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당신 어디야
저-이규석 수필집
출-맑은책
독정-26.7.29
이규석 선생님은 카네기 연구소를 경영해 오신 분이라서 수필가라기보다 사상가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리는 분이다. 2018년에 출간한 『신명 난 탈출』 수필집을 읽었을 때도 놀랐지만, 올해 출간한 『당신 어디야』 수필집은 삶에서 흘러넘치는 덕과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말씨와 문장 묘사력에 더 무게가 실려 있었다.
“맞아, 선생님의 수필집에는 삶에 대한 경험과 견문과 두루 사상적으로 뛰어난 성찰이 고여있는 게 특징이지. 독특한 필체로 문장을 표현하는 능력 또한 품격 높고!”
감탄하며 읽다 보니, 4부로 나뉘어 있는 작품 46편을 단숨에 다 읽었다.
1부에서는 다람쥐를 관찰하며
‘과잉이 결핍보다 못할 수도 있는 세상! 매사 집착해 가며 너무 야무지게 챙기지 말고, 이제 나도 다람쥐처럼 살아볼 참이다.’
는 삶에 대한 성찰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그래서 문무학 평론가도 ‘이 수필집은 삶의 궤적을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여정으로 안내한다.’ 고 평했다.
그렇듯이 작품을 읽을수록 상념이 무거워지고 공감력이 높아져 간다. 특히 4부 끝자락에는 <지옥 구경>이라는 수필과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죽음과 관련된 수필이 실려 있다.
<지옥 구경>은 119에 실려 가서 치료받는 생사의 기로에 선 심각한 순간도 유머스럽게 묘사해 놓아 해학으로 그 품격을 높이고 있다. 또한 <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글에서는 아버지가 요양 병원에서 식사 도중에 기도가 막히면서 산소 호흡기를 떼어야 할지, 이어야 할지를 결정하기가 고뇌스러웠던 장면 이야기→ 김수환 추기경이 품위있게 죽음을 맞는 모습→그리고 내 죽거든 부탁할 일들까지로 생각이 구체적으로 펼쳐지며 고뇌하는 이야기로 그려지고 있다.
우리 나이도 이렇게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사는 나이까지 왔기에 친분이 있는 분을 만나면 죽음에 대해 어떻게 준비. 대비하고 있는가를 묻곤 했는데. 이 책에서 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주어서 고마웠다.
그리고 <알토란같은 친구야> 글에서 ‘꽃달임’이라도 벌이듯 하는 단어가 나와 처음 접했다. ‘순 우리말로 봄철에 생화를 따서 전을 부치거나 화전 떡에 넣어 먹으며 즐기는 봄놀이’라는 뜻임을 알았다. 그리고 ‘돌아가는 승용차마다 봉개(?)를 가득가득 실어주고 손을 흔드는 그대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에서 봉개가 무슨 뜻일까 찾아봤는데, 강원도, 경상도 등지에서 쓰는 봉지의 사투리라는 설명이 나왔다. 그럴까?
이렇게 선생님은 순우리말들을 찾아 쓰고 계셨다. 그러니 작품의 격이 높을 수밖에.
다음에는 좋은 문장들이라서, 또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게 된 사실이라서 기억하고 싶어서 정리해 본 글들이다. 내게 참 좋은 공부를 시켜준 고마운 책이기에 수필가 이규석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다람쥐 타령>
• 다람쥐는 새벽부터 먹이를 찾아 잠자리, 여치, 거미 같은 곤충을 잡아 막고 도마뱀도 스윽
누가 보거나 말거나 오물오물 먹어댄다. 위가 다 차면 볼주머니를 채우고
남은 토토리는 겨울 대비를 위해 땅에 파묻는다. (귀여운 표현)
욕심을 내다보니 잘 잊어먹기도 해서 모은 재산 다 써보지도 못하고 저세상으로
<쓸모없음의 쓸모>
• 잡초-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수록 역적 귀양 보내지듯 텃밭에서 내쫓긴다. 일찍 봄을 알려주기 위해 맨몸으로 겨울을 견뎌낸 냉이는 위로받지 못하고 제 나름 사명감과 개성 넘치는 이름으로 살았는데 내 이름 모른다고 잡초라 말라. 배고픈 시절 구황식품 노릇을 톡톡히 해왔던 쇠비름은 뿌리째 뽑혀 열흘을 뙤약볕 아래 내던져졌다가도 소낙비 한줄기에 되살아날 만큼 끈질기다. 잡초는 대지의 여신에게 친자식이고, 사람이 심은 채소는 의붓자식이라
• 불난 자리에는 항상 잡초가 먼저 자리를 잡는다. 이어서 간 목, 교목 순으로 나무들이 들어서고 해를 거듭하며 산은 다시 숲을 이룬다. 실처럼 가는 뿌리로 지구를 움켜쥔 잡초가 토양의 유실을 막아가면서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가시투성이인 엉겅퀴는 여린 숲을 나물로 내주고 뿌리는 한약재로 귀히 쓰인다. 청려장이라는 명품 지팡이는 흔해 빠진 잡초, 명아주로 만들어진다. 긍정으로 보면 유익하지 않은 잡초가 없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벌이 사라지면 과일도 함께 사라질 텐데.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살아야 하나. 간 큰 가해자였다가 어느새 대책 없는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인간의 탐욕과 오만은 어디까지, TV에서 북극이 녹아내리는 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린다. 지구를 꽉 잡고 있는 잡초에게서 쓸모없음의 쓸모를 배워야겠다.
• 아린 감자- 더 커져라, 자꾸자꾸 커져라, 삘리빨리 커져라. 주문도 걸었다. 노래와 함께 밭고랑은 나날이 통통해졌다. 감자처럼 둥글둥글했던 고모는 포슬포슬하게만 살 수 없었다고 했 다.
-아 출고 북구가- 그 짐승 같은 언덕과 귀신같은 바위들은 창을 세우고 방패를 버려 놓은 것 같고, 큰물이 산 틈에서 쏟아져 흐르는 소리는 마치 군사가 싸우는 소리나 말이 뛰고 북을 치는 소리 같다. 하늘 밖에 학이 우는 소리가 대여섯 번 들리는데, 긴 것이 피리 소리 같기도 하고 거위 소리라고도 했다.
-소단적치인- 글자는 비유컨대 병사이고, 뜻은 비유하면 장수이다. 제목이라는 것은 적국이고 인용하는 고사는 싸움터의 진지이다. 글자를 묶어 구절이 되고, 구절을 엮어 문장을 이루는 것은 부대의 대오 행진과 같다. 운으로 소리를 내고, 시로 표현을 빛나게 하는 것은 군대의 나팔이나 북, 깃발과 같다. 조 옹이란 봉화이고, 비유는 유격군의 가병이다. 악양반복이라는 것은 끝까지 싸워 남김없이 죽이는 것이고,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반백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다. 여음이 있다는 것은 군대를 떨쳐 개선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방법을 잘 아는 자는 버릴 만한 병졸이 없고, 글을 잘 짓는 자는 가릴 만한 글자가 없다.
-지금 나는 240년 전의 선각자. 연암 선생을 만나고 오는 길이다. 귀인을 만났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 그대는 제사상의 탕국처럼 맑고 개운한 맛이 나는 사람이었지.
• 그 집에는 제사가 끝나도 딸네들은 꽃달임(봄철에 생화를 따서 전을 부치거나 화전 떡에 넣어 먹으며 즐기는 봄놀이) 이라도 벌이듯 몇 날 며칠 동안 웃음소리와 수다가 그치지 않았다. 돌아가는 승용차마다 봉개(?)를 가득가득 실어주고 손을 흔드는 그대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
훌륭한 가수가 되기 위한 그들의 열창은 곡진하다(매우 정성스럽고 간곡하다.) 세상사는 경쟁이 치열할수록 감동은 깊어진다. 지금은 매미 집 같은 허물만 남았다.
귀향하니 홀로 집을 지킨 감나무 위로 참새 떼 날아올랐다. 축하 비행인가
• 백두산 아래 첫 동네인 이도백하에 이르렀을 때 옴팡지게 비가 쏟아졌으나, 산 위에는 눈이 내리고 있으니, 한여름에 눈이라니. 내 안에서는 거꾸로 된 청개구리처럼 묘한 기쁨, 유쾌한 반란이 일고 있었다. 산에는 눈이 쌓여 입산 금지령이 내렸단다.
아 천지! 하늘에 닿은 듯이 치솟은 장군봉, 향로봉, 차이봉, 제비봉으 천문봉, 비류봉... 병풍처럼 둘러쳐진 열여섯 봉우리를 자식처럼 싸안은 천지는 어머니 품처럼 푸근했다. 백두산은 허구한 날 비바람에 씻겨도 한 치도 낮아지지 않았지, 천지는 삼백예순다섯 날 내내 장백폭포로 물을 흘려보내도 한 주도 줄지 않았다. 우리는 옷깃을 여며 만세를 불렀다. 이 영봉에 태극기가 휘날리기를 바라며!
• 주목은 죽어서 더 밝은 색을 낸다. 껍질은 군데군데 아픈 속살을 드러냈지마는 시련을 단련으로 승화시킨 옹이는 결 고운 무늬로 남았다. 겉보다는 속, 그가 죽음이라는 문턱을 넘어서자 숨겨져 있던 성품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순재 씨 후배들이 왜 연기는 할수록 어렵냐고 푸념하자 “지금의 나도 어려워. 그래도 훗날, 자식이 아버지의 대표작을 물었을 때 할 이야기가 있어야 해”하며 등을 두드려 주더란다. 고통을 호소하는데 완쾌 후의 모습을 그려주었으니, 젊은이들의 가슴에 야무진 꿈을 심어준 셈이다.
<생각하는 정원>에서 나무의 소리-성범영 원장의 나무 예찬론(좋은 글)
나는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아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 나 자신만 몸피를 키우고 잎을 만들며 꽃도 피운다. 맺은 열매는 사람과 동물의 먹이로 내놓기도 한다. 날마다 맑은 공기를 내뿜고, 여름에는 땀 흘려 일한 사람들을 위해 시원한 그늘을 내놓는다. 죽어서는 내 몸을 썩혀서 산 나무들을 위해 거름이 된다. 더 많은 햇빛 받기 위해 경쟁을 하다가도 벌레가 덤비면 옆에 있는 친구와 함께 방어막을 치고 눈이 없어도 상대를 찌르지 않고 서로 비켜 가며 살아간다.
<이규석 선생님의 생각>에 깊게 공감한 부분
나도 큰 나무로 우뚝 서고 싶었다. 하지만 수세가 시원찮아 내 준 그늘도 맺은 열매도 초라했다. 본 바도 배운 바도 적은 난 널리 베풀지 못한 것이 더 아쉽다. 산이 붉고, 산을 비추는 계곡도 붉고, 바라보고 서 있는 나도 붉다고 했던 망명의 식구처럼 어느새 내 인생에도 단풍이 물들고 있다. 뉘 좋아서 고목이 되었을까만 어쩌자고 지난 가을 미치도록 고왔던 청량산의 단풍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지옥 구경>
마치 응급실로 실려가며 느낀 것을 지옥 구경이라는 묘사로 해학적으로 표현하였다.
링거를 꽂고 범죄자 심문보다 까다로운 신상 털기가 끝나자 의사는 내 속을 들여다보겠단다. CT와 MRI를 찍어야 한다며 가차 없이 방사선 촬영실로 밀어 넣었다. 흉악범을 다루듯 몸을 묶고 머리까지 고정시켰다. 철저히 자유를 빼앗아 놓고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엄포도 놓았다. 그러고는 인정사정없이 좁다란 터널 속으로 쑤셔 넣었다. 난 꼼짝딸싹 못하는 영아의 몸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지은 죄들이 옴니버스 영화의 화면처럼 스쳤다. 차마 밝히기 곤란한 죄는 숨겨주었더라면 오죽 좋았을까만, 낯 뜨거운 기억부터 뛰쳐나와 굿판을 벌였다. 등허리가 축축해졌다. 왜 내 몸을 내가 통제할 수 없었을까? 핑그르르 돌다가 저절로 다리에 힘이 빠져 옆으로 무너진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흥겨운 회식 자리 한쪽 구석에서 아내의 다리를 베고 누운 꼴이 영 아니었다.
119구급차를 불러 타고 지옥으로 향했다. 염라대왕의 선고는 준엄했다. 제 푼수를 모르고 밤낮없이 펄쩍거리며 탐욕을 부린 죄, 나이를 잊고 깨춤을 추듯 무리하게 몸을 내돌려 과로한 죄, 게걸스레 기름진 고기를 즐겨 먹어 콜레스테롤을 높인 죄, 사양하지 않고 술잔을 넙죽넙죽 받아 마신 죄, 운동을 게을리해 과체중을 만든 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죄에다가 아내의 권고를 무시한 죄 등 숱한 죄목들이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여러 가지고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어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죄목은 ’기립저혈압‘이라고 선고했다. 피고가 죄를 순순히 자백한 사실과 초범이라는 정상을 참작해 일 년간 집행유예에 처한다고 했다. 석방의 기쁨에 앞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다시는 지옥에 이르지 않고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을지가 막막했다.-
< 내 죽음을 알리자 말라>
훌륭한 사람은 뒷모습이 좋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어떤 모습을 남겨야 할까. 만약 큰 병으로 드러누웠다면 다시 일어난다 한들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지 냉정하게 따져보아야겠지. 가족에게 혹 짐이 될지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겠다. 말로는 죽겠다 하면서 악착같이 사는 것도 하루이틀 아니겠는가 ’숨과 백박이 멈추면 애써 심폐페소생술을 하지 마라. 안구는 앞 못 보는 이에게 기증하겠다.‘ 던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품위 있는 죽음을 맞았다.
“내 죽거든 외부에 부고하지 말고, 가족끼리만 장례를 치른 후 뒷정리가 다 끝나면 여기 적어놓은 스무 분을 모셔서 가장 맛있는 밥 한 그릇 대접해 드려야.”
내가 가족에게 부탁해 둔 유언이다. 나이 먹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인 줄 몰랐고, 세상 떠나는 것이 이리 힘든 일인 줄도 몰랐다. 그동안 쌓아놓은 공덕이라도 있다면 자던 잠결에 데려가 달라고 응석이라도 부리겠지만, 어찌 홀연히 떠날 수 있기를 바랴랴.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신 충무공의 유언이나마 감히 흉내 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