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세월의 야속함과 쫓기듯 한 일상고에 시달리면서도 열심히 산다.
각자 제 나름으로 주어진 선진 문화 활동을 기반으로 한 생색내므로 또한 남부럽지 않을 일상의 열정들에 감탄과 찬사를 보내고 싶다.
휴대전화라는 도구를 활용한 온갖 포화하고 풍성한 나머지 오만가지 정보화 홍수 시대에 즈음하여 볼거리 읽을거리들은 잉여 생산되어 표출되는 상황들 속에서
떠도는 좋은 경구(驚句)에는 한결같이 감화된 듯 이곳저곳 퍼 나르는 데는 일가견 또한 출중하니 실로 대단함이다.
인생이.
삶과 죽음이.
생고동락(生苦同樂)의 천세함이,
재물의 한과 탓을….
물질의 만욕과 자비함들을..
배려의 실천 등 또한 이 모든 것들의 진리와 사고들을 망라한 답습들은 마치 인간으로의 행위 도덕적 가장자리에서 스스로도 공감한 듯 자각해 보기 으뜸이요 돋보이려 함이다.
이는 성현 군자의 아량함이라도 과시해 보이려는 듯한 애쓰는 모습들과 더불어 모두의 바램이요 공통된 숙원들을 공감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
이왕지사 단문의 수식어 한 어휘라도 얹어 보탬이 되어진다면 안녕이라는 상기함에 더없는 존중일 터인데 그저 거침없고 개념없이 전달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쾌재의 수또한 실로 대단한 열정 그 이상이니 경탄해 마지않는다는 얘기이다.
안 쓰는 근육들과 덜 쓰는 언어들은 누군가에게 도움과 희망의 경구가 되어 질 수 있다면 건강한 행복으로 거듭남이다.
존재의 가치란 무엇인가?
있고 없음의 실상에서 주어진 몫의 삶이란 모두가 균형이 맞아야 하거늘 인간이라는 물성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뛰어넘는 남들의 이목들만 셈해보며 주관하려 노력한다.
인간함의 법성(法性)이란 한계의 끝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근본의 도리와 인성이란 잘 가르치고 배우는 배움의 성찰이라고 본다.
가정의 신성한 가교(家敎)로부터 인성된 성장은 바른 마음의 선용으로 사회성을 기르며 칭찬과 비난의 경험들 속에 깨달아 가는 것이지 않은가?
상대를 맞춰줄 수 있는 힘과 지혜는 금과옥조(金科玉條)의 명언 명구처럼 진정성 있는 여유와 배려로 날마다 안녕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