이 없습니다. [깊음을 솥이 끓는 것 같이 끓게 하며 바다를 향유 단지같이 만드는도다. 그가 자기 뒤에 길을 만들어 빛나게 하므로 사람이 깊음을 백발 같다고 생각하리라. 땅 위에는 그와 비길 것이 없나니 그는 두려움이 없게 만들어졌느니라.](욥41:31-33). 이는 깊음의 바다에 있는 짐승인데 주님은 시편에서 그를 리워야단이라고 하셨습니다(시104:26).
주님은 그가 깊음을 끓게 하고 바다를 향유 단지 같이 만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깊음, 바다는 땅의 바다나 강물이 아니라 하늘들 위에 있는 물들입니다(창1:7).
리워야단의 존재가 무엇인가? 주님은 그가 누구인지 어떤 자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는 모든 높은 것을 눈여겨보는 자요, 모든 교만한 자녀들을 다스리는 왕이니라, 하시니라.](욥41:34). 자신을 하나님과 견주며 높이려 하는 자입니다. 그는 이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자요, 이 세상의 신입니다(고후4:4).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교만한 자녀들을 다스리는 왕입니다.
[그 날에 {주}께서 자신의 매섭고 크고 강한 칼로 꿰뚫는 뱀 리워야단 곧 저 구부러진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고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사27:1). 리워야단은 저 구부러진 뱀이라고 말씀합니다. 리워야단이 바로 바다에 있는 용입니다. 저 하늘에서 리워야단이라 불리는 자를 이 땅의 사람들이 용이라 부릅니다. 용들의 머리 위에는 왕관이 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통치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타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그의 꼬리가 하늘의 별들 중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막 해산하려고 하는 그 여자 앞에 서서 그녀의 아이가 태어나는 즉시 그 아이를 삼키려 하더라.](계12:4). 12장에 나타나는 한 여자는 사람을 말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지칭한다고 서두에서 성경해석을 조명했습니다.
큰 붉은 용은 하늘의 별들 중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졌습니다. 여기서 별들은 천사들을 말합니다. [그것이 하늘의 군대에 이르기까지 커져서 그 군대와 별들 중 얼마를 땅바닥에 내던지며 그것들을 짓밟더라.](단8:10). 용이 하늘의 별들(천사)을 끌어다 땅에 내던질 뿐 아니라 그것들을 짓밟았다고 말합니다. 큰 환란은 하늘의 천사들도 수난을 당하는 시대입니다.
다시 4절입니다. 용은 막 해산하려고 하는 여자(이스라엘) 앞에 서서 그녀의 아이가 태어나면 곧 그 아이를 삼키고자 했습니다. 여기서 여자는 누구입니까? 성경은 땅을 여성명사로 지칭합니다. 그리고 그 땅은 곧 이스라엘이고 그 땅에서 태어난 자를 그 땅이 낳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여자(이스라엘)가 낳는 그 아이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여자의 씨, 아브라함의 씨, 다윗의 씨 등으로 불립니다. 이스라엘이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낳았으므로 사탄은 예수님을 태어나자마자 삼키려 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여기까지는 무언가 맞아들어 갑니다. 그러나 본문의 시기는 큰 환란 때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사역을 마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시며 장차 심판 주로 오십니다. 그 예수님이 큰 환란 때 이스라엘에서 다시 아이로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합니다.
본문에서 한 여자는 성모 마리아도 아니고 그녀가 낳은 아이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큰 환난에서 이스라엘을 건지기 위한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역자들입니다. 이 부분은 여자가 누구인가란 문제보다 더 많은 해석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그 아이가 주 예수 그리스도란 것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며 곧 심판자로 재림하실 분이십니다. 벌써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속 사역을 완수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또한 요한이 먼 과거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사야서의 예언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녀가 진통을 겪기 전에 해산하고 자기의 고통이 닥치기 전에 사내아이를 낳았으니 누가 그러한 일을 들었느냐? 누가 그러한 일들을 보았느냐? 땅이 열매를 내기 위해 하루에 만들어 지겠느냐? 혹은 한 민족이 순식간에 태어나겠느냐?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자기 어이들을 낳았도다.](사66:7-8).
대언자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이 낳은 사내아이, 즉 “자기 아이들”에 대한 기록을 보십시오. 그리고 본문을 비교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사내아이는 맞지만 자기 아이들로 복수는 아닙니다. 여기서 사내아이가 예수님이라면 여인은 캐톨릭의 주장대로 마리아가 되고 맙니다. 자, 큰 환란 때 이스라엘에서 태어나는 사내아이, 또는 자기 자녀들이 누구입니까?
5절입니다. [그녀가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쇠막대기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자더라. 그녀의 아이가 하나님께로 채여 올라가 그분의 왕좌에 이르더라.](계12:5).
이구절로 볼 때 우리는 예수님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녀(이스라엘)가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이 아이는 철장으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자입니다. 이 아이는 채여 올라가 하나님께 이르고 그분의 왕좌에 이릅니다. 많은 주석가들이 철장으로 다스린다는 말씀 때문에 아이를 예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지상사역을 마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시며 만왕의 왕으로 세상을 쇠막대기로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잠시 계19:15절을 보겠습니다. [그분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므로 그분께서 그 검으로 민족들을 치시고 친히 쇠막대기로 그들을 다스리시며 또 친히 [전능자]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 틀을 밟으시리라.](계19:15). 예수님은 심판주로 지상 재림 하실 때 쇠막대기로 민족들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므로 12:5절에 나오는 ‘이 아이’는 예수님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이분은 12:11절에 흰말을 타고 오시는 심판주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십니다. 계시록의 다른 구절을 보겠습니다. [이기고 나의 행위를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릴 권능을 주리니 그가 쇠막대기로 그들을 다스리며 토기장이의 그릇같이 부수어 산산조각 내리라. 이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권능으로 하는 것과 같으니라.](계2:26-27).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글에서 “이기는 자”에게는 “그가 쇠막대기로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능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로 보아 예수님만 쇠막대기로 민족들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나 이기는 자들에게도 그러한 권능을 주십니다.
말씀을 깊이 살펴보십시오. 계12:5, “그녀의 아이가 하나님께로 채여 올라가” 그분의 왕좌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채여 올라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분께서 올라가실 때에......”(행1:10). 그러므로 이 아이는 예수님이 아니라 환란 성도로서 이기는 자입니다. 이는 환란 성도의 휴거를 보여 줍니다. 교회의 휴거도 성도들이 스스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하늘로 채어 가십니다.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7)
이사야서 사66:7-8절에 “사내아이”는 “자기 자녀들”로 복수입니다. 이 사내아이는 후 삼년 반에 들림 받습니다. 이들은 죽지 않고 하늘로 들림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이 낳은 사내아이(유대인)로 후삼년 반의 큰 환란이 끝나기 전, 산고(심판)의 고통 전에 하늘로 들림 받는 부류를 찾아보십시오. 또한 그는 민족들을 쇠막대기로 다스리는 권능도 있습니다.
그럼 답이 나왔습니다. 144,000명의 하나님의 인을 맞은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각 지파에서 천이백 명씩 봉인된 자들로 분명한 이스라엘입니다(계7:4). 이들은 온 세상의 민족들에게 왕국 복음을 전하다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림 받습니다(계14:1). 이들은 모두 여자들로 더럽혀지지 않은 동정들이라고 말합니다. 7장에서 봉인된 이들이 14장에서 하늘의 시온산 위에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께서 시온 산 위에 서 계시고 그분과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 안에는 그분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더라.](계14:1). 여자가 누구인지 사내아이가 누구인지 우리는 성경 자체의 설명과 증언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해석은 지금까지 정통, 근본, 보수라 지칭하는 이들의 해석과 너무나 달라서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구약성경은 분명하게 짝을 이루고 해석은 확실합니다.
6절입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피하였는데 거기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한 처소가 그녀에게 있으니 이것은 그들이 천이백육십 일 동안 거기서 그녀를 먹이게 하려 함이더라.](계12:6). 이스라엘은 산으로 도피합니다. 출애굽 때 40년을 광야에서 떠돌았던 것처럼 이스라엘은 다시 한 번 광야로 도망갑니다.
주님은 광야에 한 처소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마24:16). 광야로 도망가는 것은 주님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녀를 끌어당겨 광야로 데려가서 그녀에게 위로하는 말로 말하며](호2:14).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그곳에서 위로하시고(호2:14), 큰 환란이 끝날 때까지 그들을 숨기시고(사26:20-21), 삼년 반 동안 그들을 먹이시는 데(계12:14), 이는 이집트로부터 그들의 조상이 탈출했을 때와 동일합니다(호2:15).
주님은 출애굽 때 광야에서 그들을 부양하신 것처럼 큰 환란 때 광야에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거기서 그녀를 먹일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성전 안으로 들어오면 유대인들은 산으로 도망하게 될 것이며(눅21:21) 어리석은 자는 머뭇거리다가 거의 모두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이 그에게 닥치리라. 그는 지혜가 없는 아들이니 그는 아이들이 터져서 나오는 곳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말아야 하느니라.](호13:13)고 말합니다. 예루살렘 사방에 죽음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암5:19).
큰 환란 때에 있게 될 광야로의 탈출이 출애굽과 다른 점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떠나 반대로 광야로 도망한다는 점입니다. 광야에 있는 피난처는 바위 도시입니다-페트라(시18:1-6, 31:3, 42:9, 71:3).
적그리스도에 대해 다니엘은 “그가 또한 영화로운 땅으로 들어가며 많은 나라를 뒤엎을 것이나 이들 곧 에돔과 모압 그리고 암몬 자손의 우두머리는 그의 손에서 피하리라.”(단11:41)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피난처는 에돔이요, 오늘날 페트라로 알려진 그 장소가 틀림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남은 자들은 이곳에서 적그리스도를 피하여 환란 가운데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렘31:2). 이 도피 장소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3년 반 동안(계12:6) 먹이실 것입니다(미7:14). 페트라에 도피한 유대인들 외에 일부 유대인들은 갈멜, 바산 그리고 길르앗 광야에서 도피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렘50:19-20, 겔20:35).
이들은 만나를 먹을 것이며(미7:14-15, 시105:40) 마실 물을 공급받게 될 것이고(시78:16), 밭과 포도원에도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시107:35-37). 이 밭과 포도원은 전쟁에 나간 자들이 버린 것이거나 큰 환란의 심판으로 인해 죽은 자들의 소유이거나 어쩌면 마태복음 25장에서 양으로 분리된 민족에 의해 선물로 주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큰 환란 때 유대인들의 상태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사33:13-17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멀리 있는 자들아, 너희는 내가 행한 것을 들으라. 가까이 있는 자들아, 너희는 내 강력을 인정할지어다. 시온의 죄인들이 무서워하며 두려움이 위선자들을 놀라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 가운데 누가 그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리요? 우리 가운데 누가 영존하는 불사름과 함께 거하리요? 하는도다. 의롭게 걷는 자, 올바르게 말하는 자, 압제하여 얻은 이득을 멸시하는 자, 손을 저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바위로 된 요새(페트라)가 그를 보호하는 처소가 될 것이요 그는 빵(만나)을 공급 받고 물을 확보하리라. 네 눈은 아름다움 가운데 있는 왕(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보겠고 그들은 매우 멀리 있는 땅을 바라볼(회복) 것이며.](사33:13-17).
시온의 죄인들은 광야로 피신하지 않은 유대인들입니다.
두려움이 위선자들을 놀라게 한다는 것은 이들이 주의 말씀을 무시했거나 흘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성전 예배는 드리지만 주의 말씀은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 자들이야 말로 위선자들입니다. 그들은 말씀이 이루어질 때 놀라게 됩니다. 지금도 교회는 다니지만 기록된 성경을 문자대로 믿지 않아 구원 없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 휴거사건이 일어난 뒤에야 깜짝 놀라고 정신을 차릴 것입니다.
본문에 의롭게 걷는 자, 올바르게 말하는 자, 학대하여 얻은 재물을 멸시하는 자, 손을 저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들이란 큰 환란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환난 가운데에서도 성경의 기록을 문자대로 믿는 자들은 큰 환란 속에서 적그리스도에게 동조하지 않습니다. 끔찍한 심판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거할 소망 가운데서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자들이 의로운 자들입니다. 큰 환란 때 구원은 이런 자들의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을 바위로 된 요새(페트라)로 인도하시고 거기서 1,260일 동안 부양하십니다. 광야에서 빵을 공급 받고 물을 확보합니다. 아름다움 가운데 있는 왕이란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재림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옷과 넓적다리에 {왕들의 왕, 주들의 주}라고 기록된 한 이름을 가지고 계시느니라.](계19:16) 멀리 있는 땅은 약속의 땅입니다. 구약 성경에 이런 예언들이 계시록에서 문자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출애굽 땐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나와 광야로 갔듯이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나와 광야로 향합니다.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휘저으며 자기 새끼들 위에 너풀거리고 자기 날개들을 넓게 펴서 새끼들을 받으며 자기 날개들 위에 그것들을 업는 것 같이 {주}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분과 함께한 이방 신이 없었도다.](신32:11-12).
출애굽 때 주님은 “자기 날개 위에” 그것들을 업는 것 같이 인도하셨는데 큰 환란 때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그들을 만나로 먹이실 것입니다. [주의 막대기로 주의 백성 곧 갈멜의 한가운데서 숲 속에 홀로 거하는 주의 상속 백성 양 떼를 먹이시되 옛날에 하신 것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그들을 먹이소서. 네가 이집트 땅에서 나오던 날들에 내가 행한 대로 내가 그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이리라.](미7:14-15).
주님은 출애굽 때에 하신 것과 같이 ‘놀라운 일들을 보이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런 말씀은 너무나 놀라운 말씀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도 주님의 보호하심, 공급하심으로 충분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그의 거처로 다시 데려오리니 그가 갈멜과 바산에서 먹고 그의 혼이 에브라임 산과 길르앗에서 만족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그 날들과 그때에는 이스라엘의 불법을 찾을지라도 아무것도 없을 것이며 유다의 죄들을 찾을지라도 그것들을 찾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겨 놓는 자들을 내가 용서할 것이기 때문이라.](렘50:19-20).
큰 환란 때 흩어진 모든 유대인들은 다시 모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먹이시고 정결하게 하십니다. 큰 환란이 끝났을 때 이들 남은 자들은 모두 정결하게 된 자들입니다. 구약에서 이런 구절들이 매우 많이 있어서 다 찾아보지 못하겠지만 이제는 성경을 읽을 때 이 구절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어디에 적용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으로 말씀을 꿸 수 있으면 성경을 공부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의 말씀을 안다는 것은 강력한 무기를 손에 잡고 있는 것입니다. 무기를 가져도 그 사용법을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부단히 읽고 공부하십시오. 자주 사용해 보는 것보다 더 나은 훈련이 없습니다. 말씀으로 교제하고 서로 위로하고 훈계하고 때로는 묻고 답하면서 말씀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기 바랍니다. 특히 요한 계시록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속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는 책입니다. 온갖 교리의 풍조에 흔들리지 않도록 말씀을 배우십시오. 마지막 때에 우리는 주님께서 미리 기록하신 역사인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일임을 확신하고 계속 앞으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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