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숱하게 많이 있으나 정작 사람이 걸어갈 만한 길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우리 길들은 거개가 차존인비(車尊人卑) 길이기 때문이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마라"
숨은 뜻을 찾아내고 새김하려 애쓸 것 없다.
액면으로 족하다.
바로 우리에게 주는 경고니까.
웰빙 바람 탓인가.
지자체들이 일시적 유행병에라도 감염되었나.
너도나도 길 만들기에 혈안이다.
올레길, 둘레길, 순례길, 심지어 사계의 명사라는 어느 분은
마실길 까지 만들자고 주장한다.
자연을 난도질해서 만든 이 길들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더구나 하나같이, 한사코 걷지 않으려고 하는데 누가 얼마나
걷는다고.
충북(옥천군 이원면)의 한 과수원에서 일을 거들던 지난 7월
어느 날 저녁녘에 PC방이 있는 군청소재지까지 나갔다.
급한 용무는 해결했으나 돌아갈 버스가 이미 끊겼다.
차라리 잘 됐다 싶어 마음 편히 걸었다.
10km쯤이야 산책 삼아 걸으면 되는 거리니까.
목적지가 지척인 어느 주유소 앞을 지날 때였다.
한 대형탑차의 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어르신이 밤중에 걸으실 길이 아닙니다.
모셔다 드릴 테니 타십시오"
언제, 어데서 참변을 당할지 모르는 위험한 길이라는 것.
야간운행 대형차 기사의 90%는 졸음운전중이기 때문이란다.
자기도 울산을 다녀오는 길인데 겨우 3시간 잤다며.
오호라! 걷지 않으려는 이들의 현명함이여!
함평(전남) 교통사고의 충격(neurose)에서 벗어나는 중인가
싶었는데 오금을 못 추게 하는 경고에 다름 아니었다.
그럼, 내가 맘 놓고 걸을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출구가 없지 않은가.
이제까지 걸어오는 동안 이만한 것은 그나마 천행인가.
귀가 후 차 없는 우이령길 만을 하루같이 걷고 있다.
사색의 바다에서 자유자재로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알몸으로 그러면 금상첨화겠는데 맨발만 허용되어 아쉽다.
그리고 이 늙은이의 '사모곡'이 우이령에 갇혀 있음을 깨닫는
데는 많은 날이 필요치 않았다.
마침내 출구를 찾았다.
성 야고보의 산소가 있는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가는 것.
796km의 <산티아고순례길>(Camino de Santiago)을 걸으려.
'생장피드포르'(St. Jean Pied de Port-프랑스)에서'산티아고'
(Santiago de Compostela-스페인)까지다.
일명 나폴레옹 루트인 피레네산맥과 대부분이 해발 600m에서
1.500m를 오르내려야 하는 고원지대와 봄비가 잦은 갈리시아
지방으로 되어 있는 난이도 높은 고행의 순례길이다.
그러나 피레네산맥의 황홀한 풍광, 백두대간보다 완만한 경사,
원래 비를 몰고 다니는 늙은이 등을 감안하면 못할 것도 없다.
힘 자랑이나 기록경쟁이 아니고 오직 순례자의 심정일 뿐이니
오히려 여유롭다 할까.
"죽을 곳이 없어서 스페인까지 죽으러 가려는 것이냐" 는 극언
(極言?)도 듣지만 40일 예정으로 준비중이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스페인어의 습득이 우선이다.
스페인人은 우리나라처럼 영어에 목매지 않아 영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니까.
하지만 늙은이가 외국어를 익힌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적어도 반년 정도는 소요될 것이다.
그러면, 이행 시기가 내년 봄쯤이 되겠다.
한겨울은 피하고 싶으니까.
그 다음에는?
그건, 그 때에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첫댓글 삼각산을 같이 산행했던 남호 목사가 산티아고 2,000리 길을 몇년 전에 걸었다고 합니다
혹 도움이 되실까 싶어 두서없이 주절 거렸네요 폰 번호 011~664~9564
고맙습니다. 지금은 오로지 스페인어에 올인하고 있어서.... 03:28
가지 말란다해서 포기하실 분이 아닌 것을 모두 잘 알것입니다.
그러니 바라시는대로 잘 마치고 돌아오시기만 기도할 수밖에 없네요.
그래도 연세를 생각하셔서 무리만은 절대 하지 마시길....
가장 현명하시네요.
어찌 잠잠하다시펐는데 이번에는 그 엄청난 일을 꾸미고 있었소?. 허지만 우리나이를 생각해야지요. 아뭏든 거뜬히 해내리라 믿읍니다.
우리 사이가 공간적으로는 멀어도 지근으로 느껴지는 별자리님!
항상 응원에 인색하지 않으심에 마냥 감사드립니다.
늙은 제 경우, 두 번 가기 쉽잖은 길이라 그런지 떠나기도 전에 욕심만 부어가고 있습니다.
당초의 계획이 잘 마무리되면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가서 대서양 하늬바람으로 옆구리 식혀가며 북상,
산티아고에 도착한 후 산티아고 서쪽 땅 끝 피니스텔레까지 약 700km를 연장하고 기간도 두달 반으로
늘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