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 조미숙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촛불집회에 다녀왔다. 텔레비전 앞에서 뉴스 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는데 이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안타까웠다. 초등학생들까지 나와 구호를 외치고 국민의힘 당원 105명의 이름을 쓰고 찢어버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시민 참여의 기회가 주어졌으나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개사해 국힘당 의원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노래를 들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이 나라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아픈 기억의 ‘광주의 주먹밥’이 따뜻한 ‘선결제 커피’로 변하고 무거웠던 시위 현장이 엠지 세대들의 신나는 문화 콘서트장으로 바뀐 것을 비록 바라보기만 한 처지이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자부심이 느껴진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국이지만 아직은 견딜만하다.
이번 주로 공식적인 업무는 끝났다. 몇 개가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긴 휴면기에 들어간다. 어찌 보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잠시 쉬어가는 기회이기는 하지만 실업급여로 버텨야 하는 궁핍기여서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벌써 내년 일이 걱정이다. 언제나 불안정한 미래다. 아니나 다를까 일거리가 하나 없어졌다. 한 곳에서 내년에는 예산이 없어 힘들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풍선 하나가 내 손에서 떠나버린 느낌이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시간이다. 직업이 특별하다 보니 또 사업권을 따야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므로 경쟁자가 얼마나 있을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또 내년에는 도내 사업을 줄일 거라는 소문도 있다. 어느 곳이 해당될지 모를 일이다. 4월도 다 지난 시기에나 결정이 나기에 다른 곳에 일자리를 알아보는 일도 불가능하다.
글쓰기도 늘 같은 고민으로 시작한다. 망설임 끝에 등록하지만 글을 쓸 때마다 난관에 부딪힌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는 일은 행복하지만 벽을 깨지 못하고 갇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나마 안 하면 글과는 영원히 이별할 것 같고 하자니 매번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었다. 그래도 어떡하나 유일하게 나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이 글뿐인데.
올해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글쓰기도 머뭇거리다 등록했고 일도 한차례 소란을 겪은 뒤에 시작했다. 일 년을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어느덧 또 12월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 등으로 다 그만두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아둥바둥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지친다. 아이들도 한 치 더 성장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막판에 나라까지 시끄럽게 되어 정신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 아귀다툼이다. 평화로운 일상이 그리운 시기다.
시국은 시끄러워도 개인의 삶은 이어간다. 소중한 이 시기를 게으르게 보내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이것저것 계획을 세워 본다. 목대 평생교육원 연필화 초급반에 등록했다. 8주간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결석 없이 잘 할 수 있을까, 돈만 버리는 건 아닐까 고민하다 결정했다. 그리고 숲 공부하려고 스터디 모임도 들어갔다. 사실 머리 아프게 공부하는 것은 썩 좋아하지 않지만 친한 사람들 몇몇이 하는데 나만 빠지기도 그렇고, 그냥 생태 관련 책을 읽거나 다큐와 영화를 보기로 해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애초에는 마음과 시간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노거수 탐방을 가거나 서해랑길을 시작점부터 걸어보고 싶었다. 사실 용기만 있다면 혼자 하고 싶었는데 낯선 길에서 누구를 만날지 모르니 무섭고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뭔가 더 늦기 전에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리고 좋은 책 필사도 하고 싶다. 정독이 안 되어 기억하는 내용도 없고, 행간의 뜻도 헤아리지 못해 수박 겉핥기 독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구책이 필요해서 얻은 결론이다. 부디 이번만은 제대로 알차게 보내고 싶다.
자꾸만 이불 속으로 손짓하는 졸음이 오늘도 나를 괴롭힌다. 떨쳐 내려고 기를 써 보지만 어느덧 지고 만다. 그래도 노력한다. 어질러진 집을 치우고 살림살이를 반짝이게 하는 역량은 없다. 엄마, 아내, 주부로선 꽝이어서 알뜰살뜰한 살림보다는 늘 내가 좋아하는 일이 우선이다. 발길에 차이는 책들 속에 있어서 행복하다. 양심의 가책에 때론 흔들리지만 난 나를 늘 용서해 준다. 내년에도 나를 사랑하는 이 마음은 변함이 없기를 바란다.
첫댓글 광주의 탄핵 시위는 엄청난 인파가 몰랐습니다.
영하의 날씨인데도 조금도 추위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를 사랑하기.'는 사랑 헌법(?)이의 제 1장이겠죠?
'나를 사랑하기' 헌법 좋네요. 하하!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촛불집회에 다녀왔다." 멋지십니다.
노거수 탐방, 서해랑 길은 좀 아쉽네요. 선생님과 노거수,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같이 다닐까요? 든든할 것 같습니다만....
선생님처럼 알차게 보내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 겁나 멋져요.
그렇게라도 허세를 부리며 살아야죠. 하하!
와, 제목이 완전 센스 짱인데요.
혹시 본인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지? 큭큭!