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그리고 50년
연극을 보는 재미는 과연 무엇에 있을까? 이런 우문에 답은 여러 가지! 라고 답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백미는 “역시 좋은 희곡 속에서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일 것이다.
김영무 작 , 문고헌 연출 , 극단 춘추 제100회 정기공연 작품인 ‘포옹 그리고 50년’은
연극을 보는 재미에서 ‘좋은 희곡 속에서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에 대해 공연 내내 보여주는 수작이다.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여 ‘6.25를 겪으면서 결혼 1주일 만에 생이별하게 된 권씨와 양씨.
권씨는 전쟁 중에 국군 포로로 북한에 억류된다. 그 후 50년 만에 탈북에 성공해 남한에
오게 된다. 그사이 양씨는 박씨와 재혼을 하게 되고 ..정신적 학대와 육체적 학대를
감내하여 살아야만 하는 역사적 희생물이 되어버린 한 여자, 부인의 사랑을 받고자
원했으나 받지 못해 가학적이고 가식적인 사랑으로 진정한 부부애를 느끼지 못한 채
50년을 살아온 현 남편, 그리고 지난 50년을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며 멍든 가슴을 안고
아려한 추억과 지고지순한 사랑만을 꿈꾸어 온 전 남편. 이렇게 세 사람이 한 장소에서
만나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품이다‘

등장인물 중 결혼한 지 1주일 만에 6.25로 전쟁에 참여했다가 중공군에 의해 포로가 되어
북한에 국군포로로 남겨졌다 50년 만에 귀국하는 권씨 역은 정진 선생이 맡았다.
그리고 결혼한 지 1주일 만에 남편이 전쟁터로 나갔다 행사불명으로 눈물진 나날을
보내다 시댁의 ‘너희 집으로 가라! (수녀원으로 가!) 는 말과 함께 ’돈에 팔렸다‘고
주장하며 매일 밤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받으며 살아왔다고 외치는 양 씨역은
서권순 배우가 맡았다.
그리고 또 이 역의 핵심인물일 수 있는 가해자이며 동시에 가장 큰 피해자인 박씨
역엔 최종원 배우가 맡았다.
정진, 서권순 , 최종원 배우의 묵직함에 김영무 선생의 정갈한 희곡과 함께
100회 정기공연을 하는 극단 춘추 문고헌 연출의 타협할 수 없는 연극적 뚝심이
모두 합해져 좋은 공연을 소리 소문 없이 만들고 있다.
물론 내용이 젊은 사람들 보다는 나이가 있는 분들이 보시기에 더 좋을 수도 있는
아버지들의 사랑 이야기이긴 하지만, 거꾸로 뒤집어 보면 지금 현대인의 부부관계에
대해 아버지 세대가 아들 딸 세대에게 넌지시 너희들은 이렇게 살아가라 는 이야기를
해 주는 듯하다.
결혼 40주년이 되는 오늘 갑자기 남편(최종원 분)은 호들갑을 떨며 결혼 4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그런 남편이 밉지 않은 듯 그려 오늘만큼은
나도 화끈하게 한 번 벗어버리는 거여 그런 밉지 않은 당신을 위해 (서권순 분)
그렇게 부부인 둘은 결혼 40주년을 자축하는 자리를 꾸며 가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리며
누군가 찾아온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는 50년 전 결혼 1주일 만에 전쟁터로
나갔다 생사불명이 된 첫 남편 (정진 분)..
삼각관계는 갈등이 있고 보는 관객들에겐 손에 땀을 쥐는 재미가 배가된다.
거기에 더해 그것이 남의 사랑싸움이라면 불구경 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사랑싸움
아니겠는가?
객석의 관객들은 양씨 역의 서권순 여사의 첫 남편과 현재의 남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를 보는 재미에 쏙 빠지면서도
그래 내가 권씨를 초대했다 그리고 내가 그래 너랑 살면서 매일 하자고 하자고
조르다 안 돼 폭력까지 행사했다 그렇지만 난 널 사랑했다 하여튼 아무튼
가해자이자 가장 큰 피해자인 박씨 역의 최종원의 고양이가 벙커 쥐 쫓는 듯한
권씨와 양씨 사이에 흐르는 묘한 뉘앙스와 분위기를 슬슬 한 번씩 죽었니 살았니
툭툭 쳐보는 듯 한 연기 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아 이 좋은 연기를 나 혼자
보려니 참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 둘 사이에서 전 남편이자 첫 남편이기도 한 권씨 역의 정진은
이게 뭐여 TV에서 잃어버린 50년 전 헤어진 아내가 보고 싶다고 인터뷰 했더니
지금의 남편입니다 하면서 오늘 저희 집으로 초대를 하는데 오실 수 있을까요 해서
그러마 하고 와서 50년 전 아내 얼굴만 보고 가려 했는데 그런 내 앞에서 둘이
내가 벙커 쥐야 아냐 내가 벙커 쥐고 네가 벙커 쥐 쫒는 고양이야 놀이를 하니
정말 난감하네.....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은근히 좋기만 한 권씨 정진.
중견배우 세 분의 연기가 그러한 중심에서 삼각관계를 형성하며 보여주니 보는
관객은 싸워라 싸워서 이기는 편이 재편~ 이다.
연극을 보면서 대사하는 배우의 얼굴이 중요한 것도 있지만 이러한 삼각관계의
연극은 대사하는 배우의 표정을 보면서 동시에 대사로 공격당하는 상대 배우의
표정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벙커 쥐 잡듯 첫 남편과 자기 아내를 동시에 한 곳에 올려놓고 여기 툭 저기 툭
하면서 죽었니 살았니? 를 하는 배우 최종원의 연기는 ‘포옹 그리고 50년’의
원래 줄거리에서 참다운 부부애를 찾고자 노력했지만 첫사랑만 고집하는 부인의
아집에 눌려 산 잃어버린 40년을 일시에 갚아보려는 남자의 속성이 지배하고 있다.
이 공연은 원래 공연전문 계간지 ‘극작에서 공연까지’의 편집주간이자 이 희곡을
쓰신 김영무 선생이 2009년 ‘극작에서 공연까지’ 가을 호에 실었던 작품으로 원래
줄거리 그대로 공연하자면 3시간이 걸린다.
그것을 문고헌 연출과의 극작에서 무대화로의 이행과정에서 1시간 40분으로 압축하여
올려 진 것으로 원래 희곡상의 결말과 지금 결말은 완전히 틀린다.
틀린 결말과 원래 희곡은 어떤 것인지를 알려면 공연을 본 후 연출 또는 극작가에게
질문을 하면 자세히 알려줄 것이다. 다른 한 편은 극작에서 공연까지의 과월 호를
구입해 자신이 천천히 밑줄 그으며 읽으면서 등장인물 중 한 분이 또 바뀐 것 까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포옹 그리고 50년’은 아버지 세대가 지금의 아들 딸 세대들에게
사랑하는 아들 딸 들아 너희는 이런 사랑을 하여라 라는 말을 해주기도 하지만
더욱 큰 의미에서는 좌우 대립이 대한민국 수립과 6.25 전쟁 이후로 이렇게 극심한 적이
없이 혼란한 이 시대에
‘50년’이 갖는 의미와 포옹과 사랑을 통해 좌우대립의 골을 끊고 , 남북 대립의 골도
끊어보자는 노 작가의 큰 뜻도 읽혀지는 희곡이다.
공연을 보며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대사에선 ‘일없습네다’ 라고 했다가 ‘상관없다’라고
북한에서 50년 만에 막 돌아온 권씨가 갑자기 남한 말을 하는 것이 걸렸고,
배우의 연기에서 첫 장면으로 저녁식사를 차리는 가운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부인 양씨가 수저 세 벌을 놓고 있었다는 것은 완전한 실수로 보여지고,
(남편이 권씨를 부인 양씨 모르게 초대했기에 남편이 세벌을 세팅하면 문제가 없지만)
조명에선 창밖으로 아파트 혹은 주변 풍경을 보여주면서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하는 창밖 풍경을 한 번도 변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 거슬렸으며, 음향효과에선
좌측 스피커에서만 음향효과가 흘러나와 좌우측에 있는 전화기 위치에 대한 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배우 감정의 변화에 더해 음향이 서서히 올려져야 함에도
급하게 올라가는 부분이 배우의 연기 감정과 맞지 않아 약간의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현대 한국연극이 공통점으로 갖는 문제점인 감탄할 작품은 많아도 감동할 작품이
없다는 것에서 감탄과 동시에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진솔한 사랑과 진정한 부부애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거나 부부가 함께 이 공연을 보면서 아니 아버지가 딸과
아들을 데리고 , 미혼녀가 자기 남자친구를 데리고 함께 극장으로 와 이 공연을 보면서
살아온 날과 앞으로함께 살아갈 날을 과연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좋은 공연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포옹 그리고 50년’은 대학로 예술극장 3관에서 5월 2일까지 공연하며
보다 싸게 입장권을 구매하려면 [문,예.당] 02- 792-1611 로 예약하면 된다고
누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