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던 녀석들이 / 최종호
작년 10월부터 문해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도우려고 복지원에 다닌다. 가는 날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여덟 명을 학년과 읽기 능력의 실태에 따라 비슷한 그룹으로 나누어 세 반으로 운영한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4학년 남학생 두 명이 같은 그룹에서 공부하는데 티격태격하는 날이 많았다. 5월 어느 날인가 수업 시간에 큰 싸움이 벌어지는 일이 생겼다. 급기야 사무실 여직원 몇 명이 와서 말리고 나서야 진정되었다. 교실은 난장판으로 변했고 수업도 엉망이 되어서 떨떠름했다. 공부 시간에 생긴 녀석들의 갈등이 더 크게 번지지 않도록 해결하지 못한 것 같아 조금 민망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둘의 실력이 조금 차이가 나지만 같은 교재로 동시에 수업을 한 결과 때문이다. 한 시간에 세 명을 가르쳐야 할 형편이라 다른 방도가 없었다. 실은 두 녀석의 차이라고 해야 도토리 키 재기다. 조금 뒤쳐진 아이는 자격지심이 강해 평소에 위축되어 있었는데 옆에서 “그것도 못 읽냐?”라고 비아냥거리는 바람에 싸움이 벌어졌다.
다음 시간에 두 녀석은 내게 정중히 사과했다. 누가 시켜서 했는지, 스스로 판단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다행스러웠다. 이런 사실을 지인에게 전했더니 따로 가르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라고 해서 실천했더니 효과가 있었다. 그 후로 경쟁하듯이 서로 달려 와서 가르쳐 달라고 하기 일쑤지만 암묵적으로 순서가 정해져 있다. 제일 떨어진 녀석이 먼저 왔더라도 기다렸다 맨 나중에 공부한다. 다른 아이들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공부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기특해서 과자를 건넨다. 녀석도 은근히 기대한다.
이제 여섯 번만 가면 올해 수업도 끝이 난다. 1학기까지만 해도 녀석들 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학년과 중학년이 그렇다. 특히, 4학년 남학생 두 녀석이 더 신경을 쓰이게 했다. 한 녀석은 오기가 바쁘게 빨리 끝내 주라고 재촉한다. 핑계거리도 많다. “오늘만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오늘만 봐주라는 뜻이다. 그럴 때마다 하기 싫은 녀석 붙잡고 있는 것도 편치 않고 효과도 없을 것 같아 못 이기는 척하고 보내 주었다. 음운 인식도 제법이고 음가도 정확하게 알기에 읽기 연습을 열심히 하면 빨리 좋아질 텐데 불성실해서 안타까웠다.
다른 녀석은 음운 인식도 잘 되지 않고 발음도 정확하지 않을 뿐더러 음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당연히 글자를 떠듬떠듬 읽다가 틀리기 일쑤다. 그렇다고 다른 교재로 할 수도 없었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왜 나는 다른 책으로 공부해요?”라고 말해서 못마땅하지만 하는 수 없었다. 기초가 세워지지 않으니 쉽게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안타깝지만 느리게 가더라도 아이의 요구대로 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많이 할 수도 없었다.
그랬던 녀석들이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한 녀석은 의미 단위로 띄어 읽는다. 다음 시간에 할 것까지 더 읽고 가겠다고 한다. 그 녀석 덕분에 공부 패턴을 정착시킬 수 있었다. 시작하기 전에 지난 시간에 배운 글을 읽는다. 그리고 당일 공부할 새로운 글을 다섯 번 이상 읽는다. 그런 후, 다음 시간에 배울 글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읽기 공부할 때마다 머리 아프다고 했던 녀석도 이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발음도 좋아졌고, 자음과 모음의 음가도 확실히 안다. 그래서 빠르지는 않지만 또박또박 잘 읽는 편이다. 짧은 내용은 서너 번 읽으면 외우기까지 한다. 지난번에는 기특해서 안아 주었다.
속상할 때가 왜 없겠는가? 하지만 가치가 있고, 아이들이 커 가는 보람을 느낄 수 있어서 계속 하고 있다. 처음 우려와 달리 이 녀석들의 글 읽기 실력이 많이 나아져서 다행이다. 문해력이 토대가 되어 바르게 커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