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오고 또 가는 사랑 / 임정자
전날 마트에서 시장을 봐두었던 터라 새벽에 일어나 음식을 만들었다. 배추 두 포기, 무는 한 개로 김치와 깍두기를 담았다. 간장에 마늘과 청양고추, 표고버섯을 넣고 전복장조림을 만들고, 아몬드와 말린 블루베리를 넣은 멸치볶음, 양파를 듬뿍 넣은 소불고기, 밀가루 엷게 묻혀 계란을 입힌 육전 그리고 찰밥에 참깨와 김 가루를 넣고 주물럭주물럭 주먹밥을 만들었다.
두 시간 남짓 차로 이동해야 해서 그것들을 아이스 가방에 담았다. 혼자 카페 하는 녀석이 자꾸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돈이 필요하다고 징징 댈만 한데, 전화하면 늘 "견딜만합니다. 힘들면 말할게요." 해 놓고 말이 없다. 동네 상권을 알아야 한다고 6개월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정주행하더니 6월부터 두 번은 쉰다고 한다. 괜히 가서 불편하게 만든 건 아닌지 간다는 말 없이 전주에 도착했다.
카페가 원룸 인근이라 가게 앞에 주차했다. 쉰다 해놓고 문을 열었나 보다. 손님이 앉아 있다. 카페는 들어가지 못하고 차 안에서 아들이 움직이는 것을 눈으로 따라다녔다. 커피를 내리고 손님에게 응대하는 여유 있는 모습이 창문 너머로 보인다. 두 명이 들어간다. 주문하고 계산하는지 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손님은 카페 안을 두리번거린다. 둘러보고 여기저기 만지고 거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서로 마주 보고 웃기도 한다. 각자의 커피를 들고나온다.
내가 부엌에서 일하고 있으면 옆에서 뭐라도 도와주던 아이였다. 누워 있으면 내 머리를 만지며 "엄마 어디 아파요?" 하던 아이, 누나보다 더 다정하고 살갑게 굴던 녀석이었다. 연년생이다보니 늘 누나와 함께했다. 서로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나 편하자고 같은 학원을 보냈다. 수준에 맞지않은 공부를 하려니 힘들었는 모양이다. 학원 건물에 레고학원이 있었다. 수학공부가 어렵다며 그곳에 보내 달라는 말에 중학생이 무슨 장난감 학원이냐며 영어 수학을 잘 해야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고 나무랬다. 운동도 해야 하고 영어, 논술 학원을 가야 해서 시간도 맞지않았지만, 선행학습이 중요하다 생각했던 때였다.
공부하기 싫은 아이를 무리하게 학원을 보낸 탓인지 방문을 잠그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학원에서 연락 오는 날이 잦았고 피시방으로 찾아 다녔다. 점점 성적이 떨어지자 남편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나 아들과 한바탕 전쟁이 일어나고 말았다. 아들은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이른 취업을 하겠다며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할테니 참견하지 말라고 대들었다. 아들이 딱 꼬집어 말하는 학교가거슬렀다. 중3, 질풍노도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공부를 꽤 잘했던 남편은 학교를 빛낼 학생 중 한 명이었단다. 그 세대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시절이었다. 집에서 조금만 보탬이 되었어도 번듯한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시아버지 생각은 달랐다. 학교의 명예보다 자식의 미래보다 맏이가 집안에 힘이 되어주길 바랐다. 중3 담임이 집에까지 찾아와 시아버지를 설득했지만, 남편은 기계공업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었단다. 이런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뭐가 부족해서."라는 말만 했다.
이런 이야기를 아들에게 해주었다. 녀석의 선택은 바뀌었다. 대학만 들어가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인문고를 진학하자 아들은 숨죽은 듯이 공부해 지방대학을 겨우 들어갔다. 집을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었는지 무조건 먼 곳으로 갔다.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갔다 와서도 아르바이트를 해 돈이 모이면 해외여행을 갔다. 동남아로 유럽으로 러시아 횡단 열차를 타고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공부는 하지 않고 번번이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러더니 서울 모호텔에 취직했다.
올 봄, 아들은 2년 남짓 다니던 호텔을 그만두고 집으로 왔다. 카페를 하겠다는 말에 남편은 동의하지 않았다. 다시 남편과 아들은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 아들의 카페 사업계획서를 남편에게 보여 주고 한번 믿어주자, 설득했다. 직장생활 하면서 쓰지도 않고 3천만 원을 모았다는데 이미 아이의 계획은 서 있었다.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규모로 25평 남짓, 메뉴도 기본은 커피와 과일 주스 외 위스키에 커피를 섞은 음료, 그 외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빵과 쿠키 등 세부 사항을 적어 놓았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전주에서 여자친구가 정원이 있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친구가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을 꿈꿀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나 아들은 내가 온 것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냉장고도 작은데 음식이 많다며 구시렁해댔다. 어릴 적 힘들지 않게 편안한 길을 걷기 바랐다. 서울 가는 길을 완행열차보다는 KTX(케이티엑스)를 예약해 두었다. 넘어질까 내가 먼저 가서 장애물을 제거해 주고 기다렸다. 그것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젠 더 이상 고삐를 걸어 끌고 갈 수 없다. 신경이 쓰이더라도 지켜보는 길 밖에.
첫댓글 아드님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맞아요. 장애물을 제거해주고, 걸어올 길의 바닥도 미리 평평하게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자신의 앞날을 개척할 줄 아는 멋진 아드님입니다.
아마도 좋은 일이 넘칠 겁니다.
부모의 마음이야 고생하는 것이 안타깝겠지만 3자인 제가 객관적으로 보면 너무 멋지고 훌륭한 아드님이네요. 뭐든지 잘 해낼 것 같습니다.
아들을 향한 부모 마음이 절절하게 와닿아 공감하며 읽었어요.
저도 아들을 지켜보며 기다리려 다짐하지만 답답해서 매번 갈등하네요.
임정자 선생님 글과 백현 선생님 댓글 보며 부모 마음은 다 같다는 걸 알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식대로 자식들이 가 주면야 더할 나위 없지만 나이 들어 보니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이 참 다양하더라구요. 지금처럼 지켜보고 지지해 주면 될 것 같습니다.
아들을 향한 선생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사랑이 넘치셨네요. 다음에는 반으로 뚝 잘라도 되겠어요. 멋진 아들입니다.
임정자 선생님!
지난 주부터 우리 모르게 좋은 약 드시고 계시지요?
갑자기 글이 정말 좋아졌습니다.
글 사부가 옆에 생겼을까요?
자립심 강한 아드님으로 잘 키우셨네요.
응원합니다.
이훈교수님이 주신 보약 먹고있습니다. 하하.
'아들 움직이는 것을 눈으로 따라다녔다'
이 문장이 왜 이렇게 아프죠.
저도 전주에 한참 살아서 더 눈이 가고
아들 사랑이 깊이 공감됩니다.
아드님이 정말 잘 자란 것 같아요. 박수 보냅니다.
여섯 번째 수강했어도 다른 사람에게 글을 내보이려면 주저하는데 문우님은 겨우 한 학기 공부했을 뿐인데 좋은 글을 쓰시네요?
훌륭합니다.
어이쿵!!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격려와 응원 그리고 칭찬까지, 여러분 진심 고맙습니다.
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