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 16장 23~24절 중에서)
나는 가계부채 상담사이다. 직업군으로는 재무상담사에 해당하지만 재테크 상담이 아니라 빚 문제만 전문적으로 상담한다.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이해하려 애쓰고 그를 기반으로 돈과 빚에 대해 자주 묵상한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원리 안에서 돈을 이해하려고 할 때 가장 괴롭고 곤란한 문제는 ‘성경적 재정관리’를 정의하는 것이다.
성경적 재정관리 전문가로 소문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성경적 재정관리가 잘못 정의되는 것은
①자기를 부인하지 않았고 ②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았으며
③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 것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을 마음에 새기며 ‘성경적 재정관리’를 정의하려 애쓰는 나의 견해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인정하며 글을 이어간다.
사탄은 ‘성경적 재정관리’의 정의 단계에서부터 우리에게 개입하여 지혜를 가로막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혹시 누가 돈에 대해 성경을 들어 말하거든 기독교인은 우선 ‘의심’하는 자세로 들을 필요가 있다. 독자들께서는 내 견해도 의심하며 들어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성경적 재정관리에 대한 정의를 목회자나 재정전문가에게만 맡기지는 말아주시면 좋겠다. 이것은 필자의 간곡한 부탁이다.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목회자가 하는 이야기는 관념적인 것 같고 재정전문가들의 이야기는 다른 길로 인도하는 것 같다. 다수 기독교인의 집단지성이 작동되어 의심하고 정의해보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성경적 재정관리’가 제대로 정의되고, 기독교인 누구나 알게 되고, 생활에 적용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성경적 재정관리에 대한 대표적인 견해 세 가지에 대해 짚어보자. ⑴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 하면 기독교 원리를 잘 사용해서 부자가 될 수 있을까를 주로
생각한다. ⑵ 내가 부자가 되어 하나님 일에 돈을 공급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⑶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소유자이시고 나는 청지기라고 생각한다.
(1)번 견해와 같은 기독교인이 대다수가 아닐까 싶은데 이런 견해가 성경적 재정관리에 대한 바른 견해가 아니란 것에 대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번 견해는 하나님 일을 하는 것에 조건을 단 것이다.
(‘하나님 저를 부자로 만들어주시면 내가 하나님 일을 할게요’)
부자가 되어 하나님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이 자기 사명인지 냉철하게 따져봤으면 한다.
자기 사명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데 돈이 필요하다면 이미 부자인 다른 사람의 돈을 끌어다 공급해주실 수도 있을 텐데 왜 하필 내가 직접 부자가 되려는 것인지’, ‘내가 하나님 일을 하는 길은 부자 되는 길 말고도 있을 텐데 왜 하필 부자 되는 길로 가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에게 잘 물어보면 좋겠다.
언젠가부터 ‘하나님 나라에 보화를 쌓아두면 50배 100배 받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재정원리다’는 이야기가 유행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부자이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에 딱 맞아떨어졌기에
이 교리에 심취한 사람을 몇몇 보았는데 내 눈에는 그분들이 하나님 나라보다는 ‘나도 큰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에 더 빠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분들 입에서 ‘공평과 정의’에 대해서보다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 더 믿음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다.
(3)번 ‘청지기론’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잘 밝혀 주고는 있지만 ‘그런데 무얼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청지기 역할은 십일조가 다 일까? 정직과 근면성실이 다 일까?
‘청지기론’은 성경적 재정관리를 정의하기에는 공백이 큰 것 같다. 이 공백을 채우는 데에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청지기는 무엇을 위한 청지기인가? 창조주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제대로 일하는 청지기가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성경적 재정관리’를 정의할 때는 ‘목적과 수단’ 개념이 필요해진다.
목적을 알아야 수단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숟가락은 어디에 사용되는 물건인지 이야기해보자. 배고픈 사람이고 목적이 식사이면 음식을 입에 떠넣는 데 쓰일 것이다. 죄수이고 목적이 탈옥이라면 땅을 파는 데 쓰일 것이다. 이처럼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수단’의 사용법이 완전히 달라진다. 목적을 이해해야 사용법이 제대로 정의된다.
‘목적과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아래 단어들을 목적과 수단에 연결 지어 보자. 하나님(또는 하나님 나라)과 나. 이 둘 중 어느 쪽이 목적의 자리에, 어느 쪽이 수단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 다음으로 나와 돈. 이 둘 중에서는 어느 쪽이 목적의 자리에, 어느 쪽이 수단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
이제 다들 알게 되었으리라. 돈을 성경적으로 잘 다루기 위해서는, 기술이나 방법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그의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가장 핵심이요 출발점이다. 공의와 정의에 맞게 벌고, 쓰고, 모으고, 흘려보내는 것이 ‘성경적 재정관리’인 것이다. 즉, 성경적 재정관리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의 문제이고 존재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의하게 되었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떤 역할을 사명으로 삼기 원하실까? 그 사명에 맞게 내가 돈을 사용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알맞은 재정관리이다.
그런데 이런 정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탄의 개입으로 인해 ‘성경적 재정관리’를 변질시키게 된다. ‘성경적 재정관리’를 돈에 대한 내 필요나 소욕을 채우는 것으로 변질시키지 않고 ‘하나님 나라 원리’에 딱 묶어두는 데 매우 중요한 단어가 두 개 있다. ‘이웃’과 ‘전투’이다.
(1) 이웃 [주 ⇆ 나 ⇆ 돈] 이 범주 내에서만 생각하면 자꾸 변질되어 ‘주님 나 돈 주세요’ 쪽으로 간다.
여기에 ‘이웃’을 넣어 생각해야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주 ⇆ (이웃) ⇆ 나 ⇆ 돈]
이렇게 ‘이웃’을 넣어 물질을 관리해야 ‘공의’에 충실한 물질관리를 할 수가 있다. ‘공의와 정의’에 맞게 하는 것이라야 성경적 재정관리다. ‘공의’란 관계의 올바름이다. 창조주와 피조물로서의 관계가 올바르게 서 있는 것이 ‘공의’이다. 나와 이웃의 관계가 올바르게 서 있는 것이 ‘공의’이다.
이웃을 위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웃을 위하는 것을 하나님 나라의 통치원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하는 이웃을 위한 선행쯤으로 생각하는 것도 성경적 재정관리를 한 참 빗나가게 만든다.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야 한다. 이웃을 위해 돈을 사용하는 것이 ‘성경적 재정관리’의 핵심이자 척도라고 나는 감히 단정한다. 성경적 재정관리를 올바르게 정의하려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인 ‘공의와 정의’에 착 달라붙어서 정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적 재정관리를 개인 인생차원의 돈관리 문제로 협소화 혹은 타락시킨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성경적 재정관리의 정의를 개인과 가정의 행복 추구하는 것에 국한시키는 것은 역시 사탄이 바라는 바이다.
만일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재물관리’라고 한다면 뜨거운 느낌은 들지만 ‘주를 위해’라는 대목이 추상적이어서 쉽게 변질될 수 있다. ‘돈을 버는 것도 이웃에게 유익하게, 돈을 모으는 것도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것도 이웃을 위해’라고 해야 변질을 막을 수 있다. ‘나는 이웃의 필요를 채우고, 내 필요는 주님께서 채우는 것’이 성경적 재정관리의 핵심원리인 것이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눅 16장 9절, 12절 중에서)
(2) 전투 “돈은 단순히 중립적인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생명을 가지고 있는...악마적인 힘이다...우리가 돈을 비인격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한 그 돈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 이외의 도덕적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돈이 권세들(power)에 의해서 생기가 돌고 활성화된다...지상의 통치자들과 사회제도와 다른 많은 일들의 배후에는 천사적이거나 악마적인 본성을 가진 영적이고 보이지 않는 권위와 세력이 있다.” (리처드 포스터, <돈,섹스,권력> 중에서)
돈은 오래전부터 인간을 침탈하는 사탄의 주요 무기였다. 이미 돈은 신의 자리를 차지했고 공급자가 되어 있다. 그런데 어찌 크리스천이 그것과 싸우지 않을 수 있을까? 만일 ‘돈은 아무런 죄가 없고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며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적들을 숨겨주는 일이 된다. 싸워야 할 대상을 ‘잘 이용해야 할 대상’이라고 인식하면 적들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가 된다
이런 실책이 주로 크리스천 재정전문가들 사이에서 빚어지고 있어서 정말 아프다. 사람들로 하여금 돈에 대한 경각심을 잃게 하는 말을 삼가야 한다. 지금은 돈을 잘 사용하는 법을 배워 하나님 일을 하겠다는 때가 아니라 돈과 싸워 주인의 자리에 앉아 있는 돈을 끌어내려야 할 때이다. 개인 차원에서는 주도권 싸움이고 하나님 나라의 정부 차원에서는 권력투쟁이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서경준 원장은 수년 전부터 무이자 대출운동과 청년가계부채 운동을 펼치고 있는 ‘희년은행’과 함께 가계부채 전문 상담을 수행하고 있다. 가계부채 전문 상담은 빚을 무기 삼은 사탄과 벌이는 치열한 전투 현장이다. 우리의 무기는 ‘희년 정신’이다. 가계부채 전문상담을 받은 사람들은 희년을 경험하고 있다. 많은 군사를 양성하기 위해 ‘희년재무상담사 양성과정’을 해마다 운영하고 있고 싸움의 기술을 보급하여 의병을 양성하기 위해 ‘가계부채 게이트키퍼’과정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