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의 위력 / 최종호
“당신은 종이컵 집착증이야!” 물건 여기저기서 눈에 띄어 아내가 가끔 나에게 했던 잔소리다. 평소 가지고 다니는 서류 가방은 물론, 때로는 여행용 가방에서도, 심지어 양복주머니에서도 발견된단다. 처음에는 쓰고 난 후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집으로 가져왔지만, 핀잔을 몇 번 듣다 보니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몰래 살며시 가져다 놓는다. 남의 눈을 의식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접어서 가져오기도 한다.
한 번은 양복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접어서 넣은 종이컵이 그대로 있었다. 촉감이 이상하여 꺼내 보았더니 주머니가 젖어 있었다. 완전히 마셨다고 생각했는데 커피가 새어 나왔던 것이다. 다행히 세탁할 정도는 아니었다. 접어서 가져온 것을 다시 사용하려고 하면 모양이 쭈글쭈글하여 보기 싫다. 또 물이 새서 사용할 수가 없기에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하여튼 물 한 모금 마시고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이래저래 모아둔 종이컵이 꽤 여러 개 있다. 학교 관사, 주말주택으로 사용하는 시골집, 승용차 컵홀더에도.
아내는 이렇게 모아두어도 별 쓸모가 없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 가끔 위력을 발휘한다. 차에 있는 것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를 닦을 때 쓴다. 강아지와 외출하면 물그릇으로도 사용한다. 시골집에서는 더 유용하다. 씨앗을 분류해 놓는 데에도, 집 안으로 들어온 쥐며느리, 거미, 귀뚜라미 등 곤충을 상처 없이 밖으로 내보내는 데에는 그만한 도구가 없다.
아내는 곤충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 징그럽다고 크게 부른다. 내가 해결사다. 이럴 때마다 의기양양하게 종이컵이 최고라면서 놈들을 가볍게 포획하여 밖으로 내보낸다. 이런 일이 몇 번 있고 나서는 다소 호의적으로 변했다. 그 위력(?)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내마저 가지고 오는 것은 아니다.
쓰고 난 종이컵은 분리수거할 수 없다. 종이 원지에 폴리에틸렌(PE)이라는 합성수지를 코팅하여 만들기에 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안 쓰는 것이 상책이다. 건강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뜨거운 물을 담아 전자현미경과 레이저 입자 계수기로 살펴본 결과 초미세 플라스틱이 엄청나게 많이 녹아 나온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수치다. 미지근한 물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우리가 이러저러한 경로로 섭취하는 미세 플라스틱 양은 매주 신용카드 한 장 분량이라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플라스틱병에 담긴 물이나 수돗물이 대표적인 섭취 경로이며 조개류와 소금 등에서도 많은 양의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된다고 한다. 연안의 바다가 오염되었다는 뜻이다. 생태계의 먹이 사슬을 생각하면 깊은 바다 생물도 안전할 리 없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현대인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덤에 갈 때까지 자연과 지구에 무한한 해를 끼친다고. 예전에는 아이를 키울 때 쓰는 기저귀를 천으로 만들어 재활용했다. 지금은 일회용품을 사용하며 모두 쓰레기로 버린다. 수돗물, 전자제품, 가스, 옷, 종이 등 생활하면서 사용하는 대부분이 전기 에너지를 활용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날마다 버리는 쓰레기의 양은 어떤가! 죽으면 화장(火葬)을 할 수밖에 없지만, 저승으로 가면서도 지구에 탄소를 많이 남기고 간다.
더위가 성큼 찾아왔다. 올여름은 폭염이 예상되어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란다.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온실효과를 내기 때문에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져 많은 국가가 위협받고 있다. 아프리카는 점점 사막화되어 굶주리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고 한다. 지구 곳곳이 산불, 홍수, 태풍 등 자연재해로 피해지역도 늘어난다. 환경과학자들은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한다. 이미 늦었단다. 큰일이다. 마치 인류가 브레이크 없는 열차를 타고 환경오염의 극한 상황으로 내달리는 것 같다.
우리 국민의 연간 사용량이 너무 많아 줄이자는 취지로 당초 6월 10일부터 시행하려던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6개월 유예기간을 둔다고 한다. 업계의 반발이 커서다. 나 한 사람 종이컵을 아끼고 재활용하려고 노력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만 자연과 지구에 해를 덜 끼치며 생활하고 싶다. 더운 여름에도 에어컨을 함부로 켜지 않는 것도, 채식 위주의 식단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첫댓글 정말 큰일입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합니다.
비가 오지 않아 한숨이 느는 요즈음 언제 폭우로 쏟아져 걱정거리로 변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종이컵 하나 허투루 생각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조개와 해산물, 모두 제가 좋아하는 것들인데 그런 셈법이라면 저는 일 주일에 신용카드 여러 장의 플라스틱을 먹겠네요.
생각만으로도 무서워집니다.
에어컨을 안 켤 수도, 종이컵을 안 쓸 수도 없으니 이 노릇을 어찌할까요?
최 선생님, 멋져요.
종이컵 안 쓰는 법 있어요. 가방에, 씻어서 쓰는 컵을 가지고 다니면 됩니다. 부피가 문제라면 쓴 종이컵을 잘 말려서 접어 놓았다가 다시 쓰고요. 최 선생님 비슷하게 내 배낭에는 썼던 종이컵이 있습니다. 이런 조건이 안 되면 가게에 유리잔 없느냐고 물어보고요. 그래도 안 되면 안 마시는 게 답이지요. 나는 이렇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쓰레기의 부피를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무더기로 버려진 쓰레기를 보면 망연해집니다.
선생님의 좋은 습관 정말 훌륭해요.
우리 모두가 동참해야 될 일입니다. 매주 신용카드 하나 분량의 플라스틱을 먹고 있다는 것이 충격입니다.
https://cafe.daum.net/ihun/imFI/1938
https://cafe.daum.net/ihun/imFI/1958
시장에서 물건을 싸 온 비닐봉지도 씻어 말려 재활용하고 밖에서 내가 사용한 종이컵도 가방에 담아와서 승용차 컵 홀더 쓰레기통으로 사용합니다. 한 번 쓰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고 무엇보다 자손 대대로 살아가야 할 지구 환경을 생각하면 안타까워요.
와! 대단하십니다. 저도 텀블러를 쓰려고 노력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